0145 ----------------------------------------------
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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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구를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 또한 진화시켰지만 반대로 육체적인 능력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퇴화했다고 한다.
야생의 생활을 포기하고 문명에 적응했으니 야성과 생존능력이 약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나태해진 사이에 치열한 생존경쟁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면서 진화를 거듭해온 몇몇 생물들은,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거의 불사不死에 근접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두뇌를 잘라내면 신체의 새로운 부위로 두뇌를 만들어내는 플라나리아라던가 불태워도 얼려도 죽지 않는 곰벌레라던가, 일정한 나이를 먹으면 회춘하면서 영생을 누린다는 투리토프시스뉴트리 쿨라 해파리라던가, 신체의 90%가 박살나도 죽지 않는다는 scp 682라는 파충류라던가…….
굳이 메멘토 모리나 신중의 신은 데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블랙홀에 집어넣으면 전부 다 죽어버리는 것은 사실이니 그들에게 완벽한 불사不死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별별 사소한 이유로 이승을 탈출하는 인간과 비교하면 그런 능력들이 경이적이고 부럽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류안은 칼레이도치 클루스 시스템을 조종하면서 그런 생물들의 진화적인 특성들을 모방해서 기사단에 집어넣었지만 브륜힐트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설마 플래닛 이터랑 동격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닌 게 아니라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힘은 소멸의 힘.
더 이상은 쪼개질 수 없는 아원자의 영역까지 대상을 분해시켜버리는 그 능력은 생물학적인 특징과 유전 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백색의 기사단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류안은 그쯤에서 기사단에게 정자의 특성을 버리고 바이러스적인 특징을 집어넣어서라도 물량으로 브륜힐트를 압도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사실은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소멸의 힘을 사용하는 그녀를 당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능가하려면 블랙홀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암흑물질급의 내구도를 가지고 있거나 더 이상은 쪼개질 수 없는 원자급의 내구도를 보유해야만 감당을 할 수가 있지만, 기사단이 그런 수준까지 진화하려면 세컨드 임팩……아니, 빅뱅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가능한 수준.
별다른 생각 없이 기사단을 거세(?)시키면서 크기를 줄이고 바이러스화 시키던 류안에게 바라모스의 설계도가 떠오른 것은 그 때의 일이다.
‘잠깐만……그러고 보니까 얘들을 결합시키면 바라모스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 그 정도의 크기를 유지하려면 마나순환로가 필요하지만 얘들 자체가 신성력 덩어리니까 마나 대신에 몸속에서 뛰어다니게 만들면…….’
도박적인 발상이기는 했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그리고 류안의 그 선택은 의외로 브륜힐트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선택지기도 했다.
신들의 대적자라고 불리는 요툰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바라모스는 브륜힐트의 공격에 주술적인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크윽, 이런 말도 안 되는……정말로 요툰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수많은 분신들을 만들어내서 쉴 새 없이 그람을 휘두르던 그녀는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속도가 느리고 별다른 공격수단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지만, 아무리 팔다리를 잘라내고 불태워도 순식간에 회복하면서 진격을 멈추지 않는 거인들의 행렬.
“싫어! 쟤들은 너무 크단 말이야, 저런 애들한테는 임신당하는 건 싫어!!”
난자와 결합한 프레이야는 수호자들을 지휘하면서 브륜힐트에게 가세했지만 거인들은 온갖 구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진군을 계속하면서 마침내 성벽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리고 거인들의 뒤를 따라서 성벽을 넘어서는 기사단의 행렬.
와아아아아아!!
[전군 돌격! 우리들의 목표는 단 하나, 난자를 찾아내서 결합하는 것이다!]
[그렇게는 두지 못한다!!]
단숨에 성을 함락시킬 기세로 밀려드는 기사단을 바라보면서 사자후를 토하는 브륜힐트.
지이이이잉!!
그람이 빛을 뿜으면서 반경 수십km에 이르는 기사단이 불타며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거인을 방패막이로 생존한 기사단과 거인들은 꿋꿋하게 다시 고개를 내밀면서 프레이야를 쫓아서 걸음을 옮겼다.
쿠궁, 쿠궁, 쿠궁!
[찾아라, 찾아내서 수정시키기만 하면 우리들의 승리다!]
[형제들이여 우리의 비원이 눈앞에 있다! 단결하라!!]
“꺄아아악! 어, 어떻게든 막아 봐! 쟤들 눈이 무섭단 말이야!!”
절규하면서 내성으로 도망치는 프레이야와 그녀를 뒤쫓아 가는 백색의 기사단.
‘이대로라면……당한다.’
불리하기 이를 데 없는 전황에 브륜힐트는 입술을 깨물면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패배.
신적인 존재도 아닌 필멸자에게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다.
요툰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거인들은 브륜힐트가 쏟아내는 대부분의 공격에 주술적인 면역들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요툰에게 치명적이라고 할 수가 있는 토르의 힘을 빌리는 뇌전의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것마저도 먹히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류안이 염려했던 대로 이 거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라모스와 똑같이 구조 자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브륜힐트가 중력의 힘을 이용하거나 채내의 시간을 급격하게 노화시키는 술법을 사용했다면, 순식간에 자멸하고 말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눈앞의 적수가 완벽한 요툰이라는 착각을 하는 바람에 그런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투콰콰콰콰쾅!!!
고오오오오오오!!!
몸을 반쪽으로 양단해버리는 공격을 얻어맞고도 오히려 2체로 늘어나면서 진격을 계속하는 거인들.
무한대로 증식하지는 못해도 세포 분열로 자신의 설계된 원형의 모습을 순식간에 되찾아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섣부르게 분단시켜버리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숫자를 늘려버리는 최악의 선택지였다.
마침내 성의 중심부에 도착한 백색의 기사단.
[찾았다! 프레이야다!!]
화려한 옥좌가 마련되어 있는 장소에 있는 프레이야는 자신을 노리고 몰려드는 기사단을 바라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어떻게 좀 해 봐!!”
[프레이야님을 지켜라!!]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수호자들이 검을 꺼내들면서 외쳤지만 이미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기사단의 능력이 그들을 뛰어 넘은지는 오래.
챙, 챙, 챙, 챙, 챙!!
[크아아아악!]
수호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면서 전황이 불리해지는 가운데 공처럼 생긴 조그마한 기사들이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수호자들을 뚫고 날아가면서 외쳤다.
[내 아를 낳아도!!]
“아, 안 돼. 살려줘, 오드!!!”
투쾅!!
자신의 전 남편의 이름을 외치면서 절규하는 프레이야에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나타난 백마를 탄 여기사, 브륜힐트.
[괜찮으십니까?]
그녀는 날아오는 수호자들을 단숨에 소멸시키고 난 다음에 분신으로 그녀의 사방을 에워싸고는 태양신의 방패를 소환하면서 백색의 기사단을 근본적으로 차단시켜버리고 말았다.
[고마워, 브륜힐트.]
화르르르륵!
쿵, 쿵, 쿵, 쿵!
[크아아악, 젠장! 승리가 바로 눈앞이었는데……]
[치사하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목숨 걸고 저지하다니 우리는 단지 자식들을 낳고 싶을 뿐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번식해야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그것을 몰라주는 거냐! 흐어어엉!]
기사단들은 솔의 방패에 가로막혀서 몸이 타들어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한 맺힌(?)절규를 늘어놓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들이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일리는 없었다.
오히려 다른 분신들을 이용해서 주변에 몰려드는 기사단을 학살하는 브륜힐트.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크아아아악! 올마이티님, 우리들의 비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기사단 만세! 형제들이여, 영원하라!]
눈물이 벅차오르는 비장한 유언들을 남기며 학살당하는 기사단의 절규가 한동안 이어져 나갔지만 그들을 학살하는 브륜힐트라고 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을 동정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지만.
‘이 세계를 되살리는 작업은 대부분 완료되었다. 이대로 수십 초만 버티면 필멸자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도 문제는 아니지. 하지만, 나는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전투에서는 패배했다. 필멸자를 상대로 이런 비겁한 방식까지 사용해야만 하다니…….’
류안이 만들어낸 거인을 한 마리도 처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브륜힐트의 가슴에 비수로 변해서 박혀버렸다.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라는 분야에서 설마 이런 식으로 좌절감을 맛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녀. 인간의 영웅이 아무리 극한의 수련을 쌓아올려도 도달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하던 영역이 침범 당하자 발키리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으로 몸을 부르르 떨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쿠구구구구궁!!
천지가 뒤흔들리는 것과 같은 굉음과 함께 거인의 손아귀가 그녀들이 있는 중심부의 건물을 통째로 잡아들면서 허공으로 들어 올려버렸다.
투두두둑!
건물들의 파편을 털어내고는 자신의 손이 불타버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압박해 들어오는 거인의 손.
콰지지직!
“꺄아아악! 어, 어떻게 해!”
[어림없다!!]
무능력해진 프레이야는 솔의 방패가 부서질까봐 호들갑을 떨면서 비명을 질렀지만 마치 장난감처럼 취급당하는 것에 분노한 브륜힐트는 노호를 터트리면서 솔의 방패를 사방으로 밀어내었다.
쿠구구구궁!
태양신의 방패가 사방으로 확장되면서 거인의 손아귀를 밀어내는 순간.
거인의 악력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벌려지고 말았지만 방패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조그마한 틈이 생기는 것을 놓치지 않고, 거인의 손아귀 내부에 잠복하고 있던 기사단들이 일제히 그 틈을 노리면서 날아들었다.
[함정이라고?!]
당황한 브륜힐트는 다급하게 그람을 끄집어내며 기사단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지만, 지나치게 속도가 빠른 나머지 전부 처리하는 데는 실패하고 몇몇 기사단의 침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흐아아아앙! 이게 무슨 단독 임무예요!]
덥썩.
그리고 울음을 터트리면서 솔의 방패 내부로 침투하고는 급기야 프레이야를 터치하는 임무까지 성공하게 된 행운아는 핑크빛 머리카락의 SD소녀, 스테파니.
“자, 잠깐만 너는 도대체 뭐니?!”
우락부락한 남자들만 존재하던 기사단에서 갑자기 귀여운 여자아이가 튀어나와 자신을 터치하는 바람에 놀란 프레이야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질문을 던졌지만, 이미 유전정보를 건네고 천천히 융합되기 시작한 스테파니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신음을 토해내었다.
[하으으윽, 기, 기분 좋아요. 가, 같은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는데 느껴버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안 돼.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지 마! 이러면 안 돼!!”
그리고 이어지는 백합, 아니 퓨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사단을 희생시킨 그 싸움에서 결국 마지막에 공주님, 아니 여신님과 맺어지게 된 기사는 같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스테파니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브륜힐트에게 숙청당한 류안은 지나치게 위험한 흑염룡의 능력을 봉인당하고, 다시 한 번 영혼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힘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알 수 없는 성취감과 기분 좋은 나른함에 취하면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팔자좋게 꿈까지 꾸는 류안.
그는 꿈속에서 자신에게 햇살처럼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하는 핑크빛 머리의 귀여운 소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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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줄 후기
약간 서둘러서 끝내느라 엉성해진 감은 있습니다만 해피엔딩(?)이니까 상관없겠죠!
코멘트 답변
오늘도 간신히 올렸으니까 그냥 넘어가게 해주세요. ㄷㄷㄷ
항상 시간이 없다는 게 말썽이네요. 욕심 같아서는 조금 더 손을 봐서 올리고 싶었는데...
아, 참. 쿠폰 선물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