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3 ----------------------------------------------
지상편
[섬기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승리, 우리들에게 영광스러운 승리를 가져다주십시오!]
류안이 당도하는 장소마다 다양한 종족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백색의 기사들이 도미노처럼 무릎을 꿇으면서 경의를 표시했다.
‘하여간 하나하나 호들갑이 심한 녀석들이라니까…….’
숫자를 세는 건 포기했고 어림잡아서 대략 수천억에서 조 단위는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까하는 대군세가 지상과 공중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사령부의 조종석이 아니면 명령조차 제대로 하달을 할 수가 없는 수준.
대부분의 전력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서 프레이야 최후의 성을 공격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보충되는 군대의 숫자도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았고, 사령부를 지키는 수비군만도 가볍게 억 단위는 넘어간다.
그렇게 아찔하도록 많은 녀석들 중에서도 난자와 만나서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녀석은 불과 한 마리에 불과하니, 나머지 녀석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녀석들에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도 주제넘은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류안이지만, 이성이 납득한다고 감정까지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이 인간.
자신을 열렬하게 환영하는 해맑은 녀석들을 바라보면서 아원자로 분해된 양심에 자극을 받은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반드시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녀석들도 세상에 한 번 태어나고 싶다고 저러는 건데. 현실에서는 힘들어도 적어도 꿈속에서라도 소원을 이루어주자.’
다多를 희생해서 소小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남자의 성행위라고 한다.
현실에서는 아직 정착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핑계로 녀석들의 갈망을 외면해온 류안이지만, 꿈속에서만이라도 소원성취를 시켜주자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잠시 후에 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브륜힐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흑염룡이 만들어낸 공간의 영향을 피하지는 못하고 SD캐릭터로 변신해버린 상태.
평소의 근엄하고 무표정한 얼굴도 이모티콘과 카툰 랜더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마치 중2병에 시달리는 사춘기 소녀처럼 시니컬하고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녀답지 않은 귀여운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 한 류안이지만, 부하들의 앞이라는 생각에 애써 체통을 지키면서 나름대로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길을 열어라.”
[하지만 장군님!]
그녀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인지 친위대의 기사들이 그렇게 외치면서 류안을 만류했지만,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들어 올리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걱정하지 마. 그래도 명색이 발키리인데 설마 외교특사로 찾아와서 암살 같은 비겁한 짓을 저지르겠어? 여기까지 찾아온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자고.”
[……알겠습니다.]
단호한 류안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친위대지만 브륜힐트를 향하는 경계심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친위대가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다니……과연 라스트보스는 뭔가 달라도 다르군.’
친위대는 프레이야가 가끔씩 파견하는 암살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그녀도 류안의 지휘가 가장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소수정예의 강력한 수호자들로 팀을 편성해 왔다.
초반에는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다가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친위대를 상당한 수준으로 단련시킨 그였다.
덕분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프레이야가 감히 어쌔신들을 보내지 못할 정도로 성장한 녀석들이지만, 브륜힐트를 상대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지 명백하게 공포에 질려 있었다.
반면에 그녀는 대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
하지만 류안은 주눅 들지 않고 능청스러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브륜힐트님!”
[상당히 즐기고 있는 모양이군, 필멸자여……이것이 그대의 본성인가?]
“본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게임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죠. 아니, 그런데 꿈속에서까지 그렇게 텔레파시를 사용해야 됩니까?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저처럼 귀여운 육성으로 말하는 게…….”
[잡담을 할 생각은 없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잡담은 자기가 먼저 시작했으면서……아, 알겠습니다. 찾아오신 용건이 뭡니까?”
썩어도 준치라고 3등신으로 귀여워진 브륜힐트가 분노하면서 뿜어내는 기세는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아프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친위대로도 이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류안은 한 발 물러서기로 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그것보다도 더한 양보였다.
[지금 즉시 모든 공격을 중단해라.]
“싫습니다.”
[거절하면 소멸시키겠다.]
요구와 협박.
알몸으로 같이 목욕도 즐기고 약간은 온화해졌다고 생각한 그녀가 다짜고짜 양아치처럼 행패를 부리자, 류안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소멸시키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도 협상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약간은 융통성인 생긴 줄 알고 이야기나 나눠보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까 제 착각이었나 보네요. 아무리 제가 격이 떨어지는 존재라도 그런 요구를 받아줄 이유는 없습니다! 아무리 힘이 강하면 뭐합니까? 자고로 손자병법에서 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라고 했는데, 협상의 협자도 모르시는 분이 무슨 발키리라고…….”
푸념과도 같은 류안의 힐난이 이어졌지만 브륜힐트는 강경한 태도와는 다르게 담담한 표정으로 그가 이야기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인가?]
“전부입니다!”
후련하게 뱉어낸 그가 당당하게 외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았다. 그러면 전쟁터에서 보도록 하지.]
푸슝!
다음 순간에 브륜힐트는 순간이동으로 모습을 감췄다.
웅성웅성.
[가 갑자기 사라졌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물학적인 진화만을 거듭한 백색의 기사단은 자신들의 포위하고 있던 대상이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자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우왕좌왕했다.
다음 순간에 브륜힐트가가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성벽의 위쪽.
당장이라도 프레이야의 성을 함락시킬 기세로 공습을 계속하고 있던 비룡기사단의 몇몇이 새로운 적의 등장을 확인하고는 일제히 공격해 들어갔다.
키야아아아악!
와이번을 연상하게 만드는 비행수들이 이빨을 드러내면서 브륜힐트를 위협했지만, 다음 순간에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져있는 승리의 검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었다.
[그람이여, 적들을 주살하라!]
투쾅!!
하늘을 양단하는 거대한 빛의 고리가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것은 악전고투를 계속하는 프레이야의 수호자들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백색의 기사단은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성벽의 위로 기어올랐던 지상군은 전멸.
거기에 30%에 가까운 공중병력이 단 일격으로 일소당하는 어처구니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브륜힐트는 자신의 파워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한 방으로 적의 공중병력을 일소할 생각으로 날린 공격이었다. 내 능력을 이렇게까지 억누르다니 이 공간은 도대체?’
하지만 그녀의 당혹스러움은 류안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 씨! 아무리 라스트보스라고 해도 저건 너무하잖아?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아야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지. 이런 망겜 같으니라고…….”
브륜힐트와 같은 우주적인 존재들은 세계의 모습에 따라서 그들의 형태와 능력 또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고 한다.
거인들의 세계에서는 거인만한 크기로 소인들의 세계에서는 소인만한 크기로.
중요한 건 그들이 어느 세계로 들어가더라도 규격 외에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라는 사실이다.
프레이야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능력을 빼앗기고 자의식만을 겨우 피난시켰으니 사실상의 무능력자지만, 발키리의 능력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는 브륜힐트의 경우에는 이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비록 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흑염룡이 그녀의 능력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약화시키고는 있지만, 애초부터 가지고 있는 힘의 규격이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그녀가 휘두르는 일격, 일격은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백색의 기사단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마, 말도 안 돼. 저런 걸 어떻게 이겨?]
[장군님의 명령이다. 전군, 일시적으로 퇴각하라!!]
프레이야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주력병력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서둘러서 퇴각을 명령하는 류안.
‘젠장! 이래서는 아무리 병력들이 많아도 방법이 없잖아? 뭔가 해결책을 찾아내야만 해……아무리 망겜이라도 어딘가에는 클리어 할 수 있는 꼼수가 존재할거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브륜힐트의 목적은 그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인지 퇴각하는 적을 공격하거나 사령부를 직접 타격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이 류안에게는 오히려 더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지만 당하고만 사는 성격은 아니라서, 진화 포인트를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군대를 강화시키는 한편으로 브륜힐트를 공략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이런 게임들이 있지. 설명도 없이 이벤트성으로 이길 수 없는 적들을 만들어놓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녀석들. 젠장, 나는 예전부터 그런 게임들이 싫었어. 왜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놓고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거야?’
그가 전생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면서 잠시 분노를 삭이며 공략법을 연구하는 사이.
간신히 여유를 되찾은 프레이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브륜힐트에게 다가와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도와줘서 정말로 고마워.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네가 외면할 줄 알았는데…….”
[아스가르드의 신을 보호하는 건 발키리로서 당연한 행동입니다. 설령 그것이 생명의 위기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프레이야기 때문에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 헛기침을 하는 여신이었다.
“그나저나 어째서 시간을 끄는 거야. 너라면 이 사태를 전부 수습하고 원래대로 되돌릴 수가 있잖아? 가능하면 저 필멸자를 빠르게 제압해주면 좋겠는데……그래야 내 능력도 되찾고 나한테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든 필멸자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것도…….”
본때를 보여준다는 말의 의미가 처벌보다는 성적인 의미의 조교라는 사실을 알아들은 브륜힐트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하면서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현재 그가 폭주시키고 있는 능력이 이 멸망해버린 발할라의 세계를 정화시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작업이 성공한다면, 이 세계를 관장하는 신의 능력도 함께 부활하겠죠.]
“……그게 정말이야? 이 필멸자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지는 않지만 사실입니다.]
“세상에! 역시 내가 영웅 하나는 잘 골랐다니까? 후후후후……단순한 SSS급 성교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은 짐작했지만 설마 그런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니. 이번에는 너무 얕보는 바람에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조금만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면…….”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프레이야의 모습에 브륜힐트는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음 순간에 느껴지는 류안의 대대적인 반격을 감지하고는 다시 한 번 그람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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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줄 후기
사실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13일이죠 후후.
코멘트 답변
새, 생일인데 쉬겠습니다. 사실은 휴, 휴재를 하고 싶었는데...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