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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프레이야는 과거에 류안이 꿈에서 목격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북유럽의 여신답게 갈색의 웨이브 진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인 미녀였지만, 남국이라도 다녀왔는지 구릿빛으로 반들거리는 피부에는 새하얀 끈 비키니 자국이 남아있다.
그녀는 형형색색의 장신구로 치장되어 있는 하늘색의 사리(인도 여성들의 전통 의상)를 입고 있었는데, 배꼽은 드러났고 속살이 비치는 얇은 옷감이라서 차라리 벗는 것이 나을 정도로 선정적인 모습.
류안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면서도, 이국적이기 이를 데 없는 여신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태클을 걸고 말았다.
‘이마에 찍혀져 있는 검은색의 점은 빈디(bindi)인가? 북유럽의 신이 인도 스타일로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그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알 듯 말 듯 미소를 키워나가는 프레이야.
여신은 허공에서 마치 자신의 집 소파에 엎드린 것처럼 양손에 턱까지 괴는 편안한 모습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프레이야님을 뵙습니다!]
곧바로 부복하면서 외치는 브륜힐트.
“오랜만이야. 그런데 못 보던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네? 설마 그렇게 깐깐하던 네가 알몸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완전히 요물이 따로 없잖아?”
[죄송합니다.]
“…….”
놀리려고 한 소리를 그녀가 너무 진지하게 사과하는 바람에 할 말이 없어져버린 프레이야.
그녀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됐어. 사과 받으려고 한 소리는 아니었는데 딱딱하기는……내가 이래서 발키리들을 싫어한다니까? 아, 물론.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우리 귀여운 스쿨드는 빼고 말이야.”
‘스쿨드가 귀엽기는 귀엽죠.’
류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여신의 말에 찬동했다.
그러자 역시나 속마음을 읽고 있었는지 대번에 표정이 밝아지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프레이야.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역시 내가 후원하는 영웅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하여간 괜히 높으신 존재들이니 뭐니 하면서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는 애들이 꼭 일을 크게 키워요. 두르가도 말이야, 다른 신들을 초대하는 입장이라면 성질을 좀 죽여도 괜찮잖아? 왜 별 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화를 내면서 날뛰는 거냐고……분위기 다 깨지게 말이야.”
사실 인도의 여신이 그렇게 화를 낸 이유는 전부 그녀의 남편을 프레이야가 유혹하는 바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덕분에 신들의 사교모임은 흐지부지 끝나고 두르가에게서 뛰쳐나온 죽음의 여신 칼리와 파괴의 신 시바가 펼치는 세기말 부부싸움으로, 발할라의 세계 몇 개가 박살나는 대재앙이 일어났지만 여신은 편리하게도 그 이야기는 쏙 빼놓고 이야기를 했다.
“옳소! 프레이야님의 말씀대로입니다……진지충 반……아, 알겠습니다. 브륜힐트님. 끼어들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을게요.”
그런 배경을 알 리가 없었던 류안은 자신의 처지에 십분 공감되는 여신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맞장구를 치려고 했지만, 발키리에게서 느껴지는 살기를 감지하고 재빠르게 말을 주워 담았다.
분위기로 봐서는 프레이야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았지만 손 패는 까봐야 안다고 그녀가 누구에게 힘을 실어 줄지는 두고 봐야 아는 법.
혹시라도 여신과 발키리의 연합에 새로운 지옥을 경험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스럽게도(?)두 사람은 반목하는 눈치였다.
[이곳에는 무슨 연유로 행차하신 겁니까?]
“……내가 내 영웅을 만나러 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자신의 영웅을 만나러 오기는 무슨……보아하니까 대형 사고를 치고는 어딘가 피신할 장소를 찾다가 들어온 게 딱 보이는데.’
브륜힐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딘이 정한 규칙을 잊으셨습니까. 발할라의 도전자에게는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것들이 그분이 세우신 지엄한 법도입니다. 바라건대 이 장소에서 퇴거해 주십시오.]
“얘가 좋게 나가려고 하니까 함부로 말하는 거 봐. 내가 오딘지 정한 규칙도 모르는 양식 없는 여신으로 보이는 거야?”
[아니라면 물러나주시면 될 입입니다.]
“하! 뻔뻔하기는……지금 내가 무슨 눈뜬장님인 줄 알아?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고. 지금 네가 하는 건 발할라의 도전자에게 개입하는 게 아니야? 보아하니까 이 장소도 오딘이 만들어낸 영역인 것 같은데. 법을 만든 사람이 법을 어기고 있는 마당에 나한테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건 뻔뻔스럽지 않아?”
[여기에는 전부 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과 저의 개입은 필멸자의 고유능력으로 벌어진 일이지……]
“그래도 오딘의 권능이 쓰이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자신의 능력이 잘못 남용된 일이라고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 논리야? 오딘이 그렇게 가르치디? 아무리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다고 해도 남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하는 입장이라면 책임을 져야지. 너도, 그리고 오딘도!”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라면 모를까 오딘이 이런 일을 허락하신 데에는 타인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연유가 있는 게……]
두 사람의 언쟁이 생각보다 길어졌기 때문에 류안은 완벽한 관전 모드로 이행하고 있었다.
‘그 깐깐한 브륜힐트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밀리고 있네. 쳇, 싸움 구경을 할 때는 모름지기 팝콘과 3d안경이 있어야 제 맛인데……왜 아직까지도 나는 영혼인 거지?’
자고로 타인의 싸움이라는 것은 공짜로 목격하면 행운이요, 돈을 요구해도 얌전하게 내고 감상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말했다.
하물며 여신과 발키리의 말싸움이라면 그야말로 신화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진기명기.
‘기왕이면 발가벗고 침대에서 싸워주면 좋겠지만 말이야.’
힘없고 나약한 필멸자였기 때문에 두 미녀에게 아무런 개입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미녀들의 캣 파이트라면 몇 년이라도 느긋하게 감상을 할 자신이 있는 류안이었다.
하지만 그 구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흥, 됐어! 라그나로크 시절이라면 몰라도 내가 왜 지금까지 와서 발키리들의 눈치를 봐야 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실력행사로 대응하겠어!”
그렇게 외친 여신이 먼저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들면서 외쳤다.
브륜힐트와 비슷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던 스쿨드는 그녀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경력이 있다.
전성기 시절에는 요툰의 악몽이라고 불리면서 위세를 떨치던 발키리지만 현재는 신격을 박탈당하고 발할라의 신들에게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들의 현실.
하지만 허공에서 그람을 끄집어내면서 여신에게 맞서 완전무장을 갖추는 브륜힐트는 믿는 구석이 있는지 여유롭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브리싱가멘입니까? 과연……하지만 이곳은 오딘의 권역입니다. 다른 장소라면 모를까 이곳이라면 라그나로크를 위해서 태어난 저희 발키리들이 지닌 실력을 여신님께 충분히 견식 시켜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고오오오오오!!!
“……칫.”
무시무시하기 이를 데 없는 기세를 뿜어내는 그녀의 기세에 여신이 눌리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해보였다.
‘이럴 수가. 안 돼……힘을 내요, 슈퍼……프레이야님!’
자신을 구원해줄지도 모르는 여신에게 열심히 응원을 보내는 류안.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완전히 압도당해버린 프레이야는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에는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양손을 내리치면서, 어린아이처럼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됐어, 됐어! 누가 전쟁광들 아니라고 할까봐 성질 더러운 거 봐……예전에 지들이 더 높을 때는 어떻게 참았대? 흥, 흥!”
[……알아주시면 되었습니다.]
프레이야가 포기하는 태도로 그렇게 투덜거리자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예의를 갖추며 기세를 거두는 그녀.
오딘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과거에는 자신들의 아래였던 존재에게 쓴맛을 알려줄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상당히 아쉬운 모양이었다.
‘아, 젠장. 결국에는 브륜힐트가 이기는 건가?’
하지만 다음 순간에 여신은 재빠르게 순간이동을 하면서 류안의 뒤쪽으로 모습을 나타내었다.
슈웅!
[뭣?!]
“어라?”
“꽉 붙잡아 줘, 나의 영웅님.”
그의 영혼을 자신의 품속으로 꼬옥 끌어안으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프레이야.
“잡겠습니다!”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치잇, 그람!!]
후우우우웅!!
슈웅!!
브륜힐트의 외침과 함께 허공에서 나타난 승리의 검이 여신이 있는 장소를 사선으로 그어버렸지만, 검이 베어낸 것은 단순한 잔상에 불과했다.
[이런 비겁한……크윽.]
쿵!
손도 쓰지 못하고 발할라의 도전자를 맥없이 빼앗겨버린 브륜힐트는 에이프의 샘과 주변의 지형지물을 초토화 시켜버리는 진각을 밟으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
잠시 후.
둘은 안개에 휩싸인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끄러운 발키리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프레이야는 브리싱가멘으로 반구형의 결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멸망한 세계의 망자들을 소멸시키는 것과 동시에 외부에서는 내부의 변화를 감지할 수가 없는 왜곡된 공간을 만들어낸 여신.
밖에서 볼 때는 그저 안개에 휩싸인 숲이지만 내부 공간에는 낙엽들이 쌓여져 있고 따사로운 햇살까지 비추는 아늑하고 운치 있는, 연인들을 위한 완벽한 데이트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장소에 평소부터 흠모하고 있던 여신과 둘만이 남게 된 류안은, 도대체 프레이야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바보처럼 머리만 긁적거렸다.
‘아, 젠장. 아무리 성희롱에 미친 나라도 매번 내 편을 들어주는 여신님한테는 불경한 생각을 하지는 못하겠네. 아니, 하고는 싶지만……에휴. 그래봤자 뭐하냐? 육체도 없는 내가 도대체 뭘 할 수가 있겠어. 그냥 평범하게(?) 프로포즈나 시도해 볼까? 받아줄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거잖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의 등으로 여신의 부드러운 가슴이 찰싹 달라붙어 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결혼합니다. 저와 사랑해주세요……가 아니라, 프레이야님. 지금 제 등에 달라붙어 있는 게 뭔가요……?”
물컹, 물컹!
“뭐인 것 같아?”
‘부, 분명히 옷을 벗는 모습을 목격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대한 두 덩어리의 황홀한 감촉이라니……응, 지금 내가 뭐라고 한 거지?’
“내 영혼에……내 영혼에 감각이 돌아왔다고?!”
“감각만 돌아왔을 것 같아?”
프레이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하는 말의 의미를 머릿속으로는 순식간에 파악했으면서도 내심으로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하물을 내려다보던 류안.
크오오오오오오오오!!!
그곳에서는 꿈속에서도 그리고 있던 흑염룡이 완벽하게 건강을 되찾은 모습으로 그를 향해서 환한 미소를 지어오고 있었다.
“너, 너, 너 이 자식. 살아났구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차오르는 바람에 눈물을 훌쩍거리는 그.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적인 해후에 두 부자(?)는 여신은 내버려두고 둘만의 세계를 만들 기세였지만, 류안은 흑염룡의 상태가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크오오오오오! 크오오오오오오!! 크오오오오오오오!!!
‘뭐, 뭐지? 이 녀석……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흉포하잖아? 젠장, 흑염룡이……흑염룡이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듯이 뜨거워!!’
“후후후후후. 뭔지 알겠어?”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큭, 크으으윽!”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류안은 평소와는 다르게 침착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이 흥분한 모습이다.
두 눈은 충혈 되었고, 입속에서는 끊임없이 침이 고여지면서도 갈증에 시달렸고, 땀샘이라는 땀샘은 모두 개방된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활화산처럼 뜨거운 몸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수증기로 변하면서 기체로 변해버리는 상태.
폭주하는 기관차와도 같은 한 마리의 야수처럼 돌변한 그는, 유혹하는 것처럼 야시시한 모습을 하고 있는 프레이야에게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진짜 능력이 뭔지도 모르고 통제도 못하는 모습이라니……역시나 나의 영웅님은 재미있는 분이라니까?”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쉴 새 없이 거친 숨을 뿜어내면서 마치 거친 쇠사슬에 묶여져 끌려가는 짐승처럼 천천히 여신에게 접근해가는 류안.
프레이야는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면서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가지고 있는 SSS급의 진짜 능력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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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이 싸우는 걸 보니까 제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설명은 가능하면 짧게 줄일게요.
제가 일하는 게 힘들 때는 설명이 좀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