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37화 (137/291)

0137 ----------------------------------------------

지상편

혼이라는 녀석의 정체는 신의 숨결이 백魄의 영향을 받아서 처음에 순수했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육체와 똑같은 형태로 변질되어버린 모습이라고 한다.

정신과 존재의 주체라고 볼 수가 있는 혼.

고대의 중국인들은 이 혼에게 신神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동시에 그 움직임에는 펼 신伸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사람의 영혼이 신神이라니……그렇다면 제가 발할라의 신들과 똑같은 존재라는 겁니까?]

[두 존재 모두 창조주의 숨결로 탄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과 인간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먼지와 우주를 비교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것. 환생의 흐름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전생을 반복하는 필멸자들을 불멸자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수련을 쌓아서 격을 올리면 신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

[게다가 발할라의 임무를 보면서 느꼈는데 불로불사를 실현시키는 방법도 존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람도 영생을 얻을 수도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건데, 그 때는 저도 필멸자에서 벗어나는 거 아닙니까?]

[……그런 방법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에이, 그러면 신과 인간의 차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만랩하고 쪼랩의 차이라는 건데. 나도 노가다(?)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신이……끄아아악!!]

파지지지직!

적절한 비유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었지만 신격을 깎아내리는 그의 무엄한 언사에 기분이 언짢아진 브륜힐트는 류안에게 흙수저와 금수저, 아니 쪼랩과 만랩의 차이를 확실하게 영혼에 각인시켜 주었다.

어쨌든 그녀의 말대로 혼이라는 녀석은 신의 숨결로 만들어진 영험한 물건이지만, 아무리 입사 초기에는 패기가 넘치는 똘망똘망한 신입사원이라고 해도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생활을 경험하면 초심을 잃어버리고 변질되기 쉬운 법.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면서 나름대로 젊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신입사원들이 보기에는 개저씨, 꼰대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 직장……아니, 혼의 변형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형체가 없다고 하는 신의 숨결도 백魄과 똑같은 눈, 코, 입, 신체기관이나 혈도까지 전부 구성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허깨비나 다름이 없어서  일체의 생리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물리세계에도 간섭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혼에 대한 백魄의 구속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궁금한 게 있슴돠.]

전격에 충격으로 혀가 짧아진 목소리를 내는 류안이 질문을 던졌다 .

[뭐지?]

[설명을 들어보니까 백이 환생을 하는 주체라는 것 같은데……그러면 백이 환생을 하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간 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스쿨드는 환생이 기본이라는 식으로 알려줬지 말입니다.]

[스쿨드의 발언대로 혼 또한 백과 다시 합쳐지면서 윤회의 흐름에 탑승하게 된다.]

[……백한테 다시 돌아가는 겁니까?]

[혼백은 원래부터 둘이 아니다. 다만 죽음을 통해서 혼이 잠시 동안 백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그렇군. 백은 거푸집mould이고 혼은 그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용물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거푸집의 형틀을 바꾸는 것이 기본인 것처럼, 혼 또한 원래의 신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백魄이 필멸자의 육체를 분해시켜서 환생을 위한 기틀을 다지는 것이 기본이다.]

브륜힐트가 기본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라는 것.

류안만 해도 자신의 육체를 프로모션 시키기 위해서 혼이 동분서주하고 있으니 혼과 백의 행동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오오오오. 백이 그렇게 기특한 역할을……비유하자면 백이라는 녀석은 주인님이 집을 나간 사이에 집안을 청소하는 알몸의 메이드……]

파지지지직!

헛소리를 한 대가로 다시 한 번 전격을 얻어맞기는 했지만 거푸집과 내용물이라는 비유를 통해서, 혼백이라는 것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 류안이었다.

프로모션이 일어나면 강신후의 영혼은 류안이라는 거푸집에 맞춰서 완벽하게 모습을 바꾸게 된다. 동시에, 그 내부에 들어있는 정체불명의 영혼이며 류안이라는 녀석의 백魄 또한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는 소리.

하지만 그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힘의 충돌이 지나치게 강력하기 때문에 류안의 거푸집으로는 충돌을 제어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오기조원이라는 경지까지 도달해야만 혼란을 제압할 수가 있다는 소리였다.

‘결과적으로는 나한테 좋은 일이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말이야, 솔직하게 말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돼? 매일, 매일이 지옥이잖아?!’

강신후의 영혼은 이승의 필사적인 수련에도 불구하고 전생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임독양맥이니, 생사현관이니 하는 게 뚫려있을 리 없었고 대주천이나 소주천 조차도 이루지 못하는 일반인의 영체를 가지고 있던 상태.

그런 그를 오기조원의 경지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브륜힐트가 선택한 방법은 완벽한 통제.

게임 용어로는 버스 태워주기다.

[너는 지금부터 자유의 몸이 아니야. 여태까지 그래왔고 오기조원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

물론, 브륜힐트가 정말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에 말 그대로 영혼까지 새겨지는 고통을 끊임없이 경험한 류안은 그녀가 악마로 보였다.

그녀는 일단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에게 강제로 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게 만든 다음에 단전으로 마나를 집어넣고는, 진기도인으로 소주천과 대주천을 24시간 끊임없이 반복시켜 나갔다.

거기에다가 벌모세수를 한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막대한 마나를 쏟아 넣으면서 막혀있는 혈도를 불도저처럼 뚫어나갔는데, 수련을 하던 그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 주화입마에 빠지려고 하면 번뇌를 날려버리는 전기 충격과 정신파를 이용하면서 그의 머릿속을 깨끗하게 세척해버렸다.

깨어도 지옥이요 눈을 감아도 지옥이라.

그 기분이 어떤지를 설명하자면 뇌를 끄집어내서 드럼 세탁기에 집어넣은 다음에 락스를 한 통 쏟아 붓고는 최대 파워로 돌려대는 기분이랄까?

그가 하루에 제일 많이 쏟아대는 말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이 99%고 1%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자신의 방식을 고수해 나갔다.

물론 오기조원이라는 경지가 마나 연공만 계속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고, 오행의 기운을 제어하는 방법과 기의 컨트롤을 체득하고 조종하는 방법과 같은 깨달음에 관련된 문제들은 류안이 직접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브륜힐트는 그런 부분마저도 간섭을 해 왔다.

애초에 그녀의 경지가 오기조원이라는 영역을 아득하게 초월해버린 상태였고 류안의 모든 생각을 자신의 손바닥에 두고 내려다보니, 그가 어디에서 막히고 무엇으로 고민하는지가 훤히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구결을 놓고 고민을 하면 곧바로 그 부분에 대한 해석과 답변을 머릿속으로 일러주었고, 벽에 가로막히면 벽을 뛰어넘는 방법을 알려줬으며, 체감으로 컨트롤하는 부분에서 미숙한 부분들이 발생하면 곧바로 그의 영체 자유를 빼앗아서 어떻게 컨트롤하는지를 보여준 다음에 그대로 따라하라고 재촉했다.

브륜힐트는 그가 자신의 방식대로 따라오면 4년에서 5년이면 오기조원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가 지나치게 번뇌가 많아서 그 기간이 몇 배로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류안은 그녀의 수련방식을 단 하루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훌쩍훌쩍. 보고 싶다, 탈리아. 일어나줘, 흑염룡……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고생을…….”

전생보다는 현생에서 저지른 죄가 압도적으로 컸지만, 모르는 척(?) 스스로의 처량함에 눈물을 찍어내면서 코를 훌쩍거리던 그였지만 머릿속으로 최선을 다해서 브륜힐트에 대한 대책들을 궁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생각이 전부 읽혀버린다는 사실 자체가 거지같은데다가 힘으로는 상대가 안 돼. 게다가 지금의 나는 물리적인 간섭도 일으키지 못하고 생리현상마저도 일어나지 않지. 덕분에 흑염룡까지 봉인되어 있고……그녀 덕분에 오행의 힘과 마나를 가지기는 했지만, 화기火氣를 극한으로 일으켜도 모닥불조차 피우지 못하는 상태니…….’

가지고 있는 손바닥의 패를 열심히 펼쳐보지만 브륜힐트에게 통할만한 카드가 아무것도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운 것이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정신공격(?)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던 그. 결국에는 아무런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드러누워버린 그는 다시 한 번 하늘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나저나 물이 참 뜨듯하니 기분이 좋……응? 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야, 기분이 좋다니?”

느껴질 리가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면서 뭔가를 깨달은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샘의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일단은 다리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면을 밟는 것이 아니라 살짝 떠다니는 그.

허겁지겁 근처의 나무로 손을 뻗어보지만 잡히는 것은 역시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샘 밖을 빠져나오자 조금 전에 느껴지던 기분 좋은 나른한 느낌이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체에 감각이 느껴지는 건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한 번 샘으로 조심스럽게 발부터 담가나가는 그.

물에서는 아무런 파문이 발생하지도 않고 고요했지만 샘의 내부는 바깥과는 확연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달랐다.

그 차이를 가지고는 심각하게 뭔가를 고민하는 사이에 어느 사이엔가 정양을 마치고 류안의 곁으로 다가온 브륜힐트.

[상처는 전부 나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이제 다시 수련을……]

“브륜힐트님!!!”

[뭐, 뭐지?]

그의 박력에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버린 그녀.

반사적으로 생각을 읽어내려고 시도했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그의 사고가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면서 회전하는 바람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조금도 알아내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되어버렸다.

‘내가 필멸자의 기세에 눌려서 뒤로 물러났다고?’

라그나로크에서 수많은 요툰과 신들을 상대로 전투를 펼치면서도 결코 뒤로 물러나거나 후퇴해 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충격적인 대 사건이었지만, 류안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기 않고 조금 더 바짝 다가서면서 그녀의 눈동자를 뻔히 들여다봤다.

‘눈썹도 길고 얼굴도 조그마한 게 진짜 예쁘네. 젠장, 실체만 있었으면 죽이거나 말거나 키스나 한 번 시도해보고 가는 건데. 얼굴은 참 귀엽게 생겨가지고 말이야, 아직까지도 처녀라니. 전 우주적인 손실이라고? 마음이 깐깐하면 가슴도 작아진다는데 갑옷을 벗겨보고……아니, 이게 아니야. 내가 지금 물어보려고 하는 건…….’

사고가 폭주하는 나머지 온갖 사고를 쏟아내던 그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영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휴우.]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이번에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면서 가만히 오른쪽 손바닥을 그에게 펼쳐보였다.

파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아악!!!! 기, 기모찌~~~~!!”

여왕의 채찍에 얻어맞는 한 M남의 비통한 절규가 멸망해버린 발할라의 세계에서 길이길이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1줄 후기

믿거나 말거나 다음 편부터 류안이 반격을 시작합니다.

코멘트 답변

코멘트에 대한 답변이 아마 이번 편으로...된 거겠죠?

약간 복잡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써야만 앞으로 일어나는 괴현상을 목격해도 대충 감을 잡으실 것 같아서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혼, 백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제가 만든 게 아닌...크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