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 ----------------------------------------------
지상편
-------------------------------------------------------------------
해가 질 무렵.
광활한 녹색의 밀림지대를 통과한 류안은 드넓은 분지에 자리 잡은 동화속에 펼쳐진 나라와도 같은 장소를 발견하고는 넋을 잃어버렸다.
[어떤가? 여기가 바로 내가 근무하던 밀리안 국립대학일세. 역사는 짧지만 그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시설을 가지고 있지. 전성기 시절에는 이 학교에 학생 겸 연구보조로 수강하던 아이들이 10만이 넘었고, 교직원들의 숫자만 해도 만 단위를 넘어가고 있었네. 지금이야 물론, 빌어먹을 전쟁 때문에 엉뚱한 놈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야…….]
“굉장하네요.”
수다스러운 모건의 설명에도 반박할 생각이 생기지 들지 않을 정도로 대학교의 모습은 멋졌다.
선상의 위를 연상시키는 타원형의 거대한 대학교 부지는 예술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진 수많은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학교 전체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태양열 전지판들은 햇빛의 움직임을 따라서 사열식을 하는 병사들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하얀색의 풍차들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서 느긋하게 돌아가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장소가 존재하고 있었다니…….’
어디를 가더라도 덥고 습하며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비위생적인 밀림에 존재한다고는 믿을 수 없는 청결함.
마치 알프스의 목장처럼 따사로운 저물어가는 태양에 반사되는 푸른 물결의 잔디밭이 바람을 따라서 살랑거렸고, 지하에서 퍼 올리는 것으로 짐작되는 투명하고 맑은 물들이 수로를 따라서 학교 전체를 휘감고 있다.
말 그대로 천연의 자영휴양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악어의 어금니가 아니라 이런 장소를 대대본부로 삼고 휴가를 즐겨야 제 맛인데 말이야…….’
현재 트라이엄프 부대는 악어의 어금니에서 불편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조그의 본거지는 바라모스의 난동으로 절반이 넘게 박살나고 말았고 그 괴물이 사방으로 흩뿌려댄 방사능으로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정령사들이 개발한 방사능 제거기술로 지역 전체를 정화하고는 있지만 입지 조건도 원래부터 별로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종 장치를 비롯한 주요 설비와 장비만을 챙겨서 악어의 어금니로 이전시켰다.
하지만 악어의 어금니라고 호텔처럼 아늑하고 청결한 기분을 느끼기는 어렵다.
머포크 군단의 난동으로 인근 늪지대나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당했기 때문에 그 뒤처리에 계속해서 시달리는 상태. 습하고, 더우며, 썩는 냄새와 하수구 냄새가 여기저기서 풍기며 잠을 자려고 하면 벌레들까지 꼬이는 바람에 일반 병사들이 치르는 곤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언제 어디서든지 쾌적한 생활을 중시하는 류안은 문명의 이기를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비교적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몇몇 공간들은 부하들과 함께 공유해주고 있었지만 주변의 환경 자체가 워낙 시궁창이다 보니 부하들의 사기도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황이다.
‘하아, 아쉽네……아니, 아쉬울 게 없잖아. 낙양의 추적자 같은 떨거지 집단도 이런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 부대라고 못할 게 뭐야. 좋은 게 있으면 그냥 빼앗으면 되는 거잖아?’
획기적(?)인 발상을 떠올린 류안은 대대본부 이전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면서 밀리안 국립대학의 입지조건을 차근차근 따지기 시작했다.
‘로이케 강이나 민간구역에서는 멀리 떨어진 장소니까 교통문제가 약간 불편할지도 모르겠어. 강습함 1기로는 어림도 없고, 대대장비로 수송선을 몇 대 요청해 보자. 그 외에는 노출된 장소에 쉘터가 없으니까 기지방어도 효율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군. 기지공사라……전직 행보관의 실력을 할 번 발휘해 볼까?’
부하들을 굴릴 생각에 잠시 행복한 미소를 지은 그는 전세방을 알아보는 사람처럼 밀리안 대학교의 입지조건을 세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장 거대한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시설은 공과대학과 농과대학으로 주요 분야는 생명공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체적으로 마장기를 제조하거나 군사병기, 전쟁물자를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설비가 잘 정돈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종합대학이라는 이름답게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법학, 등등. 광범위한 분야의 단과대학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종합상가와 다양한 복지 및 여가, 숙박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장소.
말 그대로 학원도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사회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런 시설을 전부 가동할만한 인력이나 자금, 물자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지만 류안에게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모건 선생님. 레지스탕스를 처리하면 대대본부를 이쪽으로 옮겨도 괜찮습니까?”
[뭐? 신성한 배움의 터전을 군인들의 놀이터로 만들겠다니 제정신인가?]
“제국군들은 잘만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건……그렇네만. 그놈들은 나쁜 놈들이고 자네들은 정의의 편이 아닌가!]
제국의 사람이 제국군을 스스럼없이 나쁜 놈들이라고 부르는 게 재밌기는 했지만, 원정대의 현재 점령방침이 제국의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한[신사적인 점령]이 사실이라서 모건의 주장이 꼭 틀렸다고는 볼 수가 없다.
그 증거로 트라이엄프 부대만 해도 13구역의 대표자와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새로운 기지로 마음대로 이전을 할 수가 없는 상황.
휴가나 외출, 그 외에 공무를 제외하면 민간지역으로는 출입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을 하던 시절보다도 제약들이 많이 생겨서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대대본부로 주시죠. 어차피 저희들이 안 가지면 보나마나 제국군이나 원정대 상부에서 징발할 거 같은데. 기왕이면 우리 부대처럼 신사적인 사람들이 쓰는 편이 여러가지로 편하고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부대가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면 수업도 다시 재개해주고 위험하다 싶으면 학교 사람들부터 지켜드릴게요. 어때요. 나쁜 제안은 아니잖습니까?”
학교 관계자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수업을 재개시키는 대신에 그들을 합법적(?)으로 부려먹자.
실제로도 이 학교의 학생과 교수진들은 조그의 연구보조로 차출될 정도로 지식과 기술의 수준들이 높았기 때문에, 원정대를 도와주면서도 수업의 연장선으로 전쟁병기 제작 실습과제를 내려준다면 트라이엄프 부대를 위해서 다양한 병기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낼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속내가 깔리기는 했지만 모건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라서 그는 한참동안이나 끙끙거리면서 고민하다가 외쳤다.
[……끄응. 하기야 대학교를 열면 중단했던 연구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여러모로 편리하기는 하지만……에잉. 알겠네. 자네 마음대로 하게나!]
‘아싸, 대학교 득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밀리안 국립대학을 건축하는 데 들어간 자금이 약 600만 골드(한화 6조원)라고 한다.
건축과 건설에는 예전부터 조예가 남다르다고 알려진 제국군의 솜씨가 좋은 방향으로 유감없이 발휘된 물건인 만큼, 13구역에서는 그보다 더 좋은 중대본부의 매물은 찾아보기는 어려울 터.
류안은 그것을 전쟁특수의 도움으로 대화 몇 번으로 독차지하게 되었다.
‘풋풋한 대학생들과 여교수들. 여자 연구원들에……후후후후후.’
그 신성한 배움의 터전을 AV촬영장으로 만들 생각에 싱글벙글하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그는, 세입자들에게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시라이온에 탑승했다.
“잔디 안 다치게 조심조심 착륙해라. 나중에 저기에서 야외섹……아, 아니. 피크닉을 즐겨야 되니까.”
[알겠습니다!]
낙양의 추적자들은 트라이져 강습함을 진작 발견하기는 했지만 섣부르게 공격하지 못하고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그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통신으로 방문목적을 물어보기는 했지만 류안은 대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진입해 온 상태.
그런 폭거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는 건 이들의 지휘자인 정글레인저와 제국군들이 그의 무시무시한 전투능력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피아. 우리들이 주의를 끄는 동안에 구출작전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류안의 부하들은 현재 13구역 각지에서 자신들만의 휴가를 만끽하고 있지만 스피아를 비롯해서 작전에 필요한 대원들은 비상연락을 통해서 이번 작전에 차출시켰다.
타악!
광학위장과 스텔스의 성능을 가진 특수한 배틀슈츠를 입은 그녀는 강습함이 착륙하기 직전에 은신모드로 뛰어내려, 발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바람처럼 질주해 나간다.
잠입 작전에 동원되는 인원은 그녀와 미니 스파이더들이 전부.
미니 스파이더의 경우에는 류안이 직접 조종을 해야 되기는 했지만 워게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마장기 전투와, 미니 스파이더를 동시에 움직이는 멀티태스킹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쿠궁!
류안과 부하들이 강습함에서 내리며 병사들을 전개시키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적의 지휘관.
[트라이엄프 부대의 류안 대장님이 아니십니까. 낙양의 추적자는 도대체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내 집에서 나가.”
[……네?]
“아직도 소식 못 들었어? 지역관리본부에서 밀리안 대학을 우리 트라이엄프 부대의 대대본부로 넘겨주기로 결정했어. 그러니까 짐 싸서 나가. 이제부터 여기는 내 집이야.”
[세,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은 아무런 소식도 못 들었습니다!]
“지역관리본부 내부 게시판에 일주일동안 공지했는데 항의신청 안했으니까. 니들은 이제 권한이 없어. 좋게 말해서 나가라고 할 때, 나가라. 안 그러면 밀림으로 발가벗겨서 던져버릴 거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그러면 저희들은 내일부터 어디에서 살라는 말입니까?!]
수군수군
류안의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요구에 낙양의 추적자들은 물론이고 그들 도와주러 온 제국군들까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대박. 설마 저렇게까지 야비하고 뻔뻔한 줄이야…….]
[완전히 날로 먹겠다는 심보인데? 날강도가 따로 없네. 도둑놈이야, 도둑놈.]
[이상하다. 우리들은 분명히 인질을 구하러 온 정의의 편이라고 들었는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그들을 향해서 외부 스피커를 차단한 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진짜. 이것들이……작전인거 몰라. 작전?! 자꾸 시끄럽게 굴면 니들부터 로이케 강물에 처박아버린다!”
[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그런데 작전이라고 하기에는 어째서인지 진심이 섞여 있는 것 같았……아, 아닙니다!]
간단하게 반란(?)을 제압한 류안은 계속해서 양아치 본성을 드러내면서 그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니들이 내일부터 어디에서 살지는 우리들은 관심이 없고. 좋게 말할 때 나갈래, 아니면 죽도록 얻어맞고 난 다음에서 이승에서 나갈래? 참고로 나한테 까불던 새끼들은 대부분 이승에서 탈출하더라. 니들도 대충은 알지? 특히 너는 나랑 같이 싸워봐서 알잖아.”
[……크, 크으으윽.]
류안의 능력을 바로 곁에서 경험한 정글레인저 출신의 지휘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분한 음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스피아는 벌써 인질로 잡혀있는 연구원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류안은 버전업한 미니 스파이더를 조종하면서 그들을 구출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기는 스피아. 가장 경계가 삼엄한 장소를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의 진입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7시 25분인가……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고. 양동작전을 위해서라도 슬슬 이쪽에서 불을 질러줘야 되겠군.’
“거 참, 더럽게 질질 끄네. 좋아! 지금부터 딱 10초만 세겠다. 그 안에 나간다고 말하면 곱게 보내줄게. 10…….”
류안이 카운터를 시작하자 당황한 적의 지휘관이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
“1, 땡!”
펑!
[크아아악!!]
정글레인저 지휘관은 류안이 발사한 플라즈마 캐논에 허무하게 살해당했다.
[세상에 저런 비겁한……9부터 2까지 전부 건너뛰고 총을 발사하다니!]
[나, 나는 아직 장전도 하지 않았는데.]
적들의 비명을 음미한 그가 미안하다는 듯이 외쳤다.
“내가 오늘 좀 바빠서 2초를 10초처럼 보내고 있거든. 그래도 항복하면 살려는 드릴게. 아, 그런데 항복이라고 말할 때 총알보다는 빨리 말해야 된다. 알았지? 아, 그리고 잔디 상하니까 가능하면 조심해서 죽여!”
[도, 도망쳐. 저건 사람이 아니라 악마야!!]
[크아아아악!]
기선을 제압한 류안의 부대가 낙양의 추적자들을 거의 일방적으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1줄 후기
네, 맞습니다. 데드풀을 보고 왔어요.
코멘트 답변
물고기인간// 금방 되겠죠. 뭐...조만간...
보스곰// 크흠. 예리하시군요.
호야[虎夜]// 감사합니다. ㅎㅎ
벌레// 능욕 ㄱㄱ
天空意行劍// 그것도 그렇죠. 그런데 제가 악녀를 좀 좋아하는 듯...굴복시키는 재미가...또...
이문세// 복숭아처럼 탱글탱글...죄, 죄송합니다.
Kritz// 감사합니다!
KeinHoof// 다음부터는 가능하면 히잉 대신에 에잉을 사용하겠습니다.(진지)
MardiGras// 복숭하죠. 라인이...크흠.
가식적썩소// 감사합니다. 요정님.
노스아스터// 점점 온순해질 겁니다. 류안이 나중에는 제법 감동적으로 보상해주니까. 기다리시면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최대한 오글거리지 않고도 감동적으로 써볼게요.
폭탄z기//하렘이 원래 수라장인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런 수라장을 걸어가는 것 또한 묘미 아니겠습니까?
평범하게살고파// 다음에는 에잉으로 귀엽게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