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3 ----------------------------------------------
지상편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니나 양은 카스티야와 피를 나눈 자매일세. 태어날 때부터 여동생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정말로 그렇습니까? 무슨 이유로 확신을 하시는 겁니까?”
집요하기 이를 데 없는 류안의 추궁에 모건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까?”
[대략적인 뜻은 알고 있네. 세 사람이 거짓말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다른 사람들도 정말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착각한다는 내용을 가진 고사성어지. 그런데 뜬금없이 그 이야기를 왜……자네, 설마?]
“상상하는 바로 그겁니다.”
니나라는 사람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소리.
[말도 안 되네. 나는 3년 전에도 카스티야의 가문을 방문하면서 그녀를 직접 만나본 일이 있네. 가상의 인물이라니……말도 안 되는 소리일세.]
“그녀가 그 전부터 준비된 인물이라면 어떻습니까?”
[증거라도 있나?]
류안의 말은 모건의 질문에 자신이 입수한 한 장의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해 보였다.
그것은 정글레인저 몇 명이 전투복을 입고 찍은 단체사진.
“이 사진을 찍는 날짜는 5년 전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람은 왼쪽 끝에서 2번째로 서있는 여성이죠. 위장크림으로 예쁜 얼굴이 가려지기는 했지만 포토샵의 기능으로 긁어내고 민낯을 드러내서 확대하면……짜잔!”
[이, 이럴 수가!]
화장이 지워지자 다른 사람이 탄생하는 것처럼 여전사가 니나로 탈바꿈하는 마술. 아니, 화장술이 그의 손으로 진실을 드러내었다.
머리모양이나 다부진 체격.
그리고 햇볕에 탄 그을린 피부가 병약하고 가녀린 현재의 모습과는 딴판이기는 했지만 이목구비로 판단을 할 때는 니나가 틀림이 없는 인물.
온실 속의 화초라고 불리는 가녀린 여성이 한 명의 여전사로 변신을 하는 순간이었다.
“모건 선생님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비앙카라고 합니다. 정글레인저의 일원으로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작전 도중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발표에 불과할 뿐. 아직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아니,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군요. 카스티야의 이기심으로 비참한 상태에 빠져버렸으니까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믿을 수 없네. 그녀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가!]
얼마나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건.
그가 진정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준 류안은 10년은 더 늙어버린 모습으로 앉아있는 그를 향해서 비앙카에 대해서 알아낸 사실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모건 선생님은 수많은 제국군들의 목표가 전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는 있네.]
세상에는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전쟁터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괴짜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슈발츠 제국도 예외는 아니라서 대부분이 힘들고 어려운 군인생활을 계속하기보다는, 전역한 다음에 연금을 받으면서 여유롭고 안락한 새로운 생활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앙카의 경우에는 그 갈망이 조금 더 강했다.
“그녀의 옛 동료라는 남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앙카는 예전부터 몸이 편찮은 아버지 때문에 하루라도 빠른 전역을 갈망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국의 상부는 그녀의 전역요청을 성과부족을 핑계로 번번이 거절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작전 도중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당시에 그녀의 상관이 다름아닌 카스티야더군요.”
[죽음을 가장하고 신분을 세탁했다는 건가?]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신분이라는 게 평범하지가 않더군요. 조금 더 파고들어보니 비앙카의 어머니는 불과 1년 전까지는 카스티야의 가문에서, 말이 고용인이지 간병인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평안한 생활을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모양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고용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을 그렇게 극진하게 보살피는 게 말이나 됩니까? 천사나 성인이라면 몰라도…….”
[하지만 카스티야는 도대체 뭘 위해서 비앙카에게 그렇게까지 해준 건가? 들키지 않아서 망정이지 들켰으면 즉결처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위험한 일인데…….]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비앙카 또한 당시의 동료들에게 상당한 인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은혜를 베푸는 게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다는 판단을 내린 게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그 이후로 카스티야는 그녀의 지도력이나 실력 이상으로 정글레인저들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
게다가 비앙카는 조그에게 온갖 비인도적인 실험과 고문에 시달리면서 급기야 유아퇴행현상을 경험하면서도, 자신과 카스티야가 거짓 자매라는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덕분에 조그는 그녀가 카스티야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녀의 DNA에서 거인족의 특징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단순하게 유전자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가 카스티야의 유전자를 채취했다면 두 사람이 진짜 자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겠지만, 그 사실을 몰랐으니 바라모스를 위한 뭔가를 얻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
“두 사람이 정말로 자매처럼 친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카스티야는 그녀를 이용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했는지는 저보다는 모건 선생님이 더 잘 알고 계시겠죠?”
[……젠장. 할 말이 없구만.]
카스티야의 속임수에 완벽하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건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인질로 잡혀도 굴복하지 않는 강력한 지도자.
부하들을 위해서라면 상관에게 검을 겨누는 거나 위험을 떠맡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며, 레지스탕스의 모든 지도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조그에게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투사.
하지만 그렇게 꾸며낸 거짓된 이미지는 비앙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면서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순된 물건이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카스티야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희생할 수가 있는 인물입니다. 제 생각에는 가족을 희생시키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선생님은 아니시겠죠? 그녀가 타인들을 위해서 했다고 하는 일들이 전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 행동이라는 게 증명되었으니까요.”
빈정거리는 것 같은 류안의 말에 그녀를 두둔해 왔던 모건은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자네의 말대로 니나라는 여자는 카스티야……그 거짓말쟁이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네! 만약에 자네의 말이 옳다고 그래도 세 사람이 증발해버린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아직도 뭔가 부족하네!]
하지만 류안은 혼란스러워하는 모건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모건 선생님, 저는 지금까지 열심히 정글레인저와 카스티야의 결속이 그렇게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드린 겁니다. 비앙카가 원래 상당한 인망을 보유했던 그들의 동료라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조그가 인질로 잡은 대상이 차라리 카스티야의 가족이었다면 정글레인저들도 망설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원래부터 자신들의 동료라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겠습니까?”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다.
생판 모르는 타인을 죽이라는 명령과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를 죽이라는 명령.
어느 쪽이 상관을 배신하는 데 좋은 핑계거리가 되는지는 불을 보듯이 뻔했다.
[저, 정글 레인저들이 배신을 했다는 건가?!]
“아마도 카스티야와 동행하고 있던 그룹 자체가 비앙카를 거리낌 없이 희생시켜버린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 집단이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그들 나름대로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었고, 그것이 성공한 거겠죠. 그 수라장 속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세 사람이 전부 사라졌으니, 돌 메이커는 조그의 척추에 꽂혀졌고 카스티야는 제압당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카스티야와 함께 전선을 이탈한 정글레인저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
[그렇다면 서둘러서 그들을 찾아야 하는 일이 아닌가? 카스티야, 그 망할 년이라면 이제 어떻게 되도 상관이 없지만 조그가 살해당하기 전에 마스터 코드만이라도 확보해야 이 사태를…….]
“세 사람 모두 아직까지는 무사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카스티야가 최악의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여전히 대다수의 정글레인저들은 여전히 그녀를 지지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보복을 두려워해서라도 배신자들은 두 사람을 쉽게 처리하지 못하겠죠. 십중팔구 조종 장치를 확보해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단부터 확보하려고 하겠죠.”
확신에 찬 류안의 말에 모건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리다가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푸훗, 푸하하하! 자네는 정말이지 천재가 아니라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망상증 환자가 틀림이 없군. 하기야, 예상하는 것 대부분이 맞아 떨어지니까 망상증 환자라고 하기에는 보기가 어렵지. 자, 이제 솔직하게 말해보게. 거기까지 말하는 걸 보니까 이미 그들을 찾아낸 게 아닌가?]
“네. 마스터 코드를 추출하고 해석하려면 그에 걸맞은 기술자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는 정글레인저 사병집단과 접촉을 할 거라는 판단을 내렸죠. 그런 사병집단 중에서 관련된 기술자들을 급하게 소집하는 집단을 찾아냈습니다. 낙양落陽의 추적자라고 하는 집단이더군요.”
[훌륭하군! 그래서 내가 해주면 되는 일은 뭔가?]
“현재 저희 부대는 군대를 동원할 여력이 안 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온건파가 지휘하는 시라이온 8기와 약간의 사병들을 파견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번 작전을 성공시켜서 세 사람의 신병을 확보한다면, 그들에 대한 처우도 제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류안의 제안에 모건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군대를 내주는 건 어렵지 않네. 자네가 해준 일이 있는데 그 10배를 요구해도 거절할 수는 없지. 하지만 카스티야와 조그의 문제는……나 혼자서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네. 자네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특히 카스티야는, 그녀가 한 거짓말을 온건파의 수뇌부가 알게 된다면 당장 능지처참을 하려고 들 걸세.]
“그래서 더욱 더 저한테 맡겨달라는 겁니다. 그녀가 최악의 사기꾼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온건파가 처리를 했다가는 강경파 전체가 들고 일어날 게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가 저지른 어떤 잘못을 증거물로 내놔도 거짓말이라고 외칠 겁니다. 기껏 평화를 되찾은 13구역에서 다시 한 번 내전을 일으키고 싶은 겁니까?”
[!!]
그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모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과를 했다.
[……미안하네. 내가 생각이 짧았군. 하지만 자네라고 뾰족한 수단이 있겠는가? 세뇌기술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카스티야를 구해내면 또다시 뭔가 수작을 부리려고 할 걸세.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녀를 조용하게 처리하고 조그만 회수해 오는 게…….]
“오늘 밤 12시까지입니다.”
약간은 잔인하다고 볼 수가 있는 제안이 떨어졌지만 류안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응?]
“오늘 밤 12시 전까지 그녀를 세뇌기술 없이 완벽한 제 심복으로 만들어 내겠습니다. 그 안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세 사람에 대한 신변을 온건파에게 양도해드리죠.”
[……신데렐라인가?]
“아닙니다.”
전생에서 들을 법한 농담이 튀어나왔지만 유라디스 은하에서도 퍼진 이야기라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농담이었네. 사람이 갑자기 너무 진지해지는 바람에 다른 사람인 줄 알고 해 본 소리일세. 그렇군, 그런가. 남자가 그런 표정을 짓는다면 사랑밖에는 정답이 없지. 하아, 좋구만. 이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이……]
“또 다른 데로 셀 겁니까? 안 그래도 시간 없는데 받을지 말지 빨리 배팅이나 하십시오! 스겜 모릅니까? 스겜?!”
[히, 히잉. 알겠네. 알았어. 이래서 늙으면……(찌릿!)크, 크흠. 알겠네. 자네의 말대로 오늘 밤 12시까지 카스티야를 자네의 충복으로 만들어 온다면, 나 또한 총력을 기울여서 온건파를 설득해보겠네.]
류안의 구박에 모건은 정확하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그런 약속을 받아내고 다급하게 출전준비를 갖추고 있으려니 시라이온에 탑승하고 있는 그를 향해서 모건의 통신이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낙양의 추적자들에 대한 조사를 하다 보니 터무니없는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네. 지금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출격해주게!]
“무슨 일입니까?”
[아일라 양이네. 그 놈들이 데려간 기술자들 사이에 아일라 양이 포함되어 있네. 말로는 가축사육장의 특수한 장치를 정비하기 위해서 불렀다고는 하는데, 오늘 오전의 정기연락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두절되었다고 그러네. 젠장, 아무리 바쁘다고 그래도 연구원들의 관리를 이딴 식으로 하다니!!]
류안이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녀석들은 이름 그대로 떨어지는 태양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전부 쓰러트리고 아가씨들을 구출해 오죠. 지금 즉시 출격하겠습니다!!”
8기의 시라이온과 제국군을 태운 트라이져 강습함이 낙양의 추적자들의 기지를 향해서 출격했다.
그 때의 시간은 오후 6시.
탈리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타임 리미트까지 불과 6시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1줄 후기
아일라가 핀치증후군에 걸린 어떤 공주님이 모델이라는 건 비밀입니다.
코멘트 답변
St0// 감사합니다.
제르디엘// 사실은 보스를 깨고 난 다음에 송사리를 처리하는 기분은 있지만...가끔은 주인공도 신나게 활약하게 해줘야죠. 후후후후.
한뫼사람// 감사합니다.
물고기인간// 사실은 원하는 형태로 할 수만 있으면 좋기는 한데. 우리나라는 그런 여건이 좀 힘든 게 사실이기는 하죠.
벌레//다음 히로인의 포스도 제 딴에는 나름 파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하게살고파// 오딘이 멱살잡겠죠. 어디서 밑장빼기를!
Kireae// 조강지처가 괜히 좋은 게 아니죠. 물론 세컨드, 서드도...아, 아닙니다.
天空意行劍//여자의 내조가 남자를 사나이로 만든다는 건, 평강공주 이례로 내려오는 좋은 미풍양속이죠. 후후후후.
KeinHoof//멋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편처럼 다른 여자들을 놓치거나 포기하는 일을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후후후.
노스아스터// 후후후후.
가식적썩소// 감사합니다. 요정님.
폭탄z기// 흑막이라면 흑막일 수는 있는데 조금 더 정확하게는 카스티야가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벌어지게 된 해프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