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11화 (111/291)

0111 ----------------------------------------------

지상편

머포크 군단이 강력한 건 사실이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현장에 야전 지휘관이 없다는 것.

또 하나는 조그가 사용하는 레이더가 아르고스 시스템이 아니라는 점.

만약에 그가 천 개의 눈동자라고 불리는 다중 감시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머포크 군단을 조종했다면, 전쟁터의 상황을 자신의 손바닥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광학위장, 스텔스, 카모플라쥬, 그 외에 온갖 마법적인 기술들까지.

어떤 속임수를 사용한다고 그래도 현대과학의 모든 탐지방법을 집약시킨 이 감시망의 눈길을 피해내지는 못한다.

물론, 제아무리 아르고스 시스템이라도 각각의 탐지방법에 따르는 측정거리가 다르고 운영하는 방법도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르고스 시스템을 확보하려면 기본적으로 비싼 장비와, 우수한 오퍼레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이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13구역의 인프라를 생각한다면 그런 시스템을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비행 몬스터 군단을 모조리 황금의 연금술사에게 넘겨줬다는 조그의 입장과 생각을 정리해보면 그의 사고방식은 심플했다.

레지스탕스의 전력을 깔보고 있는 것이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그러지. 그 원칙을 무시하는 사자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류안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포크 군단이 악어의 어금니로 진군해 들어왔다.

현재, 다른 분쟁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주시자의 화력은 전부 다른 방면으로 집중되어 있다.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할 조그가 아니었으니 20만의 머포크 군단을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레지스탕스도 단단히 준비를 마친 상황이라서 예전과는 다르게 그들의 진군에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머포크 군단이 악어의 어금니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레이더 상으로는 머포크 군단이 반경 4km이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정지 상태인 그들은 깊은 늪 속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12시가 되기 직전.

철퍽, 철퍽.

툭.

지이이이잉-

물 밖으로 걸어 나온 머포크가 또 다시 영상 투영장치를 내려놓고는 조그의 영상을 허공으로 비추었다.

[새로운 날에 영광이 있으라! 황금의 여신님이여 만수무강하소서!! 그리고 적들에게는 어둠의 자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노라! 카스티야! 오늘도 어김없이 너에게 제안을 하러 찾아왔도다!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순순히 항복해라!]

“가서 대꾸하시죠.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시키는 대로 말하셔야 됩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지난번에는 대답보다 먼저 총탄을 날린 그녀였기 때문에 류안은 단단히 주의를 줬다.

잠시 후 악어의 어금니를 지키고 있는 1대의 엘리게이터 가아가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조그에게 외부 스피커를 켰다.

[좋아, 네가 이겼어 개자식아! 지금부터 네놈이 말하는 그 제안이라는 게 뭔지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

[호오, 그게 정말인가?]

[그래. 너와 피터지게 싸우는 것도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그렇다고 네놈의 그 악취미적인 실험에 어울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최근에 내 편으로 들어온 조언자님은 협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조언자님이라?]

카스티야의 발언에서 상당한 호기심을 느끼는지 조그는 알기 쉽게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나설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류안은 앞으로 나서기 직전에 곧바로 모건에게 연락을 날렸다.

“지금부터 13구역 탈환작전의 페이즈 1을 시작합니다. 2중 HR돔으로  머포크 군단을 덮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스텔스 위장막을 덮씌운 부표들도 일제히 지정한 포인트로 배치해주십시오.”

[알겠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띄게 움직인다면 조그에게 들키는 게…….]

“하여간 영감님도 잔소리는. 그런 부분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제발 시키는 대로 합시다!”

[히잉, 매번 부려먹기만 하고 늙으면……]

류안은 모건과의 통신을 종료했다.

잠시 후에 연구팀이 작동시키는 거대한 HR돔이 머포크 군단을 뒤덮었고 쇠사슬에 묶여진 정체불명의 수많은 상자들이 부표처럼 여기저기로 떠오르면서, 머포크들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 숫자는 거의 수천.

[이런 식으로 깜짝 폭탄을 터트려도 상당히 많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상의 전멸이나 궤멸이나 그런 애매모호한 개념들은 세뇌당한 군대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저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 버리는 거죠.”

[어휴, 소름이야. 하여간 무서운 조언자님이라니까? 흐흐흐.]

빈정거리는 카스티야를 무시한 류안은 조그를 향해서 통신을 오픈한 상태.

위장막을 설치한 부표들의 움직임을 감지하지는 못하겠지만 2중의 HR돔을 발견했기 때문에 조그의 기분이 언짢아진 상태.

“처음 뵙겠습니다. 가온공화국의 원정대 5사단 소속의 독립부대 트라이엄프의 대장 류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카스티야님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죠.”

[파비안님에게 13구역을 위임받은 조그라고 한다. 그런데 대화를 하고 싶다는 분께서 갑작스럽게 뭐하는 짓이지? 이건……마나실드를 설치한 것인가?]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작 대화를 나누자고 우주 전함 규모의 마나실드를 설치하다니 터무니없는 놈이군. 이 정도의 크기라면 유지하기만 해도 마나소비가 심각할 텐데, 정말로 우리 머포크 군단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갑작스러운 돌발행동만 저지할 수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계속해서 그런 시답지도 않은 물건에 대해서 떠들 겁니까? 아니면 저와 교섭을 할 생각입니까?”

영상투영장치의 조그는 어두컴컴한 늪지대를 바라보면서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은 원격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물건이니 원하기만 하면 물속으로 뛰어들어서 그 정체를 확인하면 될 일이지만, 태연하기 이를 데 없는 류안의 태도나 카스티야가 실험에 협조해준다는 내용이 조금은 더 그의 흥미를 강하게 자극해 왔다.

게다가 자존심 덩어리인 그녀가 대화의 주도권을 양보해주는 사람이 아닌가.

‘어쩌면 이 녀석이 최근에 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 그 놈일지도 모르겠군.’

[좋아. 그렇다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내가 원하는 건 카스티야의 농축된 DNA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녀를 통째로 합성재료로 갈아 넣는 거지만 협상을 원한다면 골수를 복제하는 방향으로……]

조그가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에 류안은 재빠르게 모건에게 재차 비밀통신을 보냈다.

“작전 완료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지금 부표마다 설치해놓은 장치들을 풀 파워로 작동시키고 있네. 앞으로 1시간, 아니 30분만 시간을 끌면 모든 작업들이 끝날 걸세. 그나저나 설마 이런 방법을…….]

그는 모건의 말이 길게 이어지기 전에 재빠르게 통신을 종료하고 스피아를 향해서 통신을 날렸다.

“잠입 팀의 준비상황은 어떤가?”

[작전대로 페어리 자매들과 전투드론들이 마니우스들의 규모를 계속해서 불려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2, 아니 3만 마리까지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좋아,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군.”

거미줄 네트워크를 통해서 한 차례 재미를 본 마니우스 몰이를 수백 배의 규모로 재탕하는 작전. 그 또한 나름대로 대비를 해놓기는 했겠지만, 이렇게 무식한 규모로 들이닥치는 것 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내통자들의 도움으로 마니우스 몰이를 하는 지역과 환풍구 입구의 감시시스템은 마비당한 상태.

광학위장과 스텔스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이 잠입조의 역할은 본거지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틈타서 최대한 은밀하게 조그의 조종 장치를 확보하고, 바라모스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총 구성원은 약 20명으로 주요 인원은 스피아, 레드폭스, 페어리 자매, 그리고 탈리아.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음모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조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제안을 떠들어 대었다.

[……이상이 내가 제안하는 조건이다. 어떤가? 이 정도라면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관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데만 정확하게 2분인가? 나머지 28분을 끌려면 이야기를 빙빙 돌릴 필요가 있겠군.’

류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군요.”

[……악어의 어금니를 묵인해주고 레지스탕스를 후원해주는 몇몇 구역들의 압박을 풀고 자치를 허락해준다고 말했다. 이 이상 무엇을 양보하라는 소리인가?]

“그것만으로는 우리 원정대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원정대?]

조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원정대의 몫을 신경 써야지? 레지스탕스야 저항하지만 않는다면 제국의 국민들이라고 그래도 너희들은 우리의 적들이 아닌가?]

“적들이라면 그렇겠죠.”

[뭐?]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들은 이 전쟁에서 공화국이 승리할거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국에게 내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더군요.”

[…….]

능청스러운 류안의 말에 조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돈입니다. 물가야 어디든지 상황에 따라서 변한다고는 하지만 골드의 가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적당한 보수만 챙겨주시면 얌전하게 떠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네 놈들이 13구역에 찾아온 이유는……물주를 찾기 위해서라는 건가? 카스티야. 이런 터무니없는 놈을 조언자라고 부르다니 제정신인가!]

조그의 호통에 그녀는 류안이 시키는 대로 어깨를 으쓱하면서 능청스럽게 답변을 했다.

[뭐, 성격이야 어쨌든 싸움을 잘하는 건 사실이더라고. 너도 몇 번이나 농락당한 건 사실이잖아. 기왕에 양보하는 김에 조금 더 쓰라고 형씨.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골드를 쓸 데가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

[…….]

그녀의 말에 그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이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

[200만 골드를 주지.]

“!!”

[그 대가로 카스티야. 네 밑의 정글레인저들은 모두 무장해제를 하고 엘리게이터 가아를 반납해야 한다.]

[웃기지 마!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조그의 폭탄 발언으로 이야기가 격해지기는 했지만 카스티야 역시 류안의 경고를 받아들여서 지난번처럼 협상의 판을 엎어버리지는 않았다.

덕분에, 대화의 물고가 트이자 그것이 진짜 협상을 위한 대화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버는 데 성공. 마침내 30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고 모건으로부터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네! 이제 머포크 군단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어. 곧바로 조그의 본거지를 공격해 들어가도록 하세, 지금이 기회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카스티야! 머포크 군단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잡담은 그만하고 곧바로 페이즈 2로 넘어가도록 하죠.”

[야 이……어? 어, 그래. 그런데 레이더 상으로는 머포크 군단이 하나도 안 죽고 멀쩡한데 무슨 놈의 제압을 끝냈다는 소리야?]

“겉으로는 멀쩡해도 머포크 군단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이 없는 상황입니다. 무슨 원리인지는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아, 그거. 듣기는 했지……하지만 나는 이과가 아니잖아? 이론을 듣기는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는 도통 모르겠더라고.]

한숨을 내쉰 류안은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카스티야를 향해 차가운 물병을 내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물병에 들어있는 게 물입니까? 얼음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물이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뚜껑을 열어서 한 번에 들이켜보세요.”

다소 도발적인 태도에 카스티야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지기는 했지만 시키는 대로 곧바로 뚜껑을 열고는 단숨에 물을 들이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몇 방울의 물이 전부다.

“……이건 얼음이잖아?”

물병 안의 물은 뚜껑을 여는 순간에 놀랍게도 단단한 얼음으로 변해버렸다.

“과냉각 현상이라는 겁니다."

============================ 작품 후기 ============================

2줄 후기

과냉각 현상이라는 말에 에이, 말도 안 돼! 라고 말씀하실 분들을 위해서 다음 편에 추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SF라서 가능한 걸지도...

추가 후기

죄송합니다.

일찍 들킬까봐 힌트를 너무 적게 드린 감이...

코멘트 답변

Nearthals//13구역만 정리하면 자연의 순리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제르디엘// 설 연휴에 쓰고 설 연휴가 끝나면 하루 쉴까 고민중입니다.

벌레// 으으. 쉬고 싶어요. ㄷㄷ

Ghozt// 그래서 잡는 맛이 더...헤헤.

vofjelaosldk// 감사합니다.

KeinHoof// 미래에는 조케될겁니다. 좋은 게 좋은 거죠.(음?)

쩌비// 정주행 라이더다!

노스아스터// 살려주세요.

루크란제// 감사합니다. 살려주세요.

물고기인간// 드래곤 급 괴물이라는 겁니다. 드래곤의 멸종유무는 (스포일러)입니다!!

호야[虎夜]// 후후후. 그렇게 잊어버리셔야만 나중에 제가 통수를...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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