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0 ----------------------------------------------
지상편
---------------------------------------------------------
류안이 13구역에 찾아온 지 5일째 아침이 되는 날.
주시자를 경계할거라는 그의 예상대로 조그는 첫째 날의 대대적인 야습을 제외하면 머포크 군단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레지스탕스 보급의 8할을 담당하고 있는 트라이져 강습함을 타겟으로 삼고 다양한 방해 작전을 펼쳤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시도는 조그가 새롭게 생산해낸 비행 몬스터 군단의 기습.
불과 수백 마리에 불과하고 기본적으로 뼈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이라서 강습함의 화력으로도 쉽게 물리칠 수가 있었지만, 적들이 생산라인을 갖추었다면 수백 마리가 수천, 수만 마리로 늘어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생산시설의 규모가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을 줄이야.’
잠시 동안 지원이 끊어졌던 2일째 날을 기점으로 류안과 트라이엄프 중대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면서 보급 작전들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레지스탕스들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한편으로 13구역의 저항군 지도자들도 용기를 얻으면서 조그의 명령을 무시하고 악어의 어금니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3일 동안 보병 5천에 마장기 500대, 전투드론 300기를 확보하는 데 성공.
나름대로 구색은 갖추기는 했지만 조그의 본거지를 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전력이라서 류안의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기왕이면 항공 전력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다못해 전투 헬기라도 몇 대 보유할 수 있었다면…….’
날아다니는 전투 드론들이 작은 미니헬기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진짜 전투 헬기나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마장기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약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적들의 포화가 미치지 않는 고도로 올라가면 강풍의 영향으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거나, 정밀폭격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연약한 기체들.
우주전에서도 사용되는 트라이져 강습함 급은 아니더라도 몇 대의 항공전 력만 보유할 수 있었다면 작전이 몇 배는 수월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만은 조그도 마찬가지일 게 틀림이 없다.
팔란티오 행성의 항공 전력은 원정대와 제국군의 사재기 경쟁으로 씨가 말라버린 상황이니까.
‘항공기들을 싹쓸이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지원조차도 안 된다니…….’
주시자의 포격지원 건만 해도 그렇고 길로틴의 후광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5사단은 류안의 지원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도 모자라서, 역으로 트라이져 강습함을 내놓으라는 강요 섞인[제안]을 하는 판이다.
13구역의 후원자들, 5사단의 군수본부, 없는 것 빼고는 뭐든지 팔아치운다는 군수상점에서 밀수업자들까지 모조리 문의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상태.
[죄송하지만 지금은 남아있는 재고가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신다면…….]
가끔씩 제대로 날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항공기를 판매하려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불량품을 파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제시해오는 바람에 전부 거절하고 말았다.
팔란티오 행성의 그런 품귀현상은 항공 전력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카스티야의 자금지원으로 제론V행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금을 싸들고 상점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쓸 만한 병기들과 가성비가 뛰어난 용병들은 모두 판매가 끝났고 찌꺼기들 중에서도 찌꺼기들만 남아있는 상태다.
그나마 양질의 물건을 기대할 수 있는 루트는 13구역의 후원자들이 전부.
그 현상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다.
‘조만간 원정대와 제국군이 한 판 제대로 붙겠군.’
겉으로는 분쟁지역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모양새지만 실재로는 양쪽 진영 모두가 주요 전력들을 온존하면서 큰 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대포들을 서로에게 겨누고 있으니 심지에 불만 붙이면 쑥대밭이 되는 건 문제도 아닌 상태.
‘제론V행성의 싼 물가(?)가 그리워 질 줄은 몰랐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급한 쪽은 류안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라도 바가지를 쓰면서 남아있는 병기와 용병들을 긁어모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 와중에 위안이 되는 일이라면 평시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싼 기계들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헐값으로 돌아다니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주로 관계자들이 피난을 가면서 다른 성계로 도망치기 위한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헐값으로 처리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머포크 군단을 처리하기 위한 어떤 특수한 장비들은 아주 싼 가격으로 대량으로 확보할 수가 있었다.
‘녀석들을 처리하는 건 문제도 아니야. 문제는 녀석들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는 곧바로 조그의 본거지를 공격해서 녀석을 끝장내야 한다는 사실인데…….’
모건 박사에게 실험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고 작전실행의 준비를 마친 이후였기 때문에 류안은 20만의 머포크 군단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문제는 오히려 조그의 본거지를 지키는 병력들과 바라모스의 존재.
본거지를 지키는 적들은 거미줄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교란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바라모스는 규격이 다른 괴물이다.
단순하게 전력으로만 판단하면 웜급의 드래곤 이상.
썩어도 준치라고 드라코니안 전사인 루치아조차 감당해내기 어려운 전력으로 갑자기 드래곤을 상대하라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일단은 융통성이 있는 율리안 중장에게 바라모스의 정체를 알려 주기는 했지만……주시자들이 전략포격을 퍼부어대면 위험해지는 건 오히려 우리들이야.’
반경 10km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주시자들의 전략포격에서 도망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결과 궁지에 몰린 조그가 살해당하거나 자살한다면 13구역에는 아포칼립스가 찾아오게 된다.
그러니 제일 좋은 방법은 조그가 바라모스나 조종장치를 파괴하기 전에 그의 척추로 돌 메이커를 꽂아넣는 것.
‘솔직하게 말하면 성공할 가능성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단숨에 끝장을 내야만 해.’
류안이 이렇게까지 13구역의 제압을 서두르는 이유는 단순하게 조그의 전력이 강력해진다거나, 양 진영이 전면전을 맞붙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제국군이 훨씬 더 강력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전략판단을 내리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더 큰 확신이 그에게는 존재하고 있었다.
예지몽.
그는 몇 차례나 꿈을 꿨지만 그가 본 어떤 미래에서도 가온공화국이 행성점령전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도미노처럼 멸망해버리는 공화국.
‘공화국이 멸망하거나 말거나 내가 알 바는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큰 배가 침몰한다면 조각배들이라고 무사하리라는 법은 없지. 그런 걸 감당하느니 차라리 큰 배를 구해내는 영웅으로 화려하게 데뷔하겠어. 여기까지 어떻게 끌고 왔는데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조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그의 주목을 끌만한 미끼가 필요했다.
‘카스티야. 그녀와 정글레인저들의 도움이 필요해.’
현재 레지스탕스의 주 전력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카스티야가 이끄는 정글레인저다.
총인원 500명에 B급의 엘리게이터 가아를 200기나 보유하고 있는 정예부대.
첫째 날의 지옥을 경험하면서도 트라이엄프 중대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피해를 입지는 않았고, 약간의 보충을 거쳐서 마장기 숫자는 첫째 날과 다름이 없었다.
만약에 그 날에 성벽이 무너졌다면 정글레인저들도 커다란 타격을 받았겠지만 그들이라면 나머지 인원들이 몰살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위망을 뚫어 달아나는 일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머지 마장기들은 떨거지들이나 다름이 없는 수준.
재규어, 터틀, 타이거 샤벨, 이외에도 C급에서 D급의 제국군 마장기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성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서, 숫자도 숫자였지만 전력의 질 자체가 첫째 날과 비교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허약해져 있었다.
류안은 그녀의 전면적인 협조를 받아내기 위해서 비장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그를 해치우면 조종 장치를 넘겨주겠어.”
“……뭐?”
다짜고짜 꺼내는 류안의 말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카스티야가 입을 열었다.
“13구역의 지배자가 되고 싶지? 그렇다면 워 게임을 탐내지 말고 조종 장치나 가지라고. 그리고 향후 여왕님의 통치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섭섭하지 않게 보수나 챙겨달라고…….”
갑자기 약하게 나오는 그의 태도에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떠보듯이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렇게 관대하게 나오시는 걸까.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번지르르한 말만으로는 못 믿겠는데……요즘 부하들이나 13구역에서 뭐라고 떠드는 줄 알아? 트라이엄프 부대가 조그를 무찌르고 구원을 가져다줄 거라고 하더라고. 게다가 요상한 삐라까지 돌아다니는 모양이고…….”
그녀가 삐라라고 표현하는 물건은 로아와 클라크가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물로 트라이엄프 부대의 눈부신 활약들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편집해낸 선전영상이다.
약간의(?) 미화들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신빙성 있는 전투기록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남들이 공적을 챙겨주지 않는 자기PR시대에 사용하기 위해서 류안이 꾸준히 업데이트를 계속해주는 물건.
실재로 머포크 군단을 격퇴한 공적마저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게 현재 5사단 상부의 실태였기 때문에, 류안은 훗날을 위해서라도 꾸준하게 기록들을 확보하며 교장에게 암호화된 메일들을 전송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주장대로 류안이 13구역에 욕심이 없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생각으로 크게 선심을 쓰듯이 입을 열었다.
“좋아, 원하는 대로 말로만 하지 말고 공문서로 전달해 줄게. 받으라고, 여기에 조종 장치의 소유권과 13구역의 통치 권한을 모두 제국의 국민들에게 일임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 내 서명이 들어있고 지장까지 찍어놨지. 현장 최고 책임자가 비상시에 합의한 사안이라면 상부에서도 함부로 간섭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지? 이 문서만 가지고 있으면 너는 합법적으로 13구역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게 되는 거야.”
“……무슨 속셈이야?”
문서를 받아든 카스티야는 그 내용들을 곰곰이 살피면서도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속셈은 무슨 속셈이야? 더 이상 꾸물거렸다가는 조그를 영영 무찌르지 못할 것 같으니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는 거지. 사실은 싸웠던 적도 없지만……요즘 우리들이 좀 거시기 하기는 했잖아?”
“…….”
직접 증거를 보여줬지만 아직까지도 반응이 미적지근했기 때문에 류안은 주저하지 않고 추가타를 날렸다.
“내 조건은 하나야. 조그를 무찌르기 전까지는 워 게임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 그 효과가 어떤 건지는 직접 경험해봐서 알지? 너 혼자만이 아니라 정글레인저 전체가 내 명령에 따라서 움직여야만 돼.”
“……거절하면 어쩔 작정이지?”
“트라이져 강습함을 타고 13구역을 떠날 거야. 분쟁 지역이 여기 한 군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원정대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려 있거든. 그동안 투자한 게 아깝기는 하지만 어쩌겠어?”
최후의 통첩이나 다름이 없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고민을 하는 눈치였지만, 카스티아는 욕망에 충실하기는 해도 머리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좋아. 그런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어. 당분간 잘 부탁한다고……대장님!”
그리고 그날 밤에 조그의 머포크 군단이 악어의 어금니를 목표로 진군해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1줄 후기
설 연휴에는 쉬어야 제맛인...아, 아닙니다.
코멘트 답변
벌레// 전부는 아니지만 교육을 받기는 받죠. 끄덕끄덕.
제르디엘// 저도 갈등됩니다. 하악하악
NeoGGM// 약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물고기인간// 저도 계속 변태하고 싶기는 한데 13구역 공략이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서 이것부터 먼저 처리하고 놀도록 하겠습니다.
Nearthals// 퍄파!
한뫼사람// 후후
여관집아들// 고양이 접대 편은 뒤가 더 재밌습니다. 후후후.
KeinHoof// 13구역이 끝나고 열심히 농락하겠습니다. 미, 믿어주세요.
GudSyn// the 신세계
노스아스터// 아, 아닙니다. 이 정도가 약이라니요...뒤편이 더 후후...
2.He// 이번 편이 그냥 커피라면 후일담은 top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