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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류안의 계속되는 설득에 모건은 마지못해서 레지스탕스가 보유하고 있는 비장의 수단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손바닥 크기의 영상투영장치를 통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약물 주사기.
“이게 뭡니까?”
“돌 메이커라는 약물일세. 이 물건을 펜져스의 척수에 꽂아버리면 뇌와 척수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켜버리지. 원래는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라고 불리는 독극물을 아주 오랫동안 개량해서 병기화에 성공한 프로토타입일세.”
갑작스럽게 터무니없는 물건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류안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자, 잠깐만요. 펜져스는 기본적으로 독극물이나 약물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맞는 말일세. 기본적으로 약리작용에 터무니없이 강력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무적은 아닐세. 그리고 우리 바이스들은 그런 펜져스들을 엿 먹이려고 아주 오랫동안 연구해왔네. 물렁물렁한 연맹의 과학자들과는 달라, 우리들은 그 개자식들을 죽이려고 몇 대에 몇 대를 연구해 왔지. 그리고 이건……펜져스들에게 제대로 빅 엿을 날릴 수 있는 물건이라네.”
확신과 자신감이 담겨있는 모건의 말에서 류안은 한 방 제대로 먹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가장 성가시다고 생각하고 있던 문제는 조그의 심장에 연결되어 있는 조종 장치의 자폭장치.
13구역 전체에 도대체 몇 마리의 강화몬스터들이 숨어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몬스터들의 이지를 제어하고 있는 조종 장치가 박살난다면, 야생의 흉포함을 되찾은 강화몬스터들이 13구역만이 아니라 로이케 강이 흐르는 밀림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조그는 언제든지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릴 수 있도록 자신의 신체 어딘가에 자폭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트리거를 임플란트했다고 하지. 심지어는 자신의 생체신호를 조종 장치가 감지하도록 만들어서 아주 잠시라도 그 신호가 끊어지면 곧바로 조종 장치가 폭발하도록 개량했다고 해. 게다가 레지스탕스의 수뇌부를 몰락시킨 다음부터는 24시간 조종 장치의 옆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니까……이건 뭐.’
대량살상병기를 몸에 두르고 펼치는 벼랑 끝 전술이지만 이 정도까지 철저하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돌 메이커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준다면 그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카스티야의 계획은 다음과 같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그에게 돌 메이커를 사용해서 그를 몸만 살아있는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거지. 그리고 난 다음에 조종 장치에 연결되어 있는 폭발물들을 제거하고 그걸 손에 넣는 거야.”
“좋은 방법이군요. 카스티야가 그 장치를 손에 넣어서 새로운 독재자로 탄생하지만 않는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
류안의 비꼬는 식으로 말을 하자 모건에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동안 침묵하다가 헛기침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크흠, 자네는 카스티야를 오해하고 있네.”
“제가 뭘 오해하고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맹한테 이런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던 겁니까? 아니면 워 게임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부분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판이라는 놈을 스파이로 붙여서 동맹군의 부대에 대한 정보를 캐려고 하는 개수작을 말하는 겁니까?”
“……그런 짓까지 하고 있나? 허허, 카스티야가 자네를 그렇게까지 두려워하다니. 놀랄 노자로군.”
“지금 상황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밌으십니까? 제 입장에서는 하나도 재미가 없습니다. 순수하게 레지스탕스를 도와주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고 있는 마당에, 동맹군을 견제한다고요? 그녀는 명백하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류안의 의도는 하나도 순수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는 카스티야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동맹군의 입장을 망각하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고 있었다.
덕분에 대의명분은 확실하게 그의 손아귀에 있는 상황.
모건은 한 층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부인하지는 않겠네. 어쩌면 이게 연맹과 슈발츠 제국의 차이일지도 모르지. 우리들은 아주 오랫동안 전제주의에 지배를 당해 왔네. 그래서 권력자들의 오만과 독선까지도 카리스마와 결단력이라고 착각해버리는 일들이 많다네. 그래도 카스티야는……독립을 외치면서 궐기했다가 조그에게 굴복해버린 수많은 위정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무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지도자일세. 그녀의 하나뿐인 혈육이 인질로 붙잡혀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모건의 이야기에 따르면 카스티야는 조그가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을 붙잡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협박하는 조그를 향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내 혈육의 피를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봐라! 하지만 내 여동생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축성 받은 부모님의 무덤에 맹세하건데, 네 놈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들어서 건배하고, 나머지 부위들을 조각조각 해체해서 악어들에게 먹이로 던져주마!]
“13구역의 모든 사람들이 조그를 두려워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네.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호탕하게 외치는 그녀의 당당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는지 상상이 가는가?”
“전쟁 영웅이군요.”
류안이 씨익 웃으면서 소감을 말했다.
“그 말대로일세.”
“하지만 전쟁 영웅이 평화로운 시절에도 영웅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
“모건 선생님이 카스티야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혁명보다 중요한 건 혁명을 한 다음에 뒷수습을 어떻게 해 내느냐가 중요하겠죠. 장담하는데 카스티야는 조종 장치를 차지하는 순간에 조그와 똑같은 일을 저지를 겁니다.”
“확신하지는 말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글쎄요? 저한테는 카스티야가 자신의 혈육이 인질로 잡힌 상황인데도 투쟁을 계속한다는 부분이 이런 식으로 들렸습니다. 가족을 죽이려면 죽여라, 나는 옥좌를 차지하고 말 것이다. 자기 가족조차도 대의명분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쉽게 희생시켜버리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어떨까요?”
“……그러면 자네는 자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질로 잡힌다면 레지스탕스고 뭐고 다 팽개치고 꼬리 내린 개처럼 굴복해 버리겠군.”
비꼬는 태도로 말하는 모건의 말에도 류안은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저는 돈이나 명예, 권력보다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이 훨씬 더 소중하거든요. 상대방이 개처럼 행동하기를 바란다면 얼마든지 개처럼 행동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개처럼 살다가 죽을 생각인가?!”
“아닌데요?”
“……지금 나와 장난을…….”
“저는 세상을 2분법으로만 보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모가 아니면 도가 정답인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카스티야였다면 조그와 어떤 방식으로도 타협을 했을 겁니다. 타협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정글 레인저들을 이끌고 멀리 도망쳐서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았겠죠.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전장에서 그녀의 고집에 휘말려서 도대체 몇 명의 레지스탕스가 죽어나간 겁니까? 그들의 피가 이런 식으로 헛되게 흐를 가치가 있는 전쟁이기는 했습니까?”
“…….”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모건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류안은 이쯤에서 그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정말로 이번 혁명을 성공시킬 마음이 있다면 적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전쟁터에 뛰어드는 레지스탕스들이, 가치 있는 전쟁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어버리도록 도와주십시오. 적과 아군도 구분하지 못하고 밥그릇 싸움에 혈안이 된 사람에게 지나치게 기대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적어도 제가 카스티야였다면 조그의 척추에 돌 메이커를 꽂아도 열 번은 넘게 꽂았을 겁니다.”
“……자네가 말하는 건……지나치게 이상적이군.”
모건은 한참 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힘겨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꿈이 좀 크거든요.”
“어느 정도인가?”
“은하를 정복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크크큭, 크흡, 크하하하하하하하!!! 내 살아생전에 자네 같은 미친 작자는 처음으로 보는군. 은하 정복이라고? 헨드릭 황제가 살아 돌아온다고 그래도 불가능할 걸세. 지금 같은 난장판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 건가?”
“안 될 건 뭡니까?”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한참동안 껄껄거리면서 웃음을 터트리던 그는 약간은 지나치게 웃어버린 나머지 눈물이 고인 모습으로, 그리고 어딘가 많이 지쳐버린 모습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 드는군. 그래, 생각해보면 자네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 모든 것에 절망하고 비관하고 있던 사람에게 빛을 가져다주는……별로 친절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모건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돌 메이커를 꺼내들었네.
“받도록 하게. 카스티야는 모르고 있는 또 하나의 돌 메이커일세. 다른 하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지. 그녀가 실패하면 자네가 조그의 척추에 그것을 꽂아버리게.”
류안은 사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주의해야만 하는 사항이 몇 가지가 있네. 반드시 정해진 용량만을 주입시켜야 하네. 모자라면 조그가 신체에 임플란트되어 있는 자폭장치를 가동시킬 거고 넘치면 죽어버릴 걸세. 다른 약물이나 불순물이 섞여도 안 되네. 정확하게 내가 준 돌 메이커를 전부 주사해야만 13구역에 아포칼립스가 찾아오지 않을 거네.”
“명심하겠습니다. 큰 결단을 내리신 겁니다.”
“뭘, 나는 그저 희망이 조금이라도 많은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네. 그래도 이 물건을 조그한테 들키면 죽도 밥도 안 되니까 조심하게. 우리가 이런 비장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반드시 대응책을 생각해낼 것이네.”
“알았으니까 이제 좀 그만 떠드시죠?”
“…….”
갑자기 태도가 변해버리는 류안의 말에 모건의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를 향해서 자신의 눈앞에 있는 VR머신을 가리키면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그.
“지금 미니 스파이더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제가 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봐, 잔소리나 늘어놓으시기는……가서 시켜놓은 일이나 마무리 하세요. 아직도 몇 번은 실패한다면서요? 적어도 2~3일은 머포크 군단도 잠잠하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입보다는 손을 움직이세요. 손을!”
“아, 알았네. 자네의 말대로 일하러 가지……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이 좋은 말을 해주는데 싸가지가 없어서 문제야.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르신들이 뭐라고 하면 양쪽 귀를 쫑긋하면서 경청하다가 아이고 그러십니까, 어르신. 정말로 고마우신 말씀…….”
“아 쫌!!”
“히잉!”
류안의 호통에 단단히 삐져버린 모건은 그렇게 콧소리를 내고는 눈물을 흩뿌리면서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그를 쓰러트리기 위한 비장의 카드를 입수하는데 성공한 그는 양쪽 손을 까딱거리면서 적의 본거지로 잠입해있는 미니 스파이더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스피아가 소나 탐지장치 때문에 진입을 포기했다고 그랬지? 후후후후. 겨우 그 정도로 물러서다니 잠입 액션게임에 기본이 안 되어 있군. 한 번 보여주도록 하지, 온갖 보안장치들로 뒤덮여있는 스파이 잠입 게임을 원코인 노다이로 플레이하는 내 조종솜씨를 말이야…….”
============================ 작품 후기 ============================
2줄 후기
오늘 급하게 부산까지 갔다오느라 정신이 없네요. 너무 급하게 써서 수정도 못했습니다. 코멘트 답변도 내일 할게요. 오늘은 좀 일찍 자야되겠습니다. ㄷㄷㄷㄷ
추가 후기.
번외편에서 못다 이룬 꿈은 본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