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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트라이져 강습함이 목적지를 정하기 직전.
중립지역에서 레지스탕스를 지원하겠다고 메세지를 보내온 단체들은 서른이 넘었다.
그 중에서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다섯.
문제는 그들 중에서 누가 조그의 편이고 누가 레지스탕스의 편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는데, 덕분에 류안은 그들이 보내온 메시지를 살펴보면서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구분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멈춘 장소는 와이즈 캣이라는 집단에서 보낸 메시지를 읽는 순간이었다.
함께 조그에 맞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 함께 싸웁시다. 필요한 물자들은
입구에 적재시켜 놨습니다. 지원자들도 기다립
니다. 모두 하나같이 훌륭한 바이스의 전사입니
다. 찾아주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세로드립이네요.”
“세로드립입니다.”
곁에서 내용을 구경하던 클라크와 카스티야의 부하인 판이라는 남자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외쳤다.
첫 번째 글자에서 아래쪽으로 읽어나가면 완성되는 문자는 함정입니다. 누군가가 찾아오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클라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류안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살았습니다. 다른 단체들을 알아보죠.”
하지만 류안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아니, 와이즈 캣과 접촉한다.”
“노골적으로 함정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는데 어째서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겁니까?”
“글쎄다. 예쁜 여자애들이면 모르겠는데 사내자식들한테 가르쳐주려고 하니까 영 의욕이 나지를 않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조종석으로 발을 올리는 류안의 불성실한 태도에, 클라크는 원형 탈모가 일어나고 있는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박박 긁으면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미녀가 아니라서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제발 좀 가르쳐주시지 않겠습니까? 대, 장, 님?”
“쳇, 알겠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가 가르쳐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가끔씩은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이라는 걸 하라고. 학력만 보면 우리 부대에서 제일 잘 나가는 녀석이 머리회전은 왜 그렇게 느려?”
“……죄송합니다.”
“뭐 됐어. 기왕 곁에 두기로 한 거 천천히 키우기로 결심했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내가 준 전략교본들 열심히 공부해라. 무슨 뜻인지 않지?”
류안은 클라크가 혹시라도 모를 자신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전략가로 성장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잭을 대리인으로 생각해고 그의 생각을 알려주었을 때는 클라크도 어째서 잭이 아니라 자신을 대리인으로 정했냐면서 의아해했지만 그는 이렇게 답변을 했다.
[잭은 뛰어난 지휘관이지만 기발한 생각을 짜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야. 내가 지금까지 본 바에 의하면 우리 부대에서 제일 생각이 많고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은 너다. 클라크……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보다는 네가 훨씬 더 뛰어날 거야.]
클라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했지만 류안은 스스로 생각을 해보라면서 전략과 전술 교본들을 넘겨주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다시 현재.
류안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주 간단한 이유야. 안전구역에서는 우리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씨가 말랐는데 중립지역에서는 갑자기 우리들을 돕겠다는 집단이 넘쳐나고 있어. 이게 뭐를 의미한다고 생각해?”
“그건…….”
“아하!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조그가 중립구역 전체에 함정을 파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클라크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옆에 있던 판이 무릎을 탁 치면서 답변을 했다.
“바로 그거야. 그런데……보아하니 정글레인저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이해력이 빠른 친구네? 소속이 어디지?”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막시밀리앙 중……아니. 어젯밤에는 대장님의 휘하에서 P7으로 뛰어다닌 판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카스티야 대령님의 명령을 받아서 길잡이 겸 교섭역할을 하기 위해서 강습함에 탑승했습니다. 어젯밤에는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붙임성 좋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던 판이었지만 남작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류안은 악수를 무시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충 받아넘기면서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 어쨌든 조그가 중립지역에서 함정을 파고 있다는 건 확실해. 물론, 그들 중에서는 정말로 우리들을 돕고 싶어 하는 단체들도 있겠지만……내 짐작으로는 한 80%이상은 함정이라고 봐야지.”
그의 말에 클라크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렇다면 중립구역 자체로 가는 게 위험한 거 아닙니까?”
“다른 메시지들을 확인했을 때는 대체적으로 그랬어. 하나같이 조건들이 너무 번지르르하고 좋았거든……그런데 이 메시지를 보라고. 이 엉성한 완성도를 말이야.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클라크는 다시 한 번 자세하게 메시지를 살폈지만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한테는 와이즈 캣의 조건도 너무 좋아 보입니다만…….”
“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함정이라도 건드려볼만한 집단이 나타났다는 말씀이군요!! 그걸 단숨에 알아채시다니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다시 한 번 판이 호들갑을 떨면서 중간에 끼어들었다.
“미안한데 좀 닥쳐줄래? 클라크한테 물어보고 있는데 왜 함부로 끼어들고 지랄이야. 네 부대에서는 버르장머리를 그 따위로 가르치니?”
“아, 죄, 죄송합니다.”
신경질적인 류안의 태도에 굳어버린 그는 그렇게 사과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주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수군거리면서, 부녀자들이 좋아할만한 염문(?)을 퍼트렸지만 류안은 못 들은 척 계속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정답은 쟤가 말했어. 그러면 어째서 건드려볼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한 번 맞춰봐.”
“하지만 저는...”
“맞춰봐.”
그의 강요에 클라크는 잠시 한숨을 내쉬다가 차근차근 조건들을 살피면서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것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일단은……이 와이즈캣이라는 단체가 저희들이 필요한 물자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높은 것 같습니다. 의료연구를 하는 대학시설도 보유하고 있고 마장기 정비시설도 가지고 있으니까요……입구에 준비해놓은 물자가 정말로 저희들이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어도, 적어도 의료품이나 수리부품들이 풍부하다는 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지만 입구에 준비시켜놨다는 물자들은 진품일 가능성이 높아. 좋아, 계속해 봐.”
“그리고 저희들한테 경고를 해준 메시지가 도착한 것으로 봐서는 내부에서는 레지스탕스에게 협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100%확신할 수 있어.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적어도 우리 편이야. 그 전제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봐.”
류안의 단호한 태도에 클라크는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알겠습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이 메시지를 보냈다면 적의 지휘관은 멍청하고 부주의하거나 아니면 함정을 파는 데 능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눈에 봐도 명확하게 티가 나는 메시지를 보내다니……조금만 주의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난 적 사령관이 멍청하고 부주의할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지.”
“하지만…….”
“그게 바로 네 문제야. 클라크. 하지만이 아니야! 네 장점이자 단점은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서 오히려 눈앞의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잘 생각해보라고! 평범한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변수를 고려하지는 않아. 이 상황에서 집중해야만 하는 건, 전혀 다른 부분이야! 잘 들어 봐.”
류안은 다소 흥분한 태도로 중립지역의 지도를 단말기의 화면으로 띄었다.
“13구역은 사실상 조그가 지배하고 있어. 안전구역이니 뭐니 떠들어대도 조그의 강화몬스터 군단이 적을 뿐이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중립지역이건 안전구역이건 쓸어버릴 수 있는 상태니까. 그런데 안전구역에서도 조그를 두려워하는 마당에 중립지역에서 우리들을 환영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막말로 쟤들은 우리들이 보급을 받는 걸 포기하게만 해도 되는 상황이야. 함정에 끌어드려서 강습함을 잡아도 그만이고 못 잡아도 상관이 없지. 급한 건 우리들이지 쟤들이 아니거든. 그런데 딱 한 지역에서만 돌발행동을 하고 있어. 왜? 머리가 좋아서? 조그에게 과잉충성하고 싶어서? 저 지역에 조그의 대 군단이 함정을 파고 있어서? 도대체 뭐를 하려고 그런 짓을 하겠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인데 말이야…….”
“…….”
“설령 이 와이즈 캣이라는 집단의 수장이 정말로 똑똑한 천재 전략가라고 해도 건드려 볼 만한 가치는 있어. 어쨌든 둘 중에 하나라면 가능성은 50%잖아? 그리고 전략가라는 건 이런 승부에서 자신이 이길 확률을 100%를 만들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준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야. 나머지 변수에 대한 가정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어도 그걸 일일이 대비하고 걱정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건 단순한 겁쟁이에 불과해. 선택과 집중이야 클라크!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어?”
“……새겨듣겠습니다.”
클라크는 지금까지 보여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열변을 토해낸 류안은 그제야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모자를 눌러쓰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리어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기 전까지…….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서 트라이져 강습함은 마침내 접선장소의 상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상에 있는 와이즈 캣의 병사가 물자들이 쌓인 활주로의 끄트머리에서 반짝거리는 유도봉을 휘두르면서 강습함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안은 그 신호를 무시하고 엘리게이터 가아에 탑승하고는 드랍포트를 사용하지 않는 단독 강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말씀하신대로 회전 팬을 해체하고 호버링 모드로 튜닝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자세제어장치까지 전부 손보는 데는 시간이 모자라서 공중에서 균형을 잡으시는 게 조금은 어려우실 겁니다.”
“알았어! 밤샘하느라 지쳤을 텐데 고생했어. 애니!”
애니의 설명에 류안이 씩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인간적으로 동생은 풀어주시죠.”
애니의 동생 리어는 현재 류안에게 붙잡혀서 마장기의 조종석으로 끌려들어가 무릎에 강제로 앉혀져서는 두려운 표정으로 울먹거리면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훌쩍훌쩍, 살려줘.”
양 손을 허우적거리는 그녀를 꼬옥 끌어안으면서 웃는 표정으로 분노하고 있는 애니를 향해서 어린아이가 때를 쓰는 것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는 류안.
“한 번만 데리고 가면 안 될까? 행운의 마스코트가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데……리어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테니까.”
“괜히 멋진 말로 얼버무리려고 하지 말고 제 동생을 놔주세요. 자꾸 그러시면 다음부터는 정비를 할 때 슬쩍……빼버립니다?”
“쳇.”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애니의 무시무시한 협박엔 류안은 짧게 혀를 차면서 순순히 인질을 해방시켜 주었다.
리어는 어지간히도 겁먹었는지 오들오들 떨면서 조종석의 밖으로 나가자마자 애니의 품에 안겼지만, 다음 순간에 류안이 애니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갑작스럽게 조종석으로 끌고 들어가 진한 프렌치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흐읍!”
“캬아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 자매가 모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면서 당황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처음에는 그를 밀쳐내려고 발버둥을 치던 애니는 이내 얌전해지면서 양팔은 그의 목으로 걸고, 발 한쪽을 슬며시 들어 올리면서 그 감미로운 순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리어는 양쪽 눈을 전혀 가리지 않는 상태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뚫어져라 지켜봤다.
그리고 그 행위가 끝나자 애니를 향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류안.
“다녀올게!”
“다, 다녀오세요호…….”
안경이 기울어진 상태로 팔푼이처럼 붉어진 표정으로 비틀거리면서 조종석을 빠져나간 애니는 나가자마자, 다리가 풀려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한 방으로 녹다운이 되어버린 두 자매의 모습을 음미한 류안은 돌아오는 순간에는 자매덮밥을 실현할 수 있을거라는 꿈에 부풀면서 조종석의 문을 닫았다.
[대장님! 지상에서 트라이져 강습함이 착륙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통신을 돌려. 내가 직접 대화에 응대하겠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와이즈 캣의 지도자로 보이는 여자……고양이가 화면에 나타나서 류안을 향해서 따지듯이 외치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냥, 닝, 인간! 어째서 유도봉을 따라서 내려오지 않고 공중에서 얼쩡거리는 거냥! 우리들은 레지스탕스 인간들에게 호의적인 묘인족이다냥! 저, 절대로 조그님의 지시를 받고 함정을 파고 있는 게 아니다냥!]
그리고 류안은 흑염룡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면서 포효했다.
“고양이 미소녀 떴다!!!!!”
“냐앙?!!”
그리고 묘인족의 비명도 함께 울려퍼졌다.
============================ 작품 후기 ============================
1줄 후기
아, 클라크 때문에 짜증나네요. 그냥 죽여 버리는 걸로 짤……아, 아닙니다. 설명 쓰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코멘트 답변
물고기인간//장르는 다르지만 보면 심장에 안 좋죠.
침륜// 지상편이 몇 편이 나올지는 사실 며느리도 모릅니다. 하지만 길지는 않을 듯…….
Atticus//흑염룡은 세계를 구합니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아패로도 계속 그렇죠……인류는 끊임없이 번식해야만 하니까요.
벌레//사랑이 넘치는 부대니까요. 여러 가지 의미로…….
호야[虎夜]//하앜하앜
KeaR、Royal// 예지몽 편으로 중후반 내용이 잠시 나오고 사이드 스토리가 몇 편 있었습니다. 그것 빼고는 스토리가 딱히 더 나간 건 없습니다. 지금이 훨씬 더 진행된 상태죠.
문꽃// 표지는 또 바뀔지도 모릅니다.
여관집아들//저도 캐릭터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그래도 간간히 나옵니다. h신이랑 노닥거리는 이벤트도 있고요. 주로 행성점령전 끝나고 나오는 거지만…….
시원한바람s// 죄송합니다. 흑염룡으로 명칭 통일하겠습니다.
KeinHoof //성에 한참 호기심 넘치는 나이니까요. 다만……음, 취향은 존중해줘야죠.
애기꼬//귀요미입니다.
노스아스터//박살낼 것 까지는 없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남녀의 건전한(?)교제법을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spadel// 음, 지금은 넣을까 말까 고민인 페어리 자매만 빼면 재촉만 안 당하면 충분히 회수할 수 있습니다. 공기화가 될까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만 안 잊어버리면 되니까요.
Nearthals// 하앜하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