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0 ----------------------------------------------
지상편
---------------------------------------------------------------------------
[내가 말했잖아. 카스티야는 상여자 중에서도 상여자라니까?]
요새의 성벽 위에서 대전차 라이플로 강화몬스터 군단을 하나하나씩 처리해나가던 탈리아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신나는 목소리로 류안을 놀려댔다.
[개인 통신을 엿들은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딱 보면 느낌이 오잖아! 여자의 감이라고, 감!]
‘곰탱이가 양말물고 물구나무서는 소리하고 있네.’
레드폭스한테 통신을 엿듣는 장비를 설치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단독으로 통신을 보냈다.
[탈리아, 할 말이 있어.]
[뭔데?]
[상황이 위험할 거 같으면 주저하지 말고 트라이져 강습함으로 도망쳐. 알겠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내 목숨이 위험해 보이더라도 절대로 나서면 안 돼.]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목소리에 잠시 동안 대답이 없던 그녀는 이내, 감동받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른 년들한테도 똑같이 이럴 거지?]
[들켰네.]
[……치, 내기에서 질 거 같으니까 멋있는 척 하기는……너야말로 조심해.]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응원을 보낸 그녀는 수줍었는지 통신을 종료해버렸다. 반면에 류안은 자신의 요구를 묵살해버린 카스티야의 반응을 생각하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프로파일링에 성공한 줄 알았는데……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어.’
그녀가 지휘하는 레지스탕스는 트라이져 강습함을 타고 13구역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면서, 원정대의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것을 선전하고 다니면서 막대한 양의 보급물자와 병사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녹다운 직전에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는데 성공한 상황이니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지만, 필승을 위해서라는 류안의 조언을 그런 형태로 짓밟아버리는 모습은 어딘가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본 카스티야는 절대로 멍청한 지휘관이 아니야. 뭔가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틀림이 없어!’
하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했던 말처럼, 지금 당장은 오늘을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보병들과 전투드론은 머포크들을 상대하는 데 주력한다! 모든 마장기는 바실리스크를 향해서 화력을 집중시키도록!!]
[Yes, ma`am!]
투타타타타타!!!!
쉴 새 없이 뿜어지는 집중사격에 수많은 머포크들이 늪지대에서 뛰쳐나오기가 무섭게 땅바닥으로 쓰러져간다.
평범한 인간의 10배에 이르는 괴물 같은 신체능력과, 방탄이나 다름이 없는 딱딱한 외피. 맨주먹으로는 철판을 구부러트리고 지느러미에서는 스치기만 해도 절명을 하는 치명적인 독을 발사해대는 괴물.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바바리안이라도 바바리안은 결국 바바리안일 뿐.
현대병기로 무장한 레지스탕스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
[마나 병기들이 과열되었습니다.]
쉴 새 없이 화염을 뿜어내던 집중포화도 불과 몇 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잠해진다. 그 사이에 물 밖으로 뛰쳐나온 머포크 군단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몰려오지만, 카스티야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외쳤다.
[크레이모어 격발!]
[격발!!]
쾅!!!
[캐논 포대 파이어!!]
[파이어!!!]
투쾅!!
거대한 폭발의 화염에 휘말린 머포크의 대군이 흔적도 없이 조각조각으로 찢겨져 나간다.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레이더를 가득 메웠던 수천마리의 머포크들이 사라져나가고, 그 불길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머포크들은 끔찍한 몰골로 절뚝거리면서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탕! 탕! 탕! 탕!]
열 감지를 통해서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한 병사들의 자비의 총격이 이곳저곳에서 이어진다.
아군의 우세.
그런 말이 레지스탕스들의 입가를 맴돌면서 잠시 동안 긴장의 끈이 풀어지지만, 머포크 군단의 진짜 공세는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온다!!]
카스티야의 외침과 함께 늪 속에 숨어있던 바실리스크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퉁! 퉁! 퉁! 퉁! 퉁!
사방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마치 포탄처럼 요새를 향해서 날아가는 수백, 수천의 머포크들. 바실리스크들이 자신들의 긴 꼬리를 이용해서 마치 대포처럼 믿을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그들을 날려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쾅! 쾅! 쾅! 쾅!
[모두 조심해! 포환으로 던져지는 놈들은 몸에 폭탄이 심어져 있어!! 부딪치기 전에 공중에서 터트려!!]
투타타타타타타!!
그 공격으로 가장 큰 위험에 노출당한 전투드론과 트라이져 강습함에서 개틀링들이 쉴 새 없이 화염을 뿜어댄다. 성벽 위에서도 마찬가지로 레지스탕스들이 필사적으로 그들을 격추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포탄들을 전부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쾅! 쾅! 쾅! 쾅! 쾅!
[크아아아악!]
[으아악, 사, 살려줘!!]
[내 몸, 내 몸이 녹고 있어……으아아아아악!!]
허공에 떠있는 전투드론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가고 폭발에 휘말린 레지스탕스들 비명을 지르면서 죽어나간다. 방어력이 강력한 터틀과 재규어들은 비교적 무사하다지만 그들도 역시 피해가 누적되어 가기는 마찬가지.
설상가상으로 그런 공격들과 동시에 이번에는 바실리스크들까지 합류한 거대한 군대의 파도가 물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사방에서 밀려들어왔다.
[하! 몸 풀기는 끝나셨다는 소리구만……정글 레인져, 전원 위치로!!]
[위치로!!!]
카스티야의 구령에 맞춰서 복창한 레인져들이 엘리게이터 가아들을 사방으로 전개시키면서 포지션을 구축했다. 한 번에 모든 화력들을 쏟아 붓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류안은 잠시 동안 미니게임의 힘에 의지하는 것을 고민했다.
‘역시 아니야. 승부를 걸어야 하는 포인트는 오늘이 아니야! 13구역의 지배자는 너희들이 아니다, 조그. 카스티야!!’
[풀 버스트 모드 작동!!]
[풀 버스트 온!!]
레인져들의 호령과 함께 녹색으로 빛내는 200대의 엘리게이터 가아들의 모든 무장이 전개되면서, 노도처럼 밀려오는 머포크 군단을 조준하기 시작한다.
양쪽 어깨에 장착된 대구경의 플라즈마 캐논, 등 뒤에서 전개되는 다탄두 미사일, 양쪽 손으로 고정되어있는 어설트 라이플, 흉부가 열리면서 푸른 화염을 일렁거리는 마나 폭탄. 그 화력의 충격으로 기체가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지면에서 지지대가 튀어나와서 마장기들을 그 자리에 고정시킨다.
[파이어!!!!]
쿠와아아아아아아!!!!
투캉! 투캉! 투캉! 투캉!
‘젠장!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버티기 힘들잖아……’
마치 자신의 몸무게에 몇 배는 되는 중력에 짓눌리는 것 같은 화력의 압박을 느낀 류안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나의 소비도 무시무시하기 이를 데 없어서, 상태창을 확인하고는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는 수준.
[크하하하하하! 어떠신가? 동맹군 나리, 이게 바로 우리 제국의 방식이라고!!]
[간지러워서 하품만 나오는데요?!!]
[하하하하!!]
‘확실히 위력은 무시무시해. 하지만 2번은 사용하지 못하겠군…….’
불과 몇 초동안 이어진 풀 버스트 모드에 사방을 가득 메웠던 머포크군단의 대부분이 전멸했다. 그런 와중에도 몸체를 둥글게 말아서 그 화력을 견뎌낸 바실리스크들과 머포크들이 고개를 들면서 다시 진군을 시작하고, 물속에서는 또다시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군단이 물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글레인저들은 풀 버스트 모드에서 소비한 무장들을 탈착시키며 곧바로 새로운 무장으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 젠장. 보급품만 충분했어도 더 신나게 몰아붙일 수 있었는데……동맹, 이제부터 우리들이 할 일은 딱 하나야!]
[그게 뭡니까?]
[쟤들 새벽 5시면 퇴근하거든? 그 때까지는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대령님이나 조심하시죠. 저나 우리 부대는 죽으면 끝이지만 대령님은 잘못하면 영원히 사실지도 모르는 것 같던데.]
[하하하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거지?!!]
갑작스럽게 햄릿의 대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잠시 긴장한 류안이지만 유라디스 은하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저으면서 눈앞의 적들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이번 파도를 단숨에 박살낼 수 있는 화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벽을 사수하는 병력들과 전투드론들은 모두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머포크 폭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 고전을 계속하고 있었고, 지상에서는 지상 나름대로 방어포탑과 엘리게이터 가아들이 화염을 뿜어내면서 적들의 진군을 저지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접근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격돌을 코앞에 둔 카스티야는 악어의 이빨(Teeth of Alligator)이라고 불리는 백병전 병기인 정글도를 양쪽으로 꺼내들면서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정글 레인져!!!]
[Yes, ma`am!]
[슈트롬!!!!]
노도처럼 달려드는 양쪽 진영이 중앙에서 격돌했다.
-------------------------------------------------------------------
그 시각.
팔란티오 행성의 오리하르콘 자원위성 압바우에 사령부를 수립한 율리안 중장은 그곳에서 본국으로 수송할 자원을 채굴하면서, 동시에 뇌신에 대한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펜져스의 활약으로 원정대의 성과가 지지부진해지자 총사령관인 마크넬 원수가 하루라도 빠르게 작전을 시작하라며 성화를 부리고 있었지만, 실세라고 부를 수 있는 율리안과 길로틴이 모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뇌신은 출격준비를 마치고도 수송함대에 고이 잠들어있는 상황.
다만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에 맞춰서 계속해서 조정을 했기 때문에 오퍼레이터들은 계속되는 격무로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조금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러다가는 정작 작전을 시작했을 때 뇌신을 가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나지를 않겠어요!”
바키의 딸인 레베카가 항의를 하자 율리안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다가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오퍼레이터를 쉬게 해줘야 하는 이유를 보고서로 작성해주십시오.”
“그런 것까지 보고서가 필요한가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당연히 쉴 때는 휴식을 취하게 해줘야죠!”
그녀의 항변에 율리안의 변호를 해 주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혹사당해서 반쯤 죽어가던 오퍼레이터들이었다.
“저,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율리안 중장님은 뇌신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저희들을 훈련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처음 써보는 물건이라 조종이 미숙하거든요…….”
“와~~~~~~~이. 공화국의 공주님이 걱정해주신다. 신난……꼬르르륵.”
영혼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다가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리는 오퍼레이터의 모습에 레베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짧은 손짓으로 다시 한 번 뇌신의 모의조종훈련을 지시하는 율리안 중장.
간단한 동작이지만 그의 밑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그가 어떤 점을 신경 쓰는지를 눈치 채고, 다시 한 번 훈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 이렇게 고지식하고 답답한 사람이……정말로 이런 사람하고 결혼해야만 하는 거야?’
그런 불만으로 인상으로 찌푸려지는 가운데 불현 듯이 어떤 남자의 속삭임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어. 그것만은 기억해달라고……그리고, 잘 가.]
‘아, 안 돼. 화, 확실히 그가 율리안과는 정 반대의 타입이기는 하지만……그래도 나는 펠리스 가문의 장녀라고!’
새빨개지는 얼굴을 부여잡으면서 도리질을 치던 레베카는 화끈거리는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열심히 스스로를 진정시켜나갔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그 목소리를 생각할 때마다, 그 남자의 키스가 떠오르면서 몸 이곳저곳이 간질거리면서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순간에 팔란티오 행성의 상황을 주시하던 다른 오퍼레이터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13구역에서 통신이 왔습니다. 주시자의 궤도포격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13구역이라면……5사단의 작전지역 아니야. 왜 우리들한테 지원요청을 하는 거지?”
대답을 한 사람은 율리안의 부관이다.
“인근 상공에 있는 주시자가 2사단 소속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전략 포격이 아니라 전술 포격의 지원을 바라고 있습니다만…….”
주시자의 전략 포격은 반경 10km를 쓸어버리는 광대역의 포격이다. 반면에 전술 포격은 수술을 하는 메스와도 같은 정교함으로, 난전에 휘말린 아군을 구원하기 위한 화력 지원.
“전술 포격이라고? 아니, 지금 주시자가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국지전에서 낭비할 화력이 어디에 있다고 그래! 도대체 무슨 부대기에 그따위 건방진 요청을 하고 있어?”
“독립유격부대인 트라이엄프 중대라고 합니다. 신청자는 류안 소위라고 합니다만…….”
“류, 류안이라고요?!!”
레베카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1줄 후기
으아아아아!! 나는 사수했다. 1일 1연재를...
코멘트 답변
누가 저한테 신선한 우...아니, 일폭탄을 넘겨주고 가서 코멘트 답변은 없습니다. 일복이 터져서 행복합니다. 살려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