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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파비안을 필두로 하는 펜져스의 주력부대는 안전한 쉘터에서 병력들을 온존시키면서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편안하게 궤도포격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온공화국의 원정대가 궤도상으로 내려 보낸 100여대의 주시자들이 초정밀카메라로 좌표를 확인한 제국의 군사거점으로 새틀라이트 어택을 퍼부어댔고, 수송함대도 그에 뒤질세라 화력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행성방어병기들을 무력화시켰다.
바이스의 병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방공포병들도 고고도 방어시스템을 작동시키면서 미사일과 빔으로 저항했지만, 화력의 차이는 누가 봐도 극명하게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서 원정대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런 포격전이 이어지기를 10여일.
총 52개 지역 중에서 5개 지역에서 쿠테타가 일어나면서 원정대의 참가를 표명했고 13개 지역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단순하게 스코어로 표시하자면 31대 8.
13개 지역에서 경합 중.
전세가 점점 원정대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분위기에 파비안의 곁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청년 하나가 침착성을 잃어버린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님, 슬슬 가우스 캐논들을 작동시키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되면 이탈하는 세력들이…….”
“꺄하하하!”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까마귀의 털로 만들어진 목도리와 검은색 계통의 나풀거리는 수련복을 입고 걸어 나오는 금은의 쌍둥이 자매.
그 중에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은발소녀가 비꼬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크리스토퍼 오라버니는 여전히 겁쟁이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님?”
파비안은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카트린, 네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다.”
“아니요! 이 장소에서 빠져야 되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나락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오라버니입니다. 데프 총독의 일을 잊었나요? 무는 법을 잊어버린 개와 양떼들의 이동은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게 아니에요!”
“네가 모르는 소리다. 아무리 심연의 악마들이 강력하다지만 민심을 잃어버리면…….”
“꺄하하하!! 민심이라니 그 얼마나 인간적인 반응이십니까.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 모든 반응들은 아버님이 지휘하시는 교향악의 일부입니다. 아니, 사실은 게임에 더 가깝죠. 딱 하나 아쉬운 건…….”
“전쟁은 게임이 아니야!!”
“그만!”
파비안의 일갈에 두 사람의 언쟁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의자를 돌려서 자신의 혈육들을 지켜본 그는 마치 판결을 고민하는 재판관처럼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금발의 소녀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시끄러워서 집중을 할 수가 없구나. 카트린, 네가 한 번 현재의 전황을 분석해봐라.”
“네, 아버님.”
그의 명령에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가볍게 격식을 차린 그녀는 졸린 눈동자로 감정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 슈발츠 제국이 승리할 확률은 약 90%입니다. 더 나아가서 아버님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실 확률은 50%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오라버니의 주장대로 지금 가우스 캐논들의 모습을 드러낼 경우에는 99.9%의 확률로 우리들이 패배하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짝! 짝! 짝! 짝!
그녀의 설명에 크리스토퍼가 발끈하며 외쳤지만 파비안은 박수를 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훌륭하구나 카트린! 네 비상한 머리에는 언제나 감탄을 멈추지 못하지만, 내가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채 1%도 되지 않는단다. 그러니 내 의중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를 해보아라. 나는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정진하겠습니다.”
“흥! 매번 카트린 언니만 예뻐하시고…….”
자신만 빼고는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 눈치였기에 크리스토퍼는 납득을 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데프 총독과 우주군의 감시를 피해서 가우스 캐논을 숨겨놓은 것은 모두 이때를 위해서 아닙니까? 그 힘을 사용하면 적의 주시자들을 전멸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수송함대를 퇴각시키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멍청한 오라버니! 저게 적들이 준비한 모든 카드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리고 일시적으로 퇴각한다고 그래도 다음에는 더 많은 준비를 갖추고 돌아올 게 분명합니다. 가우스 캐논들을 박살낼 수단을 가지고 말이죠.”
“뭐, 뭐라고?”
두 자매의 연타에 크리스토퍼가 주춤거렸다.
“적들은 외교협상을 마치고 49개 지역에서 항전의 의사를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량학살병기를 동원하는 대신에 궤도포격전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2가지. 하나는 행성의 노동력을 탐내고 있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아군의 저력을 확인하기 위한 탐색전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우스 캐논을 보여주는 건 적들의 의도대로 행동해주는 거야. 바보 오라버니!!”
“하, 하지만 가우스 캐논의 능력이라면 적의 대량학살병기를 무력화시키는 일도…….”
“대량학살병기가 아니다.”
파비안이 한 마디를 거들면서 입을 열었다.
“그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들은 아직 비장의 수단을 꺼내들지 않고 있다. 보아라! 분쟁지역으로 행성강습부대를 줄기차게 내려 보내는 것 같으면서도, 10일째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전력을 온존시키는 수송함대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 의미하는지 모르겠느냐?”
“적이 여력을 남겨두고 있다는 소리입니까?”
“바로 그렇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자신의 이름을 조용하게 부르는 파비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아직까지 너를 살려두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아버님…….”
“그건 네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늑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 저는 나락의 도약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그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그 의식을 치루기 전까지는 네가 늑대들의 만찬에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저 공허하게 개 짖는 소리만 뱉어대고 있을 뿐이지…….”
“아버님!”
크르르르르.
크리스토퍼의 절규에 파비안의 곁에 앉아있던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면서 그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 기세에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리사가 발을 걸었고 뒤로 넘어지면서 땅바닥을 구르는 그를 바라보면서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앞으로는 이 장소에 들어오지 마라. 그 이외에는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단, 늑대가 되고 싶다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는 것을 허락해주마. 로젠 바이스들이 길을 인도해줄 것이니 심연이 네 앞날을 축성하고 있노라.”
“…….”
크리스토퍼는 분한 듯이 주먹을 쥐면서 부르르 떨다가 이내 체념한 듯이 힘없이 그 장소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트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는 게 아니라, 가족들의 온기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여간 어리광이 심하다니까? 나락의 품에 안기면 그까짓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미적지근한 슈발츠에 머물러있을 생각인지…….”
“두 사람 모두 그쯤 해둬라.”
타이르는 것 같은 파비안의 목소리에 두 자매, 특히 리사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은 아직 크리스토퍼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다.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고 가장 커다란 악은 원래 가장 커다란 선을 가장하면서 찾아오는 법. 불량품에 불과한 우리들과는 다르게 녀석은 내가 평생을 바쳐서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나락의 품에 안기는 순간에는 심연의 모든 악마들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세상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환희의 찬가를 부를 것이다.”
허황되어 보이는 그의 주장에 리사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뭐, 솔직히 별로 기대는 안 하지만 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런 거겠죠.”
“……그것이 아버님의 계획입니까?”
카트린의 질문에 파비안은 대답하지 않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의자를 돌려서 포격전을 잠시 감상하다가, 그녀들에게 물러나라는 손짓과 함께 명령을 내렸다.
“두 사람 모두 별동대를 이끌고 분쟁지역으로 가서 적의 강습부대를 유린해라. 적들이 버티지 못해서 히든카드를 꺼내들기 전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몰아세워라. 그리고 명심해라. 파도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다정하게도, 장난스럽게도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리사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대답했다.
“꺄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아버님, 귀가시간에 맞춰서 신나게 놀다가 돌아오겠습니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파비안의 명령을 받은 두 사람은 지체 없이 자신들의 마장기를 이끌고 분쟁지역으로 별동대를 끌고 달려갔다.
궤도포격적은 끝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지만 슈발츠 제국의 대부분의 병력들은 안전한 쉘터나 민간구역으로 그들의 모습을 숨겼다. 가끔씩은 민간구역이 포격을 주고받는 격전지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습경보를 받고 안전한 쉘터로 피난한 덕분에 포격전의 규모에 비하면 사상자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궤도포격은 지상으로 대군이 집결하는 것을 막아주는 억지력이 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전투는 시가전이나 게릴라전 같은 국지전의 양상을 띄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한 때는 파비안과 펜져스의 잔인함에 겁먹고 움츠러들었던 바이스의 국민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나면서 봉기, 슈발츠 제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몇 개의 지역을 확보하거나 분쟁지역으로 만들어나갔다.
원정대는 쾌재를 부르면서 행성강습군을 파견해 그들을 지원했지만 얼마 후, 펜져스로 짐작되는 별동대가 그들을 유린해가며 상황은 다시 한 번 대치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리사 슈미트.
A급의 하이엔드 마장기 돌핀을 커스터마이즈하며 준 S급에 이르는 독립 특장기를 소유하고 있는 인물.
이명은 백은의 무희.
카트린 슈미트.
마찬가지로 A급의 하이엔드 마장기인 옥토퍼스를 커스터마이즈했으며, 역시 준 S급에 해당하는 독립 특장기의 소유자.
이명은 황금의 연금술사.
신출귀몰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들의 활약으로 포격지원을 받으면서 거침없이 진격해 들어가던 바이스와 원정대의 연합군은 거센 역풍을 맞으면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난전을 틈타서 제국은 그들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리는 결전병기들을 전장에 투입. 강화몬스터군단과 약물과 세뇌로 죽음을 불사하는 노예병들을 전장으로 투입시키면서 더욱 더 거세게 분쟁지역들을 제압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맹력 533년 6월 6일
궤도포격전이 시작된 지 20여일이 경과했을 무렵에 마침내 투입이 결정된 5사단에서 빠져나온 독립유격부대, 트라이엄프는 트라이져 강습함을 타고 제국군에게 맞서서 절망적인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레지스탕스를 지원하기 위해서 출격을 개시했다.
“왜 하필 13지역으로 가는 거야? 재수 없게…….”
탈리아의 질문에 류안이 고개를 귀엽게 갸우뚱하면서 대답했다.
“여기가 돈 냄새가 제일 많이 나거든.”
“그리고 미녀도 많죠. 전해지는 소문이지만 레지스탕스를 이끌고 있는 카스티야 대령이 굉장한 미인이라고 합니다. 거인족과 혼혈이라고 하는데 굉장한 장신에다가 체격도 무시무시하다고 그러더…….”
강습함을 조종하고 있던 이반의 떠벌거림에 탈리아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류안에게 아이언크로우를 걸어버렸다.
“……류안???”
“아, 아니. 그게 이참에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아, 잠깐. 깨져, 깨진다니까?”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 작품 후기 ============================
물고기인간//슬프게도, 당분간은 게임은 없습니다. 하지만 미니게임은 있습니다.
kissshotshinobu// 하악, 스포일러를 말하고 싶은 병이……아아아악…….
한뫼사람// 일단, 여자는 얻습니다.
평범하게살고파// 후후후후. 루치아가 사실은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한 캐릭터였는데 스쿨드의 우울이 망해버려서 설명충이 되어버렸다는……그래도, 나름 반전 캐릭터입니다.
벌레//열심히 뛰어다녀야죠.
GudSyn// 사실 리콜하기 전에 예지몽편으로는 이미 관계를……쿨럭. 음, 꿈이었나 봅니다.
노스아스터// 사실 처음에는 주인공이 행성점령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중립적인 성격을 가지기를 원했는데, 지금은 위선자가 된 느낌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미약한 악이고요. 사실, 이 양쪽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 지상편이 끝날 때쯤에는……어, 음. 저도 모르게 또 스포를…….
철마군//발기찬 하루만이 아니라 재미도 줬으면 좋겠습니다. 글 솜씨가 모자란 것 같아서 늘 고민입니다.
김고블린// 너무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요즘은 사실 딴 짓거리로 끄적거리고 있는 게……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