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2 ----------------------------------------------
지상편
----------------------------------------------------------------------
성계내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워프존 근처에 밀집해있는 1광년 이내에서는 타임래그가 일어나지 않는 원활한 통신환경을 구축하게 되었고, 성계에 살고 있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하나로 묶였다.
물론, 행성의 궤도나 우주공간에 떠있는 중계기지가 박살나버리면 통신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지게 되며 원거리 교신에서 타임래그가 발생하게 된다.
성계가 전쟁 중이라면 적의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중계기지들을 제일 먼저 박살내고, 그 다음에는 통신방해로 적 성계를 덮어버린다.
그 정도가 심하면 무선통화를 할 수 없는 불편한 시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평화로운 상태에서는 어지간한 바보들이 아니라면 중계기지를 건드리는 경우는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바보들이 너무 많은 세계라서 좀 걱정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어쨌든 워프존을 통과하지 않으면 관측마저도 할 수 없는 다른 성계와의 직접 통신을 연결해주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성계로 워프하는 순간에 제론성계와의 인터넷 연결도 끊어지게 된다.
이것을 바꿔서 말하자면 트리아스 성계로 진입하는 순간부터는 교장의 직접적인 서포트를 받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소리다.
물론, 연락이 두절되는 건 아니다.
각 성계의 워프존 근처에는 봉화라고 불리는 거점기지가 존재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통신함을 운영하면서 다른 성계로 이메일이나 다양한 소식들을 데이터로 전송해준다. 정보수집 시간과, 운행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체로 2~3시간에 이르는 타임래그가 발생하는데 그것을 비유하자면 성계가 바뀌는 순간에 채팅으로 대화하던 친구가 펜팔을 하는 친구로 변해버리는 감각이다.
문제는 미니스파이더를 이용해서 로아의 카메라를 무력화시키는 서포트도 더 이상은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소리인데, 교장에몽은 제론성계를 벗어나기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해줬다.
나는 스위치의 강도를 2로 올렸다.
은하에 떠있는 별의 바다를 감상하면서 잠시 동안 기다리고 있으려니, 조그마한 진동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드-. 드-. 드-.
미세하게 홍조를 띈 얼굴은 눈에 띄게 불만어린 모습이지만 나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조용하게 있으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리고 미니 스파이더를 카메라의 시야 밖으로 내려 보내자, 거미는 자동으로 로아의 몸을 타고 올라가서 다시 한 번 카메라와 직결을 시작했다.
보다 똑똑해진 미니 스파이더 ver1.01
교장이 설치해준 프로그램 덕분에 녀석은 이제 내가 조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로아의 카메라에 들러붙어서, 가짜 영상을 제작하며 감시팀으로 전송해준다.
그 작업이 완료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분.
“라면 먹고 갈래?”
“바, 밥 먹었어요. 그리고 저 인스턴트식품은 원래 안 먹거든요? 몸매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치마를 붙잡으면서 수치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부들거리면서 항변해오는 그녀. 전생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이 약간 슬프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관리 받은 몸매의 매력은 실컷 확인한 뒤였다.
“부탁이니까. 이, 이런 식으로 부르는 건 참아주세요!!”
로터의 진동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왜 내 옆에서 떨어지는 거야? 언제는 그렇게 달라붙지 못해서 안달이더니……사랑이 식었어!”
“이런 미친…….”
나는 스위치의 강도를 3으로 올렸다.
드--. 드--. 드--.
“하읏, 알았으니까 좀 멈춰주세요.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본다고요!! 아, 알았어요. 앞으로는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되잖아요!”
“좋아.”
나는 스위치를 껐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오른쪽 팔을 들어서 그녀에게 신호를 보냈다.
척하면 척이라고 그동안의 훈련의 성과로 곧바로 내 옆구리에 달라붙는 로아. 마치, 연인처럼 다정한 모습이지만 누군가 목격하고 탈리아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경을 칠 수도 있는 위험한 밀회였다.
로아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때 촬영한 영상은 복사를 통해서 교장에게 넘겨준 뒤였다. 그들의 정체를 알려주자, 상황을 파악하고 핏기가 사라진 그녀는 더 이상은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고 얌전하게 굴었다.
“하읏, 흐으윽.”
오른손을 그녀의 정장 상의로 집어넣고 성감대를 애무하자 뜨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스캔들이 나는 게 어지간히도 무서운 모양이군. 게다가 조교의 경과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은 것 같고 말이야…….’
이 장소에서 바로 사랑을 나눌까하는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교장과 한 약속도 있고 행위가 길어지면 통로를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르기 때문에 오늘은 레드폭스와 함께 3p를 즐기기로 했다.
여전히 나만 보면 달아나는 게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로아가 옆에 있으면 그녀도 방심하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우선 눈앞으로 다가온 워프존의 모습을 살폈다 .
오딘의 임무 중에 하나인 워프존의 해명.
[워프시온의 유적들을 모두 탐사하고 워프존의 비밀을 해명한다.]
유라디스 은하의 모든 세력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물건이지만 사실 이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 세계는 상대성이론의 법칙이 지배하지 않는다.
우주로 드라이아이스를 쏘아 보내면 그 질량이 무한대로 늘어나지도 않으며, 광속으로 항해하는 방법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항해가 불가능한 어둠의 공간들은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인류는 워프존을 의지하지 않으면 다른 성계로 통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워프존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제일 유력한 설은, 어느 뛰어난 중력 장인이 만들어낸 중력기술의 결정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이 사실이 아니라면 중력이 시공간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이론도 판타지가 되잖아? 분명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 다른 법칙이 있을 거야.’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워프존을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전송을 원하는 물체를 마나 실드로 덮어버린다.]
그러면 다음 순간에는 워프 끝.
다크매터도 아니고 그저 마나실드로 선체를 덮어버리면 다음 순간에는 안전하게 다른 성계로 이동하게 된다. 그야말로, 마나를 사용하는 모든 종족들에게 한없이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불가사의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전생에서 비슷하게 거론되었던 것으로는 웜홀 이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데 한 때, 유라디스 은하의 과학자들도 그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블랙홀을 연구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연구의 성과로 중력을 응용하는 방법은 어느 정도 알아냈지만 블랙홀의 구성과 그 주변에서 드러나는 다크매터라는 물질은 분석하지도, 이용하는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 결과를 요약하자면 블랙홀에게는 깝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게 전부다.
블랙홀은 유라디스 은하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중력이상현상인데 빛, 소리, 드래곤, 드래곤의 할아버지라도 그 중력에 사로잡히면 갈기갈기 분해되어 버린다.
과거에 슈발츠 제국에서 시행되었던 마법의 처형식이라는 연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 때 지상에서는 무적이라고 불리면서 군림하던 드래곤이 과연 우주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가?라는 논의에서 출발한 연구였다.
예를 들면 드래곤은 텔레포트라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것이 과학자들의 시야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드래곤이 그렇게 초월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그들이 죽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되었기 때문에 마법이라는 것의 정체와 능력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드래곤에게 우주복을 입혀놓고 블랙홀로 날려보냈다.
그 결과, 단 한 마리의 드래곤도 블랙홀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법의 종주라는 드래곤들이 그렇게 무력하게 쓰러졌고 마법이라는 영역은 나날이 쇠퇴해가는 가운데 과학이라는 기술이 나날이 눈부시게 발전해나가자, 과학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마법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속임수다!!]
마법사들의 지배자이자 마탑의 주인이었던 로암 아크는 마법사들에 대한 탄압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유라디스 은하의 모든 마법사들과 공모해서 과학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들은 패배했다.
쉽게 말하면 마법이라는 영역은 치열하게 권력다툼이 일어나는 유라디스 은하의 왕좌의 게임에서 탈락해버린 것이다. 비단, 그것은 과학과 마법의 다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법사들을 그들의 테이블에 내쫓을 때 신성력을 사용하는 천족, 마족, 엘프, 드워프, 정령사, 등등 모든 존재들이 공모했으니까.
그들 역시도 마법의 근원인 마나를 사용하는 존재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쨌든 유라디스 은하를 지배하는 온갖 능력들을 지닌 다양한 메인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블랙홀을 관측했지만, 그 정체가 뭔지를 알아내는데 실패했다.
천족들처럼, 시공간을 뛰어넘는 천리안으로 워프존을 넘어서 다른 성계의 사물을 관측할 수 있는 존재들도 블랙홀이 뭔지를 알아내는데 실패했다. 그런 시도를 하는 순간에 소용돌이 같은 어떤 무서운 이미지가 그들의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랙홀의 정체는 아직 과학이 규명하지 못한 미신의 영역이다.
전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병기라는 기동 요새조차도 블랙홀은 피해서 운항한다.
‘잭에게 들은 플래닛 이터가 블랙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처럼……아니, 어쩌면 정말로 플래닛 이터인지도 모르는 법이지.’
어쨌든 그런 블랙홀처럼 눈앞의 워프존의 정체도 안다고 할 수가 없는 영역의 물건이다. 다만, 오딘의 임무처럼 워프시온의 유적을 탐사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해명하고 제어해낼 수 있다면 유라디스 은하를 정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소리다.
‘올드 데우스를 제외하고는 말이야.’
그들의 정체 역시도 수수께끼다.
그런 감상을 하면서 로아를 성희롱하던 나는 워프존의 수수께끼에 조금이나마 단서를 얻기 위해서, 워프를 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기로 했다.
선내의 알림 방송을 통해서 워프를 한다는 알림이 나오고 마나 실드가 천천히 선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트리아스 성계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나온다.
“젠장! 이게 워프라고?? 무슨 놈의 단서도 없잖아!!”
“왜, 왜 그래요? 워프 처음 경험하는 사람처럼…….”
“처음 경험하니까 그런다. 왜?”
겁먹은 로아에게 괜한 화풀이를 한 나는 숨을 한 번 몰아쉬면서 방어기제강화의 도움으로 냉정을 되찾았다.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로아와 함께 레드폭스에게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 찰나네, 다음 순간에 나는 먼지 속에서 새로운 행성을 창조해내고 있는 거대한 축조함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HOLLOW THE WARPSION!]
수송함대를 발견하자마자 수많은 조명을 비추면서 전광판으로 경배를 강요하는 이들.
현실이라고는 믿기 힘든 그 광경에 넋을 잃어버리고 있는 와중에,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를 눈치 챈 로아가 재빠르게 무릎을 꿇으면서 외쳤다.
“빠, 빨리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세요. 정령사들의 행성축조함입니다! 워프시온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주저 없이 경고가 날아올 겁니다.”
“경고가 뭔데?”
내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정령사를 몰라요? 저들은 더 원이나 올드 데우스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들을 제외하고 어떤 세력도 홀대하지 못하는 이들이라고요. 유라디스 은하에서는 유일하게 행성을 축조해내고, 테라포밍을 실현할 수 있는 이들이죠. 별과 별들의 운행과 질서를 관장하고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시계공들이죠.”
“그런데 왜 워프시온을 경배하라고 그러는 거야?”
“저들은 이 은하의 모든 생명체들이 워프시온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믿는 광신도들이에요. 그래서, 워프존의 비호 아래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대가없는 번영을 약속했습니다. 대신에, 워프시온을 경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가차가 없죠. 저들을 화나게 만들면 그들의 능력으로 성계의 질서 자체를 파괴해버린다고요!!”
‘젠장.’
유라디스 은하에는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친절한 환경을 갖춘 행성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존재한다. 전생에서는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 갇혀서, 외계인들과 좀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우울해하고 있었다면, 현생에서는 개인이 소유하는 날씨 좋고 물 좋은 리조트 행성들도 넘쳐나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해내는 이들이 바로 정령사들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그저 워프시온의 인도라는 말로 제멋대로 행성들을 창조하고 성계의 질서를 가지고 노는 이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면서도 그녀의 충고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누군인지도 모르고, 어째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주는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한줄 후기
이번 편은 1번 썼다가 다시 수정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