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75화 (7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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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연맹 우주군의 순양함 나인테일은 현재 수백기에 이르는 피닉스를 서포트하기 위해서 수많은 오퍼레이터가 탑승하는 관제함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순양함 1척이 수용할 수 있는 마장기들의 숫자는 10기.

하지만 그마저도 피닉스보다 3배는 커다란 아시알라의 전용기 비로자나와, 역시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하는 신병기를 탑재하느라 수용량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사실상 나인테일의 관제범위 안에 있는 피닉스는 1기도 수용할 수 없었다.

[오오, 이것이 연맹에서 개발한 신병기인가? 그, 그래. 이름은 뭐라고 하지?]

[…….]

나이젤 중장의 질문에 아시알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가 입을 다무는 경우는 2글자로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비올레타를 쳐다보자 그녀가 대신해서 대답을 했다.

[아직 불안요소들이 많은 미완성 병기라서 정식으로 붙은 이름은 없어요. 게다가 연구 개발부의 성격 괴팍한 중2병 개저씨들……아니, 주임들이 병기의 이름을 두고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어서…….]

[아아, 알만하군.]

괴팍한 중2병이라는 말에서 유명한 콤비를 떠올린 나이젤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난형난제라고 누가 위다 아래다 할 것이 없는 솜씨들을 지닌 뛰어난 천재들이이지만, 그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장 큰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분야는 우습게도 신병기의 이름을 짓는 부분이었다.

[핀 볼처럼 튕겨지면서 다각도로 무수하게 뻗어나가는 병기니까 무한의 수형도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니까!!!]

[헹!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지어버리면 마나를 흡수해서 사방으로 뿜어내는 이미지가 살아나지를 않잖아? 부동명왕과 피닉스라는 이미지에 어울리게 만양의 업화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니까!!]

두 사람이 싸움을 하는 모습이 눈앞으로 그려지는 것 같은 착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이젤 중장은, 그러면서 미련이 남은 듯 아시알라를 향해서 아깝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모처럼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병기인데 이름이 없다는 건 아쉽군. 부동명왕님, 아, 아니, 아시알라 준장이 직접 이름을 지어주지 않겠나? 자네답게 2글자로 심플하게…….]

그 말에 비올레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아시알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조용히 눈을 뜨면서 예의 그 비장한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울.]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

[하아, 아시알라님에게는 그런 걸 물어보면 안 되는데……]

주변의 반응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시알라.

[아시알라님. 그, 피닉스들이 들고 다니는 방패가 아르테미스의 거울이고 불리는 건 알고 계시죠? 그런데 아르테미스의 거울로 흡수한 에너지를 모아서 발사하는 병기의 이름이 그것보다 단순하면 어떻게 해요……]

비올레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 아시알라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2글자로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양팔을 크게 벌리면서 뭔가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 의미를 알아듣고는 미간을 꼬집으면서 피곤하다는 표정을 짓는 비올레타.

[아르테미스의 큰 거울이라니……하아…….]

[……생각해보니까 무한의 수형도나, 만양의 업화도 나쁘지는 않은 이름 같군.]

[그렇죠?]

[…….]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시알라를 보면서 두 사람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으로 선을 보이게 된 신병기의 이름은 결국 비올레타가 결정한 만다라라는 이름으로 첫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거울……]

[1절만 하세요.]

못내 아쉬워하는 아시알라를 향해서 따끔하게 잔소리를 하는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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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를 사용해서 적의 매복부대를 전멸시킨 아시알라는 재사용 충전이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다시 한 번 만다라를 전개시켜 나갔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적들이 최대 출력으로 공격을 해오는 것.

그리고 순양함은 좋은 표적이었다.

[젠장, 원거리 포격을 한 발도 맞추지 못하다니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이냐!!]

구스타프는 분통을 터트리면서 무능한 함포장들을 꾸짖어 대었다.

21척의 함선들이 돌진해 들어가면서 원거리 포격을 계속했지만 적의 순양함은 그것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격들을 피해내고 있었다.

빔 포격의 경우에는 열 반응과 포구의 방향을 분석하는 오퍼레이터들이 미리 경고를 해주는 것으로 회피기동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적이 시야에 보이지 않는 원거리 교전에서는 실드로 막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물론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아낼 수는 없다고 아무리 위력이 약한 원거리 포격이라도, 실드의 허용량을 박살내면서 함선을 격파해버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보일 리가 없는 장소에서 날아오는 광속의 공격들을 요리조리 피해버리고 있으니, 구스타프가 길길이 날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건 단순하게 공격을 보는 것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묘기가 아니야. 마치, 미래예측과도 같은……아니, 우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디를 노리는지를 알아야만 보여줄 수 있는 회피기동이야. 어떻게 그런……설마, 정말로 부동명왕의 화신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침을 꿀꺽 삼키게 된 구스타프는 오한이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전 함선에 주포를 충전하라는 명령을 내려라. 일제 사격으로 일대 전체를 쓸어버린다!]

[하지만 주포를 발사하면 노예들의 마나가 고갈되어 함대의 능력이 떨어집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마장기 부대가 중거리 교전 구역으로 들어가니 그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아돌프가 충고했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아시알라만 처리하면 적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운석군에 숨어서 마나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속으로 전장을 이탈한다.]

[알겠습니다.]

[전 함선들에게 전하라. 모든 노예들의 마나를 쥐어짜내서 주포를 충전해라! 단 한 방으로 정면의 적들을 쓸어버린 후 잠행을 시작한다!!]

[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도 있던 아시알라가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지금.]

[페이즈 1. 종료! 페이즈 2로 진행! 전 피닉스들은 비로자나의 정면에서 아르테미스의 거울을 전개시킨다!!]

[네!!]

사방으로 흩어져서 운석군의 뒤에 숨어있던 피닉스들이 일제히 집결했다. 마치, 스파르타의 전사들처럼 아르테미스의 거울을 정면으로 앞세운 그녀들은 거대한 원형의 진을 형성하면서 비로자나와 순양함을 보호했다.

그 거대한 덩어리가 마치 은신하고 있던 함선이 나타나는 것처럼 슈발츠 제국의 게릴라 함대의 레이더로 포착되었기 때문에, 구스타프는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고 착각을 하게 되었다.

[은신하고 있던 적의 함선이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주포 충전률 98%. 오버플로우까지 앞으로 10초 남았습니다!!]

[에에잇, 발사, 발사!! 여기까지 온 이상 적 함선이 몇 대가 숨어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정면을 뚫고 전진,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네! 전 함선 주포를 정면으로 전개. 슈발츠 리터오르덴 슈트룸!!!]

함포장의 지시와 함께 게릴라함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의 광선이 나인테일을 향해서 뿜어져 나갔다. 끝을 모르고 뿜어져 나오는 포격의 반동으로 게릴라함대의 선체들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갔고 엔진들은 부스터를 전개시키며 정면으로, 정면으로 전진하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썼다.

[모든 죽음의 천사단은 충격에 대비! 옵니다!!]

쾅!!

[꺄아아아아!!]

시야를 덮어버리는 거대한 포격의 충격으로 외곽지역에서 버티고 있던 피닉스의 대원들이 빛속으로 분해되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면서 중앙으로 힘을 집결시킨 그녀들은 피닉스의 엔진을 최대한도로 가속시키며 그 거대한 충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해갔다.

[아르테미스의 거울 충전 중,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과정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스의 거울은 기본적으로 적의 빔 공격을 흡수해서 반사시키는 병기다. 하지만 흡수할 수 있는 허용량이 존재하기 때문에, 적 함선들의 소구경 함포사격들은 감당할 수 있지만 대 함포사격에 휘말리면 순식간에 전멸해버린다.

그래서 연맹군의 과학자들은 이 병기가 허용량을 넘는 빔 공격을 에너지로 변환시켜서 뒤로 배출시키는 장치를 피닉스에 장착시켰다.

류안의 부대원들이 왜 꼬리가 달려있지? 라고 의아해하던 장비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막 개발을 마친 연맹의 신병기이기 때문에 우주군 전체에 상용화를 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모든 종류의 빔 병기를 무력화시키는 이 배출기가 모든 함선과 마장기에게 적용된다면 우주전의 양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름은 피닉스의 꼬리.

과학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술 더 뜨는 병기를 만들어냈다.

후우우우웅-.

비로자나의 등 뒤에 매달린 거대한 크기의 만다라가 마치 집광판처럼 피닉스의 꼬리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집결시키고 있다. 모이면 모일수록 점점 더 밝은 광채를 뿜어내는 빛의 파장들이, 금색으로 빛나는 아시알라의 기체를 더욱 총천연색으로 비추어가며 신비로운 광경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을 알 리가 없는 게릴라함대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저, 적들의 신호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적함선 건재! 포신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중지 명령을!!]

[노예들이 마나역류 현상을 일으키면서 죽어나고 있습니다. 사령부, 사령부!!]

구스타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주포공격을 정면으로 맞은 적들이 멀쩡하다니…….]

21척의 게릴라함대가 일제히 쏟아내는 공격은 연맹 우주군의 주력전함이라고 해도 중파를 면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순양함급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적이 나타나서 는 받아넘기고 있는 상황.

구스타프의 머리에서 신병기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그 순간의 일이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전 함대에게 알린다. 지금 당장 기수를 돌려서 아시알라를 피해서 도망친다! 모든 마장기들은 함선으로 귀환하고 훗날을 기약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달아날 시기를 놓쳐버렸다.

[적의 주포 사격이 멈췄습니다!]

[전개.]

[네! 페이즈2 종료. 페이즈 3로 이행! 전 오퍼레이터는 피닉스의 서포트를 마치고 리플렉터를 조종하는데 주력한다!!]

[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오퍼레이터의 조종에 따라서 적의 주포사격으로 충전을 마친 바람개비 모양의 리플렉터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나충전을 마치고 푸른빛의 스파크를 뿜어내면서 당장이라도 포격을 뿜어낼 듯이 들썩거리는 리플렉터들.

약 3천대에 이르는 그 병기들은 하나하나가 대 함포병기에 준하는 위력들을 가지고 있는 병기들이다.

[원거리 교전 구역에 들어오는 모든 적들을 타겟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올레타의 보고에 눈을 뜬 아시알라가 명령을 내렸다.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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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했다고?”

게릴라함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데프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우주군은 끊임없이 궤도 포격을 퍼부으면서 팔란티오 행성의 방어병기들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대부분은 바이스와 슈발츠의 군인들이 운용하고 있는, 단 며칠 사이의 교전으로 수십만이 넘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무의미하게 희생되고 있었다.

더 이상은 가동시킬 수 있는 궤도방어병기도 남아있지 않지만 파비안의 방침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궤도상에 있는 적들을 향해서 발사할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좋다, 국민들의 개인 함선까지 모조리 징발해서 폭탄을 실어 궤도상에 머물러있는 우주군을 향해서 날려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미친 짓을 멈춰야만 해.”

그렇게 결심을 한 데프는 곧바로 한 남자를 호출했다.

회색의 무복으로 도깨비의 그림을 그려 넣은 남자. 자기 자신을 하산이라고 부르는 남자는 헨드릭 황제에게 신변의 경호를 위해서 데프의 가문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고, 대대로 그 집안의 수호가문으로 역할을 해온 펜져스의 전사다.

피가 흐르지 않는 것 같은 회색의 얼굴을 한 그가 어둠과 함께 소리 소문 없이 등장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예전에 준비하라고 했던 일은 어떻게 되었지?”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좋아, 그러면 곧바로 실행하도록 하지.”

그 말에, 하산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질문을 던졌다.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물론! 왕제전하를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일이라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왜 그런 것을 질문하는 거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의 품처럼 평화로운 밤 속에 안기시기를……]

그리고 다음 날, 데프를 필두로 하는 바이스의 군대가 파비안을 유폐시키고 팔란티오 행성을 장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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