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74화 (7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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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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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란티오 행성의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벙커.

상황실의 의자에 앉아서 늑대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던 파비안은 뚱뚱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걸어오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와, 왕제 전하. 아뢰옵기는 황송하오나…….”

“사양하지 말거라. 데프 총독. 그대가 비록 바이스이기는 하지만 헨드릭 폐하에게 귀족의 작위를 수여받은 명예로운 가문의 후손이 아닌가?”

파비안의 말에 그는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렸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처럼 미천한 놈을 인정해주시니…….”

“잡소리는 삼가고 말하라.”

“네, 네! 다름이 아니라 아군의 피해가 너무 심각하기에 이쯤에서 우주군과 타협을 하시는 것을 간언 드리기 위해서…….”

“…….”

그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차갑게 노려보자 데프는 무릎까지 꿇으면서 간청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전하! 아무리 게릴라함대를 위한 양동작전을 위해서라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군에 맞서는 수많은 바이스의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들이 왕제전하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인데, 혹시라도 전하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는 선조들을 볼 면목이…….”

“크크큭, 크하하하하하하!!!”

그의 말에 파비안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면서 무릎을 두들겼다.  한참을 그러는가싶더니 이내, 못 말리겠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데프의 어깨로 손을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의 충심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데프. 하지만 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아주 똑똑하게 잘 새겨들어야만 한다. 알겠느냐, 데프?”

“네, 네! 물론입니다.”

파비안은 그의 귓가에 조그마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양동작전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항복이라는 선택사항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슈발츠와 바이스들의 피가 섞여서 이 대지를 가득 메울 때까지, 최후의 한 사람까지도 모두 황제폐하를 위해서 바칠 작정이다.]

그는 유쾌하다는 듯이 껄껄거리면서 자리를 떠나버렸다.

다리가 풀린 나머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데프는 전신에 피가 전부 빠져나간 것 같은 창백한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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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fucking, gun!

우주를 비좁게 만들어버렸다는 평가를 듣는 초중전함과 기동요새들의 등장으로 거함거포주의의 시대가 부활하게 되었지만, 그들이 참전하지 않는 대부분의 전장에서는 아직 전략과 전술, 그리고 기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함재기의 역할을 하는 마장기들은 기교의 꽃으로 평가를 받는 존재들이지만,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상과는 다르게 우주에서는 파일럿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오퍼레이터들이다.

1명의 파일럿에 1명의 오퍼레이터.

2인 1조가 기본.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여압복의 역할을 하는 파일럿 슈츠가 극도로 발전하는 바람에, 마장기들은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포탄과 같은 속도로 비행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것보다 빠른 미사일보다는 느리지만, 역시 피할 수는 있으며 빛의 속도로 날아오는 빔포에만 무력하게 격추당할 뿐이다.

그런 속도로 날아다니다보니 정말로 괴물 같은 능력을 지닌 파일럿을 제외하면 자신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기체를 통제할 수가 없다.

1차적으로는 VR머신의 시스템 지원을 받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반드시 오퍼레이터의 지원을 받아야만 기체의 성능을 완벽하게 끌어낼 수 있다.

오퍼레이터들은 함선에서 입수되는 다양한 전장정보를 분석하며, 파일럿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송해주고 무엇을 하는지를 지시해주는 전투관제의 역할을 해준다. 그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오퍼레이터가 있는 마장기와 없는 마장기의 전투능력을 비교하면 극명하게 구분이 되는데 전투능력이 보통 10배 정도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덕분에 파일럿들이 오퍼레이터에 의존하는 정도가 지나친 감도 있어서, 오죽하면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더 광범위하고 자유로운데도 불구하고 오퍼레이터의 지시를 받을 수 있는 전투범위를 절대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그것을 함재기 교전가능구역이라고 부른다.

각 함선에는 기본적으로 마장기를 수용하고 출격시킬 수 있는 시설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함선에서 지닌 관제장비의 수준에 따라서 오퍼레이터가 관제를 할 수 있는 범위도 천차만별로 다양하다.

그 거리가 보통 함선들이 서로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중거리 교전을 펼치는 영역 정도였기 때문에, 각 함선들이 최대의 사정거리로 서로의 마나와 실드를 깎는데 주력하는 원거리 교전에서는 마장기와 함재기들이 출격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멀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슈발츠 제국의 게릴라 함대는 연맹 우주군의 그런 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어오는 작전을 펼쳤다.

운석군으로 진입해 들어올 수 있는 요소요소마다 은폐한 감시위성들을 매설해두고, 그 근처로 매복 부대를 잠복시켜놓았다.

매복 부대는 단 2~3방의 폭발로 순양함의 실드를 박살낼 수 있는 기동 기뢰들과 마장기 자폭부대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임무는 단순하고도 효과적이며 또 잔인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적 함선들과 함께 자폭하라.]

게릴라 함대의 총사령관 구스타프의 명령에 따라서 자기 자신의 목숨을 한 발의 폭탄으로 바꾸어 달려드는 마장기 파일럿들은, 오퍼레이터의 지원도 자기 스스로의 의지조차 가지지 못하는 꼭두각시들이다.

연맹과는 다르게 세뇌기술을 사용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제국이기 때문에 군인들에게는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세뇌가 걸려 있고, 펜져스는 그들의 목숨을 소모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덕분에 돌아갈 장소를 잃어버린 유격함대의 마장기들은 끈이 잘려나간 연처럼 우왕좌왕하다가, 게릴라 함대의 공격에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렸다.

우주군은 압도적인 물량을 동원해서 그런 상황을 타개하려고 노력했지만, 게릴라함대는 매복부대와 함께 안전한 원거리에서 포격을 퍼붓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후퇴를 통해서 운석군 일대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어느새 포위망을 빠져나와 공격과 퇴각을 반복했기 때문에 유격함대의 피해는 계속해서 커져나갔던 것이다.

그런 시도가 이어지기를 5차례.

6번째 유격부대가 운석군의 통로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구스타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후후. 연맹군 놈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하루살이처럼 잘도 날아드는군. 고작해야 순양함 1척으로 접근해 오다니…….”

옆에서 보좌하고 있던 부관 아돌프가 조용히 질문을 했다.

“함대를 전개시킬까요?”

“규모를 보니 원거리 사격지원은 필요 없어 보이지만……좋지. 이쯤에서 아군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구스타프의 명령에 따라서 총 21척의 게릴라함대가 일제히 순양함을 향해서 함포를 조준시켰다. 아무리 원거리 공격이 명중률이 낮고 실드를 깎는 수준에 불과한 공격이라고 해도 화력이 집중되면 무시무시한 법.

일단 실드만 박살낼 수 있다면 나머지는 매복부대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를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위이이이잉!

[자, 잠복해있던 매복부대의 식별신호가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멸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뭐?”

“적의 신병기인가?”

그의 질문에 보고를 하던 장교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습니다! 교전을 시작했다는 보고도 없이 아군 전체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도대체…….”

다음 순간에 보고들이 쏟아져 돌아오면서 아돌프의 의문이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감시위성으로부터 3방향의 통로에서 진군해 들어오는 적 유격부대의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적의 규모는 순양함만 21척을 넘는 것으로……22, 23, 24. 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적들이 아군을 목표로 진군을 개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매복부대가 적들과 교전을 시작했습니다. 적의 정체 확인!! 주, 죽음의 천사단입니다. 피닉스들이 선봉에 서고 있습니다!!]

마치 노린 것처럼 한 번에 쏟아지는 보고에 인상을 찌푸리던 구스타프는 죽음의 천사단이라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부동명왕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말이지……연맹군 놈들이 기세가 오를 만도 하구만.”

“지금까지 하던 대로 포위당하지 않은 방향으로 탈출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랬다가는 부동명왕님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꼴이다. 소문으로 듣자니 그녀는 레이더가 감지하지 못하는 머나먼 영역에 떨어진 적들을 찾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입니까?”

“아아. 덕분에 그녀에게 몇 명의 펜져스가 나가떨어졌는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다. 부동명왕님이라니…….이름 한 번 잘 지었지. 아무리 악마들이 설친다고 그래도 명왕님께 당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펜져스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외치는 아돌프의 말에 구스타프가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너는 아직 슈발츠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펜져스도 무적은 아니야. 가끔은 일반인들 중에서도 우리를 뛰어넘는 존재들이 등장하고는 하지. 그나저나, 큰일이군. 이래서야 부동명왕님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우주 끝까지라도 쫓아올 게 아닌가?”

그의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던 아돌프가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쯤에서 결사를 각오하는 편이…….”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만 쓰러트릴 수 있으면 게릴라함대는 다시 운석군으로 잠복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알라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지 않습니까?”

아돌프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부관. 우리들은 이미 그녀에게서 날아온 초대장을 받지 않았느냐?”

“초대장이라면……설마?”

그는 방금 전에 매복부대가 순양함 한 척에게 순식간에 박살나버린 사실을 떠올리면서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도 그런 묘기를 보여줄 수 있는 존재들은 별로 없지. 전 부대에게 알려라! 부동명왕님께서 순양함 1척으로 우리 게릴라 함대 전체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노라고!! 명계로 전진하라, 전사들이여!! 오늘 심연의 악마들이 지옥의 왕을 옥좌에서 끌어내리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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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감고 적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던 아시알라가 조용히 눈을 뜨면서 입을 열었다.

[회피]

[나인테일함. 전속 회피, 좌현으로!!!]

비올레타의 호령에 조타병들이 일제히 순양함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교차하듯이 날아드는 적들의 포격이 함선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지나간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그 광경을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던 오퍼레이터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가, 아시알라님?]

[아니, 아시알리님이 저런 묘기를 보여주시는 건 한두 번이 아니라지만 비올레타 중령님 말이야. 그냥 회피라는 말을 듣고는 어떻게 좌현으로 움직이라고 그러는 거지? 우현으로 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랬으면 포격에 맞았지.]

[그러니까 하는 소리잖아!!]

오퍼레이터들이 수다를 떠는 가운데 대답을 한 사람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피닉스에 탑승한 파일럿이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시알라님이 말하는 억양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하더라고. 회피라고 하실 때, 회를 강조하시면 좌현, 피를 강조하시면 우현. 이런 식이라던데?]

다음 순간에 아시알라의 말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회피.]

[나인테일함, 긴급 부상!!]

포격들은 다시 한 번 빗나갔다.

[…….]

[일이나 하자.]

고개를 끄덕거린 그녀들은 얌전히 자신들의 작업으로 돌아갔다. 현재, 순양함의 주변으로 수백기에 이르는 피닉스들이 게릴라 함대를 상대하기 위한 포진을 전개해갔다.

그 중앙에서 찬란한 금색으로 빛나는 기체는 우주군에서도 단 5기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특장기, 아시알라의 비로자나가 중심에 서 있었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손목이 너무 아파서 내일 하루 쉬겠습니다. 내일 밤 12시에는 올리겠습니다. 가능하면 연참할게요...

오늘도 좀 억지로 썼습니다. 원래 2~3편 분량의 시놉시스인데 한 편에 우겨넣었습니다.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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