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 ----------------------------------------------
지상편
“도대체 언제까지 메일을 보내는 거야?!”
로아트라 성계로 향하는 워프존에 도착한 쥬디스는 다시 한 번 도착 알림을 알리는 류안의 메일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쉬엇다.
처음에는 주저 없이 삭제 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충동을 참지 못하고 편지를 읽어버리고 만 그녀는, 부글거리는 속을 참지 못하고 스팸등록을 하고 말았다.
비록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죄송하지만 이건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요?]
[발신자를 추적해 보니까 전부 다른 사람들의 메일 주소에서 보내진 겁니다. 일단은 각 메일 주소로 크랙킹을 당했다는 안내문을 보내기는 했지만, ip를 몇 번이나 우회해서 보내온 모양이라서 추적해봤자 별다른 소용은 없을 겁니다.]
[누가 보냈는지 명확한데도 처벌이 불가능합니까?]
[대위님은 기분은 알겠지만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시종일관 제페토 왕자라는 별명을 사용하고 있어서, 류안이라는 남자가 자백을 하지 않는 이상은 혐의점을 연결하는 근거로서는 미약한 게 사실입니다. 같은 우주군의 소속이라면 몰라도, 가맹국의 군인에게 함부로 영장을 발부하는 건 내정 간섭의 문제로 이어지거든요…….]
[하다못해 차단이라도 할 수는 없을까요?]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필터링 패치를 하시면 특정 단어가 섞인 메일들은 읽어보지 않아도 자동으로 삭제해주는 기능을 사용하실 수 있지만, 단어를 잘 선택하지 않으면 중요한 메일을 지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필터링이라는 말에서 제페토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 쥬디스지만, 막상 그 이름을 지운다고 생각하니 쉽사리 그렇게 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쥬디스를 보면서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IT담당자.
[보아하니까 매일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며칠 간격으로 한 번씩 도착하는 모양인데, 웬만하면 그냥 내버려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정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냥 지우셔도 되고요, 선을 넘는다면 모르겠지만 딱 보니까 사랑싸움인 게…….]
[잘 모르면서 함부로 떠들지 마세요!]
그렇게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했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류안에 관한 일이라면 평소처엄 냉정해지는 것이 도무지 힘든 것도 사실.
쥬디스 또한 IT담당자가 말한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류안이라는 강렬한 존재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첫 인상만으로도 그녀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만한 눈부신 존재가 나타날 필요가 있었다.
마치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부동의 명왕과도 같은 존재가…….
후우우우웅.
로아트라 성계로 워프를 마치자, 그녀의 기체를 발견한 관문에서 신원조회를 요청해 왔다. 워프의 목적과 소속을 확인한 그들은 곧바로 보안 코드를 알려주고는 상급 부대로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피닉스의 통신범위를 증폭시켜 주었다.
마침내 자신이 흠모해 온 죽음의 천사 여단장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VR영상으로 마치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두 사람.
마치 서유기에 등장하는 신장神將들이나 입을 법한 불교의 상징물들이 그려진 화려한 붉은색의 갑주와, 하얀색의 머리띠를 두르고 팔짱을 끼며 두 눈을 감은 상태로 의자에 앉아있는 여성.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오퍼레이터의 복장을 한 여성이 열중쉬어의 자세로 보좌하듯이 서 있다.
두 사람은 우주군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콤비였기 때문에, 쥬디스는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모습으로 경례를 했다.
“필승! 신고합니다. 우주군 대위 쥬디스 제르너는 연맹력 533년 1월 5일부로 우주군 제 3군단 예하 죽음의 천사 여단의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그녀의 신고를 받은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갖추면서 경례를 받았다.
[필승.]
[아시알라님께서 전입을 환영한다고 하십니다.]
“저야말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녀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사족을 다는 여성 오퍼레이터는 우주군에서는 유일하게, 아시알라의 말을 통역할 수 있다고 알려진 비올레타 중령이다.
두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붙어 다니면서 계급에 상관없이 허물없이 지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귀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쥬디스는 그것이 단순한 의혹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여군들이 이 여단으로 들어오기 위해 치러지는 험난한 시험을 기를 쓰면서 통과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
우주군 최강의 여전사라는 아시알라의 명성 때문이다.
덕분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한 쥬디스를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쉬어.]
[자세를 풀고 편안한 자세로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합류.]
[합류 포인트의 좌표를 전송해드리겠습니다. 이미 신고를 받았으니, 모함에 도착하면 착임신고를 따로 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본적인 숙지사항은 행정계를 통해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알라의 표정과 행동은 쥬디스가 들은 대로 찔러도 피 한 방울이 나오지 않을 것처럼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비올레타의 통역을 듣고 있노라면 의외로 배려심이 넘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갭에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송받은 합류지의 좌표를 확인하고는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그녀.
“이곳은 전선에서 떨어진 장소가 아닙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번에 대답한 것은 비올레타였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저는, 전력 실전에 참가할 수 없는 건가요?”
처음부터 실전에 참가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로 일어나자 서운해져버린 쥬디스다. 실전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여단 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했는데, 실력지상주의라는 우주군에서 이런 취급을 당할 줄이야.
[무용.]
설상가상으로 돌아오는 아시알라의 대답이, 마치 그녀가 낄 자리가 없다는 것처럼 들려오는 바람에 쥬디스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 모습이 뭐가 우스웠는지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는 끅끅거리던 비올레타는 결국에는 참아내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 푸흡, 호호호호! 아시알라님도 너무하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신입이 오해를 하잖아요. 우, 웃어서 죄송해요. 후후후후. 너무 짓궂은 농담을 하시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그만. 호호호 깔깔!]
갑작스러운 상황에 영문을 몰라서 당황하는 쥬디스. 비올레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상태로 있는 아시알라의 어깨를 격의 없이 두드려대며 한참동안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내 눈가로 고이는 눈물을 훔쳐내면서 겨우 웃음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전선으로는 가실 필요는 없어요. 전투는 이미 끝났으니까.]
“네? 하지만 적에게는 아직 상당수의 게릴라 함대가…….”
[트리아스 성계에서 워프존을 타고 오셨죠? 그쪽은 주요 작전지역이 아니니까, 전황이 3일 늦은 것으로 전달되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직 전투중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전투가 끝난 건 바로 어제거든요.]
“그럴 수가……적의 게릴라 함대는 펜져스가 지휘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순양함이 3척이나 존재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전면전이라면 몰라도 게릴라전을 작정하고 덤비는 그들을 그렇게 쉽게 처치하는 건 유례가 없는…….”
비올레타가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쥬디스의 말은 줄어들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유례없는 일을 해낸 것이 아시알라가 이끄는 죽음의 천사 여단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서, 설마. 그게 정말입니까?”
아시알라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대신에, 그녀의 대변인인 비올레타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쥬디스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우주군 최강의 여전사부대의 일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쥬디스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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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트라 성계의 주류함대를 괴멸시킨 우주군은 3군단 예하 5함대에 사령관인 나이젤 중장에게 적의 잔존세력을 무력화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기 때문에 5개의 행성 중에서 4개 행성이 우주군과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우주군은 마장기 부대를 낙하시켜서 적의 행성방어병기들을 철저하게 조사하며 무력화시켜 나갔다.
적 성계를 제압하는 건 우주군에게는 좋은 비즈니스다.
1차로 그들은 적 행성의 가치를 과대포장하면서 가맹국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치웠고, 2차로 항전의 의사를 밝히지 않은 적 행성에게는 가맹국들과의 외교 협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대가로 역시 막대한 뇌물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3차로 적의 행성방어병기를 무력화시킬 때, 행성점령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해서 연맹으로 이주하는 것을 희망하는 바이스의 국민들에게 막대한 돈을 뜯어내었다.
그러면서도 가맹국들이 적 행성이 찔러 넣은 뇌물보다 많은 돈으로 우주함대의 궤도지원을 요청하면, 줏대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겉으로는 악의 제국에 맞서 싸우는 우주군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돈에 눈이 먼 용병집단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우주군의 골치를 썩이는 것은 오히려 철저항전의 의사를 밝히는 적들이었다.
팔란티오 행성을 지배하는 펜져스들의 수장.
적동왕赤銅王 플로리안의 왕제 파비안 슈미트.
그는 펜져스의 잔존함대를 팔란티오 행성의 주역에 광대하게 펼쳐져있는 운석군에 매복시키고, 행성병기들을 파괴하기 위해서 공격해오는 5함대의 배후를 기습해서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끈질기게 시간을 끌면서 피해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상황이라서 그런 손실로 우주군의 승리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전노라는 평가를 받는 우주군의 상층부가 우주함대의 손실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는 나이젤 중장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행성을 점령하는 일은 오히려 문제가 없었지만 운석군에는 커다란 함선들이 진입을 할 수가 없었고, 소형 함선들을 주축으로 하는 유격함대를 편성해서 적의 게릴라 부대를 토벌하려고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적 게릴라 함대는 운석군 전체에 감시 위성을 펼쳐놓으면서 진입해 들어오는 우주군의 유격함대를 기동 기뢰와, 마장기 특공대의 마나 폭주를 사용하는 자폭 공격을 서슴없이 감행해오는 바람에 방어력이 약한 고속함정과 초계함이 주력으로 이루어진 유격부대는 커다란 손실을 입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손실은 2척의 순양함이 대파, 1척의 순양함이 반파되었다는 것.
분노한 나이젤 중장이 함대 전체의 포문을 열어 운석군으로 무차별적인 포격을 퍼부었지만, 적들의 기세는 수그러들지를 않았다.
“젠장! 내 수중에 기동요새, 아니 초중전함 한 척만 있더라도 운석군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었을 텐데…….”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주먹을 부르르 떨던 나이젤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지. 배후의 적은 분함대로 견제를 하고 본대는 총력을 기울여서 팔란티오 행성을 떨어트린다. 파비안 슈미트. 그 작자만 처리하면 게릴라 함대도 알아서 백기를 들겠지…….”
아시알라가 이끄는 죽음의 천사 여단이 5함대에 합류한 것은 그 때의 일이다.
나이젤로부터 작전의 개요를 전해들은 그녀는 두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자판을 두드리면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작전제안서를 그에게로 제출했다.
그녀는 게릴라함대를 방치할 수 없는 이유를 자신의 방식대로 단 2글자로 표현했다.
[불리不利]
그 말대로 나이젤 중장은 게릴라함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자신이 모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우주군은 애초에 지상군을 버리고 같은 우주군을 상대하는데 최적화된 군대다.
그런데 그는 파비안 슈미트를 잡지 않으면 적 게릴라함대를 해치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행성방어병기를 무력화시키는 정도를 넘어서 파비안 슈미트를 처리하려는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가 나 여기에 있소! 라고 외치면서 튀어나오면 모르겠지만 행성의 깊숙한 곳에 꽁꽁 숨어있다면 그를 찾아내는 게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게다가 두목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대기권에 돌입하는 순간 사력을 다해서 덤벼들 테니 어디까지 전선이 확대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꼴사나운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이 우주군의 상부로 알려지면 좌천을 넘어서 파직을 당해도 할말이 없었기 때문에, 적장의 심리전에 휘말릴 뻔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이젤은 식은땀을 훔치면서 그녀의 충고에 감사를 표했다.
아시알라의 계급은 준장에 불과했지만 우주군에서 그녀의 상징이라는 것은 계급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것.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직접 죽음의 여단을 이끌고 운석군에 숨어있는 적 게릴라 함대를 무찌르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