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2 ----------------------------------------------
지상편
“헉, 시발 쿰!”
잠에서 깬 나는 관용선의 침상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간신히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나를 마중하려고 찾아온 클라크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는데 난리법석을 치는 나를 백미러로 확인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 아니야. 그냥 개꿈을 좀 꿔서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예지몽인지 개꿈인지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지만 우주에서 검은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모습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미니 드링크 바를 열고 청량음료를 집어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아, 젠장. 이놈의 예지몽들은 하나같이 방어기제강화로 통제가 되지를 않는단 말이야.’
이마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훔치고 있으려니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착륙장에 모여서 도열하고 있는 부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앞에 서기 전에 거울을 보고 복장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군모를 매만지고는 관용선에서 내리자, 선두에 있던 잭이 뒤돌아서면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신임 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필승!!!]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지축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피부가 찌릿찌릿해지는 기백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사불란한 모습이 마치 풍림화산의 모용이 녹아들어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복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던 양아치들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가 없는 모습.
‘이런 게 바로 군대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고 하는 흐뭇한 미소를 애써 억누르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경례를 해오는 잭에게 경의를 담아서 마주 경례를 했다.
“필승, 고생이 많았어. 잭 교관! 어떻게 조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잖아? 이걸 어떻게 보답해줘야 할까.”
“본관은 단지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저야말로 소위님께서 맹활약을 펼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콧대가 높아졌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평범한 분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설마 공화국의 공주님과 방위군의 에이스를 상대로 그런 선전을 펼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이야기는 어떻게 알지?”
“사관학교 교관 하나가 제 동기입니다. 그 친구가 대장님을 보고 괴물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20년 동안 녀석과 알고 지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하하하하하!!!”
유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잭의 모습에서 불길함을 느낀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젠장, 그런 소문이 너무 빨리 퍼져버리면 곤란한데…….’
레베카에게 영혼의 각인을 걸자 생각보다 훨씬 더 우울해하던 모습도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와의 이야기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좋을 게 없었다.
단순하게 성적다툼에 불과하다면 상관이 없지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속에 애증이 녹아들었다는 사실을,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고 알 만한 사실이라서 바키가 알면 난리를 칠 게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위험해. 어떻게든 행성점령전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그가 별다른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만 해.’
일단 전쟁터에 도착하기만 하면 독립부대의 특성상 상부의 출두명령을 무시할 수 있는 전시특권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호출한다고 그래도 작전수행을 핑계로 시간을 끌 수가 있는 여력이 생긴다.
내 계획은 팔란티오 행성에서 바키나 길로틴 양쪽 세력이 함부로 간섭을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세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들의 손아귀에 빠져나와서 그곳으로 떠나야만 했다.
바키의 신경을 돌릴만한 방법을 생각하던 나는 무릎을 탁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교장, 그래. 해커들의 선생님이라는 교장에게 의뢰를 해서 바키의 비자금의 루트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해 보자. 그걸 길로틴과 바키 양쪽 진영으로 은근슬쩍 흘려버리면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팔려서 내게 간섭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만족스러운 대응책을 생각해 낸 나는 주저하지 않고 VR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서 숙소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러자 탈리아가 부대원들을 헤치면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류안!!!”
“탈리아!!”
오랜만에 재회를 기뻐하는 연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녀는 허공으로 뛰어오르면서 다짜고짜 니킥을 날려버렸다.
후우우웅!!
스피아가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기 때문에, 나는 순간 가속을 사용하면서 겨우 그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야, 이 개 쉬러벌눔의 새끼야. 내가 분명히 4명까지 만이라고 했지? 그랬는데 발정난 망아지새끼처럼 여기저기로 좆대가리를 휘두르고 다녀? 어디 오늘 칼춤 한 번 제대로 춰보자, 이참에 거시기도 확 잘라버릴 테니까!!”
안 돼. 내 흑염룡!!
“자, 잠깐만 기다려줘. 하다못해 부하들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혼내줘. 부하, 부하들이 보고 있다고!!”
“아, 그으으러셔? 꼴에 자존심은 세우고 싶다는 말씀이지? 좋아, 야 이 개잡놈의 새끼들아. 뭘 구경났다고 쳐다보고 지랄이야! 당장 안 꺼져?”
“네, 알겠습니다!”
탈리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복창을 한 부대원들은 질서정연하게 우르르 움직이면서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녀의 위세에 눌렸다고 보기에는 겁먹은 기색들은 하나도 없이, 단순하게 명령에 따르는 로봇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어리둥절해하자,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잭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부대원들을 훈련시킬 때 제 1 명령권자를 대장님으로, 제 2 명령권자를 사모님으로 교육시켰습니다. 송구스럽게도 적임자가 떠오르지 않아서 제 3 명령권자는 임시로 제가 맡았지만 혹시라도 적임자가 있다고 생각을 하신다면 미련 없이 양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니야. 잘했어. 내 구상하고 정확하고 일치하네. 그,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계속 있어주면 안 될…….”
“너는 안 꺼지냐?”
내 멱살을 잡고 있던 탈리아가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리자, 잭은 절도 있게 경례를 하면서 무정하기 이를 데 없는 작별인사를 했다.
“시정하겠습니다. 필승! 그러면 두 분께서 부디 오붓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너무 오붓해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 잠깐만 기다려 잭, 잭! 잭 형님! 사, 살려……으아아아악!!!”
퍽! 퍽! 퍽! 퍽! 퍽!
폭풍처럼 쏟아지는 탈리아의 주먹에 거의 2시간동안 얻어맞은 나는, 말 그대로 온몸으로 그녀의 훈련성과를 체험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스피아가 하라는 훈련은 안 시키고 다른 사람을 두들겨 패는 방법만 가르쳤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만간 그녀에게도 육봉의 심판을 내리려고 생각했다가 발기하는 바람에, 발기했다는 이유로 또 얻어맞고 말았지만…….
차라리 기절해서 편해지고 싶었지만 기절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흑염룡은 멀쩡했다는 거지만, 바스코에게 얻어맞은 이후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컨디션도 한없이 레드 존에 가까운 옐로우 존.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구타였지만 너무 오래 때리다보니 그녀도 결국 지쳐버리고 말았는지, 잠시 동안 씩씩거리면서 숨을 고르다가 이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꼬옥 끌어안으면서 외쳤다.
“보고 싶었어. 개자식아!”
“……미안해.”
입안이 얼얼해서 말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끄집어냈다.
“미안하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울먹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컨디션은 비록 최악이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가 이제는 내 고향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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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잭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상당히 남자다운 인상으로 변해버린 나이브 중위는 길로틴의 사주로 질척거릴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깨고, 쿨하게 부대장의 자리를 넘겨주고는 전출신고를 해 버렸다.
덕분에 남아있는 재규어 1기는 레드폭스의 차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기야 그가 껄떡거리기에는 잭이 워낙 빈틈없이 부대를 관리해줬기 때문에 길로틴이 부대를 내부에서 흔들어댈 수 있는 여지는 별달리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탈리아를 비롯해서 부하들의 훈련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스파이(추정)스피아가 배 째라는 식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으니까 끝까지 방심을 할 수 없는 게 사실이기는 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 부대가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한 나는 앞으로의 방침을 정하기 위해서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나, 클라크, 잭, 탈리아, 스피아, 레드 폭스, 이반, 애니. 불량품 콤비. 클라크는 말이 수뇌부였지 사실상 서기에 불과해서, 당연히 참석하는 나와 탈리아를 제외하면 사실상 용병들이 부대를 장악했다고 볼 수가 있는 상황이다.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잭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말해봐.”
“네, 우선은 첫 번째 안건으로 부대의 이름과 상징을 나타내는 엠블럼을 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대의 이름이라면……나도 생각하는 게 있기는 한데, 엠블럼이라면 5사단에서 지정을 해 준 부대 마크가 있잖아. 굳이 특수부대나 사용하는 엠블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어? 안 그래도 길로틴의 총애를 받는 부대라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개밥의 도토리 신세인데, 엠블럼을 사용하는 유명한 부대들이 알면 지나치게 나댄다고 아니꼽게 생각할 게 뻔하잖아…….”
“그래서 더욱 더 엠블럼을 사용해서 우리 부대의 존재를 각인시켜줘야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그래도 실력을 보여주게 되면 두려움으로 변하고,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존경심으로도 바뀔 수 있는 말이니까요. 적들에게는 두려움을 주고 아군에게는 존경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결국에는 모든 방위군이 우리들의 깃발을 따라서 전진할 것입니다.”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대답이었기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아. 진짜로 보통내기가 아닌데 그래? 혹시 엠블럼에 그려 넣을 심볼에 대해서도 생각해 놓은 게 있어?”
아니나 다를까 잭은 그것마저도 준비하고 있었는지 어깨로 둥글게 말아서 가지고 있던 엠블럼의 도안을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보였다.
“……이건, 새인가?”
“그렇습니다. 아주 먼 옛날의 전설에 등장한다는 플레닛 이터라고 불리는 새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수만 년 동안은 계속해서 잠을 자지만, 한 번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면 온 은하가 떨리고 한 번 날갯짓을 하면 은하수를 건널 수 있다고 알려진 전설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고 알려져 있죠.”
‘……어쩐지 비유들이 꼭 블랙홀에 대한 넌센스 퀴즈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양쪽의 날개가 중앙을 감싸는 형태가 굉장히 화려하고 멋지기는 한데 가운데 공간이 너무 뻥 뚫려있지 않아?”
“그 장소에는 우리 부대가 정복한 행성들을 상징하는 별들을 하나씩 집어넣을 예정입니다.”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심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는 듯이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트려대는 그.
“팔란티오 행성은 좋은 밑천이지 않습니까?”
“너……이 새끼…….”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자 우리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수뇌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또라이들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저, 저는 정비만 해서 이런 쪽 이야기는 잘…….]
[왜 우리가 이런 자리에 끼어야 되는 걸까나 이나.]
[몰라, 시간외 근무수당을 달라고 해볼까나 이딘.]
[아, 젠장. 오늘 신작 게임 세일하는 날인데…….]
“…….”
대부분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잡담이었지만 그 중에서는 우리들이 말하는 진의를 깨달았는지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뭔가를, 누군가에게 송신중인 스피아라던가, 이럴 때만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서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버린 클라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위험하다.
“야, 잠깐만 사무실로 따라와!”
“얼마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안 돼!!”
내 앞을 가로막는 탈리아의 모습에서 그녀가 무슨 드립을 치려고 하는지를 깨달은 나는, 재빠르게 그녀에게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어대고는 영혼의 각인을 사용해서 귓속말로 속삭여주었다.
[이상한 짓 하려는 거 아니니까 나만 믿어. 사랑하는 거 알지?]
허리가 풀렸는지 흐느적거리며 주저앉은 탈리아는 붉어진 표정으로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으, 응.”
‘게이 드립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지.’
클라크가 아직도 왼손 약지로 붉은색 매듭을 묶고 다니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쓸데없는 오해를 하는 사람들(대표적으로 탈리아)이 있기는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여자들에게 껄떡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노력(?)들을 멈추지 않은 덕분에 이제는 많이 희석되기는 했다.
나는 잭을 대동해서 중대장 사무실로 들어와서 그에게 어떻게 내 야망과 계획을 눈치 챘는지를 질문해 보았다.
그러자 잭은 믿을 수 없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죠. 인생은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를 정하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떤 비극이라도 희극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의 비유가 소름끼쳐서가 아니다. 그가, 이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절대로 알 수가 없는 인물의 이름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네, 네가 어떻게 찰리 채플린을 알지?”
“역시나 제 눈은 틀리지 않았군요.”
그는 유쾌하다는 듯이 한참동안 껄껄거리면서 웃음을 터트리다가 내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진실을 털어놓았다.
“같은 발할라의 전사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