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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눈이 너무 내리는 것 같은데……]
강의 하류를 따라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구조대원들이 통신 단말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느니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느니 레베카의 눈치를 보느라 단도직입적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서 분노를 참지 못한 그녀가 통신을 차단해버렸다.
그러자 당황한 구조대가 다목적 마장기인 워커를 보내면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냐는 사인을 보냈지만, 무시하고 재규어를 전진시켜나가자 그 덩치에 압도당하면서 주춤거리고 물러나버리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효과가 있는지 수색이 중단되는 일도, 더 이상은 그녀를 귀찮게 만드는 일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성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비효율적인 움직임에, 구조대에 대한 실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나갔다.
구조대가 도착한 건 생도들이 수색작업을 시작한 지 2시간이 흐른 다음의 일이다.
지각도 그런 지각이 없었지만 현장에 도착한 그들은 생도들에게 독자적인 수색을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생도들은 전부 빠지세요. 지금부터는 구조 전문가들이 수색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자신만만한 그들의 태도에 처음에는 자신들의 역할이 끝났다는 생각을 한 생도들은 순순히 지시를 따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들의 움직임은 비정상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말로는 훈련과 수색작업으로 지친 생도들의 노고를 치하해주기 위해서라고 하면서도, 간단하게 요기만 때워도 되는 상황에서 진수성찬을 차려주었다. 일류 요리사의 솜씨는 아니라고 해도 어지간한 고급 레스토랑의 쉐프들이 준비했다고 그래도 믿을 수 있을 음식들.
그걸 생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구조대원들이 함께 먹었다.
게다가 식사를 마친 후에는 역시 생도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두툼하고 깨끗한 모포며, 따듯한 다즐링 홍차가 들어간 보온병,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미니 난로 같은, 실재 조난자들이 받아도 어리둥절할만한 호화로운 구호물품들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급박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 현장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화기애애한 무드를 연출하면서, 마치 사교회장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면면들을 살펴보면 현장에서 뜨는 실무자들이 아니라 대부분이 구조대의 고위 관계자들이었다.
심지어는 구조대가 아닌 사람도 섞여져 있는 상황.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 대부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가운데,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그들이 레베카에게 아부를 하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그것은 당사자인 레베카도 마찬가지.
작전 지휘소로 쳐들어가서 상황을 확인한 그녀는 실재로 수색작업에 참여하는 실무자들이 극소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두 사람을 위한 구호물품을 강탈하듯이 챙겨서 재규어에 탑승해 수색 구역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그 돌발행동(?)에 당황한 구조대의 관계자들이 허겁지겁 워커를 파견해서 그녀를 보호하려고 시도했지만, 분노를 참지 못하고 터트리는 일갈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저를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취급하신 적은 없습니다!! 이렇게 낭비되는 순간, 순간에도 두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1분 1초가 헛되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러니까 저에게 잘 보이고 싶으시다면 제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두 사람을 수색하는데 전력을 기울이세요!!]
그러자 정신을 차린 구조대가 정신을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수색작업에 가담했지만 명령체계가 꼬여버렸는지, 아니면 그런 지휘자체가 처음인지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 작업을 진행시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힘드니까 돌아가자고 투덜거리는 사람들까지 속출.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그 한심한 작태에 분노를 넘어서 절망해버리고 만 레베카는 어째서인지 과거에 류안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말았다.
며칠 전.
두 사람의 대결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그는 학원장실로 불려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 이어지는 실력 테스트에서는 마치 승부를 포기한 사람처럼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성적들을 기록해 나갔다.
그 상황을 참지 못한 그녀가 이성을 잃어버리고 남자 기숙사로 찾아가서 다짜고짜 문을 두드려대니, 샤워를 하고 있었는지 아랫도리에 수건만 걸치고는 마중을 나오는 그.
“무슨 일이야?”
알몸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에도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는 당당한 태도였기 때문에, 오히려 홍당무가 되어버린 그녀가 버럭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그, 그쪽이야말로 뭐하는 짓이야! 왜 홀딱 벗은 상태로 문을 열어주는데?!!”
“남자 기숙사에서 뭐 어때? 애초에 여기는 금녀구역이라고.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던지, 전라로 입에 장미를 물고 돌아다니던지, 내 마음 아니야?”
“전라에 자, 장……그쪽에게는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거야?!”
“왜 그렇게 놀라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활하던 부대에서는 이 정도면 엄청나게 신사적인 행동인데 말이야. 혹시 말했던가? 부대를 창설할 무렵에 할 일이 없어진 병사들이 생활관 전체를 난교회장으로 만들었던 적이 있거든. 이야, 그때는 정말로 난리도 아니었는데.”
적나라한 이야기에 그 속에 끼어들어서 뒹굴고 있는 류안의 모습을 상상해버린 그녀는 더 이상은 붉어질 수도 없는 표정으로 외쳤다.
“됐어! 학원장한테 압력을 받은 것 같아서, 내 딴에는 도와주려고 따끔하게 한 소리를 해주고 왔는데……이제 보니까 상대를 할 가치가 없는 최악의 인간 쓰레기였네!! 그래 어디, 창녀들이랑 놀아나던지 남창 새끼들이랑 놀아나던지 나 안 보이는 저 먼 곳에서 마음대로 하세요!!”
두 번 다시는 그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뒤돌아섰지만, 웃음을 터트리면서 비웃듯이 꺼내는 말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애라니까.”
“……뭐?”
“내가 겨우 학원장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고 풀이 죽었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 설레발은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나를 이기고 말씀하세요. 철딱서니 없고 건방진 아가씨.”
“지, 지금 나를 온실 속의 화초로도 모자라서…….”
“왜, 분하기는 하신가? 자신이 꺼내는 말이나 행동이 무엇을 초래하고, 어떤 일을 의미하는지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아서 지어본 별명인데 말이야. 그런 주제에 무슨 방위군의 장교를 하겠다고 육군 사관학교에……아아,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어차피 사관학교가 끝나면 사교계로 돌아가실 귀하신 몸이라는 건가. 아니면 자신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들을 하는 병정들을 모아놓고 중대장 놀이를 하실 분이라서 그런가. 어쨌든, 우리들이랑은 태생부터 다른 귀하신 몸이라는 거지?”
“이익!!”
후우웅!
척!
그 모욕적인 언사를 참지 못한 레베카가 류안의 뺨을 때리려고 시도했지만 팔목을 잡히면서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거 놔! 더 이상은 네 궤변에 어울려주지…….”
“정말로 궤변이라고 생각하면 지금까지 놀아준 것도 후회스러워지기 시작하는데…….”
“…….”
처음으로 보여주는 그의 진지한 표정에 어째서인지 그녀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늘 장난스럽고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봐준 탓일까.
그 기백에 압도당한 그녀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레베카. 네가 조금이라도 방위군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있으면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마. 사관학교의 생활이라는 건 실전 부대의 실상에 비교하면 샌님들 놀이터나 마찬가지야.”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어.’
어쩐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그녀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자, 턱을 붙잡으면서 자신에게로 얼굴을 돌린 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주입시켰다.
“방위군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유능한 지휘관이 필요해. 고작해야 남자의 세미누드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여자 지휘관이라고? 그런 건 지나가는 개도 웃지 않을 일이야. 그러니까 부탁할게. 레베카…….”
“……이, 이런 방식은 비겁하잖아…….”
무엇이 비겁한지는 알 수가 없었다.
류안의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해버린 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덕분에 허탈한 웃음을 터트려버린 그는 다시 원래대로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뭐, 그런 세계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 미천한 소인과 승부를 하고 싶으시면 적어도 남자의 속옷을 웃으면서 세탁할 수 있는 담력을 키우고 찾아오세요. 아니라면, 그냥 사교계로 돌아가셔도 되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방문을 천천히 닫아나갔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야. 무시하고 돌아가!’
이성은 그녀에게 그렇게 호소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방문이 닫혀버리는 것을 멈춰세우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녀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가늘어지는 류안.
“이건 무슨 의미신가?”
“……좋아.”
“뭐?”
“승부를 받아들이겠다는 소리야. 어디, 네 세계가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같은 필드에 설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나 레베카 펠리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만약에 다음 승부에서도 패배한다면 앞으로 평생 동안 네 팬티를 빨래해 주겠어!!”
“오오오오오오!!!!”
마치 아침 드라마와도 같은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남자 생도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레베카! 레베카! 레베카! 레베카!”
그러면서 일제히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하는 그들.
덕분에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레베카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붉어지고 말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척을 하면서 생도들의 무리를 마치 홍해의 기적처럼 갈라 세우면서 빠져나갔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일지도 몰라.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천성적으로 타고난 승부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길로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은 그녀의 롤모델인 제시카가 그와 평범한 사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일이다.
‘재규어의 조종석이야!’
폭포의 밑에서 재규어의 조종석을 발견한 그녀는 재빠르게 다가가서 두 사람의 흔적을 조사해 나갔다.
응급상자를 뜯어낸 흔적을 발견하고 사라진 물건을 확인한 결과, 그 속에 나노머신 주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
‘혹시라도 누가 부상을 입은 걸까…….’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지만 두 사람 중에서 누군가는 살아있다는 흔적을 발견한 셈이라서, 애써 정신을 가다듬으며 마치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처럼 두 사람이 취했을 조치를 가정해 나갔다.
‘나라면 이 장소에서 멀리 움직이지는 않을 거야. 가능하면 가까운 장소에서 비를 피하고 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해. 하지만 이 근처는 구조대의 헬기가 벌써 수색을 마친 장소야. 조종석이야 어두워서 눈치 채지 못했다고 그래도 불빛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폭포를 발견한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일대를 조사해 본 결과 예상대로 폭포의 뒤로 숨겨진 동굴을 발견한 그녀는, 입구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구조대를 부를까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한심함에는 적잖이 실망을 한데다가, 두 사람의 안위가 궁금해지는 바람에 재빠르게 구호물품들을 짊어지고 동굴의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생각보다 동굴이 깊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몇 걸음을 걷던 와중.
“아흑, 하아아아악!”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교성에 놀란 레베카는 잠시 움찔했다가 움직임을 재촉하면서 안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설마 교관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던 순간에 신음소리의 정체를 깨달아버린 그녀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 작품 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