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66화 (66/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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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다리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절단되면서 마치 표류하는 뗏목처럼 세찬 급류에 휘말려서 빙글빙글 떠내려가는 상황.

암초에 부딪쳐 깨어지면서 마치 절단기에 갈려나가는 것처럼 토막토막으로 잘려지면서, 순식간에 서 있을 수 있는 발판들이 줄어들어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다리 자체의 부력이 큰 덕분에 물속으로 빠지는 최악에 상황만은 면할 수 있었지만, 서로의 재규어를 부둥켜안은 상태에서야 간신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장님, 대장님!]

[오퍼레이터입니다. 상황을 보고해 주세요, 교관, 류안 생도!]

[제시카 교관님이, 제시카 교관님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사람들의 무전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들어왔지만, 한가롭게 상황을 중계하기에는 돌아가는 사태가 너무 급박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퍼레이터가 재빠르게 조치를 취해준 덕분에 재규어의 컨트롤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

[아직은 멀쩡하니까 수선떨지 마세요! 기회를 봐서 탈출을 시도해보겠지만 혹시라도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구조팀을 파견해주세요!]

그렇게 외친 제시카는 통신을 중단하고 조종석을 열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면서 내게도 조종석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곧바로 실행하기는 했지만,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그녀의 모습이 위태롭기 이를 데 없어보였다.

“위험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를 도와주고 싶다면 그 쪽으로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의도를 깨달은 나는 재빠르게 재규어의 팔을 조종해서 그녀를 안전하게 붙잡아서 조종석으로 운반해 왔다.

푸슉.

조종석의 문을 닫고 이제는 거대한 짐으로 전락해버린 그녀의 재규어를 밀어버리자, 이내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물속으로 빠져버린다.

풍덩!

거대한 물기둥과 함께 깊은 수면 속으로 가라앉는 동체.

‘저거 비싼 건데…….’

거지 근성, 아니. 근검절약의 정신이 발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셔버리고 말았다. 그런 내 마음을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온다.

“두 사람이 따로 탈출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함께 가는 편이 효율적이니까요. 아무래도, 조종 실력이 조금이라도 뛰어난 류안 소위가 시도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착용하고 온 VR헬멧을 벗고 머리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는 그녀.

비에 젖은 파일럿 슈츠가 몸에 찰싹 달라붙으면서 볼륨감을 과시해오는 바람에, 그것을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팔린 나머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소위, 듣고 있어요?”

두 사람이 남게 되자 생도에서 소위로 호칭을 바꾼 그녀.

“아, 네. 뭐라고 하셨죠?”

그 대답에 내 시선을 눈치 챈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몇 달 못 본 사이에 정말로 많이 달라지셨네요. 저는 류안 소위가 탈리아 한 분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라고 생각했는데…….”

“불쾌하셨으면 죄송합니다.”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약간 실망하기는 했지만 불쾌한 건 아니에요. 굳이 따지면 저도……크흠, 어쨌든 지금은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니까. 이 상황을 벗어나는 일에만 집중해주세요.”

굳이 따지자면 저도……라는 단어의 뒷부분이 엄청난 망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나는 흑염룡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얼굴의 근육이 느슨해지고 말았다.

“류안 소위!”

그리고 엄청나게 혼났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재규어의 도약력을 이용해서 뭍 위로 뛰어오르는 거지만 용이치가 않다.

재규어가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는 10m를 조금 넘기는 정도인데, 폭이 거의 1km는 되는 강의 중앙에서 떠내려가고 있으니 방법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도를 확인해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나이아가라에 버금가는 거대한 폭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다.

‘환장하겠군.’

눈앞으로 달려오는 암초를 재규어의 팔로 밀쳐내면서 침몰을 겨우 면한다. 세차게 흔들리면서 당장이라도 엎어질 것 같은 뗏목을 간신히 진정시킨다.

그런 와중에도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암초에 매달려서 구조를 기다려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고 퍼부어대는 빗줄기와 다리를 부숴버릴 정도로 강력했던 물살을 생각해보면,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급류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뛰어내리는 방법밖에는 없나?’

나는 제시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죠?”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데 폭포에서 떨어지는 사람치고 죽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탈출방법이…….”

“영화랑 현실이 다르다는 건 아시죠?”

역시 이런 거짓말에는 속지 않는다.

“뭐, 재규어의 방어력도 있고 여차하면 조종석의 에어백이 터질 테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는 없죠. 후훗, 긴장을 풀어주시려고 한 모양이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소위를 믿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으헤헤……크, 크흠.”

“…….”

경망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호감도가 살짝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떻게든 다시 정신을 수습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으니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아니, 다리 위에서 대치할 때도 확인하기는 했지만 나에게로 향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은 단순하게 은인을 대하는 수준이 아니다.

갈대와도 같은 여자의 마음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느새 폭포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각오를 다지면서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슬슬 뛰어들어야 할 것 같으니까 꽉 잡아주세요. 위급한 상황이니까 그, 체면에 신경 쓰지 말고 제 몸을 붙잡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녀가 내 몸을 꼭 붙잡기를 기대했는데, 역시나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등 뒤에서 백허그를 해오는 그녀. 물기로 젖은 몸이 차갑기는 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중량감과 물오른 여성의 채취가 흑염룡을 건강하게 만든다.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넘치는 녀석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

“믿고 있으니까요.”

“자중하겠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100번쯤 중얼거린 끝에 흑염룡은 각성을 멈추고 자신이 있던 레어로 다시 돌아간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 마침 생각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알고 계십니까?”

“뭐죠?”

“예전에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가 살아난 사람이 한 말인데, 높은 장소에서 떨어질 때는 떨어지지 말고 뛰어내리라고 하더군요.”

세상에는 온갖 거지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아무리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 번 다시는 당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해도, 순간의 방심을 노려서, 평화로운 일상을 가장해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머리끝까지 엉겨 붙으면서 아무리 저항을 해도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럴 때는 헛된 희망에 기대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떨어지는 게 운명이라면 놓쳐버린 난간을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리지 말고, 착지할 수 있는 발판이 어디인지를 똑바로 확인하고 자세를 갖춰라. 그것이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었다.

“……옳은 말 같네요.”

그 말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는 역시나 말귀가 빨랐다. 척하면 척이라고 할까, 그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순수하게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작업을 걸고야 말았다.

“만약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면 같이 영화라도 보러 가시겠습니까?”

“……저라도 괜찮으면 얼마든지요.”

나는 주저 없이 폭포를 향해 뛰어내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꺼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고 급하게 미니게임을 발동하고야 말았다.

‘하필이면 사망 플래그를 밟아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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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신호가 사라졌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말에 생도들은 침묵에 빠졌다.

모든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레베카가 앞으로 나오면서 사람들을 향해서 외쳤다.

[왜 다들 멀뚱하게 서있죠. 제시카 교관님이 하셨던 말씀을 못 들었습니까? 당장 구조대를 파견해서 두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시체만 건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우리들만이라도 강의 하류를 따라가면서 수색작업을 시작해야합니다!]

[하지만 모의전에 참가한 생도들은 대기하라는…….]

그녀의 주장에 망설이는 사람들.

[우리는 장래에 장교가 될 사람입니다. 생도이기 전에 한 사람의 어른이고, 지금까지 적게는 수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군인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방법을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동료가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모르는 척 하고, 구조대가 도와주기만을 의지하고 있다면 장차 누가 우리들을 믿고 목숨을 맡기겠습니까?]

[…….]

반박할 수 없는 정론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의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는지, 엄폐물로 숨어버렸다가 제시카에게 일침을 당했던 생도가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동참하겠습니다. 비록, 교관님을 모신 시간은 짧았지만 오늘 훈련처럼 많은 것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분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망설이던 나이가 지긋한 생도 역시 입을 열었다.

[저 또한 수색작업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을 짐꾼이라고 부르는 지독한 대장을 만나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제 평생 그렇게 뛰어난 사람을 상관으로 모셔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도록 내버려두는 건 공화국의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저도!]

동참이 이어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머뭇거리던 생도들도 용기를 내서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덕분에, 생도들에게 만장일치를 얻어내고 의기양양해진 레베카는 통신화면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오퍼레이터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모든 생도들의 뜻이 이렇습니다. 수색작전을 허가해주세요!]

[……자신이 꺼낸 말에는 책임을 지는 게 어른입니다.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레베카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일단은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겠습니다. 비록, 이번 싸움에서는 졌지만 저는 아직 류안 생도와의 승부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니까요!!]

패배를 인정하는 것 같은 그녀의 태도에 내기의 내용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그러면 정말로 류안의 팬티를 빨래하게 되는 건가?’

그런 의문에는 답해주는 사람이 없이, 레베카를 필두로 하는 생도들을 중심으로 급조한 1차 수색대가 편성되었다.

4명씩 총 2팀으로 강의 좌우로 나누어져서 하류를 따라 내려가면서 수색을 하기로 결정.

레베카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색에 참가하면서 자신에게 다시 한 번 패배의 쓴맛을 알려주었던 남자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도톰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당신이 정말로 헨드릭 황제만큼이나 뛰어난 사람이었고, 나를 이용하고 속이려고 했다고 말이야.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실력으로 뛰어넘어주겠어. 그 때가 되면 그 뻔뻔한 면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비웃어주고야 말겠어. 그러니까, 그러니까……그 때까지 살아서 내 눈앞에 있어. 어디로도 도망치지 마…….

눈시울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억지로 모르는 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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