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64화 (6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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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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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몰려오는데.’

햇빛은 쨍쨍했지만 지평선 너머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니 모의전이 끝나기 전에는 한 바탕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모의전에서 가장 성가신 문제는 두말할 것 없이 저격수의 존재다.

로드스타를 플레이하면서 온갖 종류의 기상천외한 맵을 연구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전장의 상면도를 보는 순간에 양 진영에 유난히 좋은 저격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파악할 수가 있었다.

어떻게 눈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다름이 아니라 본거지에 존재하고 언덕인 것을.

‘제시카가 내 사격실력이 레베카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을 파악한 모양이군.’

양 진영에 동일한 저격 포인트가 존재하고 있으니 역시 불공평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공격해 들어가는 입장에서는 사용을 할 수가 없는 전술 포인트인 만큼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방위군이 표준 규격으로 사용하는 마장기 전용 대전차 라이플의 유효사거리는 10km.

다만, BB탄과 훈련용 장비를 사용하는 만큼 사정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다가 이 전장에 한정해서는 엄폐할 수 있는 장소들이 유난히 많아서, 우회로를 이용하면 2km 이내로 접근하기 전까지는 안전구역이다.

중앙의 직선로에는 엄폐물이 더 많이 존재하고 있으니 사거리가 짧아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피할 수 있는 공간들이 더 협소해지는 만큼 저격을 피해서 전진하는 일도 더 어려워진다.

물론, 2km만 해도 인간 저격수의 입장으로는 무시무시하게 먼 편이다.

마장기들이 원래 사용하는 어설트 라이플과 빔 캐논이라면 사격 지원 시스템의 도움을 빌려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역시나 훈련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효사거리는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 마디로 저격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1km를 그 공격에 노출당하는 상태로 전진해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다.

‘추가 장갑을 착용할 수 있으면 2~3방은 맞아주면서 그냥 무시하면서 전진해도 되는 건데…….’

다른 마장기에 비하면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 재규어지만, 마장기 답게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전진해 들어갈 수가 있다. 하지만 1km는 1km니,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무턱대고 주파하는 것은 불가능.

유일한 대응책은 카운터 스나이핑이다.

‘B급 사격능력으로 A급 저격수를 카운터 저격이라……성공할 수 있을까?’

레베카의 사격능력을 내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A급.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클래스가 다른 한 등급 위인 상대와 스나이퍼 전을 벌인다고 하는 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만, 그런 차이를 어떤 식으로든지 극복해내는 것이 기량이라고 하는 것이다.

참고로 팀원들의 능력을 내 기준으로 평가해보면 전부 C급이거나 그 이하.

올 B이상인 레베카와 제시카의 능력과 비교해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피라미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이렇게 호칭하기로 했다.

짐꾼1, 2, 3, 4.

규칙상 토마호크를 제외하면 한 사람이 하나의 주력무장을 사용하는 것이 규칙이지만, 팀원들의 무장을 빌리는 건 가능하다. 그러니 이 녀석들은 걸어 다니는 무기 창고로 생각하는 편이 속 편하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으니 닥돌 4형제가 떠오르는군.’

살며시 추억에 잠긴 나는 팀원에게 기본적인 작전을 설명했다.

“중앙의 직선로는 어설트 라이플을 장비한 짐꾼 1이 지키고 나머지 3명은 나를 따라서 우회로를 통해서 공격해 들어간다.”

참고로 녀석들은 내가 지어준 별명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

‘정말이라니까?’

[적이 직선로를 통해서 공격해 들어오면 1명으로는 위험하지 않습니까?]

“괜찮아, 그 때는 난전으로 전선을 확대해서 뚫리기 전에 뚫어버리면 되니까. 게다가 제시카 교관이라면 방어의 이점을 포기하면서 전력을 분산시키는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을 거야.”

솔직하게 말하면 제시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내 예측을 벗어나는 돌발적인 모험을 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실행하기로 한 이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철시킬 예정.

그런 불안감이 팀원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일부러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제시카는 요새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튼튼하게 본거지를 만들어 놓았으니, 어떻게 보면 이것은 조그마한 요새를 공략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방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베카를 공략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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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새들이 날아오르는 것을 발견한 레베카는 곧바로 스코프를 그쪽의 방향으로 돌렸다.

모의전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분이 지난 시점.

그 시간동안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전장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이변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적의 등장을 깨닫고 제시카를 향해서 통신을 날렸다.

[알파1, 여기는 퀸. 적의 움직임으로 보이는 현상을 감지했습니다. 발견 장소는 우회로 방면입니다.]

[거리는 얼마나 되죠?]

[약 2. 2km 떨어진 숲 지역입니다. 중간에 간벌 지역이 존재하고 있으니, 접근을 시도한다면 그 부분에서 한 차례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노릴 수 있나요?]

[맡겨만 주세요.]

[좋습니다. 선 조치 후 보고해 주세요. 저격이 끝나면 퀸의 위치가 드러날 테니, 곧바로 언덕의 뒷길을 따라 도망치면서 저격 포인트를 바꿔주시는 것을 잊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레베카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대전차 라이플을 조준해 나갔다.

간벌 지역으로 향하는 사선에서는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들의 바람에 흔들리면서, 탄환의 궤적을 가로막았지만 여느 때보다도 집중력을 높이고 있는 그녀에게는 그 모든 움직임들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이면서 빈틈투성이의 구멍으로 느껴졌다.

잠시 후.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적 팀의 재규어 한 대가 선두에서 달려 나오며, 뒤이어서 3대의 재규어들이 달려 나온다.

‘1, 2.’

습관적으로 숫자를 센 레베카는 선두의 마장기를 조준하면서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잡았다!’

울창한 숲의 나뭇가지들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면서 선두의 재규어를 향해서 거침없이 질주해가는 탄환. 쏘는 순간에 헤드샷을 확신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신통치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눈 앞에서 일어났다.

‘그걸 피했다고?!’

선두의 마장기는 레베카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맞춰서 급격하게 동체를 비틀면서 탄환을 피해버리고, 이내 터치다운을 하는 럭비 선수처럼 나무의 뒤로 뛰어들어서 엄폐를 해 버렸다.

놀랄 사이도 없이 차례대로 엄폐를 마친 마장기들이 레베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무차별적으로 난사를 해 온다.

투타타타타!

유효사거리를 넘어서는 거리였기 때문에 중구난방으로 무질서하게 날아드는 탄환이지만, 그 숫자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는 숫자라서 이내 언덕 전체로 먼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파상공세를 피하며 언덕의 뒷길로 내려간 레베카는, 류안으로 짐작되는 선두 마장기의 믿을 수 없는 회피 기동을 떠올리고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진짜 실력이라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피해버리다니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는 묘기다. 덕분에 지금까지 얕보여도, 한참은 얕보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분한 마음으로 입술을 깨무는 그녀.

[우회로에서 류안이 이끄는 것으로 짐작되는 마장기 4기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발을 묶어놓을 테니 적진을 공격해주세요.]

[첫 번째 저격은 성공했나요?]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작전의 변경은 없어요. 앞으로 2차례만 더 저격을 시도해 보고, 곧바로 다리로 합류하면서 거점 방어에 집중해주세요.]

[하지만!]

[2번입니다. 퀸! 충고 드리자면 그 기회를 류안이 아니라, 다른 재규어를 노리는 데 사용하세요. 최대 2기는 줄여놔야만 그가 섣부르게 본진을 공격하려는 시도를 저지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레베카는 마지못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한 편.

류안은 류안대로 레베카의 첫 번째 저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기 때문에, 식은땀을 훔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저격 훈련을 하는 영상을 구해서 사격 습관을 파악해 놨기에 망정이지…….’

어떤 목표물이라도 반드시 숫자를 2까지 센 이후에 발사하는 그녀의 타이밍을 파악해놨기 때문에,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재규어를 날리면서 어떻게든 공격을 피해낼 수가 있었다.

만약에 그녀가 자신의 타이밍을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빠르게 발사했다면, 그 한방으로 전투불가 판정을 받을 것이 뻔했던 상황. 하지만 그 타이밍이 너무 정직했기 때문에, 레베카는 류안이 자신의 공격을 보고 피했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자기 자신을 미끼로 사용하는 도박으로 팀원들과 함께 간벌 지역을 무사히 통과하는데 성공.

이 숲을 빠져나가는 순간에 시야가 탁 트이는 개활지가 펼쳐지기 때문에, 이 숲에서 카운터 스나이핑으로 레베카를 잡고 다리로 진격해 들어가야만 했다.

류안은 우선 팀원들에게 엄호사격을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투타타타타타타타!!!

‘1, 2!’

피융!

언덕의 다른 방향에서 고개를 내미는 레베카를 발견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대전차 라이플을 조준하는 류안을 발견하고는 주저 없이 견제 사격을 날려버리는 그녀.

다행이라면 이번에도 역시 2에 맞춰서 엄폐물 뒤로 숨어버렸기 때문에, 탄환은 아슬아슬하게 재규어의 어깨를 스치면서 땅으로 가서 박혔다.

[오른쪽 팔에 경미한 손상]

‘역시 나보다 잘 쏜다는 말이야.’

눈 먼 엄호사격이라도 맞아주기를 기대했지만 겨우 머리 하나만 보일까 말까하는 레베카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다음 탄환을 발사하기 전에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발견조차 하지 못하면서, 엄호사격을 하던 팀원이 전투불능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신후는 입맛을 다시면서 레베카를 잡기 위해서 준비해 온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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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교관님이 말한 3번의 기회는 끝나버렸어. 설마, 저 남자가 정말로 2번째 저격마저도 피해버릴 줄은 몰라서 시도하기는 했지만…….’

레베카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2대를 격파하라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4번째 저격을 시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회피기동으로 자신의 저격을 피해버리는 류안과 비교해 보면 나머지 적들은 단순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표적지나 마찬가지.

그나마, 류안마저도 제시카의 말대로 자신의 사격술을 따라오지는 못하고 있어서 자신이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고 그래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좋아. 딱 한 번만 더 시도해서 다른 재규어를 한 대 격파하는 거야. 그리고 교관님에게는 3번의 기회를 사용했다고 말하면 되겠지.’

거짓말을 하는 게 찜찜하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기대해주는 그녀의 신뢰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굳게 마음을 먹고 언덕 뒷길로 이동을 해서 저격을 하기 위해서 몸을 드러내는 순간.

어느 틈에 엄폐물 밖으로 뛰쳐나온 적 팀의 재규어들이 토마호크의 날을 마치 거울처럼 사용하면서, 눈부신 태양빛을 반사시켜서 그녀의 두 눈을 멀어버리게 만들었다.

“꺄아아악!”

‘별로 많지도 않은 엄폐물에서 그렇게 두더지처럼 몇 번이나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2초 안에 그녀를 발견하고 거울 빛을 집중시키는 것은 사격실력이 떨어지는 팀원들이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향해서 대전차라이플을 조준한 류안은 여유롭게 셋까지 새면서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탕!

그 한 방으로 전황은 다시 4대 4.

말이 4대 4였지 제시카의 진영에서는 전력의 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레베카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사실상 스나이퍼전은 류안이 압승을 거둔 셈이다.

거침없이 진격해 들어간 두 팀은 마침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결국은 여기까지 오셨군요.]

[뭐, 어떻게 보면 내기는 이미 승리한 셈이라고 할 수도 있죠.]

[정말로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요구할 생각인가요?]

[못할 건 뭡니까?]

그 대답에 가볍게 한숨을 쉰 제시카가 간청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라도……그 약속을 제가 대신 들어드리는 건 안 될까요? 그게 부족하다면 저는 어떤 요구라도…….]

[으음,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하지만 역시 거절하겠습니다. 왜냐면 저는 최선을 다하는 당신과 한 번 붙어보고 싶거든요.]

[…….네?]

[저를 쓰러트리면 내기는 없었던 걸로 해도 좋다는 소리입니다.]

류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대동하고 온 짐꾼 2,3을 총알받이로 앞세우면서 다리를 돌파할 기세로 질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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