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55화 (5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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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면도날 잭의 훈련은 중독자들을 제외한 45명의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전 제군들은 계급장을 떼어내도록 한다.”

웅성웅성

갑작스러운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행보관이 끌려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가만히 참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들의 계급장에 손을 대려는 모습을 보이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급기야는 중년의 상사 하나가 손을 들어서 항명의 의사를 밝혔다.

“뭐지?”

“갑자기 계급장을 떼어내려는 이유가 뭡니까?”

“그건 제군들이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한 버러지들이기 때문이다.”

“뭐, 뭐라고?”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는 용병 주제에 뚫린 입이라고…….”

덥썩!

잭은 그렇게 떠들어대는 군인 2명의 머리를 양손으로 하나씩 붙잡았다. 그리고는 터무니없는 악력으로 자신의 눈앞으로 강제로 끌어오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질문을 던진다.

“네놈들의 키와 체중을 말해봐라.”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압도당한 그들이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1, 170에 86kg입니다.”

“176에 58kg입니다.”

“한 명은 비만에 한 명은 말라깽이군. 술이나 담배, 마약 같은 걸 한 적이 있나?”

“바, 반년 전에 담배를 끊었습니다.”

“가끔씩 술을…….”

“지병은?”

“없습니다.”

“천식이 조금…….”

“슈발츠 제국의 입대 조건을 알고 있나?”

“그건…….”

두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잭이 가소롭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놈들은 자신의 신체를 똑바로 관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들의 주적에 대한 기본적인 숙지사항조차 모르고 있다는 소리군?”

대답이 없자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슈발츠 제국의 입대 조건은 인간 남성을 기준으로 키 175cm이상에 bmi는 20대 초중반을 유지하는 게 기본이다. 담배, 음주, 마약중독은 말할 것도 없고 치아가 약하거나 지병이 있거나 신체에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입대를 할 수가 없다. 이게 제국에서는 제일 약하다는 바이스 군인들을 뽑는 조건인데, 이 중에서 자신 있게 그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손을 한 번 들어보도록!”

45명의 군인들 중에서 겨우 예닐곱 명이 손을 들었다. 그마저도 눈치를 보고는 슬그머니 손을 내려버리는 사람이 태반.

“나머지 인원들은 공화국에서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겨라. 만약에 제국에서 평민으로 태어났으면 평생 동안 강제노역에 동원되면서 농노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손을 든 녀석들이라고 다를 건 없다. 내가 보기에는 제국에서 제일 하찮은 병사라도 네놈들의 모가지를 비트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반박할 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지만 그들 중에서도 유독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이 있었다. 잭은 그에게로 다가가며 질문을 던졌다.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버러지?”

키가 약 2m에 이르는 거대한 체구에 최소한 200kg는 되어 보이는 육중한 병사가 잭을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난 버러지가 아니야.”

그 도발에 손을 까딱거리면서 대응하는 잭.

“그러면 어디 한 번 증명해보라고.”

후웅!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재빠른 주먹이 잭의 얼굴을 노리면서 날아들었지만,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주먹을 받아낸 그는, 손목을 비틀어서 육중한 병사를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가볍게 잡아 돌리며 바닥으로 쓰러트려 버렸다.

“기상!”

“으, 이익!!”

분노한 병사가 다시 한 번 달려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던 그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포효했다.

“젠장! 마나만 충분했어도 네놈 따위는…….”

“백병전을 지배하는 게 마나라고 누가 그러지?”

“…….”

“마나가 많으면 신체가 강화되는 건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나를 이용해서 특수한 전투기술이나 신묘한 박투술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지금 내가 너를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그 마나라는 놈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았나?”

병사는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대꾸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기상.”

“기, 기상!”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국에서는 어떤 최하급 전사라도 네놈들보다는 뛰어난 군인이다. 네놈들이 밖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던지, 어느 지옥에서 굴러 나온 마귀였는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갓 들어온 신병만 아니라고 하면 제국의 군인들은 네놈들 따위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혹독한 훈련을 감당해내는 살인병기들이다!!”

“…….”

처음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가 장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적의 최하급 병사들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놈들에게 계급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가?”

“…….”

탄식과도 같은 그의 목소리에 대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까는 군인들을 바라보던 잭이, 언성을 높이면서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군인은 적을 쓰러트리고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민간인들을 지키지 못하고 적들에게서 도망치는 나약한 군인은 군인들이 아니며, 단지 세금이나 축내는 밥버러지들에 불과하다! 무기가 어떻다느니, 마나가 어떻다느니, 민간인들이 유린당하고 난 다음에는 그런 변명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네 아내가 강간당하고 네 어머님이 살해당하고, 네 자식들이 죽어나간 다음에도 그저 신세 한탄만 지껄이는 개자식들로 전락하고 싶은가?!”

“!!”

“계급장을 버려라 버러지들아! 네놈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버러지에서 시작해서 강력한 전사로 탈피를 거듭할 것이다! 억울하다면 분노하고 절규해라! 그것을 에너지로 승화시켜서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으로 삼아라!!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을 뿜어내도록 해라, 그렇게 단련해내는 오늘이 제군들의 찬란한 내일을 보장해줄 것이다!!!”

“오오오오오!!!”

“좋아, 까짓것 한 번 해보자고!!”

혈기가 넘치는 젊은 병사들이 잭의 연설에 감화되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서는 명령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곧바로 계급장을 뗴어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반대로 나이가 많거나 계급이 높은 부사관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았지만, 주변의 분위기에 떠밀리면서 어쩔 수 없이 계급장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행위가 자신들의 신체포기각서에 사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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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좋아. 거기 조금 더 주물러봐봐…….”

“여기가 좋으십니까? 손님.”

“그래, 그래. 우리 류안이 안마 하나는 기차게 잘한다니까.”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해오는 탈리아.

[안마기술이 향상됩니다. 현재 등급 D]

루치아를 애무할 때부터 어쩐지 생길 것만 같았던 이 스킬은, 최근 며칠간 탈리아의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다가 자연스럽게 생성되게 되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얼마나 열심히 마사지에 심취했는지, 솜씨는 나날이 일취월장.

나는 슬금슬금 그녀의 엉덩이 쪽으로 손길을 옮겨나가기 시작했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쳇.”

사고패턴이 읽히고 있는지 조금만 음란한 이벤트에 돌입하려고 해도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막아버리는 그녀. 일부다처제를 인정받은 이후로, 야한 일을 하는 게 조금은 쉬워진 줄 알았지만 최근 들어서 훈련이 격렬해지다보니 다시 소원해지고 말았다.

“너는 행보관 일을 하겠다는 핑계로 땡땡이를 치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저 빌어먹을 년이랑 싸우느라 죽겠다고! 네가 억지로 하고 난 다음에 다리가 풀려버려서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주저앉은 사람을 공격해 들어오다니 뭐 저런 싸이코 같은 년이…….”

“워, 워. 진정해 탈리아.”

참고로 빌어먹을 년이라고 하는 건 잭과 함께 훈련 교관을 하고 있는 스피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탈리아는 그녀의 압도적인 전투능력에 첫눈에 반해버려서 처음에는 사부라고 부르는 등, 근접전투를 배우기 위해서 답지 않은 아양들을 떨어댔지만……막상, 훈련을 시작하자 터무니없는 스파르타식의 훈련으로 질린 나머지 지금은 ‘빌어먹을 년.’으로 호칭을 격하시켜버렸다.

초창기에 45명의 군인들을 2그룹으로 나누어 훈련을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예쁘장한 스피아가 자신들을 훈련시켜준다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잭보다 조금 더 심하게 실전적인 훈련은 어떤 의미로는 그를 뛰어넘는 소름끼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투타타타타타타!! 투웅! 콰앙!!

[크하하하하! 죽고 싶지 않으면 뛰어! 뛰란 말이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스피아의 광소가 바깥에서 울려퍼진다.

[젠장, 저 또라이 년이 진짜로 실탄을 쏴대고 있잖아!!]

[도망쳐! 누가 죽는다고 그래도 눈 하나 꼼짝할 년이 아니야!! 크아아아아!]

‘분명히 나는 군사훈련을 시켰는데. 왜 진짜로 전쟁을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걸까?’

바깥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소음에 살짝은 한기를 느껴버린 우리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평화로운 마사지를 재개시켜 나갔다.

똑똑똑똑

[행보관님. 안에 계십니까?]

“훈련으로 지쳐서 죽었습니다.”

[계시는 걸로 알고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안으로 들어오는 훈련에 미친 놈. 아니, 잭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들을 보자마자 한 마디를 꺼내는 녀석.

“농땡이를 피우는 걸 보니 훈련내용을 조금 더 늘리셔도 괜찮을 것 같군요.”

“누가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는 거야! 지금 마사지하는 거 안 보여?”

“맞아, 찢어진 근육들을 더 강하게 재생시키기 위해서는 훈련 못지않게 휴식도 중요하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너잖아! 류안은 지금 내 회복을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

“사모님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행보관님께 뭐라고 하는 겁니다. 제 눈을 속이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이미 휴식을 마친 행보관님의 근육들이 자신들을 다시 파열시켜달라며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남의 근육의 외침을 듣지 마.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런 600만불의 개자식이…….’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매번 어떻게 맞추는 것인지 그의 진단은 컴퓨터처럼 정확하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지금 신체능력을 단련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니까? 대신에 드랍포트 강하 훈련하고 마장기 전투는 열심히 참가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봐줘, 아니, 제발 살려주세요. 잭님…….”

“제 지론이 뭔지 있으셨습니까?”

잭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제는 아예 자신의 머리띠에 적어놓고 다니기 시작하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솔선수범.

“행보관님의 신체능력들이 이상하게 잘 향상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손에 걸리면 어떤 근육들이라도 자신의 재능을 화려하게 꽃피우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글쎄 지금은 그런 재능을 꽃피우면 안 된다니까!”

“오늘은 행보관님을 위해서 맞춤형 격투기 훈련을 지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대 1의 CQC(마샬아츠), 근접전투훈련, 유도를 중점적으로 가르쳐드릴 테니 도복으로 갈아입으시지요.”

“내 말 하나도 안 듣고 있지?”

“다른 병사들의 훈련은 현재 스피아가 맡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직접 모셔다 드릴까요?”

“힘내라 류안!!”

OTL의 자세로 좌절하고 있는 나를 향해서 응원을 보내는 탈리아를 보면서 나는 얌전하게 각오를 다지면서 미니게임 5단계를 사용했다. 잭의 가혹한 훈련을 받으면서 영혼과 육체의 괴리들이 지나치게 빠르게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많은 영혼의 능력들을 가져오려면 존의 단계로 진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는 미니게임 도전에 실패하는 바람에 한동안 지독한 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자신이 있는 2d대전격투게임이라서 비교적 쉽게 클리어를 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에는 역시 또 다른 내가 캐릭터로 튀어나오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똑같이 생긴 캐릭터가 나와서 거울처럼 같은 움직임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참고로 이 격투게임은 서로에게 공격해들어가는 부위가 똑같으면 공격들이 상쇄되어버리고, 그 대미지의 일부가 다음 공격으로 가중되어버린다.

무슨 소리냐고?

서로의 공격을 100번쯤 상쇄시켜버리면 약 공격 한 방만 명중시켜도 상대방을 K.O시켜버릴 수 있는 대미지가 만들어진다는 소리다.

그야말로 원 펀치 게임.

난무해오는 필살기조차 그 공격 부위에 맞춰서 상쇄시켜버리고 가드를 해도 순식간에 캔슬시켜버리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거의 미래예지를 하는 것처럼

맞춰버리기 때문에, 마치 영원히 비길 수밖에 없는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 같은 무한의 인피니티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이건 게임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 자체가 지니는 한계로 찾아오는 병목현상이다. 그나마 양심은 있는지 체감 상으로는 한 반나절 정도 사투를 치른 끝에 겨우 승리를 쟁취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5단계가 이 정도인데 게임 능력이 향상되면서 미니게임의 단계들이 늘어나기라도 하면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가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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