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 ----------------------------------------------
지상편
부대 내 식당에서 새롭게 고용한 용병들과 식사를 하고 있으려니 중대장인 나이브가 식판을 들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내가 맞은편의 자리를 가리키자 그 자리에 있던 잭이 재빠르게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왼쪽 자리에는 스피아가 있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포스를 뿜어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조비 모드로 끼어 앉게 된 나이브는 헛기침을 한면서 입을 열었다.
“크, 크흠. 보내주신 훈련계획서는 잘 받았습니다. 시키신 일이니까 결재를 하기는 했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건 너무, 너무……지독하지 않습니까?”
나는 대답하는 대신에 잭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가, 교관?”
“저는 오히려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시세끼 밥을 주다니 너무 호사스럽군요.”
스피아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렇다는데요?”
“…….”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두 사람의 태도에 질려버린 모양인지 나이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행보관님이 인수하실 부대인데 제가 이래라저래라 떠드는 것도 이상하군요. 부디 원하는 목적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뭔가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
나는 그렇게 운을 띄우면서 그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네?”
“중대장님도 받는 겁니다. 이 훈련.”
훈련계획서의 내용을 떠올렸는지 나이브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버린다.
“어, 잠깐 기다려주세요. 행보관님 저는 그냥 인수인계가 끝나면 돌아갈 사람이라서…….”
“도박중독도 중독은 중독이니까요. 제가 그동안 길로틴 준장님에게 신세를 진 일이 많아서 아드님께 뭐라도 해드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주아주 많은 신세를 졌지.’
그 신세를 갚아줄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저 그냥 여기에서 나갈게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셨지만 나갈 때는 아닙니다. 애들아! 방에 가두, 아니 모셔다드려라.”
“넵!”
내 말을 듣기가 무섭게 양쪽에서 나이브를 붙잡는 두 사람.
“아, 안 돼. 살려……읍! 부대여러분 전부 일어나십시오. 수저 내려놓으십시오! 내일부터 이 사람이 당신들한테……읍!”
눈앞에서 진실을 밝히려고 하던 중대장이 행보관이 고용한 용병들에게 재갈이 물려지면서 끌려 나가는 하극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미 길로틴의 후광을 벗어나서 부대 전체를 무력과 공포로 제압하고 있는 내 처사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들에게 펼쳐질 일을 알고 있다면 부대 전체가 들고 일어났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홀슈타인씨가 보내준 유기농야채샐러드를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훌륭해. 아주 맛있군.”
이 맛있는 채소를 벤틀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재배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유난히 달콤하고 맛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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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류안은 메디컬 체크라는 핑계를 대고 중대의 모든 인원들을 연병장으로 집합시켰다.
“부사관 및 전 장병은 간단한 채혈 검사를 받고 정밀검사를 위해서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도록!”
웅성웅성
예상대로 소란이 일어난다.
“갑자기 웬 건강검진이래.”
“저기 서있는 의료진들은 전부 민간인들 같은데? 의무대 병사들까지 전부 줄을 서고 있잖아.”
쿵!
[정숙.]
갑작스러운 상황에 병사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댔지만, 스피아가 재규어를 조종하면서 가볍게 발을 구르고 경고를 하자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채혈검사를 마친 병사들은 각자가 결과에 따라서 분류되었고, 총 세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분류를 마친 잭이 류안에게 결과를 보고해 왔다.
“약물 중독이 124명에 음주 및 각종 중독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병사들이 67명입니다. 그중에서 20명 정도는 두 가지 증상을 모두 보여주고 있어서, 중독 치료를 받지 않고 1차 훈련에 참가할 수 있는 병사들은 45명이 전부입니다.
“좋아. 중독자 새끼들이 들어간 감방의 문은 전부 잠가버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웅성웅성
갑자기 자신들이 들어간 방의 문이 철창으로 잠겨버리자 중독자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게 왜 잠겨?”
“뭐하는 짓이야! 빨리 열어! 열라고!”
잠시 후.
쿵!
차단기가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모든 방의 불빛이 꺼져버린다.
덕분에 웅성거리는 소리도 멎어들었고 기묘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병사들이 침을 꿀꺽 삼켜나가자 문 밖의 거실에서 영상이 틀어진다.
그 속에는 한 정체불명의 남자, 누가 봐도 류안으로 보이는 남자, 신후가 책상위로 양손을 올린 상태로 턱을 괴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
웅성웅성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행보관님!”
“장난치지 말고 내보내주세요.”
중독자들이 외쳤지만 무시당했다.
[제군들은 평소에 자신들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마약, 음주, 담배, 기타 등등의 온갖 msg화학첨가물 등. 쾌락에 몸을 맡기면서 온갖 영양학적인 병폐들에 자신들의 건강을 팔아넘긴 결과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리고 말았지.]
“…….”
“……행보관이 미쳤나?”
어이를 상실한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병사들이 갇힌 방의 천장이 열리면서 찬란한 태양의 직사광선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아악! 내 눈!”
“내 몸의 건강을 생각해주는 비타민 D를 생성하는 태양권이라니 비겁하다!”
[자! 이제부터는 제군들은 행보관이 제공하는 충분한 비타민과 적절한 건강식들, 그리고 꾸준한 운동으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찌들어나갈 것이다. 앞으로 제군들이 머무르게 될 그 방에서는 마약, 담배, 주류 같은 현대사회의 병폐물들은 존재하지 않지. 오로지, 건강과 건강. 그리고 건강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병사들이 방문을 두드리면서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 또라이 새끼야! 여기서 당장 내보내달라고!”
“마약, 마약이 없으면 하루도 버틸 수 없어!!”
“술을 줘! 그리고 여자 아니, 남자라도 줘! 혼자서 외로운 현자타임을 경험하는 건 싫다고!!”
[살아남고 싶으면 운동을 해라 병사들이여! 운동을 해서 약기운을 빼내야만 그 장소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신후의 외침에 병사들이 갇혀 있는 방 내부의 가구들이 벽속으로 수납되기 시작하면서, 바닥이 마치 런닝머신의 벨트처럼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뛰, 뛰어!”
“젠장, 내가 이런 수법에 넘어가서 운동을 할 줄……으아아악!!”
파지지지직!
몇몇 병사들은 바닥의 이동에 저항하면서 벽에 달라붙으면서 농땡이를 피우려고 시도했지만, 그곳에서 뿜어져나오는 찌릿찌릿한 전기충격을 경험하고는 발작적으로 튀어나오면서 런닝머신에 몸을 맡겼다.
[뛰어라 버러지들아! 메디컬 체크를 통해서 앞으로 네놈들의 중독이 완벽하게 치료되었다는 판정이 떨어질 때까지, 확실하게 치료해주마!! 국방부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마. 제군들에게는 더 이상 쾌락에 찌드는 내일은 찾아오지 않는다. 오직 건강한 아침, 건강한 내일, 건강한 하루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음하하하하하하하!!!!]
마치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울려 퍼지는 광소에 병사들은 이를 바득바득 달며 울분을 토해내었다.
“젠장,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두고 보자 행보관!!”
한 편.
그 일련의 과정들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바라보고 있는 45명의 병사들은, 재규어를 탑승한 용병들의 위세에 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준비한 영상의 상연을 마치며 방송을 종료한 류안은 잭으로부터 메디컬체크에 관한 보고서를 받았다.
“홀슈타인씨에게 받은 해독작용이 있는 식자재들을 이용하면, 가장 심한 약물중독 증상을 보이는 병사들도 2개월 안에는 금단현상을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증상이 너무 심한 병사들은 민간의료진들의 도움을 받아서 24시간 언제든지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좋아. 2개월이나 시간을 낭비한다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애초에 살인에 대한 저항감이 적은 녀석들인 만큼 조금만 갈고닦으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소질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행보관님께서 사관학교의 훈련을 마치고 귀환하실 즈음에는 제국의 펜져스에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군기 잡힌 모습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짝! 짝! 짝! 짝!
류안은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다. 내친 김에 그는 자신이 발할라에 받은 임무 중에서 하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자신의 위업을 칭송하는 랜드마크를 최소 10개 이상 건축한다.]
‘행보관이라면 역시 이 정도는 해줘야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 한 가지 내용을 추가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고견을 듣겠습니다.”
“저기 지평선에 산들이 몇 개나 보여?”
“산이라고 부를만한 건 2개 정도가 보이고, 언덕은 5~6개 정도가 보이는군요.”
“부대 앞에 저런 게 있으니까 외관이 조금 엉망인데. 이참에 하나로 합쳐서 고산지대의 훈련장으로 만드는 건 어때?”
잭은 잠시 견적을 내는 것처럼 그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장기를 동원하실 생각입니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동원하라고.”
“그래도 힘들어 보이는군요. 행보관님이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전력을 기울인다고 그래도 조그마한 언덕 하나를 옮기는 일도 불가능할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어.”
류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잭에게 우공이산이라는 고사 성어에 담겨진 내용을 자신의 나름대로 각색하면서 들려줬다.
요약하자면 우공이라는 희대의 천재 행보관이 가족들과 일가친척을 동원해서 산을 옮기는 사역을 매진한 끝에, 결국에는 산이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버리게 만들었다는 가슴 따듯한 이야기였다.
물론 류안의 입장에서만.
“요약하자면 하루하루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거야. 내가 쓴 원서 한 장, 한 장이 번쩍거리는 대학교 건물의 벽돌들을 한 장, 한 장씩 쌓아올리는 것처럼. 지금은 미약하더라도 먼 훗날에는 결실을 맺게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렇군요. 확실히 삽질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훈련을 하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적이기는 하지만 슈발츠 제국의 군인들은 아직까지도 건축과 토목공사 기술들을 필수적으로 배운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역시 척하면 척이라니까! 하하하하하!!”
류안은 잭이라는 남자의 화끈함이 마음에 들었다.
주로 남을 괴롭히는 방식에서는 놀랍도록 창의적이고 철저한 그의 방식이 류안의 사악한 발상과 맞물리면서,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나선지옥의 하모니를 연주해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오는 탈리아.
“저기 류안…….”
“음, 왜 그래?”
“스피아라는 용병이 나한테도 메디컬 체크를 받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류안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내가 술을 조금 좋아하잖아! 대부분은 운동으로 해소하니까 괜찮기는 한데. 그래도 가끔씩은 한잔하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아, 물론. 크게 걱정되는 수준은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는 하나도 없어!!”
그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탈리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류안은 마치 그녀와 첫날밤을 보냈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그러니까 온천 풀로 밀어버리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때의 트라우마를 떠올린 그녀는 기겁하면서 물러난다.
“아, 잠깐. 기다려! 이 싸이코…….”
“사랑해! 메디컬 체크!!”
달빛의 마법을 받은 아니, 의료진들의 도움으로 탈리아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 본 결과 아주 미약하지만 알콜 중독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정도라면 중독자들과 함께 일주일만 격리하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으음, 가슴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일주일만 참으라고 탈리아♡”
“류안, 이 싸이코같은 새끼. 잠깐 멈춰! 멈추라고! 안 들어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메디컬 체크를 안 받은 놈이 하나 더 있어서 그래!”
“그게 누구입니까?”
일주일동안 그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싱글벙글 웃어대는 류안이지만, 의료진들에게 끌려가던 탈리아가 폭로를 시작하는 바람에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되고 말았다.
“류안이야! 따지고 보면 저 새끼야말로 이중에서 제일 심각한 중독자일걸?”
“무, 무슨 소리야?”
“몰라서 물어? 게임 중독에 도박 중독, 그리고 잠깐이라도 발정하지 않는 순간이 없는 지독한 섹스 중독자라고!! 저 새끼를 치료하려면 반년, 아니 평생을 가둬놔도 모자랄 거야!!!”
그녀의 말을 들은 잭이 눈동자를 빛내면서 류안을 쳐다보았다.
“호오, 그렇습니까?”
“아니,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내가 이 사람들을 고용한 물주라고? 세상에 돈을 주는 사람을 가두는 법이 어디에 있…….”
그 말에 잭이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을 했다.
“제 지론이 뭔지를 벌써 잊어버리셨습니까?”
솔선수범.
지휘관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지 않으면 병사들이 따르지 않는다.
퇴근하려는 준장을 붙잡아서 부하들과 함께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게 만들었던 그의 싸이코같은 행각을 떠올린 류안은, 순간가속으로 빠져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스피아에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이어지는 메디컬체크를 통해서 알려지는 그의 중독 상태.
도박 중독 치료 기간 반년.
게임 중독과 섹스 중독은 치료 불가.
류안은 중독자들과 함께 방에 갇혀서 자기 자신이 나오는 비디오 화면을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
잭의 선처로 3일 만에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자신이 창조한 지옥을 경험한 류안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부메랑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돌고 돌아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