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53화 (5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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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기계제국의 군수상점을 방문한 나는 이번에는 토끼 귀 대신에 호박머리를 뒤집어쓰고 있는 셀리나를 향해서, 테러리스트 토벌전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활약했던 광학위장의 대처법을 물어보았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열화상카메라를 사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성능이 좋은 광학위장기술은  열원조차 차단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아르고스 시스템을 사용하는 전술, 전략 지원기들의 도움을 받아요.”

아르고스 시스템이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천개의 눈동자를 가진 괴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처럼 복합망원렌즈와 다중레이더를 사용하는 감시망을 사방으로 펼치기 때문에, 현존하는 어떤 광학위장과 스텔스 기술로도 아르고스 시스템을 뚫을 수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방위군에서는 현재 주시자라고 불리는 군사위성과 B급 전술지원 마장기인 리트리버만이 아르고스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요.”

“이름만 들어도 비쌀 거 같군.”

“네, 주시자를 구입하시려면 500만 골드를 내셔야 하고 리트리버를 구입하시려면 30만 골드를 지불하셔야 해요. 거기에 아르고스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전문 오퍼레이터까지 고용하셔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죠.”

살 테면 사보라는 식으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셀리나가 엄청나게 얄밉다.

현재 내 수중에 남아있는 자금은 1만 골드.

쟈칼 4기를 방위군에게 넘기고 길로틴에게 자금지원을 받고, 방위군의 개혁으로 추가예산을 지원받는 등, 한 때는 4만 골드까지 군사자금을 확보했었지만 트라이져 강습함과 재규어의 추가장비, 중대의 보급품을 구입하는 데 대부분의 자금을 소비해버렸다.

나는 못 먹는 떡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리트리버의 프로모션 동영상을 감상했다.

녹색 바탕의 전고 15m에 이르는 육중한 동체.

등 뒤로는 레이더로 짐작되는 동그란 판이 달려져 있으며, 피닉스와 마찬가지로 비행체로 변형을 한다.

공중에서는 호버링 모드로 전환하면서 아르고스 시스템을 최대 반경 500km까지 전개할 수 있으며, 그렇게 파악한 적의 위치를 오퍼레이터가 VR네트워크로 아군의 마장기 파일럿들에게 전송해 준다.

건물 내부나 시야가 차단되는 장소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시야가 탁 트인 야전에서는 광학위장에 뒤통수를 맞을 걱정이 없다는 소리.

뿐만 아니라 다탄두 미사일로 수백km밖의 거리에 떨어진 적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화력지원이 가능하고, 비행모드에서는 개틀링과 플레어 그리고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미사일 디펜스 시스템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가 있다.

문제는 그런 첨단 장비들로 중무장한 바람에 비행모드에서 순항속도가 겨우 80km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느리다는 것, 접근전에는 취약하다는 것, 표적으로 삼기 좋다는 문제들이 있다.

‘슈발츠 제국에서는 훨씬 더 좋은 전술지원 마장기를 사용한다고 그러던데 이참에 노획해서 우리 부대로 편입시켜버릴까?’

방위군에서 사용하는 주시자와 리트리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방위군의 개혁으로 노획한 적의 병기를 사용하는 게 허용된 마당에, 기왕이면 우리 부대에서 독자적으로 아르고스 시스템을 운영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일단 열화상카메라를 추가로 장착하는 걸로 만족해야겠군.’

적외선카메라와 열화상카메라.

이 두 가지를 재규어에게 추가로 장비했으니 방위군이 당한 것처럼 어지간하면 광학위장에 농락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병기들을 구경하던 나는 용병들이 도착했다는 셀리나의 말에 카탈로그를 닫아버렸다. 오늘 군수상점을 방문한 이유는 트라이져 강습함을 구입하면서 고용하기로 결정한 용병들과 대면식을 가지고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것.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눈 사람은 벤틀리의 친구이자 게임 크랙킹를 전문으로 하는 해커 레드 폭스다.

[오랜만입니다, 고용주님…….]

숏컷의 짧은 회색의 머리카락에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숏 팬츠와 팔 없는 군청색의 나시티를 입고 있는 그녀.

가벼운 차림이지만 소형 pc와 여러 가지 해킹장비를 주머니마다 빈틈없이 채워 넣고 있다.

참고로 벤틀리와 친구로 있을 때 사용하던 아이디는 판타즈마라고 한다.

“가명이 아니라 진짜 이름은 뭐야?”

[모, 몰라도 되요. 그것보다는 접근하지 마세요.]

“쳇…….”

저번에 했던 게임이 너무 자극적이었는지 경계심이 너무 강해져버렸다.

참고로 그녀는 현재 내 의뢰를 받고 쥬디스가 어느 성계에 있어도 편지를 받을 수 있도록 스팸메일을 발신해주고 있다. 범인은 나지만, 심증은 잡을 수 있어도 물증을 잡을 수 없도록 스토킹을 도와주는 요정 같은 존재.

‘비바 해커!’

그녀와는 3년 계약으로 300골드를 지불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고용한 용병은 우리 부대의 전술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재규어의 파일럿이다.

참고로 재규어의 시동마나는 40.

B급 마나연공법인 라테르나 마기카를 수련하고 있는 탈리아는 가상훈련장치로 마장기 조종법을 연습하고 있어서, 사관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에는 재규어를 조종하는 게 가능할 걸로 보였다.

문제는 나머지 3대의 재규어에 탑승할 인원들인데, 아쉽게도 3소대의 병사들 중에서는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 병사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근성이 나쁘기로 유명한 방위군 부사관들을 재규어에 탑승시키자니 불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

그래서 나는 여차할 때는 길드에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용병을 고용하기로 했다.

그랬는데…….

[고용주님께 필승! 스피아라고 합니다.]

“스파이라고?”

[스파이가 아니라 스피아입니다.]

“아니, 어떻게 봐도 스파이 같은데…….”

남자처럼 짧은 스포츠머리에 여성격투가들보다 실전적으로 단련되어있는 근육질의 몸매.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게, 한 눈에 봐도 특수훈련 몇 번은 우습게 수료했을만한 여전사가 눈앞에 서 있다.

자유롭고 개성적인 용병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절제된 태도에 훈련받은 움직임.

군바리는 딱 봐도 군바리의 티가 난다고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고 있다.

수상한 건 그런 겉모습만이 아니다.

“어, 그러니까 마나보유량만 1천이 넘고 마장기 전투 경험횟수가 42회. 격파한 적 마장기의 숫자가 100대를 넘어가는 에이스 파일럿에……고용주와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는데 5년 계약을 150골드로 하자는 건가?, 아니 겁니까?”

나도 모르게 존댓말로 묻고 말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게…….”

[테러리스트 토벌전에서 고용주님의 활약을 듣고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써주신다면 견마지로를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거는 방위군 관계자들만 아는 내용인데요, 스파이씨.”

[…….]

정색하면서 말했지만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묵비권을 행사해 온다.

일단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이런 짓을 저지를만한 사람으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건 길로틴이지만, 그의 일처리 방식이 이렇게 허술할 리가 없으니 다른 세력에서 보낸 스파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허허실실의 작전이라면 그에게는 한 방 제대로 먹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을 할 수가 없지만…….

그녀의 배후가 누구인지 궁금해졌지만 이렇게 대놓고 작전을 펼칠 수 있을만한 거물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섣부르게 건드리기가 무서워지고 말았다. 마치, 테러리스트를 상대할 때 클라크를 사용해서 최루탄을 설치했던 수법에 거꾸로 당하는 기분이랄까?

‘여자 스파이라면 묶어놓고 심문을 하는 게 정석이기는 한데. 야한 고문이라던가, 에로한 고문이라던가, 음란한 고문을 해서…….’

채용 결정.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여자 스파이라니 신나는 이벤트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계약조건으로만 보면 누구보다도 좋은 조건이라서 일단은 그녀를 내 부하로 맞아들이기로 했다.

사실은 예전에 군주론에서 읽었던 글귀에서 영감을 받은 결정이다.

‘아군을 신뢰하지 말고 적을 믿고 중요한 일을 맡겨라. 아군은 언제 배신할지 모르지만 적은 네가 의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였나?’

어느 세력이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유용하게 써먹어 줄 예정이다.

다음으로 나는 크레이지 택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트라이져 강습함의 조종사 이반과, 마장기의 정비를 책임지게 될 정비 기술자 애니, 리어 자매를 고용했다.

계약금은 3사람이 합쳐서 4년에 1500골드.

방위군에서도 신병기에 맞춰서 관련 특기의 인력 지원을 보내왔지만 실력들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외부에서 고용한 인원들이 군사 자문으로 활약하면서 부대를 이끌어가는 주축으로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나는 이번 용병계약에서 화룡점정을 찍을 인물을 만났다.

“필승! 방위군에서 전직 훈련교관으로 근무하던 면도날 잭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공화국을 위해서 일할 기회를 주셔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얼굴의 대각선으로 보기 흉한 흉터가 나 있는 상남자 면도날 잭. 그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별명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부대파괴자, 미친개, 정밀조련기계등의 다양한 이름들로 불리고 있다.

스피아가 날렵한 격투가의 인상이라면 잭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훈련으로 탄생한 로봇과도 같은 육체. 바스코가 무턱대고 근육의 크기만 키운 마초 스타일이라면, 스피아는 실전으로, 잭은 계획적으로 필요한 용도에 맞춰서 성장을 시킨 타입이라고 할 수가 있다.

병사들에게는 악명과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면서 육체단련과 정신개조론을 찬미해 온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훈련조교로써 부임하는 부대마다 양아치들이나 다름이 없는 병사들을 정예병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 이력들을 살펴보면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만 그가 방위군에서 쫓겨난 이유를 요약해보면 딱 하나, 그가 가지고 있는 지론 때문이다.

솔선수범.

‘어떻게 보면 고문관도 이런 고문관이 없지. 직속상관한테 병사들과 함께 완전군장을 하고 뛰라고 요구하다니 말이야…….’

“부하들에게만 혹독한 훈련을 강요하는 건 올바른 상관으로써의 자세가 아닙니다. 각자가 다른 임무와 다른 역할을 맡는 건 당연합니다만, 자신의 작업이 끝나는 일과 시간 이후라면 병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지휘관이라고 부를 수가 있죠!”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좋아. 채용!”

그와는 10년 계약으로 2천골드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어떻게 보면 내 스스로의 자살계약서에 서명하는 것 같은 정신 나간 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노가다에 의한, 노가다를 위한, 노가다라는 사고방식이 게이머의 혼을 자극해 왔다.

‘막장 군대를 조련하려면 이 정도의 조치는 필요하지.’

그 또한 500이 넘는 마나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규어의 파일럿으로 배치했고, 나, 탈리아, 스피아, 잭, 나이브 중위까지 총 5명으로 이루어진 임시 재규어 편대를 형성할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얼굴에 난 흉터는 왜 방치하고 있지?”

예전에 리틀보이도 그랬지만 방위군 병사들은 이상하게 흉터와 상처를 방치하고 있는 병사들이 많다. 인공 장기, 인공 피부, 인공 신체, 등등. 원하기만 하면 진짜 신체의 일부처럼 감쪽같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학기술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처를 마치 트로피처럼 장식하고 다니는 녀석들.

참고로 리틀보이가 한쪽 팔과 애꾸눈을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이랬다.

[멋지다.]

예의 그 어눌한 말투로 씨익 웃으면서 손 대신에 장착되어 있는 갈고리를 들어보이던 녀석.

“흉터가 난 다음부터는 병사들이 함부로 대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피부이식을 받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거친 녀석들을 다루는 데는 이런 인상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방치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그러면 그 상처는 곰과 싸우다가 입은 상처인가?”

포스만 보면 평범한 병사들에게 당할 수준이 아니라서 농담으로 그렇게 물어보았다.

“면도하다가 베였습니다.”

“……뭐?”

“수염을 0.01mm이하로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 3번 면도를 합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면도를 하는 도중에 꾸벅꾸벅 졸다가 실수로…….”

스컹!

묘하게 실감나는 이야기라서 질겁해 버렸다.

“설마 면도날 잭이라는 별명도…….”

“그런 겁니다.”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고 말았다.

‘괜히 고용했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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