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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그렇게 해서 제가 직접 프레이야님의 사도로 오게 된 거예요.”
스쿨드는 자신이 발할라에 직접 들어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뭔가요?”
“제가 북유럽 신화에 빠삭한 편은 아니지만 발키리가 오딘도 아닌 다른 신에게 얻어맞고 그렇게 함부로 다뤄지는 게 정상인 겁니까?”
내 말에 스쿨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부분은 신후님이 신경 쓰실 문제는 아니에요. 단지, 오딘께서 발할라를 정착시키려고 수많은 신들과 타협을 했다는 사실만 알려드릴게요.”
“그렇군요.”
오딘이 어째서 그렇게 발할라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발키리들의 처지가 그렇게 된 건 그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걸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아까는 왜…….”
어째서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냐고 물어보려다가 실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머뭇거리자, 스쿨드가 먼저 눈치를 채고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지금 이 속에 갇혀버렸거든요.”
“네?”
“설마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설마, 프로모션을 하기 직전인 사람의 몸이었다니…….”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영문을 몰라서 눈을 껌뻑거리자, 그녀가 한숨을 쉬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SS급이나, SSS급 능력을 얻는 사람은 그 분야에서 신적인 존재로 진화해요. 물론, 정말로 신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상태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환골탈태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격이 상승한다는 의미로 프로모션이라고 불러요.”
“어, 저는 그런 걸 경험한 적이 없는데요?”
SS급이랑 SSS급 능력을 다 가지고 있던 내 입장으로서는 황당한 이야기다.
“그건 신후님이 비정상이라서 그래요. 제가 기억을 살펴본 결과 신후님이 발휘한 능력들은 S급이거나 그 이하였거든요. 자기 능력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거든요.”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마지막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에요.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했을 때, 그 사람의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면 아무리 그 사람의 기억을 공유한다고 해도 능력을 전부 사용할 수는 없어요. 능력이라는 건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갈고닦는 거지, 남의 걸 훔쳤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빼앗은 능력의 도움을 아예 받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자기 스스로가 갈고 닦으면서 그 경지로 도달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능력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그 말은 전생의 제 육체가 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제 능력으로는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오딘께 보고하려고 했는데…….”
프레이야에게 잡혀버렸다는 소리다.
“그러면 프로모션 때문에 갇혀버렸다는 건 무슨 소리십니까?”
“그러니까 그게…….”
스쿨드가 설명하는 자초지종은 이랬다.
이델린 파우져는 아이돌 S급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SS등급으로 가는 프로모션 과정에서 지나치게 큰 환희를 느끼다가 쓰러져서 죽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껍질을 깨어 나가던 그 순간의 기쁨을 잊지 못하고는 환생하거나 발할라로 떠나지 않고, 자신의 몸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더니 스쿨드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자 얼씨구나 하면서 그녀에게 들러붙었다고 한다.
“그녀가 평범한 영혼이었으면 문제가 안 돼요. 하지만, 그녀는 프로모션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 중간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격을 가진 존재로 진화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끈질기게 달라붙으면서 저에게 아이돌 능력을 SS급까지 올려달라는 부탁을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왜냐면 프로모션을 했다가는 육체와 영혼의 괴리는 사라지면서 그녀의 신체가 지닌 모든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만, 제 속에 머물러있는 이델린양의 영혼도 저와 하나로 뒤섞여버리고 마니까요.”
“그렇다는 소리는…….”
“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거예요.”
스쿨드의 우울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프로모션을 통해서 SS급 아이돌 능력을 손에 넣게 된 그녀지만, 동시에 원래 영혼이 가지고 있던 발키리들의 능력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초 은하 데미 갓 뎀 아이돌의 탄생.
“도대체 어쩌다가 프로모션을…….”
“이게 다 그 빌어먹을 마커스 친위대인지 뭔지가 제 정신을 테러하는 바람에 몸의 주도권을 이델린양에게 빼앗겨서……아니, 아니에요. 제가 잠시 흥분했네요.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합시다.”
어째서인지 길로틴의 간증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이게 사실이라면 팬들은 좋아서 미치고 있는데, 정작 그 팬들을 혐오하고 있는 아이돌이라는 소리인데.
‘괜찮으려나?’
나는 깊이 파고드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프레이야님의 임무를 주시면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당분간은 불가능해요. 유체이탈도 불가능해졌고, 아바타의 신체를 고의적으로 훼손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그래서 이 육체가 자연사를 할 때까지는 꼼짝없이 이 속에 갇혀있어야 해요.”
그러면서 깊게 한숨을 쉬는 모습이 마치, 한여름에 곰 인형 탈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저씨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처럼 처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프로모션을 하면 환골탈태를 할 수 있지만 영혼들의 능력은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비슷한 효과를 일으키는 드라코니안 라이더도 같은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쿨드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좋은 정보를 얻었군.’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이제는 신후님이 궁금한 걸 물어보세요.”
나는 루치아와 한 이야기를 토대로 내 몸속에 들어있는 다른 영혼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먼저 질문해 봤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런 거 없는데요?”
“네?”
“그 루치아라는 사람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에요. 신후님의 몸과 영혼의 괴리가 유난히 심하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2번째 영혼이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고, 발견한 적도 없어요. 그런 게 있었으면 처음에 봤을 때 진작 눈치를 챘겠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루치아는 있다고 주장하는데 스쿨드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 보기에는 지금까지 두 사람이 보여준 성격이나 능력도 그렇고 거짓말을 할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사실일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현재 내 상태는 어떤 영혼이 내 몸속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바로 앞에서 그런 오싹(?)한 경험을 한 스쿨드의 예를 봤을 때, 어쩌면 상당한 격을 가지고 있는 영혼일지도 모른다는 소리.
어쩌면 목소리의 주인이 그 정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젠장, 이러다가 기싱 꿍 꾸겠네.’
“그 이외에 궁금한 건 없으세요?”
“아, 아니요.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나는 발할라에서 느끼고 있는 의문을 털어놓았다. 말하다보니 어째서인지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내용이 되었지만, 요약하자면 오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녀도 되는 건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사람을 죽여도 방어기제강화로 순식간에 제정신을 찾는 제가 무섭습니다. 가끔씩은 제가 저지르는 게 범죄인지 아닌지도 헷갈릴 때도 있고요. 겨우 이 정도의 일만 해도 그런데 오딘의 임무는……솔직히 독재자가 되라고 하다니 사람이 저지르고 다니기에는 너무 끔찍한 일들을 저지를까봐 두렵습니다.”
스쿨드는 내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다가 이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는 말씀인가요?”
“……그건.”
그렇게 되물어보니 할 말이 빈약하기는 했다.
“임무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내용이라는 걸 알고 받아들이신 게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밝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바꿔주시면…….”
“저한테는 그럴 권한이 없어요. 아니, 이건 발할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설령 오딘이라고 해도 임무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어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왜냐면 신후님의 임무는 류안 한 사람의 소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의 갈망이 반영되어 있으니까요.”
“시대의 갈망이라고요?”
“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지니게 되는 잠재적인 갈망들이죠. 그리고 그런 갈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면 시대 전체가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루어내려고 해요. 신들도 처음에는 그 갈망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뒀지만, 그 결과 갈망 그 자체가 끝도 없이 욕구를 탐닉해버리는 갈망의 괴물로 변질되면서 수많은 세계를 멸망시키고 말았어요.”
그래서 신들은 세계에 개입을 하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신들의 이해관계가 충돌을 일으키면서 라그나로크를 거쳐 발할라가 창조되었다는 소리다.
“그 갈망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 겁니까?”
“좋아요. 그러면 신후님이 알고 있는 역사에서 예를 들어볼게요. 르네상스시대,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등. 역사에서는 흔히 시대의 정신이라고 표현하는 게 바로 발할라가 긍정적으로 역할을 수행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에요. 물론, 그게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욕망의 노예로밖에 보이지는 않는 최악의 갈망이라고 그래도 어떤 식으로 풀어내는지에 따라서는 다음 시대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을 수가 있어요.”
“자양분이라는 말씀은…….”
“시대의 갈망이 해소되면 시대는 다음 갈망을 충족시키려고 움직여 나가요. 한 시대의 정신이 영원하지는 않은 것처럼. 그리고 그 시대에 쏟아져 나오는 선구자들이나, 천재들, 개척자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발할라에서 파견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시대의 갈망 자체가 만들어 낸 인물들이죠.”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해결되는 일 아닙니까?”
“앞서 말했듯이 갈망 그 자체가 욕구를 해결하게 내버려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변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건 시대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사고와 의식이 다양하면 다양해질수록 그런 경향이 심해진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죠. 그리고 사람들은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더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받아들이게 되요. 갈망 그 자체가 시대를 잡아먹어버리는 거죠.”
스쿨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어떤 역사학자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좋은 예와는 반대되는 이야기였지만, 히틀러가 탄생하지 않았으면 다른 히틀러가 태어났을 거라는 이야기다.
시대의 요구 앞에서는 반드시 대답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
“이 시대의 사람들이 독재자를 갈망하고 있다는 거군요.”
“안타깝게도 그래요. 하지만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부 시대가 발전하는 가운데 필요로 하는 과정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니, 신후님도 목적 자체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잃어버리실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이런 극단적인 임무는 세계를 멸망시켜버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신후님이 나서서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실 거예요. 세계의 멸망을 막는 전설의 용사라는 생각을 하셔도 좋고요.”
중2병을 자극해오는 전설의 용사라는 단어가 감미롭게 울려 퍼졌지만, 그것보다는 앞서 말했던 갈망의 괴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신기하게도 그 단어에서 6대 세력인 더 원이라는 집단이 떠오른다. 자신의 욕망에 가장 충실한 독재자 집단이라고 한다면 그들 이외에 누구를 꼽겠는가?
그게 시대의 갈망이 표면화된 괴물이라면 그 정신이 전 은하를 삼켜버리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는 말도 맞는 소리로 들렸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신후님이 임무를 포기하신다고 그래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유라디스 은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도전자는 신후님 혼자가 아니니까요.”
“다른 발할라 도전자가 있다는 겁니까?”
“맞아요. 하지만 그들과 대적하게 될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발할라는 모든 도전자들이 협력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율해주거든요. 물론, 신후님처럼 무지막지한 임무들을 받은 사람이라면 서로간에 오해가 생겨서 적으로 마주치는 경우들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왜 나만 난이도가 이래.’
“혹시 누가 제 임무를 가로채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 실패 조건 이외에 어떤 조건으로도 달성 실패를 뜨게 할 수는 없어요. 남이 먼저 이룩했다면 그것을 빼앗아오면 되는 일이죠. 그리고 한 번 달성했다는 기록만 남아도 시대의 갈망 또한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게 될 거예요. 한 번 클리어가 된 게임을 몇 번이나 다시 반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제야 나는 내가 멍청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사상이나, 정치, 또는 선악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시대의 갈망이라는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비극 앞에서 누가 가장 용기 있게 착한 악당이 될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다.
거기에 필요한 건 오직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을 수 있는 용기일 뿐.
나는 더 이상 발할라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프레이야님의 임무를 주세요.”
“알겠어요.”
그리고 나는 떠오르는 임무 창을 보면서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임무 창 확인’
1.스쿨드에게 사랑을 가르쳐라(성교 SS급이면 충분히 농락할 수 있을거야)
2.할 수 있는 한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면서 자신을 갈고닦아라.(목표 SSS급)
종교라는 걸 믿지 않았던 내가 독실한 신자로 변해버릴 정도로 완벽한 교리다.
‘좋은 시대정신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