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 ----------------------------------------------
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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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디스가 5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병으로 사망했고 아버지는 그녀를 고아원에 맡겼다.
그는 떠나기 전에 ‘제페토 왕자와 일레느 이야기’라는 동화책을 선물로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일레느처럼 열심히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너를 맞이하러 오마.]
그것은 아주 오래된 태초의 동화.
유라디스 은하가 막 탄생했을 때 일어났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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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 왕자와 일레느 이야기]
바이스 왕국의 제페토 왕자는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고 언제나 남을 의심하기만 하는 심술궂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면 주방장이 독을 탔다고 외쳤고, 의복이 안 맞으면 재단사가 천을 훔쳤다고 주장했습니다.
병사들은 왕자의 명령을 따라서 주방장을 죽이고 재단사의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죠.
왕자는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당해도 싼 잘못을 대신 저질렀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에 일레느라는 여인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페토 왕자를 사랑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주저 없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죠.
타인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들은 제페토 왕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네 말이 사실이라면 무슨 소원이라도 원하는대로 이루어준다는 마법의 털뭉치를 내게 가져오도록 해라.]
일레느는 그 말을 듣고 주저 없이 마법의 털뭉치를 찾으러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모험으로 몸은 피로에 지치고 지울 수가 없는 무수한 상처들이 생겨났지만, 왕자가 기뻐할 거라는 생각에 입가에서는 미소가 피어올랐죠.
하지만 마법의 털뭉치는 아무런 대가없이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주는 대신에 신체의 일부를 대가로 내놓아야만 했죠.
그 사실을 안 제페토 왕자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소원의 대가로 신체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네가 나를 죽이려고 이런 요사스러운 물건을 가지고 왔구나!!]
일레느는 왕자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간청했습니다.
[아니에요, 왕자님. 왕자님은 이 털뭉치에 아무것도 내놓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왕자님의 소원은 제가 대신해서 이루어 드릴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왕자는 겨우 노여움을 가라앉히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다. 그러면 성 안에 쓸 만한 주방장이 남아있지를 않으니 최고의 주방장을 내놓으라고 빌어라.]
일레느는 소원의 대가로 한쪽 팔을 내놓았습니다.
왕자는 그제야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옆으로 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레느의 한쪽 팔이 없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궁전을 짓고 싶은데 돈이 없다. 돈을 내놓으라고 빌어라.]
일레느는 자신의 다른 쪽 팔을 바쳤습니다.
왕자는 일레느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자님의 행복이 곧 제 행복입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제페토 왕자는 결국 그녀의 불행을 참아내지 못하고 다시 소원을 빌었습니다.
[전쟁을 해야 하는데 군대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내놓아라.]
일레느는 자신의 다리를 바쳤습니다.
왕자는 수많은 세계를 정복하면서 그녀에게 행복해졌냐고 물어봤지만 일레느는 같은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사이에 일레느는 마침내 마법의 털뭉치에게 바칠 수 있는 물건이 하나밖에는 남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왕자는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를 몰라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소원을 빌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도록 만들어라.]
일레느는 마지막 소원도 빌었습니다.
마법의 털뭉치는 일레느를 완전히 삼켜버리기 전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한 번도 왕자가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고는 빌지 않았습니까?]
일레느는 대답했습니다.
[마법으로 이루어지는 소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저는 왕자님이 스스로의 의지로 저를 사랑해주기를 바랬어요.]
일레느가 사라지고 왕자의 소원대로 온 세계에는 행복한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툼을 멈추고 악수를 나눴고, 거리로 뛰쳐나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면서 평화를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단 한사람, 제페토 왕자만은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일레느의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그녀를 그리워하며 또 그리워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의 찬가를 외치는 순간에도 그 혼자만은 그 자리에 남아서 슬픔에 빠지면서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떤 강력한 마법도 그의 슬픔을 치유하거나 달래주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일레느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일레느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에 빠지면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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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읽기에는 결말이 끔찍했지만, 특이하게도 이 동화는 태초의 동화라고 불리면서 유라디스 은하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 동화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슈발츠 제국의 건국과 어떤 상징적인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뿐.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으로 각인될 수 있었는지는 누구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단지 전생에서는 마치 성경과도 같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
그리고 그 동화의 내용이 한 소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는 사실이다.
쥬디스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일레느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참고 견뎠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 사소한 일에 좌절하거나 화내지 않고 항상 어른스럽게 행동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철이 들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깨우치면서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브라이트가 찾아온 건 그 때의 일이다.
쥬디스의 대견함에 매료당한 그는 그녀를 자신의 양녀로 삼았다. 언젠가 친아버지가 돌아오면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을 하고, 마치 제페토 왕자와도 같은 류안이라는 소년에 대해 말해주면서 그와 친구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쥬디스는 그 소년에게 첫눈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브라이트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류안이라는 존재를 알았으면 사랑에 빠져버렸을 정도로, 마치 스스로가 정말로 일레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하게 되었다.
쥬디스는 그가 단순한 애정결핍이라는 생각을 했다.
‘류안은 제페토 왕자처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깨달을 수 있도록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면 돼.’
그런 그녀의 생각을 모르는 류안은 두려워했다.
‘왜 물통을 뒤집어씌워도 화를 내지를 않지? 책 속에 죽은 동물의 시체를 넣어놨는데도, 베개 속에는 파충류까지 넣어봤다고? 도대체 저 년은 정체가 뭐야?’
어떤 장난을 쳐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 류안에게 친절을 베풀던 그녀는, 급기야 마르티나에게까지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을 막아나갔다. 덕분에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위기감에 빠진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는 그녀를 쫓아내기 위해서 착한 척을 하며 그녀의 약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가정의 분위기는 점점 더 화목해지면서 류안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웃어넘겨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자신의 존재감이 흐려진다는 기분을 받은 그는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면서 복수를 꿈꾸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는 쥬디스에게 완전히 굴복하는 듯이 행동을 했다.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는 더 강력한 짐승에게는 배를 드러내면서 복종의 표시를 보이는 듯 하지만, 사실은 자세를 낮추면서 그녀가 틈을 보이는 걸 기다리는 것처럼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쥬디스는 그런 류안의 행동이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지못해서 명령을 따르는 불량한 태도기는 했지만, 그것을 츤데레라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참지 못한 그녀는 어느 날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말았다.
그리고 절대로 밝혀서는 안 되는 제페토 왕자와 일레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가 자신만의 제페토 왕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것이야말로 류안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자신의 약점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
류안은 쥬디스의 고백에 대한 답변을 들려주겠다면서 그녀를 인적이 드문 낡은 창고로 불러냈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잔뜩 들뜬 그녀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창고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류안을 따르는 양아치들의 습격이었다.
그리고 류안은 쥬디스의 앞에서 어떻게 찾아내었는지 그녀가 서랍장 속에 몰래 숨겨놓았던, 동화책을 꺼내어 흔들어 대면서 라이터로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동화책이나 믿을 나이는 지났잖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그가 꺼낸 말이다.
“그렇게 나를 제페토 왕자로 만들고 싶으면 어디 한 번 네년의 몸뚱이로 즐겁게 만들어 보라고. 일레느양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쳤다는데 네 처녀쯤이야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잖아?”
류안 일행은 일레느를 요란하게 비웃으면서 옷을 찢어나갔다.
만약, 브라이트가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구하러 오지 않았으면 쥬디스는 그 날 하루 동안에 정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악몽과도 같은 끔찍한 순간이었다.
현실로 돌아온 쥬디스는 자신도 모르게 건틀렛으로 류안의 멱살을 잡아서 허공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웃기지 마. 내 동화속의 이야기는 네가 저주를 걸어버리고 떠나간 다음부터 이것도 저것도 전부 끝나버리고 말았어. 두 번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네 놈과 저 년을…….”
“커흑, 정말로……잊어버렸다면 아까부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류안은 쥐어짜듯이 입을 열었다.
“…….”
“으, 으으윽. 다시 말하지만 죽이고 싶으면 마음대로. 크윽, 해. 그걸로, 크으윽,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나는 그걸로 되었으니까.”
그를 잡고 있는 손이 미약하게 떨린다.
잠시 동안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눈치로 있더니 결국에는 류안을 다시 내려놓고야 마는 그녀. 라이트 세이버를 다시 갈무리하면서 여전히 처음과 다를 바 없는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를 용서하려는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처음부터 너를 찾아온 의도는 어디까지나 돈을 돌려주려고 온 것 뿐이니까. 그리고 다시 한 번 경고하는데 제르너가에 편지를 보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어째서……용서를 구하는 것도 안 된다는 소리야?!!”
쥬디스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님은 지금 네 편지를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뭐?”
“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병에 걸리고 말았어. 지금은 내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야. 의사의 말로는 정신적인 문제라서 어떤 계기로 호전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악화되면 더 이상은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해질 수도 있어.”
그녀의 말에 류안, 아니 신후는 뭐라고 답변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그녀가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채면서 막아버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네가 정말로 회개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경고하는데 네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어떤 사람들이 입은 상처는 가해자들이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법이니까…….”
쥬디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피닉스에 탑승하면서 우주로 돌아가 버렸다.
류안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상태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있는 탈리아의 이마를 어루만진다.
그동안 류안, 아니 신후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신나게 여자들과 놀았고, 모든 근심걱정을 털어버리고 쾌락에만 몰두하고 다녔다.
그 모든 것을 프레이야의 임무로 탓하면서…….
하지만 그런 모습이 혹시라도 탈리아에게 들키게 된다면……그녀는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얼마나 상처를 입을 것인가?
“혹시 내가 너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주려고 하는 건 아닐까……어떻게 생각해, 탈리아?”
기절해버린 탈리아에게는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방어기제강화만이 그의 정신을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켜주면서 임무에 다시 집중하라며 등을 떠밀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