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47화 (47/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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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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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V 행성 13지구의 방공포대.

사드 레이더를 통해서 고고도의 대공감시를 하던 마일런은 대기권에서 갑자기 나타난 비행물체를 발견하고 급하게 상관을 불렀다.

“아놀드 대위님! 우주군 소속으로 보이는 마장기 한대가 단독으로 대기권으로 돌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내버려 둬.”

“네?”

“우주군 소속이라며, 그냥 내버려두라고.”

태연자약한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질문하는 마일런.

“하지만 이건 엄연한 영공침범이 아닙니까?”

“흐아아아암.”

대답 대신에 늘어지게 하품을 한 아놀드는 아예 모자를 푹 눌러쓰면서 자신의 집 소파에 눕는 것처럼 의자에 기대버렸다. 그 태평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에 맥이 풀려버린 마일런은 감시를 포기하고는 아놀드를 향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우주군이라도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러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너무하면 어쩔 건데. 높으신 분들이 꼼짝도 하지 못하는 우주군을 공격하기라도 하려고? 아서라, 쟤들이 저러는 건 오히려 우리들 같은 떨거지들 입장에서는 좋아해줘야 되는 일이야.”

“네?”

“저 기체가 혼자서 내려오잖아.”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저렇게 오는 경우는 개천에서 용이 났을 때밖에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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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틴이 위험한 사상을 가진 소시오패스인 건 사실이지만 일처리가 빈틈이 없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를 행보관으로 임명한 이유는 창설부대의 모든 실무를 도맡으면서 부대를 내 방식대로 개조하라는 뜻.

그리고 그 사실은 새롭게 발령된 중대장의 정체를 보기만 해도 명백했다.

“필승! 나이브 중위!”

“필승. 오랜만입니다. 류안 중, 아니 원사! 이거 너무 빠르게 진급하시는 바람에 호칭에 대해서 익숙해지기도 힘듭니다. 하하하! 앞으로는 그냥 행보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한 나이브는 길로틴으로부터 내가 독립부대의 새로운 대장으로 발령 나기 전까지 전면적으로 협력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능구렁이가 보낸 사람이니 어쩐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도박을 하면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 그를 상대로 하는 건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너무 방심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어중간한 인물.

어쨌든 그런 인사 덕분에 나는 부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 박으면서 박히는……어쨌든 그런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었다는 소리다.

“후후후후후후후.”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꼭 악당처럼…….”

그런 내 모습을 살짝은 두려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클라크.

“아니, 이쯤에서 슬슬 내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일대기라도 하나 지을까 해서 말이야. 책 제목은 그렇지, 류안 전기 정도는 어떨까?”

“시대의 위인이 되시려는 겁니까?”

“가능하면 그렇게 되고 싶다는 거지. 뭐, 단순한 희망사항이니까……그나저나 어때? 네가 한 번 써볼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저서. 류안 전기의 저자, 클라크. 어때, 캬! 그림 좋잖아?”

“됐습니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거든요.”

“젊은 놈이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 아프고 힘드니까 청춘이다 모르냐? 닥치고 쓰기나 해. 혹시 알아? 내 일대기를 써 나가다 보면 그게 네 인생 최고의 역사적인 편찬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아프고 힘들면 환자지 무슨 놈의 청춘입니까? 게다가 굳이 나이를 따지자면 행보관님 보다는 제가 형인……에잇, 알겠습니다. 제목이야 그따위로 짓지는 않겠지만 행보관님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건 괜찮은 아이디어일지도 모르겠죠.”

투덜대면서도 일을 받아들이는 걸 보니 역시 착한 녀석이다. 얼마 전에 제시카한테 대쉬했다가 차였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뻤, 아니 슬프기는 했지만.

상당히 호되게 차였는지 녀석은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위어 버렸고 살짝은 더 음침해졌다.

벌컥!

“류안! 밖에서 지금 화물선이 도착했는데 재규어들이 도착한 모양이야!”

“그래?”

문을 박차고 들어온 탈리아의 말에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정비병들의 인도에 따라서 마장기들을 실은 화물 카트들이 화물선에서 실려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웅성웅성.

“저게 다 행보관 거라는데 사실이야?”

“장난 아니네. 추가무장까지 풀 옵션이잖아.”

“묵직한 게 중전차처럼 튼튼하게 생겼네. 저런 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걸까?”

병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감탄하는 걸 보니 저절로 뿌듯해 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장기 한 대의 가격을 마련하지 못해서 부들부들 떨었는데, 지금은 트라이져 강습함을 구입하고 새로운 용병들과 계약을 맺었는데도 1만 5천 골드라는 여유 자금이 남아돌고 있다.

참고로 쟈칼 4대는 방위군에서 보상금 60%를 지불하고 가져가 버렸지만, 그것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재규어 5대가 내 손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마치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

‘음하하하! 마음껏 부러워하거라 부하들이여!’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행보관님. 저쪽에서 뭔가 날아오는데 말입니다.”

“뭐가 날아오는데 그래?”

클라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이 좀 끼기는 했지만 가을하늘답게 맑고 쾌청한 날씨. 편대비행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클라크의 말대로 지평선 너머에서 무엇인가가 터무니없는 속도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아무래도 우주군의 기체 같은데 저렇게 붉은 색이라면……혹시 A급 마장기인 피닉스가 아닐까요?”

연맹의 지상군 마장기들은 육지동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고, 우주군의 마장기들은 하늘을 나는 동물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부분은 이름이 아니라 피닉스라는 기체가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

“피닉스라면……그, 죽음의 천사 소속이라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우주군 최강의 아마조네스들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특수부대 죽음의 천사. 여성으로 이루어진 특수부대 중에서는 가장 강력하다는 평판을 가지고 있는 마장기 부대다.

“그런 애가 왜 하필이면 지금 타이밍에 나타나서 우리 재규어들의 기를 죽이는 거야!”

“혼자서 다니는 걸 보니까 고향으로 자랑하러 다닌다는 처녀비행인가 보죠. 그런데 지나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요?”

“설마…….”

슈우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부대의 상공을 지나가버린 피닉스는 전투기 형태에서 인간형으로 모습을 변형하면서 부대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가벼워 보이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오리하르콘을 포함한 특수 합금으로 제작해서 완전무장을 한 타이거보다도 강력한 방어력과 지상에서 최대 마하 6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괴물 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기체.

“안 돼, 격납고에는 우리 재규어들이 제일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내 절규에도 불구하고 찬탈자를 빼앗아버린 루치아처럼 또다시 내 병기들의 첫 번째 경험을 강탈해버리는 피닉스. 설상가상으로 병사들까지 우르르 몰려가서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하고 흥분하는 어린아이들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야! 저게 연맹의 최신 병기라는 레일건인가?!”

“아르테미스의 거울이다! 저게 어지간한 빔 병기들은 그대로 반사해 버리고 단독으로 대기권 돌입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며?”

“꼬리는 왜 달려있는 거지? 멋지기는 한데 무슨 용도로 쓰는지를 모르겠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규어를 보느라 정신이 없던 녀석들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피닉스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고생고생해서 비싼 차를 구입했더니, 누군가에게 자랑하기도 전에 빨간색 스포츠카가 나타나서는 기를 죽여 버리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다들 눈이 높아져버리면서 내 재규어를 흉보는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시 보니까 재규어는 좀 그렇지 않냐?”

“그러게, 저렇게 덩치만 커가지고 어디에 쓴데? 속도도 느려터진 게.”

“역시 남자라면 빨간색이지. 으음, 이 삐가번쩍한 광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먼. 엔진 소리도 끝내주던데. 여기에 탑승하면 은하 끝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이런 배신자 새끼들…….’

감히 행보관 앞에서 저런 이적행위를 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복수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으려니. 피닉스의 조종석이 열리면서 탈착형의 건틀렛과 레깅스를 착용하고 있는 우주군 파일럿이 승강용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비켜라.”

척척척척!

차가운 한 마디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터는 병사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여성은 정확하게 나를 향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빛을 뿜어내는 강화 슈츠에 갈색의 긴 생머리가 인상적인 모습. 멀리에서 봐도 한 눈에 띌만한 미인인 그녀는 류안의 기억 속에서 본 적인 있는 인물이다.

‘설마…….’

“오랜만이군. 류안 중사. 아니, 얼마 전에는 원사로 진급했다고 그랬지?”

“쥬, 쥬디스.”

설마 내, 아니 류안의 여동생이 직접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제르너가에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설마 브라이트가 아니라 그녀가 먼저 찾아오고 말 줄이야.

“너와 여기서 떠들어대고 싶지는 않은데. 둘이서 대화할만한 조용한 장소로 갔으면 좋겠군.”

“어. 그, 그래. 이쪽으로 따라와. 내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클라크, 너는 격납고로 가서 재규어의 예비부품들이 제대로 도착했는지 수량 좀 파악하고 와.”

“알겠습니다!”

곧바로 대답을 한 클라크를 떠나보내고 쥬디스를 안내하자, 이제는 어엿한 경호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탈리아가 불안했는지 내 옆을 지키면서 사무실로 따라서 들어온다.

“일단은 앉아. 차를 내올 테니까…….”

“그럴 필요는 없어. 나는 이걸 돌려주려고 왔을 뿐이니까.”

쥬디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돈주머니를 집어던졌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쏟아져 버리는 골드.

반사적으로 거지 근성이 발동하는 바람에 허리를 숙여서 주워 담을 뻔 했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서 겨우 참아내고 말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발끈한 건 오히려 탈리아다.

“괜찮아. 애초에 내가 잘못한 일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슴 한 편이 아려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는, 허리를 숙여서 바닥으로 흩어진 골드를 주워 모으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더 분노하는 탈리아가가 소리를 지르면서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때는 가족이었는데 이따위로 하는 게 어디에 있다고 그래? 진짜로 강간당한 것도 아니고 미수로 그친 거라며! 이렇게 열심히 사과하고 반성했으면 최소한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줘야 할 거 아니야?”

“그만해, 탈리아.”

다시 한 번 말렸지만 그녀는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를 못했다. 냉정한 쪽은 오히려 쥬디스. 하지만 그녀 또한 탈리아 못지않게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파악할 수가 있었다.

“저 년한테 그 이야기를 한 거야?”

“내 새로운 여자 친구야. 맞아, 그 이야기를 알고도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이라고…….”

“그래? 누가 범죄자 출신들 아니랄까봐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기도 하셔라.”

“이 미친년이!!”

“그만둬 탈리아!”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쏜살같이 달려간 탈리아가 검은색의 징 박힌 가죽장갑을 착용한 주먹으로 쥬디스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도 여유롭게 흘려버리는 그녀. 연속해서 공격이 들어갔지만 최소한의 조그마한 움직임만으로도 마치 흔들리는 버들잎처럼 가볍게 피해내어 버린다.

“하! 꼴에는 우주군이시라 이거지? 그러면 이건 어때!!”

바닥으로 주저앉으면서 마치 나락 쓸기와 같은 공격이 들어갔지만, 그것마저도 한 발 물러서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버린 쥬디스는 건틀렛의 손아귀에서 푸른색 빛을 뿜어내는 반구체를 탈리아를 향해서 조준하기 시작했다.

반중력 충격파.

그 공격의 정체를 깨달은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피해!!”

쾅!

“캬아아아아!!”

벽에 대자로 박혀버린 탈리아의 입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허겁지겁 달려가서 휴대하고 있는 나노머신 치료제를 주사했지만, 이번에는 라이트 세이버를 뽑은 쥬디스가 마나 블레이드를 뿜어내면서 마치 사신처럼 다가오기 시작한다.

“우주군 병사가 방위군을 죽이면 우주군의 재판을 받는다는 거 알아? 웬만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나지. 하물며 방위군 나부랭이가 먼저 덤볐다면 어떤 판결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

정당방위.

물론 탈리아는 이제 방위군이 아니었지만 임시 교관이라는 명분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부대에서 머무르고 있으니, 처분은 비슷하게 적용되어 버린다.

쥬디스는 그 제도를 악용해서 탈리아를 죽이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나는 주저하지 않고 양팔을 뻗으면서 그녀를 가로막았다.

“네가 대신 죽어주려고? 그래 준다면 나야 고맙기는 한데.”

“그래, 네가 정말로 나를 죽이고 싶은 거라면 얼마든지 죽어줄 자신이 있어.”

“기사님이 따로 없네. 그런다고 내가 망설일 것 같아?”

“물론, 내가 류안이라면 주저하겠지. 하지만 내가 류안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무슨 개소리야?”

쥬디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노려본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도박이 성공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가능한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나갔다.

“내가 바로 네가 그토록 회개하기를 원했던 제페토 왕자야, 동화 속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네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차갑기만 하던 쥬디스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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