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43화 (4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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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끄아아악! 안 돼, 조금만 더하면 드디어 이기는 건데, 도대체 어떤 새끼야!!”

예상대로 과도한 폭력성을 드러내는 걸 보니 한시라도 빨리 녀석을 건전하고 올바른 길로 계도해나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VR헤드기어를 벗어던져버리는 녀석의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면서 서프라이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녕, 벤틀리 아침은 먹었니?”

“소, 소대장, 아니, 행보관님!”

“서운하게 왜 그렇게 무서워하고 그래? 우리 사이에…….”

“아, 저기, 그게 그러니까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옆에 있는 소형 pc를 쳐다보는 게 수상해서, 나는 통수 방지 대책으로 구입한 권총을 발사해 버렸다.

탕! 탕! 탕! 탕! 탕!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져버리는 소형pc.

‘탈리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나도 웬만큼 속사를 할 수가 있군.’

“끄아아아!!”

“나중에 더 좋은 거 사줄 테니까 징징거리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뒷덜미를 잡아끌자 마지못해서 따라오는 녀석. 클라크와 벤틀리, 두 사람을 대동해서 세단 쉽이 주차되어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에 지내는 건 어때?”

“병신 같은 건 여전하지만 그럭저럭 살만합니다. 오밤중에 누군가 갑자기 총질을 해대면 깜짝 놀라서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요.”

병신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걸 보니 클라크도 부대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아직 총소리니, 살인에 관련한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여전하다면 여전한 모습이지만.

‘그러니까 내 양심 미터기로는 제격이라는 소리지.’

방어기제강화 때문에 그런지 죄책감에 대한 감정이 너무 느슨해지는 바람에, 옆에서 누군가 조절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클라크를 내 당번병으로 부려먹으면서 가깝게 둘 생각이다.

탈리아는 제대했고 리틀보이는 폭발물처리반으로 배속할 예정. 내 사설 용병인 불량품콤비를 제외한 나머지 소대원들도 정식으로 자신에게 맞는 보직으로 재편하면서 3소대 자체가 사라져버리게 될 거다.

유격부대로서의 체제를 갖추는 과정이니 과거의 동료들과 소원해진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벤틀리만은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오우, 예! 누님 멋져요!!”

봉춤을 추는 아가씨들을 발견하자마자 너무도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환호성을 지르는 녀석. 덕분에 분위기가 깨져서 병사들이 도끼눈을 뜨면서 노려봤지만, 옆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순한 양들처럼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겨우 15살밖에 안 되는 미성년자가 이렇게 끔찍한(?)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더 이상은 벤틀리를 이런 장소에 내버려둘 수 없어.’

지금 당장 우리 아이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절대로 뒤통수를 맞은 걸 복수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클라크의 배웅을 받으면서 세단 쉽의 운전대를 잡은 나는, 백미러로 비치는 벤틀리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

아까 전까지만 해도 스트립 댄서들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벌쭉하던 녀석이 둘만 남으니까 숙맥으로 변해버린다.

그런 녀석을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용건을 꺼내들었다.

“야, 배신자.”

내 말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화들짝 반응하는 녀석.

“무, 무슨 소리에요? 배신자라니, 그런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벌써 다 조사하고 왔어, 인마. 뭐가 타이거의 자세제어장치를 망가트릴 수 있습니다야? 시스템 관리자들한테 물어봤더니, 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냐고 되물어보더라.”

궁지에 몰기에는 충분한 조사였지만 자신의 목숨이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끝까지 인정을 하지 않으면서 변명을 이어나간다.

“걔들이 뭘 안다고 그럽니까? 저 벤틀리 파커라고요. 공화국의 물류대란을 일으킨 천재 소년 해커가 접니다. 그 새끼들이 전부 덤벼봤자 저한테는 게임도…….”

더 들어주면 피곤해질 것 같아서 말을 가로채어 버렸다.

“혼내려는 거 아니야. 널 처리하려고 했으면 한참 전에 쏴서 죽였을 테니까. 바스코녀석이 나한테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머리통의 일부만 남겨놓은 신체부위 전체가 핸드캐논으로 지워진 녀석.

그 끔찍한 모습을 떠올렸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움츠리던 녀석은 이내, 포기하면서 힘없이 입을 열었다.

“……저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오늘부터 내 아들로 삼으려고.”

“……네?”

“내가. 니 애비다.”

두둥!

충격적인 고백에 넋이 나가버린 녀석을 향해서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정확하게는 보호자 대리인이 된 거야. 그러니까 대부라고 부르던지 아버지라고 부르던지, 아빠, 또는 파파♡라고 부르던지는 마음대로 하라고.”

“잠깐, 잠깐만요! 그런 끔찍한 호칭들은 둘째 치고 애초에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좌석의 시트를 붙잡으면서 얼굴을 들이밀어오는 녀석의 이마를 뒤로 집어넣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설명을 해 나갔다.

“네놈이 왜 그렇게 삐뚤어졌는지 조사해봤어. 가족들은 물론이고 맡아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천애고아라면서? 그러니까 애새끼가 별 대단한 범죄도 안 저질렀는데 보석금도 지불하지 못하고 이런 데서 빌빌거리고 있는 거지.”

“!!”

벤틀리 파커.

가온 공화국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설비를 지닌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사교성이 빵점이라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친구라고는 VR게임밖에는 없었던 녀석.

그러는 도중에 어느 날 온라인 게임에서 치트를 쓰는 블랙 해커를 만나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녀석에게 게임들에 대한 온갖 크랙킹들을 배우기 시작한 게 녀석이 해커가 된 계기다.

게임 속에서만이라도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싸워야 한다고 믿는 나한테는, 용서할 수 없는 비겁한 행동이지만 녀석의 사정을 조금 더 파고들어 보았더니 묘한 동정심이 생긴다.

알고 봤더니 녀석은 크랙킹보다는 친구와 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것.

하지만 그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경찰에게 잡힌 것인지 불행한 일을 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춰버려버린 친구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벤틀리는 정보 사이트를 뒤지게 되었다.

그러는 도중에 친구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한 운송업체의 보안카메라를 해킹하다가 덜미를 잡혀버렸다는 거다.

크랙킹 전과는 줄줄이 튀어나왔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수준의 범죄. 그런 녀석을 범죄자부대로 보내버리는 방위군의 행위 자체가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처사였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복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물론, 복수만 포기한 셈이지만.’

녀석 나름대로는 3소대에 나름대로 정을 붙인 모양이지만, 곧 해체될 예정인데다가 아직까지도 친구를 찾는다면서 가끔씩 위험한 장소를 해킹하는 모양이라 그냥은 내버려 둘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법원에 가서 네 코딱지만한 보석금을 지불해 줬다. 그러니까 넌 오늘부로 전역이라는 거야.”

“그거랑 행보관님이 제 아버지가 되는 거랑은 무슨 상관입니까?”

“뭐기는 뭐야. 동시에 보호자 대리인도 신청했다는 소리지. 원래대로라면 네 동의를 구하는 게 절차에 있었지만, 우리 공화국이 자랑하는 자본주의 행정 앞에서는 돈만 지불하면 간단하게 인간관계를 증명하고 처리할 수 있는 쉬운 절차니까. 그렇게 해버렸다는 거지. 그러니까 어서 파파라고 부르렴, 아가♡”

“히이익!”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도망치는 녀석을 보고 어째서인지 꿈속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 하려는 일도 그렇고 묘하게 꿈과 관련되어 있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잠시 생각에 빠진 녀석은 이내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유의 몸이라니 나쁘지는 않네요. 그러면 저는 이제 민간인이라는 소리 같은데 그만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좀 볼일이 있어서…….”

보아하니 이대로 내버려두면 다시 한 번 친구를 찾으러 어디론가 떠날 생각인 모양이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아니, 안 돼. 제대는 해도 너는 가석방된 신분이라서 내 보호감찰이 필요하거든.”

나는 녀석에 줄 선물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예쁜 자식일수록 강하게 키우라고 했지.’

너무 강하게 키워서 딸내미가 바스코로 성장해버리는 꿈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나는 방어기제강화를 사용하면서 그 모습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푸슈욱-!

우리들이 착륙한 장소는 초원 전체의 울타리가 넝쿨 식물로 뒤덮여있는 드넓은 목장. 한쪽에서는 가을걷이를 마친 짚단들이 널브러져 있고, 텃밭에서는 와글와글 떠들어대면서 노동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보인다.

“엉엉.”

“너무 힘들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 살려주세요.”

우리 부대원들도 저렇게 잘 부려먹어야 할 텐데.

“여기는 왜 왔습니까?”

“내려 보면 알아.”

밖으로 나오자 세단 쉽을 발견한 농부 복장의 황소 한 마리가 걸어서 다가온다.

워낭 족.

생긴 게 꼭 1등급 한우처럼 생긴 이 종족은 문명의 이기를 거절하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자족하는 정직하고 온순한 이들이다.

“어서오세욤므. 여기는 모두가 함께 공동으로 생활하는 자급자족의 공동체, 정신과 시간의 목장입니욤므. 이 공동체 소장인 홀슈타인욤므.”

황소라기보다는 젖소 같이 느껴지는 묘한 억양이 은근히 귀엽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트라우마가 떠올랐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리는 벤틀리.

“행보관님? 저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도대체…….”

나는 홀슈타인 씨에게 준비해 온 서류들을 넘겼다.

“우우우우~.이 소년이 앞으로 3년 동안 공동체를 위해서 일할 노예, 아니 학생이군욤므. (소근)약속했던 돈은 계좌로 보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욤므.”

“하하하! 정말로 말이 잘 통하는 분이시군요.”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악수를 나누는 우리들을 지켜보면서 뜨악한 표정을 짓는 벤틀리.

“자, 잠깐만요 행보관, 아니, 아저씨! 지금 저를 팔아넘겼다는 거예요?!!”

“팔아넘기다니 무슨 소리야. 여기는 숙식제공에 기본교육까지 제공해주는 훌륭한 공동체라고. 단지 일이 조금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너처럼 심각한 게임 폐인은 이렇게 물 맑고 공기 좋은 장소에서 건강한 생활을 해야만 해. 이건 어디까지나 파파♡의 정당한 권리니까 말이야.”

보석금보다 조금 더 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말, 진짜, 진심으로 녀석을 위해서 계획한 일이다.

‘코가 조금 자랐네.’

“정말로 훌륭한 아버님이에욤므!!”

쿵쿵!

방방 뛰면서 내 말에 동조하는 먹음직, 아니 듬직한 우리의 안심 한우를 보고 있으려니 벤틀리의 앞날도 밝다는 생각이 든다.

“아, 안 돼. 나는 이 장소를 빠져나가야겠어!”

도망치려고 시도하는 벤틀리를 한 손으로 가볍게 붙잡고 질질 끌면서 싱글벙글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한우. 힘내라 한우! 덕분에 오늘 저녁 우리들의 식탁도 만찬이다!

벤틀리의 한 맺힌 절규가 외쳐버린다.

“야, 이 개 같은 새끼야! 여기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네 통장계좌를 몽땅 털어버릴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활기찬 친구네욤므. 걱정하지 마세욤므. 게임 중독이나 험한 말투 같은 건 여기에서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3개월 정도 건강한 풀과, 풀과, 풀을 먹다보면 저절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우아아아아악!!!”

끌려들어가면서 처절하게 외치는 벤틀리지만 그 충격으로 차원에 구멍이 생길 리도 없었고, 이 근처의 반경 200km는 전부 자연공동체의 소유라서 개인 쉽이나 차량이 지나다니는 일도 없다.

컴퓨터나 전화기도 없고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있는 클로즈드 써클!

완전범죄의 무대!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부터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충실한 노동과 비타민이 풍부한 유기농 식단에 찌들어가며, 몸도 마음도 건전하게 타락해가는 녀석의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말인가!

‘3년 뒤의 성장을 기대하겠다. 벤틀리여!’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녀석을 보내준 나는 이번에 새롭게 계약을 체결한 해커 용병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네 친구는 이렇게 보냈는데. 정말로 이걸로 괜찮겠어? 레드 폭스.”

[넵! 잘 하셨습니다. 고용주님. 저 새끼는 제가 일부러 떠난 줄도 모르고 쓸데없이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바람에 지켜보면서도 계속 조마조마했어요. 이런 극단적인 조치가 아니면 정신을 차릴 놈이 아니니까, 확실하게 해버려야죠.]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보여주고 가는 게…….”

[동갑내기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녀석의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냥 한 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싶다고나 할까.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네 전공이 게임 크랙커라고 하던데, 대전용 VR게임들도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거야?”

[뭐 각종 수치랑 아이템 코드 같은 것들이나 좀 만지고 노는 정도에요. 왜 그러는데요?]

“좋아. 그러면 그 치트라는 걸 사용해서 제대로 한 판 제대로 붙어보자고!”

[알았어요. 고용주시니까 제가 어드벤티지를 좀 드려서 밸런스를 맞추면…….]

“아니, 그 반대야. 네가 존재하는 모든 치트를 사용해서 나한테 덤벼오라는 소리니까.”

[……네?]

그렇게, 나는 미니게임의 5단계를 쉽게 클리어하기 위한 연습상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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