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 ----------------------------------------------
지상편
“아빠!!”
밭에서 한참 일을 하고 있으려니 쪼르르 달려온 동물귀의 꼬마아가씨가 내 다리로 달라붙는다.
겨드랑이를 붙잡고 번쩍 들어 올리자 보조개가 활짝 피어나면서 꺄르르 웃음을 터트려오는 나의 사랑, 나의 태양.
“우리 공주님 식사하셨어요?”
“다 먹었쪄요!”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해온다.
“정말로 다 드셨어요? 아이구, 대견하시기도 해라.”
“헤헤헤.”
마시멜로우처럼 부드럽고 뜨거운 뺨에 쪽하고 뽀뽀를 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 나도 안아줘!!"
"나도, 나도!!"
사랑스러운 동물귀 아이들에게 둘러싸이는 행복이라니.
"허허허, 이 녀석들이."
"욘석들! 아버님 일하시는데 방해하면 못써요!!"
새참을 머리에 이고 온 화영이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들을 쫓아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대면서, 곧장 내 품속으로 안겨드는 그녀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고 귀여운 동물귀 미소녀다.
프레이야님 감사드립니다.
“식사하세요, 서방님♡”
“음, 그러지.”
화영이 첫 아이를 출산한지도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쟈칼과 재규어를 팔아치워서 마련한 자금으로 청풍명월의 사람들과 함께, 길로틴의 눈을 피해서 밀수선을 타고 해외로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그래도 잠시 동안은 경찰과 헌병대의 눈을 피하느라 이런저런 고생을 겪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행성점령전에서 패배해버린 가온 공화국이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에 보석금을 지불하자 현상수배상태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주에 성공한 땅이 전생에서는 화성 규모의 조그마한 농업 행성 바이락스.
이곳에서 나는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서, 3년이 지나자 오딘의 임무는 취소되어버렸다.
하지만 프레이야의 임무는 그대로 남아서 발할라에서 인생을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화영과, 화영을 따라서 정착해 온 다양한 동물귀 미소녀들과 다양하게 즐기면서 신나는 인생을 보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중간에 새로운 임무를 전해주기 위해서 찾아온 스쿨드의 말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런 인생에 만족하시나요?]
[만족합니다. 첫 출산에서만 6명이나 되는 보물을 손에 넣었으니까요……지금은 벌써 수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생기는 바람에 이제는 가족들을 돌보는 일만 해도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시다면야 상관은 없지만……그렇죠.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네요.]
그 말을 마치고 떠나버리는 그녀.
굉장히 신경 쓰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었지만, 상당히 초췌해진 모습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참고로 오늘은 내 첫째 딸의 결혼식이다.
따라라 따라라라♬
어째서인지 굉장히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면서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뒤돌아 서 있는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강아지 귀와 꼬리를 힘없이 축 늘어트리고 있는 그녀는 한 눈에 봐도 기뻐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주마등처럼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바캉스에서 살짝 야한 이벤트를 즐기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히고, 그러다가 질려서 무사수행을 시키고, 무사수행을 시키고, 무사수행을 시켜서 무신을 쓰러트리고…….
최선을 다해서 공주님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나날들.
그 지난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눈에서 왈칵하고 눈물이솟구쳐 오른다.
“이제는 정말로 다 컸구나.”
“아버님.”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니?”
“그럴 수는 없어요!”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면서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그녀, 아무래도 나와 마찬가지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고 하자 몸서리를 치면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건드리지 마세요!”
“애야.”
“저, 저는……도저히 못하겠어요. 아버님! 어리광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버님의 품을 떠나고 싶지가 않아요!”
어머나 잠깐 젠장.
설마 이것은 극소수의 성벽을 가진 남자들만이 수많은 고행과 시련을 넘어서 도달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고는, 그 전설의 엔딩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인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버리는 내 뺨을 후려치면서 이성을 되찾으려고 애썼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신랑이 얼마나 신사적이고 좋은 사람인데 그러는……설마,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긴 거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제 가슴속에서 숨겨왔던 터져나갈 것 같은 이 충동을 더 이상은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작적으로 외쳤다.
“아, 안돼. 제발 그러지마!”
‘어라? 내가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지.’
그 부분부터는 뭔가 이상했다. 마치, 지금까지는 내가, 내가 아니었던 듯. 알 수 없는 오한이 솟구쳐 오르면서 전신으로 소름이 쫙 피어오른다.
내 절규가 무색하게도 뒤돌아 선 그녀가 질주해 들어오면서 도망치려는 나를 사로잡는다.
터무니없는 압박감에 전신이 찌그러질 것 같은 고통이 나를 옥죄어 온다.
무시무시한 근육질의 팔뚝과 초롱초롱한 눈망울과는 대조되는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먼 과거에 내 손으로 죽였던 남자의 얼굴을 너무나도 닮아져 있었다.
“소방차는 빨간 불에서도 멈추지 않아요. 아버님!”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정성들여서 키운 딸이 바스코로 성장했을 리가 없어!!!!!’
----------------------------------------------------------------------------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잠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 숨을 헐떡거렸다. 이불과 전신은 땀으로 목욕을 한 것처럼 흥건해졌고, 심장은 고장 난 것처럼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던 나는 주변을 헤집고 다니면서 미친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로드, 로드를 해야돼……천왕성님 제발…….”
급하게 방어기제강화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는 건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아 시발, 쿰.’
“괜찮아?”
새하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요리를 하던 탈리아가 깜짝 놀라면서 내게 다가온다.
“어, 어.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녀가 타주는 꿀물을 한 잔을 벌컥 들이마시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급하게 주변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현재 나는 군용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평수로는 15평. 가지고 있는 돈에 비하면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값이 쌌고, 몇 개월만 지나면 육군사관학교로 떠날 예정이라서 잠시 동안만 머무를 예정이다.
특별한 가구라고는 침대와 식기, 옷장, 조그마한 탁상, 탈리아의 운동기구들, 그리고 ‘알람 누르면 뒤진다. 진짜로’라는 쪽지가 붙어있는 리틀 보이의 선물이 전부. 그래서 언제든지 짐만 싸면 떠날 수 있는 방랑자의 집 같다.
참고로 탈리아의 므흣한 의상들은 최근 며칠 동안에 즐긴 몇몇 옷을 제외하고는 전부 새롭게 구입한 트라이져 강습함에 실려져 있다.
‘그래, 이게 내 인생이지.’
앞길이 구만리처럼 펼쳐져있는 인생.
한 곳에 정착하기에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았다.
화영이 한 의미심장한 말의 의미는 부부가 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이다. 다행스럽게도 성적인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수인족은 질내사정을 받자마자 임신을 한다거나 그러는 뒤통수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청풍명월에서 상대한 여자들 중에서 유독 그녀만이 임신방지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정말로 임신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충격과 공포로 덜덜 떨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는 진짜 조심해야겠어.’
여자들과 잠자리를 할 때는 항상 뒷일을 생각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콘돔을 끼고 하는 건 취향이 아니지만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만 하는 것.
특히나 화영은 묘하게 내 아이를 가지는데 열정적이라서 요주의 대상이다.
‘그나저나 내 딸이 바스코에 스쿨드의 정체가 이델린이라니…….’
청풍명월에서 잠시나마 존의 상태에 진입할 수 있었던 나는 내 몸속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영혼의 스킬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 스킬의 이름은 예지몽(F)
등급이 낮아서 실현될 가능성이 낮고 언제 예지몽을 볼지 모른다는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처럼 황당한 경우에는 개꿈이 틀림이 없다.
‘아니, 틀림없게 해주세요. 제발.’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진정시켜 나갔다.
“아까부터 왜 그래? 멍하니 넋 나간 사람처럼…….”
탈리아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이 만들어 주는 샌드위치를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집어먹고 있는 게 어지간히도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나는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사랑해.”
“아, 안 돼. 하루에 딱 3번만 하자고 했잖아!!”
오오오.
이것이 파블로프의 개의 효과인가!
정색하는 것 치고는 티셔츠 속으로 비추어지는 속살이라거나,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맨 다리가 유혹하는 것처럼 하반신으로 피를 몰리게 만든다.
‘좋아, 정신도 진정시킬 겸 한 판만 하도록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금슬금 다가가려고 하니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도망쳐버리는 그녀.
쾅!
“진짜로 안 된다고 변태 새끼야! 오늘 그 날이란 말이야!!”
AH-SHIP.
벽에 달라붙어서 으르렁대는 탈리아를 보면서, 아쉬움을 뒤로한 나는 아침식사를 대충 마무리하고 정장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오늘은 또 어디로 가는 거야?”
“잠깐만 벤틀리 좀 만나고 올게.”
“그 꼴로?”
“그럴 용무가 조금 있어.”
대충 둘러댄 나는 아직까지 렌트하고 있는 세단 쉽을 운전하면서 병사들의 숙소에 도착했다.
새로운 부대시설이 거의 완공되어가고 있지만 병사들의 노동력을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긴 휴식으로 방치되어진 병사들의 숙소는 마치 쓰레기 집하장을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생활쓰레기에서, 음식물 찌꺼기, 더러운 구정물, 파리가 꼬인 체로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속옷들, 술병과 여자 속옷에 마약 찌꺼기 등등.
‘개판 5분 지났군.’
대부분이 범죄자 출신의 병사들이라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숙소를 통째로 슬럼가처럼 만들어버릴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새롭게 들어온 일반 병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범죄자출신 병사들은 휴가를 포기하고는 여기로 틀어박힌 모양.
“와, 씨! 이 세단쉽은 도대체 누가 끌고 온……추, 충성! 행보관님!”
세단에서 내리는 내 얼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면서 경례를 하는 병사들.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은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져서, 그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계급 이상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덕분에 이 부대에서만큼은, 길로틴과 호각이거나 그 이상의 악명을 자랑하는 셈.
“벤틀리는 어디에 있지?”
“행보관님!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때마침 나를 발견한 클라크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기 때문에, 나는 녀석을 대동하고 벤틀리의 방으로 향했다. 기분 탓인지 녀석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야만 할 것 같은 압박 같은 시선들이 쏟아졌지만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세단 쉽을 그들 사이에 남겨놓고 떠나는 게 살짝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방범 대책은 확실하기 때문에 그냥 두고가기로 했다.
미치지 않은 이상은 내 물건을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아니, 이 부대에는 미친놈들이 많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개수작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숙소 내부로 들어가자 마치 클럽처럼 현란한 싸이키 조명과 음악, 그리고 어디에서 데려왔는지 봉춤을 추고 있는 스트립 댄서들의 모습을 감상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개중에는 벌써 여자들과 물고 빨고 하는 녀석들도 있다.
그들 전부를 직립부동으로 일으켜 세우는 소소한 기적을 행사한 나는, 대충 인사를 받아주면서 벤틀리의 방문을 두드려대었다.
똑똑.
노크를 시도했지만 대답은 없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는 녀석.
“죽엇, 죽어! 크하하하! 이 몸께서 바로 화염의 지배자라는 말씀이다 레드 폭스 빌어먹을 년아! 좋아, 그렇지. 거의 다 잡았어!”
나는 녀석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VR머신의 전원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