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38화 (38/291)

0038 ----------------------------------------------

지상편

그로부터 1시간 정도가 흘렀을 무렵에 카운터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던 화영의 통신 단말로 진동이 왔다.

[미호]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짓는 그녀.

‘그러면 그렇지.’

“여보세요. 이제 끝났니 미호야?”

[사, 살려주세요. 언니……흐갸아아악!]

“미. 미호야?”

뚜- 뚜- 뚜- 뚜-

비명 소리를 마지막으로 통화는 끊어져 버렸다.

화영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불길한 상상에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겨우 8명으로 무슨 자신감이지?]

‘설마 성행위가 아니라 그 아이들을 고문하려고 그렇게 말한 거야? 이런, 바보 같은!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도발에 넘어가는 바람에 신원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남자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스스로의 경솔함에 울화가 터졌지만, 지금 중요한 건 자책하는 게 아니라 그녀들을 한시라도 빨리 구해내는 일이다.

“경비원! 경비원!”

대기실에 있는 경비원들을 급하게 소집한 화영은 신후가 있는 방을 향해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통로에서 갑자기 검은 덩치들과 마주친 고객들은 겁에 질려서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녀는 그런 모습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다면 맹세컨대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리겠어.’

비록 이런저런 사정으로 화류계에서 몸을 팔고는 있는 그녀들이지만,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면서 그녀를 정말로 친언니처럼 따라주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일을 무리하게 시키지도 않았고 몸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새디스틱한 플레이는 거절하라고 말했다.

덕분에 몇몇 고객들은 클레임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단순하게 성노예처럼 몸을 혹사키는 행위보다는 풍류와 기예로 손님을 접대한다는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면서 성장해 온 청풍명월이다.

[으하악, 하앙! 꺄악!]

방 안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비명소리에 확신을 가진 화영은 입술을 깨물고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지금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에요!!!”

“아학, 하악, 응긋, 가, 그악, 안돼, 안돼요. 갑니다, 가버려요오오옷!!”

두근, 두근, 두근!

절정에 도달한 미호가 다리를 양쪽으로 길게 뻗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허리를 단단히 붙잡으면서 질내로 정액들을 쏟아내고 있는 신후.

바닥에는 다른 2명의 여인들이 기절한 상태로 음부에서 정액들을 토해내고 있었고, 다른 여성들은 도대체 무엇을 목격했는지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뭐야, 네가 다시 해달라고 해서 해주는 건데 겨우 이 정도를 버티지 못하면 어떻게 해?”

“죄, 죄송해요. 하지만 쾌감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아, 됐고. 또 할 거야. 말거야? 아까는 뭐 하루 종일 연속으로 할 수 있다고 자랑했던 주제에 꼬락서니하고는…….”

벌떡!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갖추는 괴생명체(?)의 위용에 미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빨리…….”

“떠들 정신은 있나 보지? 그러면 바로 시작하자고!”

“아, 안 돼요. 조금 전에 가버렸는데……흐아아아악!”

“…….”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화영과 경비원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특히 화영은 평생 처음으로 보는 미호의 약한 모습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한 편, 신후는 도망치려는 미호를 사로잡고 용두질을 하고 있다가, 행위를 구경하고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외쳤다.

“뭐야, 단체로 구경이라도 났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화영이 허겁지겁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엄청난 실례를…….”

“틀에 박힌 사과는 필요 없고, 남자새끼들은 전부 나가고 너는 좀 남아서 혼나야 되겠어. 그래야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싸움을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

---------------------------------------------------------------------

‘루치아의 말이 사실이었군.’

새삼스럽게 자신의 능력의 위력을 확인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겉으로는 연기를 위해서 망나니짓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심사가 복잡한 상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 계기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얼마 전, 헌병대의 본부에서 다시 한 번 루치아에게 면회를 신청했을 때의 일을 돌아봐야만 한다.

길로틴은 내가 루치아를 만나는 걸 수상하게 여겼지만 수련을 위해서 조언을 받으러 왔다는 말에 의외로 순순히 요구를 받아들여 줬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때 당시의 나는 슬럼프에 빠져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퀭한 눈으로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그런 겉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낀 모양이다.

게다가 속마음이야 어쨌든 그와 나는 동맹 관계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무작정 내 요청을 무시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게다가 준장이 된 후로 일까지 바빠졌는지 루치아의 면회 자체를 입회하지 않았다.

‘상태 창 확인!’

이름:류안 제르너

직업: 가온공화국 방위군 소속의 원사(진)

신체능력

체력: 160/160 마나: 182/182

근력: 33 민첩: 46 지력: 89 매력: 52(매력보정을 통해서 증가하고 있다.)

계승하고 있는 능력: 게임(SS), 성교(S)

기술: 마나(E), 사격술(C), 격투(F), 근접전(F), 카리스마(E), 전술(B), 순간 가속(F), 말재주(C), 마장기 조종술(S)

고유 능력: 방어기제강화, 기억재생, 임무확인, 미니게임, 퀘스트 추가보상, 상태 창 확인, 절륜, 매력보정, 성감대 추측.

현재 내 능력치는 정상이 아니다.

육성 게임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노가다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체능력은 여전히 엄백호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지력은 높으니까 진궁 정도는 된다고 해야 할까?

스킬의 경우에도 가장 공을 들여서 노력한 격투기와 근접전에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는데, 정작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스킬들은 갑자기 레벨업을 해 버렸다.

애초에 순간 가속이나 마장기 조종술처럼 사기적인 스킬을 갑자기 각성해버리는 것도 그렇고, 성장하는 방식들에 대해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그 이유를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육성 방침을 결정하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져버렸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루치아에게 상담을 받기로 했다.

그녀라면 누군가에게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도 않을 테고(술만 마시지 않는다면)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전사인데다가, 무엇보다 나의 상태에 대해서 감을 잡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이름으로 나를 부를 리가 없겠지.

“나를 반쪽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지?”

“이제야 물어보는 건가, 빨리도 찾아왔구나. 반쪽이여.”

마치, 처음부터 내가 찾아올 걸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내게 부족한 게 뭔지 알고 있다는 거지?”

“물론이다. 그전에 크흠, 계속 묶여있었더니 목이 마르구나.”

“물이라면 여기에…….”

“눈치 없는 것. 담화를 나누려면 차를 마시는 게 기본 예의가 아니냐? 원래는 술이 더 좋지만, 드림 이터를 쓰러트리기 전까지는 금지하기로 했으니 차를 가져 오도록 해라. 참고로 저기에서 감시하고 있는 중위인지 뭔지 하는 작자가 자주 마시는 케모마일 차가 있으니, 가능하면 그걸로 가져오거라!”

갑작스러운 퀘스트를 받았지만 나는 어드벤처 게임처럼 복잡하게 머리를 쓰는 대신에 자본주의적이고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간편하게 해결을 봤다.

바로 셧업 앤 테이크 마이 머니.

양손이 묶여버린 바람에 내가 직접 컵을 내밀어서 마시게 해줬더니, 조그마한 입술로 뜨거운 차를 호호 불면서 식히면서 마시는 모습이 상당히 귀엽게 느껴졌다.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한 소녀로 보이는데 말이야.’

“후-. 역시 차를 마시니까 머릿속이 맑아지는구나. 그러면 선물을 받았으니 네가 반쪽이인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주기로 하마.”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던 그녀가 이내 터무니없는 사실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네놈 다른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있지?”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방어기제강화로도 막을 수 없는 충격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다. 순간적으로 발할라에 대해서 들킨 건가 싶어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경고음은 나오지 않는다.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속일 생각은 하지 말거라. 나는 아르카리우스님의 용안을 물려받고 있는 몸. 네놈의 나디와 챠크라(nadi & chakra)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중2병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녀가 말하니까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혼移魂자라는게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기는 하지만, 레어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가디언들이 몇 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경험했지. 물론, 네 경우에는 상태가 더 안 좋기는 하다만…….”

“상태가 더 안 좋다고?……가능하면 쉽게 말해주면 안 될까?”

내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알겠다. 살짝 어려웠다면 간단하게 설명해 주지.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혼이 바뀐다는 건 극심한 요요현상에 시달리는 거라고 볼 수가 있다.”

다이어트로 급격하게 살을 빼면 조금만 방심해도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요요현상.

“사람은 원래 자신이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지. 그건 다른 영혼의 자아가 신체를 지배했을 때 더 극명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신체와 영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영혼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신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는 거지. 물론, 시간이 지나면 차츰 익숙해지기는 하겠지만 영혼이 지닌 능력을 제대로 각성하지 못하면 결국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상태로 신체에 안착하게 된다는 거다.”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들리는 내용에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잠깐, 내 경우에는 그것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잖아.”

“그래. 너는 단순하게 신체와 영혼만이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 하나가 더 개입을 하고 있다.”

“내 속에 영혼이 하나 더 있다는 거야?”

그렇게 반문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한 스킬에 대해서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순간 가속.

S등급의 마장기 조종술이라면 전생의 내가 가지고 있던 스킬이 발현된 게 맞다. 그러니까 그런 능력을 각성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순간 가속이라는 사기에 가까운 잠재 능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게 된 걸까?

“정확하게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애초에 그게 영혼인지도 모르겠군. 난생 처음으로 보는 형태를 하고 있으니까 신비로울 수밖에…….”

혼란스러운 상황에 사고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체중이 급격하게 변하는 사람도 자신의 바뀐 체질에 적응하는데 최소 반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너는 몸 자체가 바뀌어 버렸으니 그 사단이 난 거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뭐야?”

“영혼과 육체의 충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다. 그걸 앞당기고 싶으면 신체를 극한까지 연마시키면 되지만, 영혼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길잡이가 되는 능력들을 부지런히 갈고 닦는 수밖에 없다. 모르기는 몰라도 분명히 그런 능력들을 가지고 있겠지?”

‘계승하고 있는 능력들을 말하는 거군.’

확실히 발할라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능력들을 갈고닦는데 소홀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교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게임 능력의 경우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만한 도전은 바스코와 싸우기 전에 시도했던 딱 한 번의 5단계 도전밖에는 없었으니까.

‘능력들을 갈고닦기 위해서라도 미니게임은 무조건 5단계 도전을 사용해야겠군.’

그렇게 다짐한 나는 또 한 가지의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의 의미다. 그 둘 사이의 괴리는 능력의 약화를 의미하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능력에 비해서 신체가 반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지. 그 능력들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이성과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만 할 거다.”

루치아가 말하는 상태란 아마도 존ZONE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확실히 그 상태에 진입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능력 자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도 훨씬 수월할 터. 당분간은 미니게임의 힘을 빌려야겠지만 스스로도 그 상태에 돌입할 수 있도록 수행을 쌓아야만 할 것 같았다.

“능력을 강화시키는데 제일 중요한 건 한계에 도전하는 걸 즐겨야 한다는 거다.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면 결국 움츠러들면서 약해지게 되니까.”

루치아의 좋은 점은 내가 강해지는 걸 위해서라면 어떤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는 거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 나는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도록 할게.”

“뭐지?”

“만약에 내가 영혼들의 능력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너한테 도전을 한다면 승리를 할 수 있을까?”

“푸하하하하하!”

루치아는 대답 대신에 가소롭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 방침도 결정되었다.

‘죽을 각오로 성교 능력부터 단련해 놓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