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 ----------------------------------------------
지상편
“애매하다고 한 말은 취소할게. 넌 최고의 남자야 류안.”
그렇게 말한 탈리아는 홀더에서 권총을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무슨 소리야 류안. 저 새끼를 지금…….”
“어리광을 받아주는 건 여기까지야. 지금 저 새끼를 쏴죽이면 나랑은 끝인 줄 알아.”
“…….”
류안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탈리아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건 복수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나오는 그를 설득하기 위한 일이다.
“부탁이니까 말리지 말아줘. 너도 저 새끼가 내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걸 알고 있잖아? 피를 보는 게 싫다면 잠시만 밖에서 기다리면…….”
“그렇게 저지르고 난 다음에 네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걸 지켜보라고?”
“까짓것 지금 와서 범죄 하나 저지르는 게 뭐가 대수야? 그리고 다시 병사로 돌아갈 수만 있으면 너와도 다시…….”
“고작 한 번의 범죄가 아니야, 그런 짓을 저지르면 네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날아가는 거니까.”
“도대체 무슨…….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류안이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걸 억지로 끌어안으면서, 주변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격렬하게 입술을 탐했다.
[얌전히 들어, 안 그러면 다음에는 키스가 아니라 싸대기를 날릴 테니까.]
“어째서……류안!”
“저 남자는 방산비리에 연루되어있어. 잠시 후에는 헌병대가 찾아와서 신병을 구속할 예정이지, 하지만 그 전까지는 엄연히 민간인이지. 물론, 죄수의 신분이라고 해도 네가 쏴 죽인다면 다시 감옥에 갇히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야!”
잠시 후, 웨이터가 다가오자 두 사람의 대화는 멈췄다. 그는 전채 요리를 내려놓고 전과 마찬가지로 다음 차례에 나올 메인 요리들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류안은 점잖게 질문했다.
“그런 복잡한 단어들은 모르니까 알아들을 수 있게 간단하게 설명해주시죠.”
“메인으로 나올 수 있는 생선 요리와 고기 요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쉽게 말해줘서 고맙네요. 둘 다 주세요.”
“하지만 그러면 양이 너무 많은데요?”
“둘 다 주세요.”
그 단호한 태도에 웨이터는 어쩔 수 없이 두 가지의 요리들은 전부 가지고 왔다. 류안은 그 중에서 고기 요리를 앞으로 밀면서 말했다.
“이쪽이 지금까지 네가 걸어온 길이야. 약육강식을 하는 짐승들의 세계지.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서 버텨왔지만 언젠가는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천적을 만나게 될 거야. 어쨌든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고 있는 세계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어.”
전생에서는 교통사고 한 번 당하지 않은 신후였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불과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탈리아의 과거를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세상을 살아왔다는 것 만은 짐작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게 내 인생이야.”
“아니, 지금까지는 그랬겠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수 있어.”
류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생선 요리를 밀었다.
“잘 봐, 이쪽은 아직 네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야. 품속에 총을 지니고 잠들 필요도 없고, 경찰차의 사이렌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 주먹을 날리는 것보다는 서로 악수를 나누는 경우가 많고, 가끔씩은 아무런 계산도 없는 친절과 선의가 베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지. 물론, 이쪽이라고 꼭 좋은 일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쪽보다는 나쁜 일들이 훨씬 더 적게 일어날 거야. 그리고 바로 지금이 이 세계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지.”
내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탈리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내가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리타라는 사람은 그러기를 바랐겠지.”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탈리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탈리아. 나는 네가 슬럼가를 벗어나서 진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남자들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서 거짓 웃음과 거짓 연기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원하는 배역을 목표로 할 수 있는 인생을 말이야…….]
“나,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암캐를 연기해왔다. 아니,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속여 왔다는 건 그녀 자신도 알고 있다. 리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팔며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참고로 이쪽으로 오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가 네 인생을 책임져 줄 거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지원해주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가르쳐 줄게. 물론,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도 않게 지켜 줄 거야. 네가 다시 그 쪽 세계로 달려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류안은 탈리아가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뜨거웠던 요리는 전부 식어버렸고 웨이터는 몇 번이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돌아가 버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고민의 시간이 지나고, 탈리아가 간신히 입을 연다.
“사실은 나 생선 요리는 잘 못 먹어…….”
“그러면 예시를 바꿔줄까? 어렵지는 않은데…….”
혹시라도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말을 할까 봐 그렇게 허둥대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아니.”
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생선 요리를 포크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가볍게 맛을 보고는 냅킨으로 입술을 닦아내는 그녀.
“요리법이 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까짓 거, 이참에 새로운 요리도 경험해보지 뭐.”
---------------------------------------------------------------------
식사를 마친 탈리아와 나는 그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양 옆에 여자들을 끼고 낄낄거리던 그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걸 발견하고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여자들을 밀쳐내었다.
“아름다운 아가씨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라…….”
촤악!
꺄아아악!
추파를 던지던 남자의 면상에 와인을 뿌리자 양옆에 있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 앞에서 차려입은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대장부처럼 당당한 기세로 그를 향해서 윽박지르기 시작하는 탈리아.
“오랜만이다, 돼지새끼야, 앞으로는 볼 일도 없겠지만 형무소에서는 부디 잘 먹고 잘 살아라! 거기 가면 너처럼 두툼한 볼륨을 좋아하는 오빠들이 많으니까 지내는 게 외롭지는 않을 거야!”
“이, 이런 미친년이 감히 내가 누구라고…….”
“누구기는 누구야 범죄자 새끼지. 안 그렇습니까? 블랙해머 대위.”
옆에서 참견을 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 외치자 잠복하고 있는 헌병대원들을 이끌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런 식으로 작전을 방해하면 곤란합니다.”
역시나 이번 작전에도 개입되어 있는 블랙해머 대위가 옆으로 다가오면서 입을 연다.
그는 내가 유일하게 엔포서의 대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남자.
“어차피 비리에 관련한 증거자료들은 전부 확보하고 나서 온 게 아닙니까?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여기까지 오신 김에 흑기사 역할이나 제대로 해주십시오.”
“……이번 일은 준장님에게 보고하겠습니다.”
길로틴은 이번 토벌작전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준장으로 진급했다. 덕분에 내 주변의 인물은 용병인 불량품콤비들은 제외하고 전부 진급을 한 셈이지만, 그의 경우에는 보다 더 확실하게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막강한 권한들을 손에 넣어나갔다.
‘헌병대의 서열로만 따지면 넘버 3. 하지만 엔포서들의 충성심과 권력의 판도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넘버 1이라고 봐야지.’
길로틴의 파워는 명백하게 자신의 계급과 직급을 뛰어넘는 언밸런스한 것이다.
그 덕분인지 그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는 제론V행성에서는 헌병들이 유난히 기세등등하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새끼들아!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이런 건방진 짓거리를…….”
질질 끌려가면서도 마지막까지 허세를 부렸지만, 최근 헌병대의 방식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빠져나오는 게 쉽지는 않을 터. 그 최후를 마지막까지 지켜본 탈리아는 허탈하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저 새끼는 마지막까지 내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네.”
“원래 가해자라는 놈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류안은 다르잖아.”
탈리아가 기습을 해 왔다.
“최근에도 계속해서 집으로 사과 편지를 보내는 거 알아. 아직까지 답장 하나도 못 받은 것도 알고,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 그 집안한테는 내가 다 화가 치밀었을 정도라니까?”
사실은 내가 아니라 이 육체의 원래 주인이 저지른 잘못이었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사실, 모두가 그런 식이라는 듯이 떠들기는 했지만 가해자 중에서도 아주 가끔씩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과천선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니까.
“어쨌든 누구 씨 덕분에 부대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생겼고 이제는 아주아주아주 많이 시간이 남아돌게 생겼는데, 뭘 하면서 시간을 때워야 하나?”
“그거야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준비해 놨지.”
“좋아, 어디든지 좋으니까 안내해 보라고 변태 새끼야.”
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입이 험악한 레이디와 팔짱을 끼고 그녀를 최상급 호텔의 스위트 룸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문을 닫기가 무섭게 그녀가 달려들어 오면서 키스를 퍼부어대는 바람에, 정작 좋은 방을 잡아놓고도 제대로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츕, 츄릅…….츕.”
그동안 기회만 생기면 키스를 가르친 덕분인지 탈리아의 솜씨가 많이 늘었다.
하지만 S등급의 성교 능력과 프레이야의 이름을 걸고 당하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던 나는, 가슴과 함께 그녀의 엉덩이를 동시에 주물러 나갔다.
‘성감대 추측!’
고유 스킬을 발동하자 탈리아의 몸 전체에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성감대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그녀는 진작부터 흥분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
“아흑!…….”
부풀어 오르는 유두를 가볍게 튕기자 자지러지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에 바람을 불어넣자, 어깨를 깨물면서 신음소리를 참아내는 그녀.
“중요한 데가 벌써 푹 젖어있는데?”
“모, 몰라. 이 변태새끼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려 온 첫 번째 거사를 실행할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한 나는, 그녀를 조금 더 격렬하게 애무하면서 슬그머니 팬티를 내려버렸다.
“왜 속옷부터 벗기는……꺄학!”
‘그런 고생을 시켰는데 평범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탈리아는 지금 내가 직접 골라준 드레스 한 장만 걸치고 있다. 가슴골과 등이 드러나고 치마는 짧은 미니드레스. 전체적으로 새하얀 색상이 원피스로 보이기도 하지만 고급스러운 실크 원단에 레이스까지 달려서, 파티 의상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겉모습일 뿐, 진짜 장치는 따로 있다.
루비아이 부티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을 평범한 고급 양장점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진정한 정체는 부자들의 특별한 취향에 맞춰서 애첩들의 옷에 꿈과 희망과 판타지를 연출해내는 요정들의 공방이다.
나는 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탈리아를 조심스럽게 인도해 나갔다.
목표는 대형 TV앞에 존재하고 있는 온천 풀.
가볍게 반신욕을 즐길 수 있도록 수위도 높지가 않았고 온도도 적당해서, 플레이를 즐기는 장소로는 제격이다.
“탈리아.”
“왜, 류안?”
몽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를 향해서 외쳤다.
“사랑해!!!”
“꺄아아악!”
풍덩!
온천의 앞에서 사랑을 외친 나는 그녀를 냅다 그 속으로 밀어버렸다. 잠시 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빠져나오면서 콜록거리는 그녀.
“켁, 켁, 켁! 야! 이게 무슨 짓이야? 도대체!!”
사나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잠시 후에 드레스가 꿈틀거리면서 변형을 하기 시작하자, 우왕좌왕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호오……이것 참. 기술의 발전은 경이롭기가 이를 데 없군.”
신기한 작동법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물에 푹 젖은 드레스는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으면서 속살을 여과 없이 비추어 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마치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움직이면서 탈리아의 양손이 가슴을 모아주고 엉덩이를 뒤로 향하게 만들어 뒤치기를 할 수 있는 자세로 만들어 버린다.
“보고 있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봐!!”
“좋아, 이 상태로 하자!”
“뭐?!!”
“괜찮아. 부드럽게 해줄 테니까.”
“가, 가까이 다가오지 마. 이런 음수 같은 새끼야!!”
나는 필사적으로 온천 풀을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탈리아를 흐뭇한(?)눈으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어나갔다.
이미 우리의 흑염룡은 완벽하게 전투준비를 마치고 용맹함을 과시하고 있는 상태.
그녀는 헤엄을 치는 것처럼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여 나갔지만, 드래스는 마치 슬라임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으면서 그 움직임을 한없이 재생이 느린 슬로우 비디오처럼 만들어주고 있다.
“안 도망가고 뭐해?”
내 조롱에 분노한 음성으로 대꾸하는 그녀.
“너 혹시 오늘 사준 옷들마다 이런 장치를 달아놓은 거야?”
“그 부분은 상상에 맡기도록 할게.”
“야, 나 그냥 때려치울 거야! 너 같은 변태 새끼랑 함께하느니 평범한 인생이고 나발이고……흐갸악!”
“그런 못된 말을 하는 게 어느 입일까?”
“어, 어느 쪽 입에다가 말을 거는 거야!”
“대충 풀어진 것 같으니까 슬슬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자고.”
“적어도 침대에서 평범하게 해달라는……꺄아아악!!”
나는 마침내 탈리아의 처음을 접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