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34화 (3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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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이번 토벌전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방위군은 몇몇 부대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편했다. 우리 부대도 예외는 아니라서, 대대 자체를 해산해버리고 일반 병사들까지 충원 받아서 중대 규모의 부대로 재편하게 되었다.

정확한 명칭은 5사단 소속의 독립유격부대.

지난 토벌전에서 내가 보여준 활약으로 정공법보다는 기책을 좋아한다고 판단을 내렸는지, 아예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대를 만들어 준 셈이다.

길로틴의 배려로 새로운 기지공사 전반의 문제는 상층부에서 알아서 해결해줬고, 그 기간 동안 우리 부대원들은 모두 위로휴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제일 먼저 소대원들을 소집해서 이번 작전에서 사망한 닥돌 1. 정확한 이름은 한스인 병사의 유가족들에게 찾아가서 5골드의 위로금을 전달해 주었다.

전생의 금전 가치와 비교해보면 5골드의 가치는 약 500만원.

방위군의 자금사정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만 해도 후한 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비를 털어서 장례식 비용 전체를 부담해줬다.

집안에서는 반쯤 포기한 망나니였다는 한스.

그 말을 증명하듯이 유가족들은 전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어서, 소대원들은 그들답지 않게 점잔을 떠느라고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지, 술이 나오자 양아치 본능을 드러내려고 하는 바람에 급하게 빠져나와야만 했다.

소대원들은 이번에 세운 전공을 인정받으면서 불량품콤비를 제외하고는 전부 진급을 했다.

새로운 분대장으로는 리틀보이가 선출되었지만 아무도 그 일을 축하해주지 못했다. 왜냐면, 탈리아가 이번에 세운 전공으로 모든 형량을 탕감 받으면서 제대가 결정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축하해야 할 일이었지만 눈에 띄게 우울해하던 그녀는, 전역 신고를 마치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탈리아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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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여기!”

시계탑에서 손을 흔드는 탈리아를 본 류안은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장난해?”

“왜 그래?”

“데이트에 나오면서 암캐 복장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탈리아는 전역하기 전과 다름이 없는 복장이다. 군복을 자기 마음대로 리폼하면서 반쯤은 벗은 거나 마찬가지인 야시시한 모습. 그게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색다른 모습을 기대했던 류안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게 제일 편했단 말이야.”

“좋아. 그렇게 편한 게 좋으면 지금 당장 침대로 가자. 홀딱 벗겨서 세상에서 제일 편한 모습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대. 대낮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짐승이!!”

“후후후. 오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따르겠다는 약속이었을 텐데?”

타이거와 함께 땅속에 묻혔을 때, 탈리아는 류안에게 살아 돌아오면 뭐든지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래서 부대로 돌아온 그는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지만, 탈리아는 시치미를 떼면서 도망치다가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1일 한정으로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거다.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지.'

다 된 밥이라고 생각했는데 엎어버리고, 다 된 밥이라고 생각했는데 엎어버리기를 반복.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탈리아의 패턴을 파악하는데 성공한 류안은 전역하면 더 이상 만나기 힘들다는 감정적인 부분을 파고들면서 겨우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는 거다.

‘분명히 이쯤에서 한 번 더 튕길 거야.’

아니나 다를까 정확하게 예상대로 행동하는 그녀.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건 아니잖아! 너야말로 게이처럼 차려입고 나와서 뭐하자는 거야!”

현재 류안은 넥타이가 없는 슈츠를 단추가 몇 개 풀어헤치고 느슨하게 차려입은 상태.

프레이야의 은총으로 매력은 52까지 상승했으며, 키도 훤칠하게 크고 신체관리도 철저하게 해온 만큼 슈츠가 제법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편한 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광장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잘 봐줘야 호스트였고 나쁘게 말하면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훗! 잠시 후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게 보일걸?”

그렇게 말하면서 류안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제아무리 도망치려고 그래도 소용이 없을 거다.’

“퍽이나 그러시겠다.”

“아무튼 오늘은 그런 옷으로 돌아다니면 안 되니까 갈아입으러 가자."

“어디로?”

“루비아이 부티크.”

“뭐?”

상류층의 사람들만 출입한다는 고급 양장점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탈리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좋아, 그러면 바로 출발하도록 할까?”

류안은 그렇게 외치면서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파칭!

슈우우우우우욱-.

“뭐, 뭐야?!”

시계탑의 상공에서 광학위장으로 모습을 숨기고 있던 검은색의 리무진 쉽이 호버링 모드로 전환하면서 바닥으로 내려온다. 그 바람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깜짝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이벤트라고 생각했는지 우르르 몰려들면서 요란하게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마법의 양탄자처럼 가벼운 착륙을 하고는 류안 일행을 향해서 열리는 문.

“가실까요? 예쁜 아가씨.”

류안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마치 공주님을 에스코트하는 기사처럼 손을 내밀었다.

“어버버…….”

“수락한다는 표시로 알아듣겠어.”

얼이 빠져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탈리아의 손을 붙잡고 허리를 끌어안은 그는, 마치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스타들처럼 요란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리무진 쉽으로 들어갔다.

터무니없이 넓고 푹신한 소파와 차가운 얼음 속에 담겨져 있는 와인. 그리고 정장을 차려입은 운전기사의 모습에 압도당한 탈리아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루비아이 부티크의 vip전용 선착장으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목적지를 말한 류안은 드링크바를 열고 적당한 음료수를 꺼내서 그녀에게 따라주고 난 다음에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 그리고 오디오를 조작해서 잔잔한 분위기의 음악을 틀며 마치 자신의 집처럼 늘어져 버리자, 그 모습을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던 탈리아가 류안의 옷을 붙잡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뭐기는 뭐야. 평범한 돈지랄이지…….”

“호, 혹시 은행이라도 털었어? 아니면 열차강도?”

푸읍!

음료수를 들이키던 류안이 성대하게 뿌려대자 조그마한 드론들이 튀어나오면서 부지런히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안이 걱정되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그녀.

“위험한 일에 손을 대고 있는 건 아니지? 범죄는 싫어하는 것 같아서 당분간 휴업하려고 했는데 내 도움이 필요한거라면…….”

“하하하! 여자친구분이 재밌는 분이시군요.”

운전기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풋! 크큭, 크하하하!! 아, 진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너 왜 이렇게 귀엽게 구냐, 크크크큭.”

류안은 탈리아의 볼을 꼬집으면서 가볍게 쥐고 흔들어 댔다.

“야! 나는 진지하게, 읍!”

대답 대신에 키스가 입을 막아버린다.

두 사람이 격정적으로 서로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하자, 운전사는 조용하게 헛기침을 하면서 차단막을 올려버린다.

잠시 후, 루비아이 부티크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직원들이 익숙한 솜씨로 두 사람에게 깍듯한 인사를 건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류안님.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너를 알아보는 거야?]

[예약했거든.]

[아…….]

“말씀하신대로 모두 의상실에 세팅해놨습니다. 따로 포장을 주문하신 물건들은 손상되지 않게 자택으로 배달해 놓겠습니다.”

“따로 포장한 물건이라는 건 뭐야?”

“그건…….”

“사소한 거 몇 가지 주문해 놨어. 그런 것보다는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직원의 대답을 가로막은 류안이 탈리아의 손을 붙잡고 의상실로 향했다. 무대 같은 장소에 조명을 받으면서 화려한 모습들을 뽐내고 있는 화려한 드레스들.

“원하는 걸로 마음대로 입어봐.”

“오, 옷에 가격표가 없는데?”

“오더메이드니까 그렇지. 전부 계산해 놨으니까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나머지는 직원들한테 포장해 달라고 그래.”

“마음대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렇게 비싼 옷들을 입다가 주름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라고! 아니, 애초에 내 사이즈는 어떻게 알고 준비해놓은 거야?”

“그거야 뭐…….”

류안이 말꼬리를 흐리자 그 의미를 눈치 챈 탈리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탈리아가 덮쳐왔던 그날 밤, 제일 중요한 작업(?)을 제외하면 이미 볼 것도 다 보고, 만져볼 것도 다 만져본 사이가 아니었던가.

물론 기억에만 의존해서 신체 사이즈를 정확하게 알아낸 류안 아니, 신후의 능력은 대단하다고 볼 수가 있었지만, 게임능력으로 계산능력까지 상승하면서 그 정도의 일을 해치우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의상실로 들어온 여직원이 눈치 없이 참견을 해왔다.

“아까 말씀드리려다가 못했는데, 저쪽에 있는 마네킹의 패널을 조작하면 포장해드린 의상들을 감상하실 수 있어요!”

“정말인가요?”

“자, 잠깐!”

류안이 급하게 말렸지만 마네킹으로 다가간 탈리아가 3D영상으로 출력되는 의상들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이어지는 침묵.

“저기 류안…….”

“으, 응?”

“간호사복이나 메이드복은 왜 산거야?”

“힘들고 지쳤을 때 네가 그 옷을 입고 응원해주면 힘이 날 것 같아서…….”

“표범무늬 옷에 귀에 꼬리까지 달려있는 의상은 뭔데?”

“가, 가끔씩 동물들을 쓰다듬으면서 힐링받고 싶을 때가 있잖아?”

“나비모양의 가면에 본디지, 가터벨트?”

“연맹에서 개발한 최신 병기들이지. 착용하면 전투력이 3배로 향상되는……미안.”

양손을 싹싹 빌면서 사과하는 류안의 모습에 가볍게 한숨을 쉰 탈리아가 패널을 닫으면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줘.”

“뭐?”

“네가 직접 의상을 골라달라고.”

어지간히도 말하기가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돌린 탈리아는 귀까지 빨개진 상태다.

“그러면 곧바로 메이드복부터…….”

“그게 아니라 드레스를 골라달라는 거잖아 이 변태 자식아!!”

잠시 후, 류안이 골라준 드레스의 복장으로 갈아입는 그녀.

“아,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 것 같아.”

리안 실크로 만들어진 의상은 착용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다고 한다. 게다가 가슴골과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새하얀 원피스드레스를 입은 탈리아는, 구릿빛 피부에 새하얀 멜빵 자국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면서 묘한 색기를 풍겼다.

“좋아. 이제는 메이크업을 할 차례야!”

“여기에 뭘 또 한다고?”

“물론이지.”

1시간 후.

부티크에서 비교적 가벼운 화장을 마치고 악세사리로 치장한 탈리아는, 겉모습만으로는 누구라도 인정해줄만한 아리따운 귀부인으로 재탄생했다.

“소감이 어때?”

“고급 창부가 된 느낌이야.”

탈리아다운 감상에 류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이힐만은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에 플랫슈즈를 신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 그녀는, 류안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다시 리무진에 탑승해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오르되브르인 슈 파르시입니다.”

웨이터는 두 사람이 모두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을 꺼내면서 양배추 요리를 식탁에 내려놓고 촛불에 불을 붙여주고 떠났다.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테이블의 사이로 고개를 기울이면서 속닥거리는 두 사람.

“어때, 슬슬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어?”

“으음, 솔직하게 말하면 애매한데.”

“왜?”

“아니, 좋은 대접을 받는 건 알겠는데, 역시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 말이야. 솔직하게 말하면 너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재밌게 노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돈도 아깝고…….”

“그래?”

류안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떨어뜨리자 탈리아가 우왕좌왕하면서 비위를 맞췄다.

“아, 아니. 농담이야, 농담! 내가 류안 아니면 언제 이런 것들을 경험해보겠어?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한 번 먹어봐, 먹어봐!”

“크크큭, 사실은 나 하나도 안 삐졌는데?”

“어?”

“아닌 게 아니라, 원래는 나도 광장에서 놀다가 호텔이나 좋은 데 잡아서 놀려고 그랬지. 사실, 드레스나 요란한 메이크업을 시킨 이유는 순전히 여기로 데리고 오려고 그런 거니까. 나머지 옷들은 혹시 모르니까 겸사겸사 구입한 거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잠시 후, 류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에 탈리아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적룡회한테 널 구입하고 강간하려고 했던 남자를 기억해? 바로 저 앞에 앉아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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