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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드래곤 라이더.
검과 마법이 살아 숨 쉬는 시대에도 전설로 여겨졌을 정도로 드물게 탄생하는 이들로 드래곤의 반려자, 수호룡의 기사, 등의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드래곤과 영혼의 계약을 맺는 대가로 드래곤의 힘을 지닌 강력한 육체를 손에 넣었는데, 덕분에 전사의 길을 포기하는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시대를 대표하는 최강의 전사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유일한 문제는 드래곤 라이더가 되는 일은 검 한 자루를 들고 드래곤을 때려잡을 수 있도록 수련을 하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렵다는 사실.
드래곤에 비교하면 드라코니안 전사들은 순한 양이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이라서,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맞서다가 멸망해 간 존재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들의 몰락으로 드래곤 라이더들 또한 자연스럽게 소멸해 버렸다는 것이 세간의 상식.
그런데 왜 루치아의 입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설마…….”
“그 설마가 맞다. 나는 내가 인정하는 영혼의 반려를 드래곤 라이더로 승격시킬 수가 있지. 물론, 내 등에 탑승하는 건 불가능하니 정확하게는 드라코니안 나이트라고 부르는 편이 맞겠지만…….”
‘이거야, 바로 이거였어!’
발자크를 잡느라 그런 생고생을 해야만 했던 이유도, 호프만이 루치아에게 집착한 이유도 완벽하게 하나로 이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거야?”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나를 키워준 가디언의 말에 따르면 로드 아르카리우스님께서 뭔가 계획한 일이 있으셨다는 모양이지만, 그게 뭔지 알려주지도 않고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 버리셨으니까 어쩔 수가 없다는 거지.”
뭔가 복잡한 사연이 존재하는 모양이지만 지금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한테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호오, 반쪽이 주제에 내게 도전하려는 생각인가?”
완전히 얕잡아보는 태도였지만 나는 폭주한 발자크를 단신으로 박살내던 루치아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체스나 카드게임으로 승부한다면…….”
“미안하지만 다른 분야에는 흥미가 없다. 오직 피와 살이 튀는 치열한 1대 1 전투가 아니라면 상대방을 인정할 수가 없으니까.”
‘역시 날로 먹는 건 안 되는군.’
드래곤에게 인정을 받는 것보다는 쉬운 조건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터무니없이 까다로운 조건이라는 건 마찬가지. 하기야, 그렇게 어려웠으니까 호프만도 드림 이터라는 편법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겠지만.
“호프만에게는 어쩌다가 들킨 거야?”
“아니, 그게 말이지…….”
대답하기가 거북한 건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루치아.
“왜 그래?”
“아니, 딱히 부끄러워서 그러는 건 아니지만 나도 명색이 여자인데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떠들고 다니는 건…….”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쩐지 에로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에 나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설득을 시도했다.
“어차피 호프만한테도 알려진 내용이고 더 큰 비밀도 들킨 마당에 그런 걸 숨길 필요가 있겠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표정이 좀 엉큼하군.”
‘쳇, 들켰나.’
루치아는 한숨을 쉬면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 때문이다.”
“뭐?”
“발정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혼기가 꽉 찬 몸이니 시집은 가야 할 게 아니냐!!”
‘만세, 야한 이야기다!’
지루하고 복잡한 이야기 끝에 발견한 한 줄기의 오아시스 같은 상황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승리의 포즈를 취했지만, 쓰레기를 보는 것 같은 루치아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슬그머니 자세를 풀었다.
한동안 추궁 아닌 추궁이 이어진 결과 대체적인 사정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면서 발정기에 시달리게 된 루치아는 달아오르는 자신의 육체를 진정시켜줄 신랑감을 찾아서 레어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제론 성계 전체를 뒤져봐도 그런 남자를 찾는 건 어려웠다. 그나마 가온공화국 최강의 기사 율리안이라는 남자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워커홀릭에 빠진 그 남자는 일에 방해된다고 그러면서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용병 노릇을 하면서 쌓이는 욕구불만을 해소해 나갔지만, 그렇게 매번 전투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대개는 자신의 흥미를 끌 만큼 강력한 현상수배범들을 사냥하거나, 술독에 빠져 살면서 스스로를 진정시켜 왔다고 한다.
문제는 술김에 그 비밀들을 지나치게 떠들고 다녔다는 것.
“너무 경솔하잖아!”
“아니 그게,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 할 말은 없다만……설마 진심으로 믿는 놈이 나타날지는 몰랐지.”
루치아의 심정도 이해는 되지만,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전설을 쫓아서 목숨을 거는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게 손톱만한 가능성이라고 해도 일확천금의 기회만 있으면,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놈들이 나오는 건 어느 세계에서나 마찬가지.
‘나도 마찬가지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뭔가?”
“발정기라는 건 원래 투쟁심보다는 성욕이 관장하는 영역 아닐까? 굳이 싸움으로 신랑감을 구하는 건 이상해 보이는데…….”
드라코니안이 강한 상대를 좋아하는 건 익히 알려진 통설이지만, 어디까지는 적수로서 그렇다는 소리지 배우자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처음에는 적당한 남자를 신랑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나보다 강한 남자가 아니면 흥분하지를 못하는 것 같더구나.”
“…….”
“성행위를 시도해봤지만 시답잖은 애무인가 뭔가를 받다보니 기분만 나빠져서 상대방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말았다. 그에 비하면 전투는 황홀하기 이를 데 없지.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냄새가 좋다. 상대방이 지르는 비명소리와 튀어 나오는 피와 내장들의 냄새가 구미를 돋운다. 생사를 오가는 간극에 온몸이 짜릿짜릿해지고 적의 심장을 움켜쥐는 순간에 절정이 오른다. 아아, 이게 바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진심으로 강한 적수들을 사랑하고 있다!”
덜덜덜
“호, 혹시 나를 사냥감으로 마킹한 이유도…….”
“뭐, 반쪽이는 아직 덜 여물었으니 사랑스럽다기보다는 귀여운 타입이지만 당시에는 급하기도 했고,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사냥하는 보람이 있으니까 말이다.”
‘여자한테 귀엽다는 말을 듣는 게 이렇게 오싹한 경험이었나?’
“물론, 상대방이 죽어버리면 신랑이 되는 의미가 없지. 그러니까 치열한 전투로 내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기절시켜 준 다음에 범해줬으면 좋겠다. 그걸 반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두말없이 내 반려로 만들어 주겠지.”
‘그게 뭐야, 몰라, 무서워.’
그런 종류의 플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폭력과 강간을 희망하는 여성이라니 허들이 지나치게 높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매번 거사를 치를 때마다 그런 짓을 해야만 한다면, 제아무리 드라코니안 나이트가 된다고 그래도 감당을 할 수 있을지가 의문.
아니, 잠깐, 待て, Wait a minute.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아?”
“뭐지?”
“정말로 평범한 애무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당당하게 성희롱을 할 셈이냐? 변태 같은 놈.”
“아, 아니. 민감한 부위들은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을게. 나도 가능하면 신랑 후보로 입후보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도전 의사를 밝혔다고 생각했는지 루치아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그렇다면 특별히 허락하도록 하지. 부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현실을 깨닫고 수련에 정진했으면 좋겠구나. 조만간 찾아갈 생각이니까♡”
계속해서 공포영화를 찍으려고 하는 걸 보니 한시바삐 루치아의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건전(?)하게 교정시켜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성감대 추측.’
고유능력을 발동해서 루치아의 몸을 살펴보자 탈리아와는 다르게 붉은 점이 아니라 푸른색 점들이 활성화되는 게 보인다.
‘이건 뭐지?’
슬그머니 손을 가져가려는데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뭘 하려는 건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길로틴. 나는 그가 들을 수 있게 가능한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루치아의 신체에 대해서 조사해 볼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 말을 듣고 옆자리에 있는 부관과 뭔가를 상의하더니 마음대로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그. 아무래도 그녀가 풀려난다고 해도 막아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준비해놓은 모양이다.
‘길로틴의 눈을 피해서 루치아를 빼돌리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군.’
이번 사건으로 그가 위험한 다리를 건너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와 관계를 끊어버리고 독립하고 싶었지만, 루치아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어느 정도의 교류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일단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처리하기로 한 나는 성감대 추측을 발동해서, 그녀의 양쪽 어깨로 활성화되는 푸른색 점들을 어루만져 나갔다.
주물주물.
‘어쩐지 안마를 하는 기분인데.’
“으음, 시원하군. 조금만 더 힘껏 주물러 보거라!”
“네, 마님! 아니, 이게 아니라 정말로 시원하기만 해?”
“안 그래도 요즘 몸을 제대로 풀지 못해서 여기저기 뻐근했는데, 의외로 이런 방면에 재능이 있구나, 반쪽아!”
오기가 생긴 나는 활성화되는 부분을 필사적으로 공략해 나갔다.
“오호, 그렇지. 좋아! 아이고 시원하다. 거기, 좀더!”
“헉헉헉헉…….”
한 30분은 그렇게 노력했을까.
마사지를 완벽하게 즐기고 있는 루치아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묘한 달성감이 느껴지려고 하는 게 오히려 더 짜증이 난다. 길로틴과 그 부하들은 ‘지금 저것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
결국 지쳐서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에 루치아의 목덜미에서 미약하게 형성되어지는 붉은색 점을 발견하고는 슬그머니 손을 가져다가 대었다.
“꺄학!”
‘어라?’
가볍게 어루만지자 지금까지와는 명백하게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
“바, 방금 전에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냥 마사지를 한 건데.”
“그, 그런가? 그러면 조금만 더 해보도록 하거라.”
표정이 살며시 붉어지는 것을 보니까 싫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부위를 가볍게 어루만지면서 활성화되는 다른 부분들도 자극해 나가기 시작하니, 점점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붉은색의 점들.
‘가능해! 가능하다고!!’
“흐음, 하아.”
상기된 표정으로 야릇한 한숨을 토해내기 시작하는 루치아를 보고 있으려니 전율이 흐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 드라코니안 나이트까지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거기까지!]
‘젠장, 또 길로틴이군.’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보를 알아냈다면 장난은 그쯤에서 멈춰라, 네놈의 장단에 언제까지 놀아줄 거라고 생각을 하면 크나큰 오산이니까!]
“알겠습니다!”
윽박지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루치아에게 손을 뗐다. 아쉽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눈동자가 풀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드라코니안 나이트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줄 수 있을까? 다음에 또 마사지를 해줄 테니까.”
“음? 아, 그, 그래. 나도 저 인간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러도록 하지. 게다가, 어지간히 구미가 당기는 실력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사냥의식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깨울 수는 없을 테니까. 혹시라도 죽지는 말라고, 마킹이 끊어져버릴 수도 있으니까.”
여운에 잠겼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이걸로 길로틴이 독자적으로 드라코니안 나이트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확률은 지극하게 낮아졌다. 남아있는 문제는 그의 손아귀에서 어떻게 그녀를 데리고 나오느냐는 것.
‘드림 이터와 호프만을 제거하고 루치아에게 활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만들어야만 하는데…….’
루치아와 대화를 통해서 얻은 정보로 길로틴과 협상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만, 노골적으로 그녀를 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가는 오히려 수상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가 극단적으로 나와 버리면 판 자체가 깨져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길로틴과 담판을 지을 시간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