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9화 (2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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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길로틴의 집무실.

서양의 저택처럼 마호가니색의 고급 가구들로 꾸며진 방. 이름보다는 작품이 유명한 화가가 신화속의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그려낸 거대한 종교화宗敎畵부터, 도금되어있는 제론 성계의 천체모형들 따위가 전시되어 있는 방은 청렴하다는 명성에는 걸맞지 않게 중후하고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자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마술사 같군.”

“마술사면 사기꾼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뚫린 귀로 제대로 들었구만.”

‘그래서 나를 묶어놨구나.’

현재 나는 구속복을 입은 상태로 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는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잠시 후에는 갈색머리의 예쁜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하나 놓고 갔는데, 그 약물의 정체는 잠시 후에 방주인의 입을 통해서 밝혀지게 되었다.

“요즘은 하다 못해서 자백제까지 불량품으로 만드는 것 같아. 오늘만 벌써 3명한테 사용하는 건데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네. 덕분에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 정도지…….”

투덜거리는 말투와는 반대로 느긋하게 커피를 음미하는 길로틴.

순순히 실토하라는 제스처지만 판도라의 상자 패널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신적인 모든 혼란들을 막아주는 방어기제강화의 정체를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보유하고 있는 패를 꺼내며 그의 수수께끼 놀이에 어울려주기로 결심을 했다.

“제 마술이 뭔지를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자백제가 통하지 않는 2명의 이름을 맞출 수는 있겠죠.”

“말해보게.”

“샛별회의 수장 호프만과 루치아라는 드라코니안 소녀가 아닙니까?”

정답이라는 건 살며시 일그러지는 길로틴의 표정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아무래도 자네는 정말로 그 물건의 정체를 알아낸 모양이군.”

“그렇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쿵!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친 길로틴이 신경질적으로 윽박지른다.

“개수작 부리지 말게! 나는 영상기록장치로 자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어. 이번 토벌에서 자네가 한 짓이라고는 기껏해야 조그마한 전공을 얻으려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다닌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서 반박할 말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소대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권력을 이용한 덕분이지만, 중간부터는 그가 내준 퀘스트에 대해서는 감도 잡지 못하고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토벌전의 뒤쪽에서 돌아가는 권력다툼은 엔포서가 샛별회를 완전히 제압하고 난 다음에서야 겨우 눈치를 챌 수 있었던 상황.

샛별회를 제압했다는 통신이 들려온 이후.

[이럴 수가!]

상부와 연락을 취했던 제시카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왜 그러십니까?”

[돌입부대의 대장이 만스 중령으로 교체되었어요. 랄프 대령은 적과 내통했다는 명목으로 체포당했고 적들이 설치한 폭발물은 비밀통로로 들어온 잠입부대가 전부 처리했다고 해요.]

“비밀통로로 들어온 잠입부대라고요?”

깜짝 놀라는 나와 소대원들을 보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그녀를 이해시켜주기 위해서, 나는 우리 소대가 이 장소로 들어오게 된 계기를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상하군요. 중간에 그들과 마주치지 못했던 건 둘째 치더라도 감시카메라를 해킹했는데도 잠입부대를 발견하지는 못했으니…….]

1시간 30분 전까지만 해도 폭발물의 정체를 토벌군의 본대로 알려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상황이 해결되고 말았다.

동시에 그쯤에서는 영상기록장치와 메모리카드에 뭔가 설치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길로틴이 짓궂은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잠입부대를 발견하지 못한 비밀은 풀어내셨나?”

“위칙추적장치와 도청장치를 사용한 게 아닙니까?”

“바로 맞췄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어째서 자네가 우리 엔포서들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냐는 거지.”

“그거야말로 시답잖은 문제군요.”

솔직하게 말하면 그에게 구속당하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지만 그가 나를 마술사라고 부르는 시점부터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시오패스 영감탱이는 카지노에서 내가 사용하는 속임수가 뭔지를 밝혀내려다가 실패하고 그 일을 아직까지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소리다.

제아무리 그가 뛰어난 정보수집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미니게임의 트릭은 절대로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누가 운만으로 타짜의 속임수를 밝혀낼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 때 접시를 엎어버린 웨이터는 헌병대에게 끌려가서 자백제를 맞고 고문을 당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이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봉변을 당했을 게 뻔한 웨이터만 불쌍해질 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사소한 의문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완벽한 일처리를 자랑하는 헌병대의 악마께서는 수수께끼를 풀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으셨다는 소리다.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자신이 손아귀에 놓고 통제하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 그중에서도 극상의 소시오패스.

길로틴.

결국 속임수를 밝혀내지 못한 그는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서 철저하게 나를 농락하기로 결심했다는 소리다.

[자네가 어떤 신기한 재주를 부린다고 해도 우리들을 발견하는 일조차 하지 못하지.]

‘그런 악의가 아니었으면 감시카메라를 해킹하는 순간이나 화물적재소에서 진작 그들과 마주칠 수 있었겠지.’

대신에 부대의 지휘권은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갔겠지만 적어도 일처리는 훨씬 더 수월하고 간편해졌을 것이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능력은, 비록 편린에 불과했지만 직접 경험할 수가 있었으니까.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가는 분노한 그에게 경을 치르게 될 것만 같아서,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표현들을 순화시키면서 정답들을 맞춰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시카와 함께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유추해내던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토벌군만으로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배후에서 개입을 한 걸까요?”

통신을 마치고 혼란스러워하는 제시카를 위해서 나는 문제가 될 지도 모르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제외하고, 토벌전을 시작하기 전에 길로틴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헌병대의 악마 길로틴! 과연, 그렇다면 그들이 개입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들이 누구입니까?”

“엔포서라고 하는 특수부대에요. 헌병대에서도 정예요원들만 뽑아서 길로틴이 직접 조련했다고 알려진 병사들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불명이에요. 이런 소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정부 고위인사들의 약점을 한 손에 쥐고 있어서, 그들에 대한 언급조차도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러니까요.”

‘승률이 99%라고 장담한 자신감은 여기에 있었군.’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호프만의 탈출을 돕겠다고 마중을 나온 이들도 엔포서였다. 그야말로 토벌군, 테러리스트, 내통자, 이 세 집단은 처음부터 길로틴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소리.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지어트 소장과 그 후원자인 루퍼트 위원이 전부 한 패였으니 적어도 토벌군의 사령부는 전부 엔포서에 관련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엔포서를 제외하면 방위군 전체가 미끼였다는 소리지…….’

언론에서는 이번에 샛별회에게 거둔 승리를 토벌군의 완벽한 승리라고 포장하고 있다. 덕분에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던 방위군의 지지도도 상승하고 있으며, 방위군의 개혁을 주장하는 루퍼트 위원의 발언권도 강력해졌다.

하지만 길로틴이 쥐고 있던 강력한 손패들을 생각해 보면 그가 얻은 성과들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

내통자와 배후세력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세력에 엔포서를 잠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증거까지 손에 쥐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수준의 무기라면 적들을 일망타진시킬 수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엔포서가 얻어낸 것이라고는 루퍼트가 추진하는 개혁안을 반대하지 못하도록 정적들과 합의를 본 것이 전부다.

그게 시사하는 내용은 하나밖에 없다.

“정적들에게 약점이 잡히셨군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네. 내가 아니라 루퍼트 위원이 당한 일이지만 한 배를 탔으니, 그가 침몰해버리면 우리들까지 한꺼번에 수장된다는 소리지.”

검은 타란툴라가 나이브를 납치하려고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가온공화국을 이끄는 양대 파벌이 서로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된 상황.

‘그래봤자 같은 걸프당인데 잘하는 짓들이다.’

1당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가온공화국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촌극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길로틴이 말하는 정적이라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현 공화국의 대통령인 바키였으니, 이건 말 그대로 땅따먹기만 안하고 있지 같은 식구들끼리 내전을 치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굳이 흑백을 나누라면 바키는 정부군이고 길로틴은 반란군이다.

각설하고, 그의 반응과 정치권의 돌아가는 상황들을 살펴보면 그가 단순하게 정적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샛별회를 토벌하는데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건 모순되었다.

그것도 99%라는 성공을 확신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1%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고 했다는 건, 아무리 그가 소시오패스라도 이해하기 힘든 움직임.

길로틴과 엔포서가 그 정도로 절실하게 원하는 물건이라면 딱 한 가지.

정적들을 완벽하게 끝장내버릴 수 있는 무기의 존재 말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세뇌기술에 손에 대는 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게 남들에게 약점을 잡힐 수 있는 기술이라면 그렇겠지.”

길로틴은 그동안 샛별회를 상대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세뇌기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전부 실패. 세뇌장치를 발견하지도 못했고, 그와 관련한 기술자들도 찾아내지 못했다.

테러리스트를 아무리 고문하고 자백제를 사용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오직 호프만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심만 확인할 수가 있었다.

세뇌기술의 존재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광신적인 숭배였지만, 어떤 약리적인 증상이나 부작용을 발견할 수가 없어서 그것이 범죄를 증명할 수 없는 완벽한 세뇌기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전율했다고 한다.

내통자의 세력에 엔포서를 잠입시켜서 정보를 캐낸 길로틴은 호프만이 자신의 본거지에 틀어박혀서, 그곳에서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 장소에 세뇌장치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내렸다.

“정적들을 세뇌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그래도 그들의 자유의사를 박탈하는 건 쿠테타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일을 미화할 생각은 없네. 하지만 그런 쓰레기들을 처리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정도로 신사적이지는 않아서 말이야.”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하는 방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온공화국의 암울한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가 극약처방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아무리 그래도 범죄는 범죄입니다. 미화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속임수로 얻은 천하가 오래 갈 거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당신이 하려는 일은 아무리 잘 해봤자 사하스 연맹 내부에서 새로운 더 원을 창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이자 전체. 더 원.

슈발츠 제국의 과학자들이 부활시켜버린 코퀴토스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그 세력은, 산하에 속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의사결정을 리다라고 불리는 단 하나의 지도자가 결정해버린다.

희, 노, 애, 락, 일체의 모든 감정들을 제거당하고 모든 생명체가 그녀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세력.

그래서 우주 최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추악한 괴물.

“충고는 솔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하지.”

길로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네놈 혼자서 그 정보를 독점하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에 핏발이 곤두선다. 두 눈은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벌어지면서 충혈 되었고, 양껏 드러낸 이빨을 으스러트릴 것처럼 뿌드득거린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분노를 한꺼번에 드러내는 그는, 지금까지 보여주던 젠틀한 이미지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하게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진짜 길로틴 대령님.”

나는,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는 샛별회의 본부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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