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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발자크는 빔 캐논을 주워들었고 나 또한 거의 동시에 추가 장갑을 방패로, 무반동포를 겨누면서 구색을 맞췄다. 타이거의 왼손으로 체인 소드를 지지대로 박아 넣으면서 균형을 잡은 녀석은 마치 고정포대처럼 자리를 잡고 마구잡이로 포격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사격솜씨는 나쁘지 않아. 저렇게 정직하게 조준해오는 빔을 피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만…….’
나는 외부장갑을 방패로 사용하면서 내구도가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때까지 빔을 막아내다가 오른쪽 어깨로 견착을 한 무반동포로 견제사격을 하면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딜!]
쾅!
위험한 경로로 날아드는 빔포를 깨져버린 추가 장갑의 파편을 집어던지면서 막아내고, 파괴당한 재규어의 동체를 엄폐물로 삼으면서 그 뒤로 몸을 숨겼다.
[하하하! 지금까지 실컷 잘난 척을 하더니 네놈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군. 마나가 떨어졌다고 주무장을 버리다니 말이야.]
빔 캐논으로 재미를 봤다고 생각하는지 기세를 올린 발자크는 엄폐물을 아예 가루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신나게 두들겨대었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어디에서 그런 조종 실력을 단련해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현대전에서 중요한 건 마나라는 거다. 마나!]
‘마장기 조종사들은 보통 그 반대를 주장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 아닌가?’
신나게 떠들어대는 걸 보니 승기를 잡은 게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앞뒤 생각도 없이 쏴대기만 하다가 보니까 결국에는 빔 캐논이 완전히 과열되어버리고 말았다.
‘지금이다!’
달칵. 달칵.
[젠장!]
달려 나가는 나를 조준하면서 급하게 방아쇠를 당기지만 불발. 화물적재소로 도망치는 나를 바라보면서 혀를 찬 발자크는, 체인소드를 목발로 사용하면서 열심히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기동성으로는 내 쟈칼이 녀석의 타이거를 앞지른 지 오래.
빔 캐논을 냉각한 녀석이 쫓아오면서 다시 포격을 재개해 나갔다.
나는 화물적재소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그재그로 달려가면서 녀석의 조준이 흐트러지도록 만들어 나갔다. 전방의 지형지물을 머릿속으로 숙지하면서 어떻게 움직여나갈지를 계산한 다음, VR시스템으로 카메라의 시야를 후방으로 전환시키면서 녀석이 어디를 조준해 오는지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어떨 때는 마치 발을 헛딛는 것처럼, 어떨 때는 우왕좌왕하다가 우연스럽게 빔을 피해내는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도주를 해 나간다.
말 그대로 등 뒤에 눈이 달린 상태로 보여주는 슬랩스틱!
[젠장! 운도 좋은 녀석이군.]
그런 트릭을 간파하지 못한 녀석은 약이 바짝 올랐는지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모든 공격을 피해버리면 의심을 살 가능성도 높아서, 나는 통로를 빠져나오면서 실수인 척 일부러 왼쪽 팔을 노출시켜버렸다.
투쾅!
“크아악!”
[드디어 맞췄다. 약삭빠른 자식!!]
먹이 하나에 신나서 달려오는 금붕어 같은 녀석.
수많은 화물과 컨테이너 박스들이 널려져있는 화물적재소는 숨바꼭질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녀석의 눈을 피해서 적당한 장소에 몸을 숨긴 나는 지체없이 불량품콤비들을 향해서 통신을 날렸다.
“정찰 시작해라.”
[넵 알겠습니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떼돈을 벌게 생겨서 그런지 까불거리던 녀석들의 태도가 180도 돌변해 버렸다. 어울리지 않는 페어리들의 반응이 살짝 어색하기는 했지만 광학위장을 사용해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주는 불량품콤비가 타이거의 상공으로 조심스럽게 활공해 들어갔다.
[쳇, 쥐새끼처럼 숨어버렸군.]
발자크는 혀를 차면서 광학위장을 사용했다.
미채가 전신을 감싸면서 불량품콤비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타이거.
녀석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면서 은밀하게 이동하려고 했지만 체인 소드가 땅에 닿는 미세한 소리와 흔적까지는 지워버리지 못했다.
그 뒤를 따라가던 페어리자매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보고를 해 온다.
[타이거가 있는 위치에서 소대장님의 머리가 보입니다.]
“모습을 드러내면 보고해.”
‘옵저버는 이 맛에 띄워놓는 거지.’
실시간으로 녀석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 나는 여유로웠다.
광학위장은 동체 전체에 투명한 막을 형성해주는 기술이다. 그 상태로 섬세한 작업을 수행하거나 가벼운 주먹질(마장기를 기준으로)정도는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모습을 감춘 상태로 일정수준이 넘는 강력한 공격을 시도했다가는 광학 위장 자체가 깨져버리고, 특히나 막 내부에서 빔 같은 걸 발사했다가는 광학미채들과 충돌하면서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기술개량으로 정도를 넘어서는 외부충격을 받으면 광학미채들이 자동으로 회수되면서 다시 광학위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내부폭발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개선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원거리 공격을 시도하기 전에는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뜻.
[지금입니다!]
투쾅!
신호를 받는 동시에 재빠르게 몸을 날리면서 빔을 피했다. 새로운 은신장소를 찾아서 도망치면서 이번에는 함정을 준비하고 있는 제시카를 향해서 통신을 날렸다.
“어디로 유인하면 됩니까?”
[8시 방향에 컨테이너 박스로 둘러싸인 공터입니다. 붉은색 천으로 표시해놨으니 그 지점으로 몰아넣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나는 전달받은 장소로 방향을 틀었다.
표시된 지점에는 폭발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절벽에 설치되어있는 걸 확인하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감을 잡은 나는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발자크를 유인해 나갔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함정 근처의 컨테이너 박스로 뛰어오르는 녀석.
[비겁하게 숨어있지만 말고 튀어나와라!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는 약속은 잊어버린 거냐?!]
“나오라면 나와야지!”
부우우웅!
나는 크레인의 추를 붙잡고 마치 타잔처럼 타고 내려가면서 녀석에게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쾅!
[크아아악!]
충격은 동일하지만 장갑의 피해는 내 쪽이 훨씬 심했다. 하지만 녀석은 함정으로, 나는 그 위에서 녀석을 내려다보며 녀석이 흘리고 간 빔 캐논을 주워들고는 통신을 날렸다.
“지금입니다. 제시카 소령님!!”
[알겠습니다!!]
투콰쾅!!
폭발물들이 터져나가면서 수십 톤의 무게를 지닌 바위들이 발자크를 향해서 쏟아져 내려왔다. 하지만 그 크기들이 워낙에 커서 그런지 속도가 살짝 느려진다.
[젠장, 속였구나!!]
분노한 발자크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이제, 자세제어장치를 고장 내기만 하면 완벽하게 끝장내버릴 수 있는 상황.
“바이러스 작동시켜!!”
[……어, 저기 소대장님?]
“뭐야?”
[바이러스가 삭제되어있습니다……죄송합니다.]
벤틀리의 말에 충격을 받을 사이도 없이 발자크는 벌써 체인소드를 붙잡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그대로 내버려뒀다가는 몸을 날리면서 함정을 벗어나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
‘젠장, 어쩔 수가 없군.’
나는 재빠르게 빔 캐논을 주워들면서 녀석이 빠져나오려는 방향의 앞으로 질주해 들어가면서 녀석을 가로막고 포격을 날렸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3, 4, 5, 6…….’
남아있는 모든 마나들을 쏟아 부으면서 타이거가 균형을 잡지 못하도록 견제해 나갔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점프를 시도하는 녀석을 포격으로 날려버리기 위해서, 자칫 잘못하면 나까지 낙석에 휩쓸려버릴 수 있는 아슬아슬한 위치로 접근해 들어가야만 했다.
[이런 개자식이!]
쾅!
튀어나오는 발자크를 다시 함정으로 밀어 넣고 작별인사를 건넨다.
“잘 가라. 발자크! 발할라에서 보자, 개자식아!”
그런 말을 하면서 발을 빼려는 순간.
휘이익-착!
‘뭐?’
쟈칼의 발목으로 체인이 감겨져 온다. 언제? 어디서?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는 와중에 발자크가 체인소드를 해체하고 칼날을 쇠사슬처럼 늘어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설마 포격을 맞아가면서?’
[혼자서 죽을 수는 없지. 같이 죽자, 빌어먹을 자식아!!]
타이거의 마지막 발악에 쟈칼이 순식간에 함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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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
[류안!!]
그 광경을 지켜보던 탈리아와 제시카가 동시에 뛰쳐나온다.
쿠콰콰콰쾅!!
절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바위덩어리들이 쟈칼과 타이거를 짓뭉개 버린다. 그 뒤를 이어서 마치 봇물이 터지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질량의 흙더미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무거운 모래구름들이 자욱하게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두 사람을 덮쳐버린다.
[꺄아아악!!]
풍압에 휩쓸린 탈리아가 균형을 잃어버린다. 그 모습을 본 제시카가 재빠르게 그녀의 쟈칼을 지탱해주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탈리아는 그런 만류를 뿌리치면서 무조건 앞으로만 뛰쳐나가려고 했다.
[류안, 류안!!]
[진정하세요, 잘못하면 당신까지 말려들게 됩니다!!]
[하지만 류안이, 류안이!!]
잠시 후, 상황이 진정되자 모든 것을 삼켜버린 바위들이 마치 거대한 비석처럼 모습을 드러내어 온다.
그 광경에 압도되어버린 소대원들은 망연자실했지만, 탈리아만은 제시카의 손을 뿌리쳐 버리면서 쟈칼이 파묻혀있는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내 첫 번째 남자가 되겠다고 했잖아, 바보자식아! 내 첫 번째 요리도 먹어주기로 했잖아! 약속을 했으면 절대로 깨지 말란 말이야. 뭐든지 해줄 테니까. 제발, 살아 돌아와, 살아서 돌아오라고 이 거지같은 자식아!!]
그 처절한 절규에 사람들이 숙연해진다.
사회에서는 비록 흉악범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병사들이지만 그들이라고 전부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사회라는 정글에서 밀려난 탓인지 일반인들보다도 오히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물며 이번처럼 자신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적에게 맞서는 상관을 만난 건 처음이라서, 어떤 병사들은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그 희생에 대한 파장이 적지만은 않았다.
묘한 정적이 장내를 지배하는 가운데 통신 단말에서 미약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뭐든지 해준다는 거 정말이지?]
[……류안?]
[살아서 돌아가면 각오하라고.]
눈물을 글썽이던 탈리아의 동공이 커진다.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건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
[살아있습니까, 중사?!]
[살아있는데 더 있다가는 죽을 것 같습니다. 쟈칼의 조종석을 열고 빠져나와서 컨테이너 속으로 도망쳐서 암석을 피하기는 했는데, 토사에 휩쓸리는 바람에 깊숙하게 파묻혀버린 모양입니다. 무게 때문인지 컨테이너도 점점 찌그러지고 있고요.]
오오오오!!
소대원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 나온다.
[페어리 자매들은 귀가 밝으니까 컨테이너 벽을 계속 두드리고 계시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쟈칼들이 힘을 모으면 금방 꺼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빨리 좀 구하러 와주세요. 그리고 벤틀리 너 이 새끼는 돌아가면 두고 보자!]
“히끅!”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깜짝 놀라면서 딸꾹질을 하는 벤틀리. 그러거나 말거나 완전히 기운을 되찾은 탈리아는 통신 단말을 붙잡으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금방 갈게, 류안!!]
삐이이익-!
지나치게 큰 소리에 통신장치에서 시끄러운 하울링이 울려 퍼진다. 잠시 후, 페어리 자매들의 인도를 받은 쟈칼들이 열심히 흙 파헤친 끝에 컨테이너박스가 발견된다. 그 속에서 흙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상태로 걸어 나오는 류안.
“류안!”
쟈칼에서 뛰어내린 탈리아는 그런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들면서 안겼다. 덕분에 그녀를 끌어안는 형태로 바닥에 뒤로 주저앉아버리는 그. 제시카는 쟈칼에서 내려와 경례를 했고 소대원들도 그 모습에 따라서 일제히 경례를 했다.
그 감동적인 환영이 끝난 후.
“꼼짝없이 휩쓸린 줄 알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탈출하신 겁니까?”
“원래 남들보다 몸이 좀 잽싼 편입니다.”
순간가속을 몇 번이나 무리하게 사용한 끝에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마법이나 다름이 없는 스킬이라서 류안은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어쨌든 정말로 그 남자를 잡으시다니 대단하시군요.”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후훗. 귀관이 그렇게 나온다면 믿어드리겠습니다.”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자 심통이 났는지 류안을 끌어안고 있는 탈리아가 옆구리를 잡아서 비틀어버린다. 흠칫하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그 의미를 눈치 챈 제시카가 슬그머니 질문을 던진다.
“혹시 두 분이 사귀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잠시 동안 고민한 류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괜히 두 마리의 토끼를 노렸다가는 두 마리의 토끼를 전부 놓쳐버릴 수도 있는 법. 제시카에 대해서는 훗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거의 다 된 밥이나 다름이 없는 탈리아를 선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클라크의 문제도 있고 말이야.’
“이렇게 멋진 남성분을 애인으로 두다니 같은 여성으로서 부럽군요.”
“크흠! 우리 류안이 조금 멋지기는 하지.”
진심으로 부러워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탈리아를 띄워주기 위해서 꺼낸 말에 그녀가 의도대로 우쭐거리기 시작하자, 그 어른스러운 대처에 류안이 감탄하고 말았다. 반면에 탈리아는 이제 암캐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군.’
하지만 그 사랑이 자신에게 향하는 걸 알기 때문에 싫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로 가르치는 게 오히려 더 기대되기도 했으니까.
류안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통신 단말을 통해서 믿을 수 없는 메시지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토벌군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병사들에게 알린다. 샛별회의 지도자인 호프만을 체포하고 모든 거점을 제압했다. 반복한다. 샛별회의 지도자인 호프만을 체포하고 모든 거점을 제압했다. 이 시간부로 병사들은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본대로 귀환하라. 이상!]
테러리스트들과의 전투는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