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7화 (27/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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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소대원들을 이끌고 화물적재소로 도착한 제시카는 류안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감시카메라를 해킹하는 과정에서 테러리스트들이 기지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 증거로 이곳에서 가까운 화물적재소에서도 일을 꾸미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류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클라크를 시켜서 기록해놓은 감시카메라의 영상기록을 제시카에게 전송해줬다. 그 장면을 확인하고는 표정이 딱딱해지는 그녀.

“이 사실을 토벌군의 본대로 알려야만 합니다.”

[그랬다가는 내통자가 끼어들면서 일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라리, 돌입부대와 합류해서 그들에게 직접 영상을 보여준 다음에 설득을 하는 편이 빠를 겁니다.]

‘이 남자,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

일개 소대로 적의 본거지를 기습해서 1개 중대를 전멸시켜버리는 솜씨도 그렇고, 도저히 평범한 중사라고 볼 수 없는 남자다. 오죽했으면 그동안 수많은 전공을 세웠는데도 소령이라는 계급에 머물러있는 그녀 자신을 비관해온 일들이 우습게 느껴졌을 정도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사용하는 폭발물을 가로채면 타이거를 쓰러트릴 수 있는 부비트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소리입니다.]

“과연…….”

폭발물의 규모를 보니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제일 어려운 시간끌기와 유인은 류안이 단독으로 실행하기로 했다. 남아있는 문제는 제시카가 쟈칼 4기를 동원해서 제한시간 안에 폭발물을 강탈해내고 부비트랩을 설치할 수 있냐는 것.

폭발물을 지키는 테러리스트들과의 충돌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이쪽입니다!”

화물적재소에 먼저 도착한 클라크 일행이 양손을 흔들면서 제시카 일행을 유도했다. 가까이 접근하자 상당한 규모의 폭발물들이 타이머가 해제된 상태로 놓여져 있었고,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병사들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쌓여져 있었다.

“여러분들이 상황을 정리했습니까?”

“아닙니다. 저희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렇게 되어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발견한 건 그것만이 아닙니다. 잠시만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인도에 따라서 도착한 장소에는 한 소녀가 있다.

“이건 도대체…….”

마나구속장치에 휘감아진 걸로도 모자라서 두꺼운 쇠사슬로 팔다리가 묶여진 소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면서 입까지 벌리고 있는 게,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닌 상태를 하고 있었다.

소녀의 처우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던 제시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지금 중요한 건 이 문제가 아니다.

계급이 깡패라고 그녀 마음대로 억지를 부린다면 마음대로 행동하는 건 가능했지만,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류안이 세운 작전에 지장이 생기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곧바로 류안에세 통신을 날렸다.

“류안 중사. 화물적재소에서 폭발물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만 누군가 먼저 상황을 정리해놓고 간 모양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특이한 인질까지 발견하는 바람에 작전이 끝나는 대로 처우를 의논해 야만 할 것 같습니다..”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약 10분. 아니, 리틀보이라는 병사가 5분이면 충분하다고합니다.”

[좋습니, 푸하하하. 겨우 그것도 못 피하냐 얼간이 등신 새끼야!! 크흠, 어쨌든 인질의 처우는 작전이 성공하면 처리할 테니까 일단은 작업을 계속해주세요.]

상당히 즐기고(?)있는 모양이라서 제시카는 슬그머니 교신을 끊으면서 못 들은 척 작업을 지휘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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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다음단계로 진행할 때가 왔군.”

돌입부대를 지휘하던 랄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선봉대는 패주했고 돌입부대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이 정도의 성과면 자신을 후원해주는 의원들의 마음에 쏙 드는 결과물일 테니, 그를 다음 장군 진급심사에서 추천을 해 줄 가능성이 높았다.

출세길이 열린 것도 좋았지만 눈엣가시 같은 계집이 죽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계집이면 계집답게 아양이나 떨 것이지. 건방지게 성희롱이다 뭐다 그러면서 참견을 하지를 않나, 사사건건 가르치려고 들지를 않나.’

소수의 선봉대로 2차 저지선을 별다른 피해 없이 돌파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흠칫하기는 했지만, 다른 내통자의 활약으로 3차 저지선에서 적들에게 사로잡혔다는 정보를 듣고 나서는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그 농익은 육체를 테러리스트 놈들에게 넘겨주는 건 아쉽군.’

30대 초반의 나이지만 꾸준하게 단련을 해온 제시카의 몸매는 20대 초반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자기관리로 나올 데는 확실하게 나오고 들어갈 데는 확실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군복을 입고 칼같이 각을 잡아도 수컷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색기를 자연스럽게 뿜어내었다.

입맛을 다신 랄프는 다른 내통자에게 연락을 받고 나서는 다음 작전을 시작했다.

“만스 중령. 사령부에서 내밀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직접 찾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네. 내 대신에 자네가 돌입부대를 지휘하면서 제시카소령을 구출해 오게나.”

[……정말로 구출합니까?]

견원지간이나 다름이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만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어 보았다.

“물론이지. 아무리 건방진 부하라고 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선봉대의 후미를 지켰다는데, 이대로 당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이 생각해도 가식적인 대사였지만 만스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납득을 했다.

[알겠습니다.]

돌입부대가 떠나는 걸 지켜본 랄프는 자신이 탑승한 재규어를 움직이면서 테러리스트의 기지를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몇 걸음 움직이기도 전에 조종석이 잠기면서 정지해 버린다.

“뭐야?”

레깅스와 건틀렛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반응이 없다. 한술 더 떠서 시동까지 꺼져버리면서 아예 조종석의 문까지 열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이놈의 마장기가 미쳤나?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 병기가 자네의 명령을 듣는 일은 없네. 랄프 대령.”

그렇게 말하면서 한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앞으로는 방위군의 어떤 자산도 자네의 명령을 따르지는 않을 거라고 하는 편이 맞겠군.”

“기, 길로틴 대령?”

“자네가 방위군을 배신하고 적과 내통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네. 물론, 자네의 동료들과 배후에서 개입한 세력들까지 전부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랄프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발뺌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가소롭다는 것처럼 안경을 고쳐서 쓰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길로틴. 그는 통신 단말기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다 대더니,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변조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나?]

“사, 사령부에 있는 내통자의 정체가……네놈이라고?”

“자네는 훌륭한 꼭두각시였어. 뭐, 자세한 사항들을 알 필요는 없네. 어차피 냉동감옥에서 한 100년쯤 지내다보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게 될 테니까.”

“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가?”

길로틴이 가볍게 손을 휘저으면서 뒤돌아서 나갔다.

“처리해라.”

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광학위장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수십 명의 특수부대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배틀슈츠를 입고 얼굴은 마치 유령처럼 눈코입이 검은색으로 덮여진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는 그들.

헌병대의 특수부대 엔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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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젠장!! 젠장!!!]

발자크는 쉴 새 없이 욕설을 뱉어내고 있었다.

한 때는 우주군의 에이스 파일럿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다.

비록,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시원치 않은 녀석들만 상대하다보니 실력이 녹슨 것이 사실이지만, 도대체 언제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던 적이 있던가.

[어이구, 접근전으로 해보시겠다?]

발자크는 체인소드로 류안을 맞추는 것을 포기했다. 펀치나 킥, 어느 한 방만 제대로 들어가더라도 자신에게 승기가 올 거라는 생각에 막무가내로 공격을 휘둘러 나갔다.

하지만.

부웅-. 부웅-.

몇 배는 빠를 터인 타이거의 공격들이 모두 허공을 가른다. 개중에서는 절대로 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날리는 공격마저 교묘하게 흘려버리면서, 급기야는 타이거의 힘을 이용해서 업어치기로 바닥으로 꽂아버리는 쟈칼.

쿵!

[크아악!]

마치 난장이 달인에게 농락당하는 거인의 꼴처럼 추상적인 모습이다.

결국 접근전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천장의 조명을 향해서 뛰어오르는 발자크.

광학위장을 사용해서 광원으로 잠시 몸을 숨겼다가 류안의 시야 밖으로 빠져나간 이후에 기습공격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발자크의 움직임이 정확하게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을 정확하게 읽어내고는, 허공에서 무저항이 된 타이거를 향해서 빔 캐논을 연사해 나갔다.

투쾅! 투쾅! 투쾅!

[크아아아아악!!]!

그 공격으로 균형을 잃어버리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타이거의 몸체로 올라타더니 이내, 떨어지는 가속도를 이용하면서 바닥으로 찍어버렸다.

쿵!

지면이 마치 거미줄처럼 갈라지면서 피를 토해내는 발자크.

[크아악!!]

그 충격으로 광학위장까지 풀리면서 스파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땅바닥을 좋아하시나 봐?]

[이런 개자식이!!]

위잉-위잉-

마장기의 상태를 알리는 신호가 요란하게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장갑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경고를 보내면서 노란색으로 변해버렸고, 가장 심각한 충격을 받은 왼쪽 다리는 아예 붉은색으로 변해버렸다.

앞으로는 빔 캐논의 직격탄을 2방 정도만 더 맞아도 아예 박살이 나버릴지도 모르는 기체의 상태.

‘젠장. 한 녀석에게 이렇게까지 얻어맞은 상태에서 나머지 녀석들까지 달려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메라를 돌려서 주변을 살폈더니 전투를 지켜보고 있을 줄 알았더 적들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다.

[아무도 없다고?]

[어디로 한눈을 팔고 있는 거냐?]

어느새 왼쪽 다리로 파고들어온 류안이 다시 한 번 제로거리에서 빔 캐논을 발사해 나간다.

콰앙!

“크윽!”

기어이 박살나는 왼쪽 다리 때문에 균형을 잃어버리는 타이거.

한쪽 손으로 쓰러지는 동체를 지탱하면서 체인소드를 미친 듯이 휘두르고 나서야 겨우 류안을 떨쳐내고는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일부러 생각할 시간을 준 걸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었으니까.

발자크는 필사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나머지 쟈칼이 전부 합세해서 덤볐으면 난 죽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퇴각해버리다니 이건 마치…….’

선봉대를 후퇴시키기 위해서 남았던 제시카와 크로스라는 애송이와 똑같지 않은가.

“아니, 아직은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녀석이 나를 혼자서 쓰러트리려는 속셈일지도…….”

류안에게 단단히 겁을 집어먹은 발자크는 신중하게 움직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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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의 성능과 적의 행동패턴은 대충 파악했어. 역시 무의식적으로 왼쪽으로 움직이는 걸 피하려고 하는군.”

발자크와 싸우는 걸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본능이 극도로 발달을 한 야생동물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놀랍도록 재빠르게 대응하지만 반대로 약한 부분을 공격하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일부러 약점을 두드리면서 공포를 학습시켰더니, 이제는 왼쪽으로 접근해 들어가기만 해도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나고 만다.

‘머리보다 본능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을 농락하는 건 일도 아니지.’

게임의 장점은 단순하게 캐릭터에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이입시키는 게 아니라, 항상 타자화를 시키면서 판세를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꾸준하게 연습을 거듭한 사람은 자신의 본능마저도 속일 수가 있고, 상대방의 본능을 이용해서 농락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프로게이머들의 세계에서는 기본기라고 할 수가 있는 것.

“그나저나 장갑 하나는 진절머리 나게 단단하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다소 생각 없이 두들겨 팬 경향도 있지만, 그렇게 끝도 없이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다리 하나를 박살내는 성과를 올린 게 고작이다.

함정을 쓸 필요도 없이 혼자서 쓰러트리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남아있는 마나는 겨우 40.

빔 캐논을 한 발 발사하는데 들어가는 마나는 5였으니 앞으로 8발만 발사해도 쟈칼은 시동을 멈추고 덩치만 커다란 고철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나머지 탄환 전부를 타이거의 조종석으로 쏟아 붓는다고 해도 파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지 않는 상황.

나는 제시카를 향해서 통신을 날렸다.

“준비는 어떻습니까?”

[함정 설치는 끝났습니다. 이제 화물적재소로 녀석을 유인해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나는 미련 없이 빔 캐논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그 모습에 움찔하면서도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녀석.

[네놈. 무슨 속셈이냐?]

“뭘. 한쪽 다리가 없어졌으니 밸런스를 맞춰주려는 거지.”

태연한 목소리를 일부러 살짝 흔들리는 식으로 어색하게 대답을 한 나는 버려놓은 보조 무장들을 살며시 힐끔거리는 연기를 했다. 평범한 녀석들이라면 눈치를 챌 수 없는 미묘한 움직임이지만, 역시나 야생동물처럼 민감하게 캐치를 하는 발자크.

[호오. 그것 참 자비로우시군.]

단숨에 여유를 되찾아버리는 반응을 보니 그 녀석도 심리전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하기야, 그런 반응까지 거짓말이라면 오히려 위기에 빠지는 건 내 쪽이 되겠지만.

한동안 눈치를 보던 녀석과 나는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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