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5화 (2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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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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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쇼크웨이브가 터지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차곡차곡 쓰러지는 테러리스트들의 시체가 그를 감쌌고 그 속으로 웅크리면서 기척을 감췄다.

최루탄이 터지면서 아군은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발자크는 다급하게 죽은 병사들의 품을 뒤져서 방독면을 착용했지만, 깨진 부위를 통해서 가스가 스며들어오는 것 까지는 막아낼 수가 없었다.

“크윽.”

눈과 코에서는 분비물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목구멍으로는 새하얀 분말들이 달라붙으면서 수분들을 불태우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고 하는 신음소리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바깥의 상황들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부하들이 무력하게 학살당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설마 조력자가 배신을 한 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그들이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선봉대를 자신들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건지 의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이 굴욕은 반드시 갚아주겠어.’

그렇게 이를 가는 가운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쇼크웨이브를 맞고 쓰러진 녀석들에게 확인사살을 실시한다. 총상이 없는 녀석들에게는 반드시 2발 이상을 사격하고 나서 접근하도록!”

계속되는 위기.

적 대장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확인사살을 시작했다.

“바, 발자크님…….”

그러는 와중에 자신을 발견한 부하가 구해달라는 것처럼 손을 뻗어오다가 적 병사들에게 사살당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탕! 탕! 탕! 탕! 탕! 탕!

총성의 화염이 그림자를 걷어내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비추어진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총소리들이 마치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것 같아서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억눌렀지만, 다행스럽게도 적 대장이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니 적 병사들의 행동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자신의 마장기를 해킹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발자크.

‘최소한 저 자식만이라도 없애야 해.’

마장기를 조작하고 있는 소년병과의 사이에는 확인사살을 하고 있는 흉악한 인상의 떡대 병사가 방해였다. 참을 인자를 새기면서 기회를 노리기를 잠시, 그 병사가 발자크가 숨어있는 시체더미를 향해서 걸어오는가 싶더니 소총을 자동모드로 바꾸면서 x자로 후려갈겼다.

드르륵-! 드르륵-!

챙그랑!

재봉틀을 박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탄환들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몸에 맞지 않았지만, 방독면의 유리를 깨트리고 지나가면서 파편들이 왼쪽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크……읍!”

급하게 눈을 감았지만, 몇몇 파편들이 안구로 파고들어 오면서 시신경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 같은 고통이 척수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하, 시발, 돌아가면 떡이라도 치러가야지 원.”

하지만 그 신음소리를 들은 게 분명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 적 병사는 겁도 없이, 시체더미를 등지고 돌아서면서 담배를 입에 문다.

“나도 한대만 줄래?”

“미안하지만 이게 돛대라서……뭐?”

시체더미에서 뛰쳐나온 발자크가 병사의 척추로 나이프를 꽂는다.

“크아아아악!!!”

“이거 귀신이 된 기분인걸!”

부하들의 피로 범벅이 된 발자크가 소년병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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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대에서 처음으로 희생자가 나왔다.

확인사살을 하는 닥돌 형제 하나를 살해해버린 발자크. 소리를 듣고 뛰어간 소대원들이 재빠르게 총을 겨누면서 포위했지만 벤틀리가 인질로 붙잡히는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졌다.

“너무 가깝게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특히 그쪽 전투드론들이 광학위장을 사용하는 건 알고 있거든?”

타이거의 동체를 등지고 벤틀리의 목에 나이프를 겨누고 있는 발자크.

여차하면 단숨에 동맥을 찌를 수 있을 정도로 칼날을 바싹 밀어부치는 바람에 문답무용으로 발사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게다가 저격이 가능한 탈리아는 쟈칼에 탑승해있고, 제압용으로 발사할 수 있는 불량품콤비의 쇼크웨이브도 방전되어버린 상태.

“원하는 게 뭐냐?”

“두말할 필요 있어? 그냥 내 물건을 되찾고 싶을 뿐이야.”

‘B급 마장기인 타이거를 받아가겠다는 소리군.’

10만 골드가 날아간다는 생각에 잠시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이쯤에서 만족하고 포기하는 편이 좋아보였다.

“좋아. 그러면 우리 병사들이 쟈칼에 탑승할 때까지 대기해라. 만약에 이 제안을 거절하면 인질이고 나발이고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좋으실 대로.”

내 협박이 통했는지 녀석이 한 걸음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소대만으로 B급 마장기에게 맞서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 하지만 쟈칼 5대의 화력을 추가할 수 있으면 녀석도 쉽게 덤벼들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 됩니다. 중사! 지금 당장 쏴버리세요! 타이거를 넘겨주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시카의 충고로 협상이 멈춘다.

“이거야 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을 뒤섞던 사이인데 너무하는 거 아니야?”

“닥쳐라, 금수만도 못한 더러운 자식!”

“소대장님…….”

오들오들 떨면서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벤틀리. 비록 얄밉기는 해도 또래다운 천진난만한 성격이 미워할 수만은 없는 녀석이다. 게다가 이번 작전만 봐도 녀석의 도움이 없었으면 실현이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이 상황에서 벤틀리의 생사를 도외시해버리면 아무리 범죄자출신 병사들이라도 인심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악명이야 올라갈지도 모르지만, 그래봐야 의리가 없는 소대장이라는 소문이 퍼져버리면 누군가 내 등에 칼을 꽂아도 할 말이 없어져버린다.

‘돈이야 다음을 기약해도 상관은 없어.’

문제는 제시카의 충고.

마장기 파일럿이자 발자크와 직접 싸워보기도 한 그녀의 조언은 내 얄팍한 계산보다는 훨씬 더 정확할 게 뻔하다. 그렇다면 녀석이 이대로 타이거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소대 전체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일.

소대 전체와 벤틀리 한 명의 목숨.

‘어쩔 수 없는 건가.’

“자,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 중사 나리?”

“한 가지만 물어보지.”

“뭐지?”

“절대로 추격하거나 보복하지 않을 테니 이대로 타이거를 두고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나?”

“너 같으면 그런 약속을 믿겠냐?”

“그렇군.”

발자크의 의중을 확인했기 때문에 협상은 결렬되었다.

철컥.

나는 소총을 유탄발사모드로 전환하고 마나를 충전해 나갔다. 여기서는 오명을 감수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늠쇠로 두 사람을 조준해 나갔다.

“젠장. 동료의 목숨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거냐?”

발자크가 창백해진 얼굴로 벤틀리를 더 단단하게 움켜잡는다.

일촉즉발의 상황.

‘미안하다 벤틀리.’

그렇게 생각하면서 방아쇠를 담기려고 하는 순간에 언젠가 들어보았던 목소리가 손가락을 멈춘다.

[방아쇠를 당기면 안 돼!]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지만 누군가 나타난 기색은 없다.

‘병원에서 들었던 목소리야…….젠장,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의 상황을 유심하게 살피고 있으려니 벤틀리가 손짓으로 뭔가를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B급 마장기인 타이거에는 시큐리티 락이 걸려있네요. 이건 생체인증 시스템을 사용하는 거라서 해제하려면 약간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아직 10분의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벤틀리가 시큐리티 락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뭔가 조치를 취해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불안하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충고를 따라서 방아쇠를 당기는 걸 포기한 나는 제시카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소령님. 아직 피곤하시겠지만 쟈칼에 탑승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류안 중사!”

“소령님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 이 소대를 지휘하고 있는 건 본관입니다. 만약에 제 지시를 따르실 생각이 없으면 쟈칼 1기를 양도해드릴 테니 곧바로 돌입부대로 귀환해주십시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는 데는 그녀의 도움이 필수다. 현실적인 조언을 하기는 했지만, 처음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성정을 생각해보면 우리들을 버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에는 체념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

“……휴, 귀관은 비겁한 사람이군요.”

불량품콤비와 나머지 병사들이 발자크를 견제하는 사이에 나, 탈리아, 제시카,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 중에서 마나가 가장 많은 닥돌 형제들(이제는 3형제가 되어버린)중에서 2명이 쟈칼에 탑승했다.

탈리아가 쉽게 움직였을 정도니 운전을 하는 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은 숙련된 전문가인 제시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마장기를 움직이는 방법은 기본적으로는 강화슈츠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더 크고 복잡한 장치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선은 조종석 중간의 시동장치로 손바닥을 가져다가 대고 마나를 주입해 보세요.]

제시카의 말대로 우리들은 조종석 중앙으로 마나를 주입시켜 나갔다.

‘시동을 거는 데만 20마나를 잡아먹는군.’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마나량은 미미했지만 병기들까지 사용하려면 일반 병사들은 오래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음으로 건틀렛과 레깅스를 장착하고 VR헬멧을 착용하세요.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는 VR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이이잉-.

VR헬멧을 착용하자 마치 스스로가 마장기가 된 것처럼 시야가 전환되어진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자 약간은 늦게 따라서 올라오는 마장기의 팔. 그 모습을 본 제시카가 조언을 이어나갔다.

[자세제어시스템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신체의 반응속도에 맞춰서 싱크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마장기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수치를 조절해주세요.]

‘꼭 FPS게임의 마우스 감도를 조절하는 느낌이군.’

아닌 게 아니라 마장기의 조작방법은 전생에 플레이한 배틀머신이라는 게임과 상당히 비슷하다.

터무니없이 비싼 전용 VR머신의 가격과 사용자가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조작해야만 한다는 불편한 유저 인터페이스. 게다가 실제 로봇 전투를 체험한다는 명목으로 난이도를 터무니없이 올려버리는 바람에,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는 제작사를 망하게 만들어버린 비운의 명작이다.

하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실제 로봇 전투를 체험하는 것 같은 심도 깊은 재미들이 있어서 로드스타를 은퇴한 이후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플레이한 게임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 3년은 꾸준하게 즐긴 게임인데.’

망했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에 20만장이 넘게 팔린 제품인데다가 일부 매니아 층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릴 넘치는 전투가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아서 비공식리그가 인터넷방송으로 전 세계에 중계된 적도 있을 정도.

그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자신의 솜씨를 뽐내면서 순위를 다퉜다.

물론 1위는 나였지만.

‘그래도 게임과 현실은 다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시카에게 조종법을 완전히 배우고 나자 머릿속에서 시스템 음성들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며 메시지를 보낸다.

[마장기 조종법을 터득하면서 새로운 스킬이 생겼습니다. 마장기 조종술. 현재등급 F]

[잠재되어있는 능력이 각성하면서 스킬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등급 E]

[잠재되어있는 능력이 각성하면서 스킬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등급 D]

[잠재되어있는 능력이 각성하면서 스킬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등급 C]

[잠재되어있는 능력이 각성하면서 스킬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등급 B]

[잠재되어있는 능력이 각성하면서 스킬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등급 A]

[잠재되어있는 능력이 각성하면서 스킬레벨이 상승합니다. 현재등급 S]

“…….”

전생에 누군가가 했던 아주 오래된 명언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친다.

“인생은 한 방이야!!”

[왜, 왜 그러세요. 중사?]

[왜 그래 류안?]

통신 열린 상태에서 내 포효가 소대 전체로 울려 퍼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안부를 묻는다. 괜찮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입가가 찢어지면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까지는 막을 수가 없다. 영락없이 미친놈이라는 오해를 받기 딱 좋은 반응이지만, 지금만큼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배틀머신 제작자님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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