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 ----------------------------------------------
지상편
다음 차례는 군복을 힙합스타일로 차려입은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다.
나이는 이제 한 15살이나 되었을까?
“이 꼬마는 벤틀리라고 해. 계급은 일병이고 전직은 해커지. 그래봤자 젖소회사를 해킹하다가 걸린 송사리지만.”
“젖소 회사가 아니라 마벨 택배회사라니까요! 공화국의 물류대란을 이 벤틀리 파커님의 손으로 이루어냈다는 걸 모르시는 겁니까? 이래보여도 정부의 음모나 세계에 숨겨진 비밀들을 한손에 쥔, 진짜 거물급 범죄자님이시라니까요?”
“아~, 믿어, 믿는다고. 정말이라니까? 그러셨겠지.”
“아오, 진짜……누님만 아니었어도 통장 계좌를 확 털어버리는 건데.”
탈리아와 허물없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제법 친해 보인다. 절륜의 부작용으로 예민해져서 그런지 살짝 거슬리기는 했지만 어차피 누나동생 하는 수준이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누님의 엉덩이가 오늘은 왜 이렇게 화가 나셨어요?”
“야, 어딜 손대는 거야! 이 새끼가 미쳤나.”
‘좋아, 아웃!’
탈리아의 엉덩이를 터치하고는 능글거리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니 전망이 밝은, 아니 싹수가 엄청나게 노란 놈이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밟아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탈리아와 소대원들에게 속 좁은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기회를 봐서 철저하게 교육시켜야겠다.
‘남녀 간에 우정이 어디에 있어? 자라나는 새싹들은 미리미리 밟아버려야지.’
“소대장님, 기분이 어디 편찮으십니까?”
슬래터 무비를 기획하고 있는 나에게 클라크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이제는 계급이 아니라 직급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한 녀석.
“닥쳐 클라크.”
“…….”
합죽이가 되어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그를 보면서 작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으려니, 탈리아가 다가오면서 귓속말로 속삭여주었다.
[그냥 장난하는 거니까 너무 화내지는 마.]
귓속말로 대답하려고 하니까 다시 거리를 벌리는 그녀.
‘자기는 해도 되지만 나는 하면 안 된다는 건가…….’
아무래도 소대원들에게 진심으로 존경받는 소대장이 되려면 여러모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주목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의 병사들은 평범한(?)흉악범들이다. 발가락이 6개라던가, 입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거나, 약에 찌들어서 동공이 풀어졌다거나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특징들을 제외하면 살인이나, 강간, 약탈, 강도처럼 몸으로 때우는 범죄들에 특화되어 있는 육체파 대원들이다.
나는 이들을 닥돌 4형제로 부르기도 했다.
‘탈리아는 저격수. 리틀보이는 폭파전문가. 벤틀리는 해킹담당, 불량품콤비를 전술공격의 핵심으로 삼고, 닥돌 4형제는 딜러겸 탱커. 클라크는……전력외기는 하지만 머리도 좋고 똑똑한 녀석이니까 내 꼬봉으로 부리면서 빵이나 사오라고 하면 되겠군.’
능력만 살펴보면 화려한 구성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어서 탈리아에게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멤버들은 바스코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은행을 털기 위해서 직접 스카우트를 하며 결성한 팀이라고 한다.
“형기가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한탕하기로 했지.”
“…….”
형량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군대에 끌려와서는 또 계획범죄를 세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어쨌든 범죄자들 사이에서는 갱단 다음으로 존경받는 전문직(?)종사자들이라고 하니 새삼스럽게 바스코 패거리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오히려 그들이 은밀함과 신속함이 생명이라는 은행털이집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흥미로운 구상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진다.
‘잘 하면 로드스타의 특공대를 재현할 수도 있겠는데?’
극소수의 병력들을 이끌고 적의 심장부를 유린하는 특공대. 게임에서도 가장 섬세한 컨트롤을 필요로 하고, 그 조그마한 변수로 전체의 전황을 뒤흔들어대는 웩더독Wag the Dog을 실현해 낼 수 있는 존재들이다.
문제는 생존율.
특공대의 비애는 게임이나 현실이나 다를 게 없다.
방비가 잘 되어있는 적의 심장부를 공격해야하는 임무를 맡다보니까 언제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전멸할지 모른다는 아이러니를 떠안고 있다. 그래서 게임에서도 돌아올 수 없는 부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아예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서 쓰고 버리는 패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불량품콤비와 나를 제외하면 마나보유량은 평범한 수준들이니 터무니없이 강력한 적들과 마주치게 되면 순식간에 몰살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특공대로 활약하고 싶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수밖에 없지.’
그렇게 다짐을 한 나는 군수상점에서 구입한 무기들을 소대원들에게 분배해 나갔다.
“이거 불량품 아니죠?”
벤틀리의 질문.
“불량품처럼 보이냐?”
휘이익-!
휘파람까지 불어대면서 무기들을 챙겨가는 병사들. 최신형은 아니지만 우주군 병사들이 사용하는 표준 규격의 무장을 공짜로 얻었으니 어지간히 좋아하는 눈치들이다.
“멋대로 팔아버리면 얼굴 가죽을 벗겨서 소대 깃발로 만들어 버리겠어.”
“쳇.”
‘역시 몇 놈은 팔아버릴 작정이었군.’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놈들의 면상을 기억한 나는 탈리아를 위해서 구입해 온 전용 무장을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를 하는 자세로 건네주었다.
“이건…….”
“sr-7저격총이야. 기록에서 봤는데 저격도 할 수 있다며?”
‘그러니까 나와 검열삭제 해줄래?’
“이야! 이게 왠 거야? 땡큐!!”
그렇게 외치면서 희희락락한 표정으로 저격총을 강탈해버리는 그녀.
“…….”
무안해진 내가 무릎을 툭툭 털면서 일어나 쏘아보자, 전부 고개를 돌리면서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sr-7저격총.
연맹의 특수부대원이 애용하는 장비로 단독으로 10골드를 호가하는 상품이다. 물론, 찬탈자나 불량품콤비의 가격에는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개인화기 중에서는 최고의 성능과 가격을 자랑하는 명품 중에서도 명품.
탈리아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저격총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조준을 하더니, 이내 남자숙소의 옥상에 매달려있는 풍향계를 표적으로 삼으면서 조준한 다음에 발사해버렸다.
탕! 탕! 탕! 탕!
멋지게 폼을 잡은 것 치고는 전부 빗나가는 총알.
그도 그럴 것이 족히 800m는 떨어져 있는데 영점조절도 하지 않고, 풍속도 계산하지 않은 상태로 그런 묘기를 부리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일단은 조정을…….”
“닥쳐 류안.”
“…….”
클라크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겠냐는 듯한 눈으로 어깨에 손을 올리는 바람에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말았다.
내 입을 막은 그녀는 영점조절기와 풍속계산기를 거침없이 조정하더니 다시 한 번 풍향계를 조준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조정을 하려면 조금 더 가까운 표적지로 하는 게 기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총구가 화염을 뿜는다.
탕!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역시 표적에 명중하면서 풍향계를 지탱하고 있던 축이 잘려져 나간다.
‘응?’
“명중했다고?”
오오오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소대원들이 감탄을 터트리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건 했다는 듯이 저격총을 한 손으로 들어 어깨에 짊어지면서 의기양양하게 폼을 잡는 탈리아.
“제법 쓸 만한데?”
[야 이 새끼들아! 총 쏘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남자 숙소에서 한 남자의 비통한 외침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런 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재주는 훌륭했다.
전생에서 보통 유능한 저격수들의 사정거리는 600m정도라고 교육을 받았다. 물론 이쪽 세계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신체능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마나병기들의 특성상 탄도가 직선에서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까운 거리일 때나 통하는 소리다.
3,400m를 넘어가면 아무리 명사수들이라도 조그마한 실수 하나로 조준이 빗나가는 게 비일비재했고, 그런 사정은 스코프와 사격보조 장치들의 도움을 받는 저격수들이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물론 저격수들이 조금 더 먼 거리를 저격할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보통은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정밀하게 저격 포인트를 선정하고 풍향, 탄도, 거리, 등등의 모든 구성을 세밀하게 따지고 파악해 내야만 표적지를 정확하게 관통시킬 수 있는 법이다.
그걸 처음 사용하는 총으로 이렇게 거침없이 해내는 탈리아의 실력이라는 건 그야말로 타고났다는 말로밖에는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정도 솜씨라면 무난하게 S급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 사소한 의문들을 뒤로하면서 무기배분을 마친 나는 소대원들에게 확실하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서 술집으로 직행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 오늘은 소대장이 쏜다!”
“…….”
‘어라?’
그 순간에 소대원들은 물론이고 가게에서 술을 마시는 병사들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묘한 침묵. 잠시 후, 나는 말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복부에 힘을 주고 악을 쓰듯이 윽박질렀다.
“가게를 거덜 낼 생각으로 달려들어라 개자식들아! 오늘 살아서 나가는 새끼들이 있으면 폐차장압축기에 처박아 버릴 테니까 죽을 각오로 퍼마셔라!!”
우오오오오!!!
‘피곤하다 진짜.’
다시금 평화(?)를 되찾는 가게의 반응을 보면서 앞으로는 말투에도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설마 태어나서 어떻게 하면 욕을 찰지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순간이 올 줄이야.’
전생에서는 웬만하면 참석하지도 않았던 회식을 자발적으로 개최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주최자의 눈치를 눈곱만큼도 보지 않으면서 전투적으로 술자리를 벌이는 소대원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의 향연.
“거치른 술판으로! 달려가자!!”
어깨동무를 하고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면서 비싼 술을 거덜 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오늘따라 주머니가 더욱 더 가볍게 느껴진다.
“…….”
머릿속으로 열심히 술값을 계산하던 나는 양주 사발을 앞으로 내려놓는 닥돌 1의 행태를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소대장님의 능력을 한 번 보여주십시오!!”
“흐, 흑기사는 안 되겠지?”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분위기.
구석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던 클라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버린다. 뭐든지 하겠다더니 역시나 말뿐이었다.
‘젠장,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냐?!!’
오오오오!
한 병에 5실버나 하는 고급 필 워커5년산이 목구멍을 타고 위장으로 직행한다. 포도주처럼 좋은 향과 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라는 평판이지만, 지금은 단지 혀를 마비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마취제를 들이마시는 기분이다.
단숨에 들이마시고 사발을 쾅! 하고 내려놓으니 취기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머릿속이 살짝 멍해지면서 주변의 풍경이 빙글빙글 돌아갔지만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는 소대원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호기가 솟구쳐 오른다.
“한사발 더!”
오오오오!
그렇게 객기를 부린 대가로 나는 정확하게 5분 후에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까운 술…….'
속에 들어간 것을 게워내면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나는 어느 틈엔가 카운터로 가서 앉아있는 벤틀리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걸어갔다. 녀석은 미성년자 꼬맹이라는 이유로 술자리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잔뜩 꽁해져 있는 상태.
솔직히 한두 잔이라면 누군가가 먹여볼 법도 했지만, 마시고 싶어서 안달하는 모습이 재밌다면서 지금까지 아무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마스터! 여기에 쓰여 있는 스트레이트랑 온더락의 차이가 뭐죠. 역시 온더락이 조금 더 맛있는 건가요? 어떤 맛인지 한 번 맛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퍽!
“꼬맹이가 어디서 수작질이야? 뜨거운 우유나 시켜줄 테니까 그거나 쳐 먹어!”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치고 우유를 주문하면서 표정을 쳐다보자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입술을 깨물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크하하하! 우유나 마시래. 우유! 겁나게 어울린다. 벤틀리 파커!”
“그러니까 젖소회사가 아니라 택배회사라니까요!!”
‘어지간히도 콤플렉스였나 보군.’
원망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벤틀리의 모습에 미안해진 나머지 우유를 주문하는 걸 취소하고 딴에는 센스 있게 쥬스로 변경을 해줬다.
“나중에 성인이 되면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시도록 해줄게.”
“그냥 지금 사주면 안 됩니까?”
“다시 우유로 바꿔줄까?”
내 대답에 인상을 찌푸린 벤틀리가 쥬스를 한꺼번에 들이킨다. 그러더니 갑자기 뭔가를 떠올리고는 짓궂은 표정을 짓기 시작하는 녀석.
‘괜히 불안한데.’
“소대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탈리아 병장님이랑 클라크 이등병하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게 사실입니까?”
“푸학! 켁, 켁!”
맥주를 들이키던 클라크가 사례가 들려서 컥컥거렸다.
생각하지도 못한 기습에 당황을 한 건 나도 마찬가지.
소대원들도 흥미가 생겼는지 대화를 멈추면서 이쪽을 바라봤다.
클라크의 왼손 약지에는 지금 내 남자라는 증거인 붉은색 리본이 묶여져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연기를 위한 소품이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진실을 밝히면 클라크는 다시 늑대들의 품속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
아니나 다를까 클라크가 필사적인 몸짓으로 뭔가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음, 그게 그러니까…….”
“참견, 거기까지, 꼬맹이, 누가, 몇 명을, 사귀던, 무슨, 상관.”
대답할 말을 쉽게 찾아내지 못하고 가운데 리틀보이가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땡큐! 리틀보이!’
하지만 그런 어시스트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야신이 골문을 가로막으면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외친다.
“너야말로 닥쳐봐. 리틀보이 병신아! 왜냐면 나도 예전부터 그런 소문을 듣고 어마어마하게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류안???”
쿵!
테이블을 박살내기라도 할 것처럼 강하게 술잔을 내려놓은 그녀.
“타, 탈리아. 취한 것 같은데…….”
“안 취했거든???”
탈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웃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압박을 해 왔다. 그 무시무시한 박력에 떠들썩하던 술집이 순간적으로 조용하게 변해버렸을 정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류안?????”
꿀꺽.
이제는 침을 삼키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입을 주목하는 가운데, 그런 상황을 연출하고서는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벤틀리.
‘두고 보자 벤틀리 파커.’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