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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VR(virtual reality)넷 서비스에 접속한 나는 주저 없이 군수상점을 방문했다.
[기계제국의 전쟁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계제국은 오딘의 임무에 따라서 정복해야하는 6대 세력중에 하나로 유라디스 은하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더스 3세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슈발츠 제국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서 자치권을 인정받은 중립국으로 지배하는 영토는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하지만 중립국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연맹과 제국 양쪽으로 수많은 군수상점을 설립하면서, 실질적으로 전 우주에서 가장 많은 전쟁병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계제국이 우주에서 가장 큰 비대칭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은 겉으로는 중립을 지키는 척을 하면서 메인플레이어가 인류인 제국과 연맹과 양쪽으로만 무기를 납품하는 척 하며, 뒤로는 범죄조직과 마경으로까지 병기들을 판매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퍼트린 사람들 대부분이 살해당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음모론에 불과했지만…….
[또 뵙네요. 신후님! 이번에는 어떤 병기들을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런 이미지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깜찍한 토끼 귀를 단 여자 직원이 달려온다.
그녀의 이름은 셀리나.
인공지능이 아니라 VR시스템으로 온라인 매장의 1대 1전담 영업을 하는 직원으로, 지난번에는 핸드 캐논을 구입하기 위해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사하스 연맹의 지상병기 카탈로그를 보여줘.”
[알겠습니다!]
지상병기의 경우에는 육군전통을 보존해온 슈발츠 제국의 병기들이 훨씬 강력했지만, 그런 작전을 허용하는 위치에 있는 군인이 아니라면 적국의 무기는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s-15소총을 4정. 아니, 5정을 구입하겠어. sm-200기관총하고 sr-7저격총도 하나씩 사고 랄포드 샷건도 3정 추가할게.”
[전부 다 해서 51골드입니다.]
소대원들에게 지급할 기본적인 병기들을 구매하고 나서도 대부분의 돈을 남긴 나는, 욕심을 내서 비싼 장비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시 백병전에서 쓸 만할 더 좋은 무기는 없어?”
토마호크나 라이트세이버같은 백병전 무기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마나소비량에 비하면 성능이 시원치 않은 하급품이 대부분이다. 매번 미니게임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근접전에 자신감이 없는 나는 무기의 성능에 의지해서라도 불안요소들을 줄여놓고 싶었다.
[원하시는 물품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좀…….]
“무슨 문제라도 있어?”
[성격이 조금 괴팍한 장인이 만든 작품인데, 사용했던 사람들이 전부 죽어서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덕분에 가격은 많이 내렸지만 미스릴로 도금한 물건이라서 여전히 비싼게 탈인데…….]
“얼마나 하는데?”
[150골드입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기는 했다.
“일단은 한 번 구경해 봐도 괜찮을까?”
내 말에 셀리나는 검은색으로 빛나는 외날검을 보여줬다. 손잡이만 달랑 있는 라이트세이버와는 확연하게 다른 구시대적인 형태.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손잡이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검신으로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됩니다. 미스릴 소재를 사용해서 마나전도율을 높였고 출력부도 세밀하게 조정할수 있어서, 종래의 근접무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절삭력과 마나효율을 자랑합니다. 물론, 원거리 병기들에 비교하면 마나효율이 떨어지는 건 여전하지만요.]
셀리나의 솔직한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자의 마나를 자동으로 추출하면서 탄환을 만들어내는 원거리 병기들과는 다르게 근접 무기는 사용자가 직접 오러 블레이드의 출력을 조절해야만 했다.
게다가 크기가 작게 생성되는 탄환과는 다르게 면적을 크게 만들고 오래 유지해야만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오러 블레이드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마나를 잡아먹는다.
먼 옛날에는 혹독한 수련을 쌓은 전사들만이 무기에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했다고 전해지니, 지금은 엄청나게 쉬워진 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오러 블레이드는 오러 블레이드라는 거다.
그나마 원거리 병기들에 비하면 약했지만.
덕분에 어지간히 마나보유량이 남아돌거나 근접전을 하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군인들은 백병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싸움을 총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지.’
백병전은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다.
건물 내부라던가, 울창한 밀림이라던가, 총을 뽑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라던가, 불가피하게 백병전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무기를 하나 만들어 놓을 필요는 있었다.
셀리나는 화면을 통해서 외날검의 시연 영상을 보여줬다.
기존의 라이트세이버나 토마호크를 단숨에 양단하면서 적을 거침없이 베어 넘기는 영상. 최소한 5~6배는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압도적인 성능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지름신이 강림했다.
“살게.”
[정말이십니까?]
“이름은 뭐야?”
[예전 주인은 사형집행수(executioner)라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원하는 이름이 있으면 직접 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중2병을 자극하는 좋은 이름이지만 역시 남이 사용하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적당한 이름을 하나 떠올리고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면 나는 찬탈자(usurper)라고 부르지.”
[……센스 보소.]
“뭐라고?”
[아, 아니요. 정말로 좋은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어째서인지 셀리나의 미소가 평소보다도 훨씬 더 영업적으로 밝게 빛나는 느낌이 든다.
찬탈자를 구입한 나는 계속해서 쇼핑을 했다.
중간에 신체능력을 대폭 향상시켜주는 강화슈츠나 응급치료머신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마나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마나를 요구하는 물건.
다른 소대원들에게 주려고 해도 지금까지 구입한 병기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저런 병기를 풀 세트로 장비하고 다니려면 마나가 최소한 300이상은 돼야겠어.’
현재 내 마나보유량은 115.
일반 병사에 비하면 2배 이상 많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낭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한참동안 카탈로그를 뒤지던 나는 쓸 만해 보이는 병기들은 전부 터무니없는 마나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하고 말았다. 수중에는 돈이 남아돌고 있지만 대부분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니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셀리나가 귀가 번쩍 뜨이는 정보를 알려줬다.
[혹시 전투드론을 구매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전투드론?”
[페어리나 정령들이 조종하는 소형 마장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명색이 마장기니만큼 능력은 보장하겠습니다.]
‘마장기라.’
덩치가 큰 마나병기들에는 마나증폭장치를 사용해서 적은 마나로도 강력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마장기는 개인 장비로서는 최대의 마나효율을 자랑하는 병기였기 때문에, 인류가 아직 지상에 묶여 있는 시절에는 탱크를 제치고 지상전의 왕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했을 정도다.
“혹시 그냥 마장기는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요즘 매물이 남아도는 c급 육전형 재규어는 폭탄세일로 3만 골드밖에 안 합니다. d급 랩터는 5000골드고요.]
“…….”
[정말로 저렴한 가격인데…….]
나는 못 들은 척을 하면서 화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전투드론은 얼마나 하는데?”
[기체만 구입하시면 대당 2천 골드는 들어갑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정령들과 가계약을 맺으면 평생 부하로 부리실 수 있지만, 정령을 소환할 때마다 일정량의 마나를 소비하기 때문에 추천 드리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하기에는 돈이 부족하다.
‘젠장, 내 월급은 한 달에 1골드 70실버인데…….’
“다른 방법은 뭐야?”
[전투드론을 소유한 페어리를 전투용병으로 고용하는 방법입니다.]
“용병 계약이라…….”
군수상점을 통해서 용병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했지만, 셀리나의 설명을 들어보니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신에 자신이 지휘할 수 있는 숫자만큼만 고용해야 하니 현재 소대장을 맡은 나는 총 10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잠깐 계산을 하려고 하니 셀리나가 재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신후님이 근무하고 계시는 제론Ⅴ 42지구에서도 일자리를 구하는 페어리 자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계약금은 얼마나 하지?”
[2년 계약으로 500골드입니다.]
역시 비싼 가격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내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시범영상을 부탁했지만 셀리나가 더 좋은 제안을 해온다.
[마침 페어리 자매들도 VR넷에 접속하고 있으니까 직접 만나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잠시 후.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체격을 한 페어리들이 팔다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질서정연하게 행진해온다.
[하나, 둘! 하나, 둘! 제자리에 섯! 좌향 좌!]
[고용주님에게 경례! 필승!]
[아직 고용된 건 아니잖아?]
[시끄러워 바보야. 이렇게 해줘야 저 호구가 지갑을 열지!]
“…….”
굉장히 신경 쓰이는 대화에 셀리나를 노려보자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우는 그녀.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자를 새기면서 두 자매가 준비했다는 프로모션 영상을 감상했다.
그리고 그 뛰어난 성능에 마음이 누그러진다.
[두 분이 탑승하는 병기는 기존의 전투드론을 커스터마이즈한 제품입니다. 광학위장을 사용해서 모습을 감출 수도 있고, 탑재하고 있는 마나충전식의 소형 발전기를 사용해서 전자기장과 쇼크웨이브를 발사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으로 돈벌이를 하는 용병들이라서 그런지 기존의 전투드론들과 성능을 비교해 보면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거의 무소음으로 드론을 운전할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한 페어리들이 광학위장을 사용해서 활약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말 그대로 레이더나 탐지장치에 걸리지만 않으면 거의 완벽한 은신기동을 발휘할 수 있다는 소리.
전자기장의 경우에는 발전기의 재충전 대기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지만 소총난사는 무난하게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유탄도 2방 정도는 견뎌낼 수 있었고, 전자기장 대신에 적들을 기절시키는 쇼크웨이브를 발사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왼쪽 날개에는 개틀링. 오른쪽 날개에는 유탄발사기가 장착되어있으며, 중앙의 포신으로는 지프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리는 철갑탄을 발사하는 게 가능했다.
“도대체 마나가 얼마나 되는 거야?”
그 작은 전투드론에 달린 화려한 무장들에 놀란 내가 질문을 던지자, 양쪽 허리로 손을 올린 페어리들이 잘난 척을 했다.
[540입니다!]
[568입니다! 엣헴!]
참고로 상태 창이 아니라고 해도 마나 측정 장치를 사용하면 자신의 마나 보유량을 체크할 수가 있다. 물론, 표시되는 숫치도 똑같으니 페어리들의 마나는 나보다 거의 5배는 많다는 소리.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패배감이 살짝 좌절스럽기는 했지만 고용인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나쁘지 않다.
스펙을 보면 기갑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보병들에게 특화된 장비가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보병들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 한층 더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나를 포함한 3소대 전부가 달려들어도 두 페어리에게 순식간에 박살날 게 틀림이 없다.
작고 귀엽지만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두 용병들의 실력에 매료당한 나에게는 다시 한 번 지름신이 강림했다.
“계약하겠어.”
[우와아아!]
[낚였다. 낚였어!!]
신나서 뛰어다니는데 이번에도 역시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원래 성격이 그런가 싶어서 웃으면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정식으로 계약을 마쳤다.
그러다가 문득, 두 페어리들에게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름들이 어떻게 되지?”
[메이딘!]
[차이나입니다!]
“……뭐?”
터무니없는 소리에 잠시 멍해진다. 겨우 정신을 차리면서 다시 한 번 이름을 물어보자 주저없이 연타를 날려오는 그녀들.
[저는 메이딘이구요.]
[저는 차이나에요!!]
[OEM입니다.]
셀리나의 결정타를 맞는 바람에 마치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필사적으로 그럴 리가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셀리나에게 OEM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전투드론 제조사가 OEM입니다.]
“혹시 환불은…….”
[구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접속을 끊어버리는 셀리나. 지름신에 취해서 전 재산의 대부분을 날려버리고 힘이 쭉 빠져버린 내 눈동자에는, 해맑게 뛰어다니는 두 페어리들의 모습만이 덧없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3소대의 불량품콤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