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3화 (1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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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나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나는 그에게 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것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 있어. 이 방법을 사용하면 앞으로는 남창이라는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더 이상은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할 필요도 없겠지.”

“그,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나는 대답하는 대신에 30골드를 투자해서 산 핸드 캐논을 녀석의 앞으로 집어 던졌다.

“오늘 밤에 그걸로 바스코를 쏴 죽여. 마나를 터무니없이 잡아먹는 괴물이기는 하지만, 네 보유량으로도 한 방은 발사할 수 있을 거야. 그걸로 바스코를 해치웠다는 소문이 퍼지고 나면 더 이상은 너랑 자고 싶어서 안달이 난 미친 새끼들은 없을 걸?”

“하지만 그러면 저보고 살인을 저지르라는…….”

“그게 뭐. 너 때문에 내가 바스코를 쳐 죽이고 게이라는 소문이 나는 건 괜찮은데, 네 손으로 직접 피를 보지는 못 하시겠다? 부탁하러 찾아온 분께서 참 대단한 소리를 지껄이고 앉았네. 혹시 전생이 헨드릭 황제폐하라도 되십니까?”

“…….”

내 이죽거림에도 불구하고 클라크는 별다른 항변을 하지 못했다.

녀석의 문제는 바로 이거다.

지나치게 소심한 나머지 바스코를 죽일 용기도 없었고, 그렇다고 범죄자출신 병사들에게 맞설 배짱도 없다. 자기 자신의 상황은 견딜 수 없도록 싫어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전생에서는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지적되는 문제인데 사실 1차적인 원인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문제를 찾는 게 당연하지만, 정말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고 싶으면 당사자도 그에 걸맞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러니 클라크가 정말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충성서약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공수표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이 혹할 정도로 좋은 제안을 거래의 대가로 제시했어야만 한다.

누군가를 죽일 자신이 없는 사람이 뭐든지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걸 누가 신용하겠는가?

“그러면 저보고 어쩌라는 소리입니까?”

계속해서 찌질 거리는 모습에 열불이 난 나는 버럭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네 모든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병기를 던져줬는데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겁쟁이를 어디에 쓰라는 거야?! 네놈의 충성서약 따위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썩 꺼져버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과연 이대로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보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발버둥을 칠 것인가?

그 또한 그런 고민에 빠졌는지 바닥에 떨어진 핸드 캐논을 못이 박힌 것처럼 계속해서 바라보던 클라크는, 마침내 뭔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손을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꼴이 볼만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었다.

“쏠 각오가 없으면 무기를 잡지는 마.”

그 말에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 클라크. 이내, 잘생긴 얼굴을 오만상을 찌푸려 대면서 바닥으로 엎드려 절규하기 시작했다.

“못하겠습니다, 저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나약한 겁쟁이기는 하지만 법 없이도 살 만큼 선량한 성격이다.

아마도 운명이 장난을 치지 않았으면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명한 고고학자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이런 부대로 전입을 한 순간부터는 매 순간 매 시간이 지옥이었을 거다.

‘하지만 겁쟁이는 겁쟁이 나름대로 사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클라크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녀석이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 줬다. 이윽고, 어느 정도 진정되어가는 기미가 보이자 커피를 한 잔 타서는 녀석을 향해서 내밀었다.

“한 잔 마시고 돌어가면……쉬지는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을 추스르라고. 그래도 명색이 소대장이니까 할 수 있는 조치는 취해주겠다.”

“중사님!”

감격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는 클라크.

사실, 마음만 먹으면 길로틴에게 요청해서 지금보다는 나은 다른 부대로 전속시키는 방법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기대하고 있는 건 그가 다른 선택을 내리는 것.

‘자, 여기까지 해 줬는데 이대로 돌아갈 거냐?’

서성거리고 있는 그를 모르는 척 서류를 작성하고 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클라크가 한참을 머물러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인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혹시라도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겠습니까?”

“자네가?”

“네. 바스코와의 싸움이 어려워질 거라는 사실은 저도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제 힘으로는, 솔직히 별로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보고 싶습니다! 소대장님만이 아니라, 제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정확하게 원하는 화학반응이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탈리아의 도발로 hell in a cell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힘만으로는 모든 상황변화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정정당당하게 싸우기 위해서 만든 제도라고 하지만, 범죄자들의 성향을 생각해 봤을 때는 반칙을 저지르고도 안하무인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바스코 패밀리는 그런 짓을 저질러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기존에 세운 내 전술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녀석과의 1대 1대결을 상정하는 거지, 그 이외에 부분에서는 빈약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탈리아가 바스코의 편을 든다면 나도 편을 만들어서 균형을 맞춰야만 한다.

“그러면 말이야…….”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런 속담이 있다.

상대의 변칙 플레이를 대비해서 나쁠 일은 없다.

불안 요소라고 한다면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클라크가 그런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배짱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이었지만…….

예상대로 도와주는 타이밍이 굉장히 느리기는 했지만 녀석은 스스로의 찌질한 근성을 극복하면서, 멋지게 작전을 성공시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냈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신뢰하는 부하를 만들 수가 있었다.

‘찌질한 근성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점차 나아지겠지.’

사소한 문제라면 클라크와 한 약속을 지키는 바람에 게이라는 오명도 함께 얻게 되었다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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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는 지금 탈리아가 있다.

“약속은 기억하고 있지?”

“물론이야.”

그렇게 말한 탈리아는 거침없이 자켓과 모자를 벗어던진다. 흘러내리는 붉은 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대는 그녀.

“지금부터 천국을 보여줄 예정인데, 혹시라도 준비해 놓은 음악이 있어?”

“무반주로 부탁하지.”

내 말에 질렸다는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는 가볍게 리듬을 타면서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기습적으로 왼쪽의 멜빵끈을 풀어헤쳤다.

촤악!

바람에 펄럭이면서 드러나는 왼쪽 가슴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린 그녀는 젖꼭지를 살짝 핥으면서 도발을 하기 시작했다.

반응을 기다리는 눈치였기에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대답을 했다.

“계속 해봐.”

“원하는 대로…….”

뒤로 돌아선 탈리아가 허리를 숙이면서 신발 끈을 하나씩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땀과 기름으로 젖으면서 반들거리는 엉덩이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서 다이나믹한 존재감을 과시해 온다.

그러면서 성큼성큼 다가온 그녀는 고양이 같은 자세로 내 상체로 기어 올라오더니 숨이 닿을락말락한 거리에서 내 손을 붙잡으면서 유혹적으로 속삭여 온다.

“나머지는 직접 벗겨줬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인도를 따라서 가슴을 주물럭거리게 된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러겠다고 대답을 할 뻔 했다.

생각 같아서는 남은 멜빵을 마저 풀어버리면서 그녀의 탐스러운 육체를 마음대로 농락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지만, 그것이 지옥행으로 향하는 편도 티켓을 끊어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그녀를 밀쳐내었다.

숨을 몰아쉬면서 가슴을 가라앉힌 내가 최대한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 흥분하지도 못했는데 쇼를 벌써 끝내려고 하면 안 되지.”

“……뭐 좋아.”

눈매가 사나워지기는 했지만 일단은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리는 탈리아.

벨트를 풀어헤치면서 바닥으로 던져버리자 바지가 살짝 흘러내리면서 분홍색의 팬티라인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쇼는 거기까지였다.

어느 사이에 탈리아의 오른 손에서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낸 권총이 내 미간을 겨누고 있다.

“장교들에게나 지급되는 권총이라니…….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에서 몸을 팔고 다니나 보지?”

“미안하지만 이건 유품이야. 멍청아. 뭐,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까 그런 사실은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절체절명의 핀치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내게도 믿는 구석이 존재하고 있다.

“설마, 번번이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년에게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라고?”

“허세부리지마!”

그렇게 외치면서도 시종일관 차가웠던 내 반응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녀는 지금, 스스로에게 괜찮을 거라는 자기 최면을 반복해서 걸고 있을 것이다.

‘어설프군.’

나는 그녀를 위해서 내 미간을 조준하는 레이저 포인트를 톡톡 두드리면서 도발을 했다.

“의심스러우면 한 번 시험해보시지.”

탕!탕!탕!탕!탕!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화염을 뿜어내는 권총.

지지지직.

하지만 전자기장에 걸린 탄환들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자신의 시도를 무위로 만들어버린 병기들이 광학위장을 해제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자 탈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전투드론이라고?”

“나는 충분한 기회를 줬어. 그러니까 자비를 베푸는 건 이게 마지막이 될 거야, 탈리아!”

“이럴 리가 없어!”

“바스코도 그렇게 말했지. 묘비명으로 새겨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병장?”

“이런 개자식이!!”

죽은 바스코를 언급하자 발끈하는 탈리아가 다시 권총을 발사해 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문쪽을 향해서 몸을 날렸지만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정도로 만만한 함정을 만들지는 않았다.

“한 대 추가!”

“뭐?!”

파지지직!!

허공에서 나타난 2번째 전투드론에게 쇼크웨이브를 얻어맞은 탈리아가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잘했어. 불량품콤비!”

“왜 자꾸 불량품 콤비라고 불러요?”

“우우-! 부하들을 모욕하는 악덕 상관은 물러가라!”

전투드론을 조종하는 두 페어리가 조종석을 열고는 조그마한 볼을 부풀리면서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하면서 녀석들을 향해서 축객령을 내렸다.

“자, 자.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시간이니까. 꼬꼬마들은 집에 가라!”

“꼬마 아닌데요? 저희들은 벌써 성인식까지 치른 어엿한 어른이라고요!”

“엣헴!”

사사건건 말대꾸를 하면서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녀석들의 마장기를 손으로 밀어내면서 겨우 쫓아낸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탈리아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쇼크 웨이브의 출력을 조절하라는 명령을 정확하게 따른 덕분에 정신을 잃은 것 이외에는,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바스코처럼 죽여 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실력도 실력이지만, 의외로 의리가 넘치는 성격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탈리아를 내 편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절대로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절대로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중요한 말이라서 2번 반복하고 말았네. 이 말도 2번 반복해야만 될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누군가가 화를 내겠지?’

어쩐지 조심스러워진 나는 반쯤은 벌거벗은 상태로 누워있는 탈리아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설득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고 시선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쏠리는 바람에 마침내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덮칠까?’

그동안 이쪽 세계에서 너무 성실하게(?)생활한 부작용인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프레이야가 상태 창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어떤 꼼수를 부리기라도 했는지 내 성욕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과부화된 상태.

그동안은 자위로 열심히 처리해왔지만 역시 셀프로는 넘쳐나는 성욕을 전부 발산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 내 앞에 대우주의 진리가 덮쳐도 된다고 속삭이고 있는 여체가 존재하고 있으니 현생동정은 말 그대로 풍전등화나 마찬가지인 상태.

흑염룡도 출격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다.

어째서인지 세희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양심이 찔리기는 했지만, 전생에서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시도하는 게 발할라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나는 프레이야의 명령으로 하렘을 건설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사명(?)이 내려올 게 틀림이 없는 상태.

차려진 밥상을 먹기 전에 무릎을 꿇으면서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프레이야님. 오늘도 정의로운 색마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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