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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엄프-12화 (1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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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관중들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심판을 향해서 외쳤다.

“심판! 바스코는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서 규칙을 어겼다. hell in a cell은 내 승리다!!”

“어, 저기 그러니까…….”

명백한 룰 위반이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심판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다. 보아하니 바스코 패밀리의 눈치를 보느라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현이 틀림이 없었다.

‘이런 겁쟁이 자식!’

심판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 오히려 반칙을 저지른 탈리아가 적반하장으로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맞아. hell in a cell은 네 승리로 돌아갈 거야, 류안! 그래봤자 네가 철창의 밖으로 빠져나오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야.”

병주고 약을 줬다가 다시 병을 주는 희한한 궤변에 나는 얼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뭐라고?”

그러는 사이에 어느 새 등 뒤로 접근해 온 바스코가 내 뒤통수를 향해서 철제 의자를 휘둘러 왔다.

퍽!

“크하하하하! 역시나 너는 최고라니까, 탈리아!”

“똑바로 좀 해. 병신 새끼야!!”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면서 쓰러진 나는 하늘이 노래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하지만 바스코는 그렇게 쓰러지는 내 멱살을 한 손으로 움켜잡으면서 하늘로 번쩍 들어올렸다.

“드디어 잡았다. 이런 약삭빠른 개자식!”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으로 도와주는 줄 알라고!”

탈리아는 그렇게 외치면서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hell in a cell의 바닥으로 채찍을 던져버렸다. 정신이 몽롱해서 그런지, 기분 탓인지, 약간은 미안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오냐, 나중에 내가 크게 한 턱 쏜다!!”

대답을 하는 대신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운 탈리아가 관중들을 밀치면서 장내를 떠나버렸다.

장내의 분위기는 침묵의 감도는 상태로 아직도 대다수의 관중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가운데, 바스코가 그들을 향해 큰 소리로 선언을 했다.

“암캐의 말대로 오늘의 경기는 내 패배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본 게임과는 별도로 시시한 규칙들에는 얽매이지 않는 데스매치를 시작해 주겠다!!”

웅성웅성

터무니없는 상황변화에 병사들이 웅성거리면서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렸냐고?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우스가 말했던 것처럼 대중들은 늘 빵과 서커스를 원한다. 특히나 피와 살점이 튀어나가는 서커스라면 그들은 언제든지 환호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와아아아아아!!!!!”

퍽!퍽!퍽!퍽!퍽!퍽!

바스코! 바스코! 바스코! 바스코! 바스코!

한 방, 한 방에서 불에 데는 것 같은 충격들이 가중될수록 관중들은 바스코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는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질렸다는 듯이 자리를 피해버렸지만, 새빨간 선혈이 튀어나가면 튀어나갈수록 피와 폭력을 사랑하는 대중들은 폭군을 찬양하면서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다.

한 방, 한 방으로 뼈들이 부러져 나가고 배를 얻어맞으니 위장으로 진탕으로 뒤흔들리며 위액이 역류해 버렸다. 덕분에 저항할 힘도 의지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다시 한 번 나를 바닥으로 내리꽂라버린 바스코는 내 왼손을 군홧발로 짓이기면서 비릿한 미소를 지어버렸다.

“좋으냐? 개자식아!!!”

“크아아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무시무시한 비명이 튀어나온다.

[체력이 레드 존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신체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으면 치료를 마친 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요란한 시스템 알림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게임으로 도전하는 발할라라고 하면 진짜 게임처럼 고통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발할라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쿨드가 다시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방어기제강화라는 고유능력의 도움으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않았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그러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는 죽을 때까지 회를 뜨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똥을 싸지르면서 죽어나빠진 네년의 몸뚱이를 강간해 주마, 개자식. 아니지, 그 전에 말이야. 명색이 hell in a cell에서 승리하신 몸이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껄이도록 해주는 것이 예의인가?”

도끼에 묻은 피를 핥으면서 신나게 떠들어대던 바스코는, 그렇게 관용을 베풀어 주겠다는 식으로 내 머리채를 붙잡으면서 철창의 틈 사이로 밀어 넣어 관중석을 향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까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뭐?”

나는 젖 먹던 힘을 쥐어짜면서 최후의 희망을 향해서 부르짖어 나갔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만들 셈이냐, 클라크!!!!!!!!”

펑!

“크아악!”

다음 순간, 꺼져있던 조명들이 일제히 환하게 켜지면서 병사들과 바스코의 시선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나는 소매에 감추어 둔 비수를 꺼내서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바스코의 손목을 그으면서 신체의 자유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이 새끼가!!!”

“받으세요, 중사님!!”

객석에서 달려나온 클라크가 핸드캐논을 던진다. 하지만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너무 먼 장소에 떨어져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바스코는 달아나려는 나를 향해서 손을 뻗어오고 있었다.

‘잡을 수 있을까? 아니, 반드시 잡아내야만 해!!’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숨어있는 잠재능력이 각성했습니다. 하위호환 스킬인 대쉬가 사라지면서 순간가속 능력으로 변화합니다. 현재 등급 F]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과도 같은 스킬에 나는 앞뒤를 생각할 것도 없이 새로운 스킬을 발동해 버렸다.

‘순간가속!’

주변의 풍경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속해 나간다.

대쉬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마치 용수철처럼 달려 나간 나는, 바스코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의 10m에 이르는 거리를 한 순간에 이동하면서 핸드캐논을 잡아채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그 믿어지지 않는 움직임과 자신으로 겨누어지는 핸드캐논을 바라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경악하고 있는 바스코.

장내는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규칙이 없는 죽고 죽이는 데스매치를 시작한다고 그랬지? 덕분에 마나병기를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것 같은데 말이야…….”

욱신거리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녀석을 조준하고 있지만 상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콰앙!!!

고개를 흔들어 대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서 핸드 캐논을 발사해주는 것으로, 바스코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한 번에 마나를 50이나 잡아먹는 비효율적인 병기지만, 그 효과는 확실해서 바스코의 거대한 신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도 철창의 벽에 거대한 원형의 구멍을 만들어 버린다. 허공으로 떠오르다가 땅으로 떨어지는 녀석의 머리통의 일부를 발로 짓밟아버린 나는,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말은 마지막 묘비명에 새겨주마.”

‘불만이 있으면 발할라로 따라와라. 개자식.’

마지막으로 나는 혹시라도 다시 난입을 할지 모르는 3소대를 견제하기 위해서 핸드 캐논을 관중석으로 겨누면서 외쳤다.

“이 결말에 불만 있는 새끼들은 지금 당장 경기장으로 튀어 올라와!!!”

우와아아아아!!!

자신들을 지워버릴 수 있는 무기의 총구가 겨누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서 열광하는 관중들. 딱 한 번만 방아쇠를 당겨도 지옥도가 펼쳐지겠지만, 모든 것을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쇼에 불과했다.

‘서커스에 미친놈들…….’

피의 맛이 느껴지는 씁쓸한 승리를 경험한 나는 그 날, 2번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피를 자신의 손으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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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적인 반전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그래도 3소대의 신병 클라크다.

hell in a cell의 전날 저녁에 탈리아가 다녀간 직후, 방문을 두드린 그는 찾아온 용건을 물어보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신세한탄을 늫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가온 행성의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던 학생입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원래는 징집대상도 아니었죠, 그런데 정부에서 갑자기 학과를 폐지하는 바람에 이런 곳까지 흘러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스코 그 개자식이…….”

목이 메는지 숨을 몰아쉬면서 뒷말을 이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녀석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흥분을 가라앉혀 주었다.

범죄자 출신 병사들의 병무생활을 볼 때는 충분 예상을 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한 눈에 봐도 세상물정 모르는 샌님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클라크.

호리호리한 체격에 실내생활을 주로 한 사람답게 창백하고 새하얀 피부와 안경을 쓰고 있으며, 공부를 주로 한 사람답게 이지적이면서도 선이 가는 미형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범죄자 출신의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건 늑대무리에 양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인데, 하물며 얼굴도 가리지 않는 잡식 게이남(?)에게 걸렸으니까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바스코가 새로운 애인을 만들었다는 소문은 중대 전체로 파다하게 퍼져있는 소문이다.

“중사님이 바스코에게 도전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승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대는 녀석들이 있더군요. 만약에 중사님께서 승리를 하면 그 녀석의 손아귀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도 그동안 보고 들은 게 있습니다. 그……새끼들이 저를 보고서 뭐라고 지껄이는 지도요. 바스코가 죽어봐야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저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습니다!!”

남자생활관의 바로 옆에는 여군들의 생활관이 존재하고 있고, 부대 근처에는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창가도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남자들끼리만 생활하던 형무소의 폐해인지 유난히 남자들에게만 집착하는 범죄자 출신의 병사들이 존재했는데, 그런 놈들의 마수를 류안보다도 약골로 보이는 클라크가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부대 공용의 창남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일.

‘상상해보니까 끔찍한 일이기는 하군.’

정신건강에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참을성 있게 사연을 들어준 나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바스코를 죽이는데 성공하면 저한테 중사님의 남자라는 증표를 하나 주십시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요구에 충격과 공포에 빠진 나는 주춤거리면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 반응을 보면서 자신의 말이 어떤 의미로 들릴 수 있는지를 깨달았는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열변을 토하는 클라크.

“무, 물론. 정말로 중사님의 남자가 되겠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단지, 중사님이 정말로 바스코를 쓰러트려 주실 수 있다면 누가 감히 중사님의 남자를 건드리겠습니까? 저는 단지 호가호위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아,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일단은 다가오지는 마. 오해하지 말고, 무슨 소리인지는 알지?”

선긋기를 통해서 녀석을 일정 거리의 밖으로 쫓아낸 나는 숨을 돌리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만약에 내가 그 부탁을 들어주면 너는 뭐를 해줄 수 있는데?”

“중사님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충성서약을 하겠습니다.”

어쩌면 생각하지도 못한 와일드카드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던 나는, 그 바람을 와장창 무너트리는 개소리에 욕지거리를 뱉어내고 말았다.

“헛소리도 그 정도면 정신병이네. 또라이 새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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