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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도대체 뭐를 망설이고 있는 거야, 멍청한 새끼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탈리아의 외침으로 분위기가 변했다.
“너도 좆 달린 사내새끼라면 부러지건 박살나건 일단 들이박고 봐야지! 그새 불알이 모기 똥만 해졌냐? 이 병신 새끼야!!”
그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바스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여유를 되찾아 버렸다.
“크크크, 하하하하하!!! 닥치고 있어라 더러운 암캐년아. 안 그래도 지금 이 새끼를 어떻게 조져버려야 되는지 고민하는 중이었으니까!”
바스코가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식으로 입을 열자 장내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네놈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여주마. 내일 밤 11시에 정비대의 뒤쪽 공터에서 hell in a cell을 시작하겠다. 그곳에서 네놈의 인생을 끝장내주마!!”
속으로는 혀를 찼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지.”
“우와아아아!!!”
빅 매치가 성사되는 것을 목격한 병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 소식은[간부처형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부대 전체로 퍼져나갔고, 바스코 패밀리와 함께 정비대의 이름으로 팔려나가는 티켓들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승자를 예상하는 내기 판이 벌어졌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판에서는 9대 1로 바스코의 압승을 점치고 있다.
참고로 내가 승리할 가능성이 1이나 되는 이유는, 남들 모르게 100골드라는 거액의 판돈을 나 자신에게 걸면서 만들어진 비율이었다.
그런 예상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바스코는 강력했다.
2m를 훌쩍 뛰어넘는 우월한 체격과 신체역량은 말할 것도 없었고, 괴력으로만 따지면 부대 전체를 살펴봐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바스코가 hell in a cell에 참가한 경험은 없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지만, 그건 도전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거지 싸움을 마다했기 때문은 아니다.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옆 소대와 시비가 붙었다고 하는데 혼자서 그 소대를 전부 박살내버리고는,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쓰러진 남자 병사들의 청년막을 모두 파괴하는 지옥도를 연출했다고 전해진다.
패배 = 죽음 = 청년막의 파괴라는 공식으로 이어지는 지옥의 3중주.
무엇보다도 나는 류안의 기억을 살펴보면서 바스코의 전투를 직접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방패를 들고 밀집해있는 테러리스트 부대를 단독으로 돌파해버리는 괴력.
토마호크를 휘두르면서 테러리스트를 학살해 나가다가 마나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맨손으로 사람들을 찢어 죽여 버리는 광경은, 류안의 뇌리 속에서는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있었다.
반면에 그를 상대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밑천이라고 하는 건…….
‘상태 창 확인!’
이름:류안 제르너
직업: 가온공화국 방위군 소속의 중사.
신체능력
체력: 150/150 마나: 110/110
근력: 31 민첩: 45 지력: 87 매력: 45(매력보정을 통해서 증가하고 있다.)
계승하고 있는 능력: 게임(SS), 성교(S)
기술: 마나(F), 사격술(E), 격투(F), 근접전(F), 카리스마(F), 전술(F), 대쉬(F), 말재주(F)
고유 능력: 방어기제강화, 기억재생, 임무확인, 미니게임, 퀘스트 추가보상, 상태 창 확인, 절륜, 매력보정, 성감대 추측.
그동안 꾸준하게 마나연공과 체력단련을 해 온 덕분에 능력치 자체는 전체적으로 제법 성장을 했다. 그래봤자 냉정하게 평가를 내리면 여전히 엄백호의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는 못한 게 사실이지만…….
그나마 류안이 워낙에 단련을 안 해서 그런지 초반에는 가파르게 성장을 하다가 최근에는 수련 방식에 한계가 온 건지, 눈에 띄게 성장이 느려지고 있었다. 어쩌면 체중이 근육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신체능력 향상이 둔화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구체적인 원인은 알 수가 없었다.
반면에 매력의 경우에는 고유능력의 특전인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알아서 꾸준하게 상승을 하고 있다. 그래봤자 아직은 피부가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 수준이었고, 설명에도 주변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변화한다고 적혀져 있었으니까 나중으로나 가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스킬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승산은 어떠냐고?
미니게임을 5번 성공한다는 전제로 8:2로 물론, 내가 2로 예상하고 있다.
‘빌어먹을 쓰레기 게임.’
전생의 나였으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았을 무모한 도전을 하게 만드는 발할라의 난이도를 욕하면서, 나는 숙소의 내 방에서 바스코에게 승리하기 위한 방법들을 궁리해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탈리아.
“야, 소대장!”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내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면서 쳐다보니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너 제법 남자다운 구석이 있더라?”
“반말을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
“남자답다는 말은 취소. 역시 처음 인상대로 쪼잔한 새끼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죽자고 달려들고 앉았네. 암캐라서 그런지 배포가 모기똥 만한 건가?”
내 반격에 주춤하던 탈리아가 이내 한 방 먹었다는 듯이 배를 붙잡으면서 웃음을 터트려 나갔다.
“…….푸핫! 푸하하하하하! 와! 이거 재밌는 새끼네. 내일 죽는다는 게 아까울 정도야. 진작 이렇게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바스코가 죽이려고 달려드는 일도 없었을 텐데.”
“누가 죽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그 대답에 살짝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변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바스코한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면 내가 맨땅에 헤딩을 하려고 도전을 했겠어?”
그 말에 뭔가를 계산하는 눈치로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러면 네가 진다는 쪽에 아랫도리를 걸도록 할게.”
“마음대로 하세……네?”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백만의 하나. 아니, 천만의 하나라도 네가 바스코를 죽이고 살아남을 수 있으면 이, 탈리아의 남자가 될 자격을 충족시켰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네가 이긴다면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언제 어느 때라도 내 아랫도리를 마음대로 쑤실 수 있게 만들어 줄게.”
난생 처음으로 아니, 전생과 현생을 통 틀어서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화끈한 제안에 발기 탱천하는 흑염룡, 아니 분기탱천하는 마음을 겨우 추스른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냉정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나한테 그런 제안을 꺼내는 이유가 뭐야?”
“그냥. 네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바스코한테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내가 그런 불가능을 이겨내는 사람한테는 아랫도리가 흠뻑 젖어버리는 체질이거든.”
‘아니 그런 좋은 체질이…….’
탈리아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며 내 볼을 쓰다듬고는, 발칙하기 이를 데 없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떠나버리고 말았다.
‘비바 범죄자!! 비바 암캐!! 아니, 아니야. 지금은 환호성을 지를 때가 아니라 탈리아가 왜 이런 소리를 하고 떠났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야만 돼.’
사정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해대는 흑염룡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킨 나는, 한참동안 궁리를 한 끝에 그녀가 바스코를 위해서 정찰을 하러 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류안의 기억을 봤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사실은 서로에게 친근감을 나타내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어. 남자들도 그러는 경우는 있으니까. 범죄자들이라면 더욱 심하게 표현을 할 수도 있겠지.’
속된 말로 바스코와 탈리아는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자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흉악범들이지만, 그렇다고 동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허물없이 욕을 하는 사이라면 더더욱.
애초에 정말로 싫어하는 사이였다면 류안처럼 죽여 버리면 될 일인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상대방의 허물을 감싸주는 사이라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낮에는 궁지에 빠진 바스코를 도와주는가 하면, 결전전야에 찾아와서 이렇게 멘탈을 흔들어버리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사이인 게 틀림이 없어 보인다.
‘바스코를 죽여야 소대원들을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판단을 잘못한 걸까?’
그를 죽여도 탈리아가 내 지휘를 거절하면서 분란을 일으킨다면, 테러리스트들과의 전투에서 소대를 내 통제로 두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말로는 바스코에게 이기면 뭐든지 다 주겠다는 식으로 말을 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침대 위에서 죽이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르는 일. 그런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바스코한테 이길 방법을 궁리해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차피 내일 깨지게 되면 발할라고 나발라고 전부 도루묵이니까. 좋아. 어디 한 번 갈 때까지 가보는 거야!!”
그렇게 결심하면서 양 손을 불끈 쥐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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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너 가.
우편함을 연 메리는 류안의 편지를 확인하고는 다른 메이드가 확인하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품속으로 숨겼다. 그러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재빠르게 편지의 내용물을 확인해 보고는 눈동자가 희둥그레지고 말았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결심을 내리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메이드들을 건성으로 지나치면서 긴 복도를 통과한 그녀는 굳게 닫혀져 있는, 쥬디스의 사무실을 발견하고는 심호흡을 하면서 방문을 두드려 나갔다.
똑똑똑똑.
“들어오세요.”
책상에 앉아서 서류들을 살피던 쥬디스는 방으로 들어오는 메어리의 표정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한 눈에 파악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또 류안에게서 편지가 도착한 건가요?”
“네, 아가씨. 저,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할 필요 없어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아버님에게는 알리지 말고 저에게만 편지를 전해주세요. 제가 이곳에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해주시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돈까지 부치셨단 말이에요!”
항의하는 듯이 외치는 메어리의 목소리에 쥬디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대답하는 대신에 가볍게 침을 삼키면서 손을 내밀자 그녀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편지를 건넨다. 그 속에 적힌 내용들은 예전에 보내지던 내용과 비슷했다.
제르너가에서 저지른 잘못들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반성문 형식을 취하고 있는 편지.
평소와 다른 내용이라고 한다면 조그마한 공을 세워서 중사로 진급했고, 그 공으로 받은 포상금의 일부를 보내니 약소하나마 유용한 곳에 써달라고 적혀져 있다.
말은 청산유수라고 효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태도와 내용이었다. 그러니 메어리가 혼란을 일으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내용.
“……지금 당장은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이 내용들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면 아버님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도련님의 변화가 사실이라면…….”
“제발 부탁드릴게요. 메어리 아주머니.”
“…….”
쥬디스의 간곡한 부탁에 메어리는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창가로 걸음을 옮긴 그녀는 편지의 내용을 곱씹으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류안이 과연 변했을까?
고민을 하고 또 고민을 해봤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에는 소리를 지르고 말했다.
“변했을 리가 없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그날의 기억.
쥬디스의 믿음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린 류안은 그 더러운 손길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뱀처럼 속삭여 왔다.
[동화책이나 믿을 나이는 지났잖아?]
그리고 그가 건 저주대로 쥬디스는 두 번 다시는 동화책을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주겠어. 그리고 또 다시 거짓말로 아버지와 나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야 말겠어. 그리고 그걸 확인한 순간에는……내 속으로 직접 죽여 버리고 말겠어.”
그런 다짐을 하는 쥬디스의 왼쪽 가슴에는 우주군의 휘장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