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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헌병대의 조사를 통해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카지노의 배후에는 검은 타란툴라라고 불리는 우주 해적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녀석들은 나이브를 천문학적인 빚으로 옭아매면서 제론V행성 헌병대의 실권을 쥐고 있는 길로틴까지 조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내 개입으로 그 계획이 틀어져버리자 이판사판으로 납치를 시도했다가 덜미를 잡혀버린 것이다.
헌병대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면서 카지노를 제압해버리고 제론V행성에 암약하고 있던, 타란툴라의 지부들을 날려버렸다.
그 솜씨도 솜씨였지만 악즉참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광석화 같은 일처리 속도가 같은 방위군 소속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서, 나는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과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카지노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는 관용선에서 내리는 길로틴을 발견하자마자 직립부동의 자세를 취했다.
성큼성큼 거침없이 걸어오더니 다짜고짜 나이브의 뺨을 후려치는 그.
쫘악!!
“못난 놈.”
그 말을 하고 나서는 고개를 떨구는 그를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이 내게로 다가왔다.
“필승!”
“필승, 보고는 전부 들었다. 자네가 기지를 발휘해서 검은 타란툴라의 음모를 저지하고 못난 아들놈을 구해 준 류안이라는 부사관인가?”
“타란툴라의 계획을 알아내고 저지해 낸 것은 전부 헌병대원들의 공입니다. 저는 단지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충실했을 뿐입니다!!”
고지식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라서 최대한 군인답게 대답을 했다.
사실, 미니게임의 힘을 빌리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결과물이라서 공을 돌리면서도 별로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블랙해머 대위는 내가 점원을 매수하면서 일을 계획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게임을 잘한다고 그래도 인심장악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도박이라고는 친구들과 타짜놀이나 하던 내가 진짜 프로들의 사기수단을 밝혀낼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건 치트키를 사용한 거나 마찬가지.
깊이 파고들면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셈이나 마찬가지라서, 나는 일부러 더 별 게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젊은 친구가 겸손하군.”
다행스럽게도 그는 만족하는 눈치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자네를 이번 검거작전의 1등 공로자로 보고하겠네. 이와 관련해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내려올 테니까 기대해도 좋네. 나 길로틴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도록 하지.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사례를 하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지만, 혹시라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도록 하게.”
“그러면 염치 불구하고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뭔가?”
말해보라고 했으면서도 곧바로 대답을 하니까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이어지는 아부신공에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평소부터 존경해온 길로틴 대령님을 모시고 부대를 방문하는 게 일생 일대의 소원이었습니다. 비록 범죄자 출신의 병사들이 우글거리는 부대지만, 규율과 군인정신의 수호신이라는 대령님께서 방문해 자리를 빛내주시면 병사들도 마음을 고쳐먹고 군인정신을 되찾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크, 크흠. 그런 부탁이었나?”
[새로운 스킬인 말재주가 생겼습니다. 현재 등급 F]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탁이 하트를 직격한 모양이다.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는 길로틴 덕분에 뜬금없이 새로운 스킬까지 생겨버렸다.
‘제대로 성공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아저씨는 표정관리 좀…….’
어쨌든 그런 일을 하면서 나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들 수 있었다.
길로틴은 약속대로 내가 복귀하는 날에 맞춰서 동행을 해줬다.
휴가를 마치기 전까지 집으로 초대를 받는 등,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보다도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파악할 수가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마음이 잘 맞았기 때문에 제법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불시순찰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헌병대를 이끌고 부대로 쳐들어갔기 때문에 복귀신고를 받는 대대장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하지만 감히 길로틴의 비호를 받고 있는 나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그런 관계를 바에서 일으킨 사건으로 확실하게 쐐기를 박아버렸기 때문에, 그 날을 기점으로 부대 전체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필승!!!!”
‘빽이 좋기는 좋군.’
대성박력으로 경례를 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누가 그들을 범죄자 출신들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새삼스럽게 권력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광경이었다.
현재 나는 검은 타란툴라의 계획을 저지한 공로를 인정받고 특별진급심사를 통해서 중사로 진급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임무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부사관 숫자가 부족해서 신임하사가 소대장을 맡는 게 이상한 경우였다면, 지금은 이상하지 않다는 정도. 어차피 상사, 원사, 준위로 진급해봤자 장교들이 줄줄이 사망하는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 중대이상의 병력을 지휘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방위군으로는 아무리 출세해봐야 우주군의 앞에서는 집을 지키는 개 취급을 받는 게 현실.
‘오딘의 임무를 달성하고 유라디스 은하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우주군으로 임관을 해야만 돼.’
그러기 위한 제일 시급한 해결과제는 마나연공법이다.
전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병기들은 마나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정교한 마나조절장치나, 증폭장치와 같은 마나활용기술들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그런 혁신들이 바꾸지 못하는 단 하나의 원칙은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었다.
마나가 많으면 장땡.
자존심이 강한 마장기 조종사들은 마나가 단지 수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상당히 예전부터 전술적인 차원의 전투력은 압도적으로 강력한 전략병기들 앞에서 무력해진지 오래다.
현대전은 거함거포주의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도시 규모의 거대전함부터 행성 자체를 은하에서 날려버릴 수 있는 기동요새들까지. 터무니없이 많은 마나들을 잡아먹는 어떤 전략병기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전장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문제는 그런 경향 때문에 좋은 마나연공법을 구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버렸다는 거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극소량의 마나를 제외하면, 마나를 더 많이 보유하려면 마나연공법을 수련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뛰어난 마나연공법을 독점하고는 거래까지 제한해버리는 바람에, 시중에 돌아다니는 건 질이 떨어지는 저급한 물건들과 설명만 요란한 가짜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익힌 마나연공법은 브라이트가 천문학적인 돈으로 구입한 클레어 라이징이라고 부르는 마나연공법.
등급은 D급 중에서도 최하급.
얼마 전에 나는 카지노에서 딴 돈과 포상금으로 200골드를 벌었다. 그 중에서 류안이 지고 있는 빚을 전부 해결하고 나니 수중에는 150골드의 자금이 남아 있다.
1골드면 4인 가족이 한 달은 생활할 수 있는 자금.
제법 거금을 손에 넣은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인터넷 경매장으로 마나연공법의 가격을 조사해 보고, 절망했다.
F급 마나연공법의 최소 가격이 1만 골드.
C급은 존재하지도 않고 D급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한편으로는 클레어 라이징의 천문학적인 가치를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전수해볼까 생각을 해 봤지만 역시나 그런 행위들은 법으로 막혀져 있었다.
마나연공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과 배우자가 전부.
우주군은 전력강화를 핑계로 플라타너스라고 불리는 B급 마나연공법을 일반 사병들에게까지 공유시키고 있었지만, 그런 예외를 제외한다면 전부 까다로운 절차를 밟으면서 거래를 해야만 했다.
물론, 불법적으로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할 건 없지만 하지만 권력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분야라서, 웬만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못했다.
‘류안이 클레어 라이징만 열심히 수련했어도 우주군에 입대할 수가 있었을 텐데…….’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답답한 생각이 드는 바람에 몸의 전 주인을 욕한 나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브라이트에게 10골드를 보내기로 했다.
‘편지만 쓰는 것보다는 이러는 게 효과가 좋겠지.’
처음으로 편지를 쓴 지 3개월이 지났는데 답장이 없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알아봐도 주소가 바뀐 건 아니다.
‘지금 와서 보니까 소대보다는 이쪽의 일이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어.’
3소대의 병사들은 내 얼굴만 보면 도망치는데 급급했다.
바에서는 지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자고 말하면서 술을 한 잔씩 사주고는 모임을 끝냈지만, 그렇게 베풀어봤자 녀석들이 마음을 고쳐먹을리는 없었다.
은혜는 짧게 기억하고 원한은 길게 기억하는 게 특징인 녀석들.
길로틴에게서 구해준 일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잠시 헌병대라는 그림자에 놀라서 웅크리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을 자극하면, 위기감을 느끼면서 나를 제거하려고 들 게 뻔했다.
결국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원래의 계획대로 바스코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소리.
어느 정도의 준비가 끝났다는 판단을 내린 나는 주저하지 않고 녀석을 방문했다.
“필승…….”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표정이 썩으면서 마지못해 경례를 해오는 녀석. 그러면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일부러 그 앞을 가로막아버렸다.
“우리들은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지 않나?”
“너 이……끄응! 아닙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너한테는 당할 만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그렇다고 지금 와서 용서를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영창에 보낼 작정이냐?”
내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태도를 바꾼 바스코가 으르렁거리면서 물었다.
“왜 헌병대한테 그런 기회를 줘야만 하지?”
“……뭐?”
우리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병사들이 이용하는 식당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모르는 척 하면서도 흥미를 가지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질로 그들을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네놈들은 이런 분쟁을 해결할 때 철창 속에서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전통을 가지고 있지? 분명 hell in a cell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내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가 정확한가?”
웅성웅성
그 이름이 나오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병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저 새끼, 아니, 중사님께서 뭐라고 하고 있는 거야?]
[바스코랑 hell in a cell에서 한 판 붙자고 하는 것 같은데?]
[에이, 기본 체급이 다른데 미치지 않고서야…….]
대부분이 믿지 않는 태도였지만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외쳐 그들의 기대심을 고조시켜 나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완전히 끝장나는 제도잖아!!”
“오오오오!”
서로 다른 지역의 범죄자출신 병사들 사이에서 생기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hell in a cell.
양자가 대결을 동의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존재하고 있지만, 한 번 받아들이고 나면 계급이나 배후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대로 처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병사들 사이에서나 일어나던 행사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병사가 간부에게, 간부가 병사에게 대결을 제안했던 전례는 없었다.
‘전생에 프로레슬링을 보기를 잘했지.’
화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원하는 스토리로 흘러갔을 때 생기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나는 마치 엔터테인먼트를 하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키우며 그를 도발해 나갔다.
“만약에 네놈이 hell in a cell에서 내게 맞설 자신이 있으면, 더 이상은 헌병대를 걱정하지 않게 해주마. 도전장은 이미 던졌어! 네놈은 언제, 어디서나,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제안을 거절하고 도망친다면 너는 앞으로 평생 겁쟁이로 불리면서 내 밑바닥이나 닦아야 할 거다!!”
우오오오오!!
“무, 무슨 속셈이냐!?”
굴욕적인 도발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스코는 당황하면서 허둥지둥 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으니, 내 제안에 함정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봤자, 죽었다가 겨우 살아난 놈이 헌병대의 비호를 포기하면서까지 이렇게 도전을 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평생 동안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었을 테니까.
‘멍청한 놈이 생각을 하니까 혼란스럽게 느끼는 거다.’
만약에 바스코가 이대로 대결을 피하고 물러난다면 최고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었지만 세상만사의 일이라는 게 역시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