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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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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틴을 후원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성과였다.
류안의 기억을 바탕으로 소대원들의 성격과 능력들을 조사해보니, 이대로 복귀했다가는 바스코에게 싸움을 걸어보기도 전에 암살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이대로 돌아갔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어. 일단은 치사하더라도 녀석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을 후원자로 만들자.
병원에 있는 단말 pc로 방위군의 인사정보시스템에 접속한 나는 검색을 통해서 녀석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고위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병원에 입원한 방위군의 군인들과 잡담을 나누면서 은근슬쩍, 고위 인사들의 신상정보를 파악해 나갔다.
이름하여 인트라넷으로 시작하는 신상 털기.
제론V행성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군인병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장소에는 온갖 지역에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입원한 방위군들이 우글거렸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대장이나 방위군 원수의 밑에서 잔심부름을 했다는 간부들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주워 모은 정보들 중에서는 정말로 생각하지도 못한 고급 정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런 내용을 포함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내게 쓸모가 없는 잡담에 불과했지만 그러는 와중에, 드디어 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고급스러운 정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술을 마시지 못해서 환장하고 있는 현병대의 간부에게, 원하는 것을 주고서는 고주망태인 상태로 얻어낸 한 사람에 대한 정보.
바로 길로틴의 아들인 나이브 소위에 대한 일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심각한 도박중독이라서 카지노에서 대민폭행 1건과, 군내 사행도박 2건이 적발되면서 중위에서 소위로 강등당해 버렸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옷을 벗어도 할 말이 없는 추태였지만 길로틴의 힘이 워낙에 막강하다보니,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고 처벌 자체를 없는 일로 하려고 했는데 상부에서 누군가가 적당한 수준에서 처벌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바람에 1계급 강등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헌병대 간부의 주장에 따르면 그 누군가가 길로틴일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는데, 그럴 듯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칠 수는 없지만 규율대로 처벌은 한다. 본분에 충실하고 싶으면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건가?’
청렴결백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알려진 사람이 무르게 행동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면, 그 부분이야말로 그 사람의 약점이라는 뜻.
원래 단순하게 좋아한다고 그러거나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끊을 수 없는 사이가 애증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브라이트가 류안과 마르티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이브에게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나는 병원에서 나오면서 곧바로 유급휴가를 전부 몰아서 썼다. 그리고 나이브가 자주 출입한다는 카지노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소위로 강등되고도 제 버릇을 버리지 못했는지 평일 대낮부터 세븐 카드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관찰한 결과, 며칠 동안이나 똑같은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돌아가는 판이 어째 이상한데? 보아하니까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혹시 얘, 타짜들한테 털리고 있는 건가?’
갤러리로 위장해서 몇 번이나 돌아가는 패턴을 확인한 결과, 내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곧바로 헌병대에 연락해서 사복 헌병들을 급파해달라고 요청을 보냈다.
장난전화라고 무시를 해 버릴까 걱정했지만 내 신분과 소속을 대면서 나이브의 이름을 꺼내자, 곧바로 자세한 사항을 물어보는 게 그들도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던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연락을 받고 출동해 온 헌병들에게 타짜들의 속임수를 밝혀낼 테니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하자, 묘하게 말귀를 알아듣는 게 빠른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협조를 해 줬다.
그들이 잠복하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다시 갤러리로 돌아와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타짜들의 수법에 농락당하면서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나이브는,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칩을 빌려주는 친절한 사람(타짜 동료)에게 다시 한 번 거액의 칩을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끼어들었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슬슬 따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는 제가 칩을 빌려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같은 방위군의 동료가 도움을 드리는 게 모습도 좋아 보이고…….”
“그게 정말인가?”
나이브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화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지만, 예상대로 친절한 사람은 내 간섭을 불쾌하게 여기는 눈초리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아쉽다는 듯이 안 해도 되는 소리를 덧붙였기 때문에, 그들이 타짜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던 나는 그동안 카지노에서 딴 돈을 아낌없이 투자해 주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순식간에 돈을 잃어버리는 나이브.
10골드가 넘는 투자금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자 그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하게 내가 원하던 그림.
“제가 대신 해 봐도 되겠습니까?”
“어, 음. 그래. 자네가 한 번 해보겠나?”
나이브가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준 덕분에 그들은 내 참전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표정을 숨기는 데 능숙한 이들이라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심기가 불편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적당히 잃어주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던 나이브 때와는 다르게, 나에게는 한 차례의 승리도 양보해주지 않는다.
빨리 꺼지라는 무언의 시위였지만 겨우 얻어낸 기회를 순순히 날려버릴 내가 아니었다.
“다이.”
“또 죽는 건가?”
“저는 무조건 한 방만 노릴 겁니다.”
몇 번의 시험으로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패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죽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서 나이브와의 대화를 통해서 한 방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니, 다음 판에는 곧바로 풀하우스가 손에 들어왔다.
이런 패를 받고서도 죽는다는 건 처음부터 승부를 할 생각이 없었다는 걸 이실직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
‘엄청 노골적이네, 타짜 새끼들.’
슬슬 승부를 볼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에 주저 없이 판돈을 쓸어 넣으면서 외쳤다.
“올인!”
“오오오오!”
구경하는 갤러리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승부를 조작하면서 나이브의 호승심을 자극하는 게 타짜들의 의도다보니, 내 외침은 며칠 동안 치루어진 세븐 카드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올인 선언이었다.
덕분에 장내의 열기도 후끈 달아올랐지만,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척 하면서도 타짜들의 입가로 떠오르는 비웃음과도 같은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이대로 승부를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겠지.’
내가 지닌 능력으로는 타짜들의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게 없다. 그나마 게임 실력의 버프를 받으면서 적당히 돈을 버는 건 가능했지만, 프로 타짜들의 홈 그라운드에서 프로 타짜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 실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가지고 있다.
‘시간 설정 10분. 미니게임 챌린지!’
오딘에게 받은 고유능력의 발동!
[choose your game style!!!!]
시간이 멈추고 공중에서 슬롯머신이 나타난다. 레버를 돌리자 화면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잠시 후에는 정지를 했다.
[리듬게임 레인 폴 비트]
‘리듬 게임이라니 그나마 다행이군.’
고유 능력 미니게임은 이름 그대로 온갖 미니게임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운과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용 제한은 5회.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24시간을 쿨타임으로 하루 1번의 도전 기회를 회복할 수 있다. 행운을 강화하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큰 효과를 발휘하고 연속으로 도전하면 더욱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문제는 같은 행운에 연속으로 도전을 할수록 난이도가 올라가고, 실패를 했을 때 반동으로 찾아오는 불행도 역시 비례해서 커진다는 사실.
도전할 수 있는 게임 장르는 랜덤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가 있다.
평균적으로 내가 클리어 할 수 있는 미니게임의 난이도는 연속 3회.
이번에 선정된 리듬 게임은 자신이 있는 분야인 만큼 4회까지는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다.
1회 차는 무난한 발라드 곡을 가볍게 통과했다.
[세븐 카드에서 승리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현재 승률 25%.]
‘올라가는 확률을 보니까 4회까지는 무조건 도전해야 되겠어.’
2회 성공, 3회 성공, 그리고 대망의 4회차 도전.
[볼륨을 높여yo 꼬꼬마 친구들! It's Only Rock 'n Roll time baby!!!]
흑인 DJ의 포효와 함께 키 버튼이 하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리듬 게임의 기본은 음악의 리듬을 파악하는 것.
나는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 온 신경을 귀와 손으로 집중해 나갔다.
perpect, great라는 단어들이 터져 나오면서 연속해서 버튼을 성공시키면 시킬수록 라이프가 유지되지만, 단지 good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미묘하게 타이밍을 놓쳐버리자 라이프가 팍팍 깎여버린다.
키 버튼을 하나라도 놓치면 게임오버가 될 가능성이 높은 얼음장 플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고 뚜렷하다.
방어기제강화라는 고유능력이 정신을 보호하면서 어떤 상황에도 정신을 집중시켜주고 침착함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전생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지만 놀라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나이가 젊어지고 신체능력도 올라갔으니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당연했지만, 프로게이머에게는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고 전해지는 박자 감각과 균형 감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졌다.
마치 인간 메트로놈 된 기분이라고 할까?
정보가 뇌를 거치지 않고 척수반사를 통해서도 정확하게 움직여나가는 쾌감.
연주를 해 가면서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음악이 마치 내 인생의 노래인 것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나는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스테이지 클리어 화면이 뜨는 것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며 양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YEAH-! i'm king of the world!!!”
[세븐 카드에서 승리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현재 승률 100%. 확률이 100%를 달성했기 때문에 미니게임은 자동으로 종료합니다.]
그런 메시지와 함께 미니게임이 자동으로 종료되는 바람에 나는 양손을 든 상태로 현실세계로 돌아와 버렸다.
웅성웅성
미친놈을 바라보는 것 같은 사람들의 시선.
나는 양 손을 등 뒤로 손뼉을 치면서 어깨를 푸는 척 하면서 스트레칭을 해 나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자네 어디가 아픈가?”
“……청춘이라서 그러니까 게임이나 계속하시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나이브를 향해서 그렇게 대답한 나는, 이불킥의 흑역사를 한 페이지 더 새겼다는 생각에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런 혼란이 가시자 타짜들은 예상대로 승부를 받아줬는데, 두 사람은 적당히 분위기를 띄우다가 빠져주면서 남은 한 사람이 블러핑을 하면서 내 승부에 따라오는 방식이었다.
‘저 손에는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패가 존재하고 있겠지.’
여기서 부터가 문제다.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행운을 가지고 있는 놈과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패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이 싸우면 어떻게 될까?
“아이쿠, 이런!”
와장창!!!
정답은 사기가 들통 난다는 거다.
바텐더가 손님과 부딪치면서 들고 있던 접시가 타짜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 접시가 절묘하게 타짜의 왼쪽 소매 단추를 풀어버리자, 그 속에 숨겨놓은 카드들이 와르르 쏟아져 버렸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태에 넋이 나가버린 와중에 그런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내가 재빠르게 일어나면서 외쳤다.
“사기도박이다!!”
웅성웅성
그 지적으로 장내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타짜들의 표정은 사색으로 변하고 잠복하고 있던 사복 헌병들도 슬금슬금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카지노 전체가 한통속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검은 양복을 경비원들은 오히려 우리들을 둘러쌌다.
“손님, 잠시만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사기를 친 건 이 놈들인데 왜 우리가 따라가야 합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따라오라는 말이 안 들리나?”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지만 이 순간을 기다려 온 나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네놈들에게 할 소리 같군.”
척!척!척!척!
현장을 포위하고 있는 헌병들이 일제히 소총을 꺼내들었다.
“제론Ⅴ행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헌병대 소속의 블랙 해머 대위다. 네놈들은 본관의 앞에서 사기도박과 협박, 그리고 납치 미수를 저질렀기에 공화국의 헌법에 의거하여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