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 ----------------------------------------------
지상편
“바스코 이 새끼 어디에 있어?”
그렇게 외치면서 남자 숙소를 박차고 들어오는 탈리아의 모습에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복의 바지는 한 쪽 소매가 찢어지면서 검은 팬티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기름때가 얼룩지면서 광택이 번들거리는 검정색의 엉덩이 라인. 옷이라고 부르기에는 면적이 지나치게 적은 천 쪼가리로 가슴만 겨우 가리면서 움직이기만 해도 가슴이 드러날 것 같은 부위를, 멜빵으로 고정시켜놓고 있다. 브레지어는 미착용.
그나마 그런 천 쪼가리가 목 뒤로 묶여져 있었기 때문에 등과 배꼽과 허리라인은 알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야말로 전장의 암캐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음란한 모습.
"바스코는 지금 신병을 따먹고 있느라고 바쁜데 말이야.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나랑 떡이나 치는 건 어떨까, 이쁜아?"
술에 취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치근덕거리는 병사를 본 탈리아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스코 패밀리의 암캐와 놀아보고 싶다는 거야? 그것 참 우연이네. 사실은 나도 남자다운 남자를 보면 아랫도리가 젖어오거든."
“쿠헤헤헤, 내가 좀 남자답기는 하지.”
안기려는 것처럼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탈리아를 보면서 헤벌레하던 남자는, 다음 순간에 거시기를 걷어차이면서 바닥을 굴렀다.
퍽!
"크아아아악!"
“이런 미친년이!!”
그 모습을 본 병사의 동료들이 흥분하면서 달려들려고 했지만, 전광석화처럼 권총을 뽑아든 탈리아는 그들을 향해서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탕탕탕!!!
급소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
"끄어어억."
달려들려고 하던 동료들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면서 그대로 굳어버렸고, 처음에 수작을 걸어왔던 병사는 자신의 고간 아래로 지나가던 바퀴벌레가 그대로 녹아버렸기 때문에 실례를 하면서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한 순간에 상황을 정리해버린 탈리아는 권총의 연기를 훅하고 불면서 외쳤다.
“다음부터 누님을 안고 싶으면 최소한 오줌을 싸는 버릇은 고치고 와서 도전을 해라. 애송이 새끼들아!!”
“푸하하하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병사들이 통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박수를 쳤다. 휘파람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누군가는 바스코 패밀리를, 누군가는 전장의 암캐를 외치면서 환호를 한다.
창피를 당한 패거리가 실신한 동료를 붙잡고 물러나자 탈리아는 거침없이 남자숙소를 헤집고 다니면서 바스코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한 장소에서 그가 자신의 욕정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머리가 아프오는 것을 느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헉!헉!헉!헉!"
방 안은 뜨거운 열기로 사우나를 연상케 했다.
침대에서 엎드린 상태로 사지가 묶여진 남자와 그 남자의 등짝을 보는 남자. 아니, 그 위에서 미친 듯이 용두질을 하고 있는 남자는 덩치가 너무 큰 바람에 남자라기보다는 차라리 털가죽을 벗겨놓은 곰이라는 표현을 하는 게 어울려 보였다.
그 곰 남자, 바스코가 자신의 밑에 깔린 남자를 향해 외친다.
"좋으냐, 개자식아!"
양쪽 눈을 뒤집고 기절해버린 남자는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재갈을 물려진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한 눈에 봐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바스코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었다.
그 엽기적인 풍경에 웬만한 일에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는 탈리아가 역겹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즐기는 중에 미안하지만 바스코. 이 또라이 새끼야, 소대원들이 전부 집합해야 되는 비상사태가 생겼어!!”
“뭐라고 지껄이는데 암캐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툭 쏘아준 바스코는 조금도 행위를 늦추지 않았다.
“닥치고 신병 위에서 내려오라고 게이 새끼야!”
“왜, 지금 멈추면 나중에 가랑이라도 벌려주게? 미안한데 암캐년의 냄새나는 조개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 사내새끼가 필요하면 밖에 나가서 프리라고 푯말이라도 들고 서 있어!”
“멍청한 새끼가. 네가 죽이려다가 실패한 어리버리 새끼가 다시 복귀한다는 말 못 들었어?”
시종일관 무시하는 태도로 있던 바스코가 그 말에 움직임을 멈췄다.
“뭐라고?”
“찰리 중사한테 들었는데 그 어리버리 병신 새끼가 병원에서 코마 판정을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그러더라.”
“운도 빌어먹게 좋은 새끼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병신아. 우리가 그 새끼한테 저지른 일 잊어버렸어? 그 새끼가 헌병대라도 끌어들이게 되면 3소대 전체가 빙하기 행성으로 삽질하러 가야할지도 모르게 생겼다고!!”
“알아, 알아. 누가 암캐 아니랄까봐 겁나게 짖어대고 있네. 젠장, 좋았는데!!”
신경질적으로 신병의 엉덩이를 찰싹하면서 두드린 바스코는 침대에서 내려와 허겁지겁 옷을 차려입었다.
잠시 후.
숙소를 나온 두 사람은 소대원들이 집합해 있는 바Bar로 걸음을 옮겼다.
“그 새끼가 죽음에서 살아난 불사조든 뭐든지 간에 시끄럽게 나불거리기 전에만 해치우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난 다음에는 우리끼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고.”
“안 그래도 리틀보이가 깜짝 선물을 준비해 뒀어. 문제는 그걸로 어떻게 뒤탈없이 처리를 하냐는 건데.”
“좋아. 그러면 내가…….”
바의 문을 열고 들어간 두 사람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대화를 멈추고 말았다.
대낮이지만 휴일이었던 날.
병사들이 모인 바는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이었다.
문제는 그 병사들이 하나같이 전부 각을 잡고 있었다는 것. 술을 따르지도 않았고, 잔을 부딪치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쥬크박스는 꺼져 있었고 평소처럼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기는커녕, 목울대로 넘어가는 침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와중에 부동자세로 앉아있는 소대원들을 발견한 바스코가 버럭하고 외쳤다.
“리틀 보이! 이게 도대체 무슨…….”
“바스코, 탈리아! 둘 다 오랜만이야.”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태평한 목소리가 두 사람을 반겼다. 뒤돌아보며 그 정체를 확인한 바스코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리버리 너 이 새끼!!”
대답 대신에 얄미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대는 류안.
덕분에 바스코는 원래 구상하던 계획을 때려치우고 그 자리에서 달려들 뻔 했지만, 그 뒤에서 나타나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러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상사한테 건방진 놈이군.”
‘헌병대의 악마 길로틴 대령!’
"피, 필승!!!"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직립부동의 자세를 취하면서 큰 소리로 경례를 했지만 길로틴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건방진 새끼들은 영창으로 보내. 한명은 복장불량이고, 한명은 상사모독죄다.”
“네, 알겠습니다!”
대동하고 있는 헌병들이 짧게 대답하면서 우르르 몰려들어 탈리아와 바스코를 포박해 버렸다.
덕분에 안 그래도 경직되어 있던 방의 분위기가 한 층 더 흉흉해진다. 이제는 침 소리가 아니라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한 병사들.
그런 분위기를 환기시킨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하하하! 길로틴 대령님. 대령님의 명령은 지당합니다만 이번 한 번만 제 얼굴을 봐서 용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평소에 너무 허물없이 지내다보니 녀석들이 그만 실수를 저지른 모양입니다.”
“크흠,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길로틴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서 두 사람의 포박을 취소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너무도 간단하게 상황이 정리되어버리자 어안이 벙벙해진 두 사람.
길로틴이 누군가?
범죄자 출신의 병사들로 우글거리는 제론Ⅴ행성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건 모두 길로틴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길로틴이 직접 처형을 실행한 군인들의 숫자만 100명을 넘는다고 하며, 그의 앞에서 규율에 어긋나는 사소한 실수라도 저지르면 빙하기의 행성으로 직행한다는 소문은 단순한 도시전설이 아니라고 한다.
한 번 찍히면 끝장이라는 헌병대의 악마.
그런 길로틴이 일개 하사의 부탁으로 자신의 처벌을 취소해 버렸다.
그것도 그냥 하사가 아니라 암구호도 제대로 못 외워서 대형 사고를 치는 어리버리 류안 하사가 말이다.
‘저 새끼 낙하산이었어?’
‘낙하산이 왜 이런 데서 놀겠냐.’
‘그런 게 아니면 이 엿 같은 상황은 도대체 뭔데!’
바스코와 탈리아는 눈짓으로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런 두 사람을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제는 아예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어깨동무까지 하면서 친한 척을 해대는 류안.
“정말로 오랜만이다. 새끼들아! 하하하하! 길로틴 대령님. 이 녀석들이 성격은 조금 거칠지는 몰라도 알고 보면 마음씨 하나는 좋은 녀석들입니다. 제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자신들이 함정에 빠트린 이야기가 나오자 흠칫하면서 어깨를 떠는 두 사람.
‘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도움을 주기는커녕 배신했다는 걸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던 상황이다.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그가 입원한 사이에 정신에 무슨 이상이 생겼는지를 의심했지만, 자신들과 얼굴을 마주치면서 지어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는 순간에 그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뒈지기 싫으면 나한테 잘 보여라.]
물론, 그 표정을 보지 못한 길로틴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으로 손뼉을 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훌륭하군. 범죄자 출신의 병사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충성심이야. 어떤가? 자네의 상관은 이렇게 말하고 있네만, 자네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는가?”
“네, 그렇습니다!”
“류안 하사님을 위해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의리가 있는 친구들이군.”
“네, 정말로 의리가 넘.치.는 멋진 녀석들입니다!”
티끌 한 점도 없는 해맑은 웃음이었지만 류안의 그 웃음이 두 사람에게는 사신의 미소로 느껴지고 있었다.
“소대가 화기애애한 모습이 보기는 좋지만 군복들은 똑바로 입고 다니라고 하게. 아무리 범죄자 출신의 병사들이라지만 도무지 제대로 하는 놈들이 없군.”
“네! 제가 잘 타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야 원. 내가 주책없이 소대의 상봉을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길로틴 대령님이 찾아주셔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렇지 않냐?!!”
“네, 그렇습니다!!”
류안의 질문에 바에 있는 모든 군인들이 일제히 외쳤다. 마치, 부대 전체가 그의 발아래 엎드리고 있는 것 같은 광경.
“하하하하! 자네가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군.”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 길로틴이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게. 내 권한이 허락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까 말이야.”
“말씀만으로도 영광입니다!”
관용선을 타고 떠나는 길로틴을 배웅하고 돌아온 류안이 자신에게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소대원들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병사들의 어깨를 붙잡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3소대의 회포를 풀어보도록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