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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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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재밌는 사람이네.”
신후의 절규를 들은 스쿨드는 자신도 모르게 키득거리고 말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틀에 박히고 재미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떠나버렸다.
덕분에 일처리는 빨랐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일이 되풀이하다보니, 그녀가 아무리 발할라의 안내자인 발키리라고 해도 지루함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는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스쿨드가 생각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공포에 질리며 벌벌 떨었다. 불경한 생각을 하면 그녀에게 천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신후는 자신이 을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자신의 생각을 숨기거나 속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이용하면서 자신과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 농담 따먹기의 대부분이 스쿨드가 약한 외설적이고 민망한 분야의 이야기라서 문제였지만.
“약간 귀엽기는 했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서 정신을 차리고, 그가 남기고 간 문제들에 대해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문제 1.
“도대체 이번 발할라는 어떻게 된 일이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면 그 문명을 관장하는 신도 함께 성장해 나간다. 그것은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자신이 관장하는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제사장을 보내고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영웅들을 만들어 특별한 힘을 부여했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결국에는 독이 되는 법.
신화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절에는 신들이 인류에게 지나치게 간섭해 버렸다.
덕분에 신과 신의 이권 다툼이 일어나고 그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신들이 그들의 문명과 함께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흔히 라그나로크라고 불리는 대재앙의 시작이다.
오딘은 신들의 멸망을 막고 그들의 탐욕을 충족시키면서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게 바로 발할라다.
발할라의 가장 큰 장점은 공정함이다.
특정한 신을 편들지 않았고 신들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조율했다. 또한 문명이 지나치게 편중되지 않게 만들어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으면서, 그들 스스로가 멸망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해 나갔다.
처음에는 발할라의 방식이 소극적이고 미적지근하다고 생각하던 신들도, 발할라를 통해서 수많은 세계의 문명들이 꽃피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은 실수를 저질러도 발할라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신와 인간은 발할라에 의해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지금, 스쿨드는 발할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려고 하고 있있다.
“이건 소원이 아니라 망상이나 마찬가지야.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실현한다면 몰라도 개인이 이루기에는 너무 지나치잖아…….”
망상이 이루어지면 문명 전체가 퇴보한다는 사실은 발할라가 입증하고 발할라가 막아오던 원칙이다.
문제 2.
“능력의 등급도 지나치게 높았어.”
발할라에 도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등급은 A급.
평균적으로 30년에서 40년 동안을 한 분야에 열정을 쏟아 부은 장인들이 얻을 수 있는 등급으로, 보통 한 분야에서 달인으로 소문난 사람들이 이 등급에 속하게 된다.
S등급은 평범한 노력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등급으로, 소위 천재나 영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해서 평생 동안 필사적으로 갈고닦은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다고 알려진 등급이다.
그런 사람들은 굳이 발할라에 참가하지 않아도, 자신의 세계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는 한다.
이 등급까지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 한정해서 누구나 도착할 수 있다고 알려지는 등급이지만, SS등급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범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의 인생으로는 도저히 도달하는 게 어렵다고 말해지는 신화의 영역.
발할라를 성공하고 나서도 능력의 끝을 보고 싶다면서 신들에게 소원을 빌고, 다시 한 번 발할라에 도전하면서 능력을 갈고닦는 괴짜들만이 도달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능력.
그런 사람들만이 달성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등급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신후는 첫 번째 도전에서 그런 능력을 2가지나 보유하고 있다.
그것도 스스로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신후는 자신이 프로게이머로서 게임 능력을 완벽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스쿨드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만약에 그가 정말로 SS등급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그가 실수로라도 로드스타 본좌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었을 거다.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고 해도 그의 손이 느려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한술 더 떠서 성교 능력을 죽을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코미디나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가 좋아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그녀가 보기에는 우스운 일.
기억에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생각한다면 신후가 발휘한 능력들은 잘해봤자 A급에서 S급 정도가 전부다.
그 느낌이 마치 누군가에게 뛰는 높이를 제한받는 벼룩처럼 자신이 뛸 수 있는 높이를 모르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 마치 누군가에게 작위적으로 간섭을 받은 낌새가 보였다.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그는 스쿨드가 정체를 짐작할 수도 없는 존재에게 관리를 받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명백하게 그녀가 처리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게 되는 일.
“일단은 오딘께 보고를 드려야…….”
그렇게 정하고 움직이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우리 스쿨드가 누구를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꺄, 꺄악! 프, 프레이야님을 뵙습니다!!”
귓가로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에 놀라며 비명을 지른 스쿨드는 자신을 등 뒤에서 끌어안는 여신의 정체를 알아내고는 다급하게 인사를 했다.
“저기 말이야. 그런 시시한 인사보다는 누구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말해줘.”
마치 유혹하는 것처럼 나른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조금 전에 발할라로 떠난 인간에 대해서, 아흣! 거기는…….”
“흐음, 그래서 이렇게 느껴버렸구나? 고작해야 인간 따위를 생각하느라고.”
“그, 그건 프레이야님이 권능을 발휘하시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게, 하악!!”
어느 틈엔가 스쿨드의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그녀는 유두를 붙잡으면서 가볍게 비틀어버렸다.
“후후후. 처녀인 주제에 여전히 잘 느끼는 몸이라니까?”
“저, 저를 모욕하지 마세요! 저는 오딘께 순결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발키리입니다!”
“그 오딘이랑 조금 전까지 신나게 떡을 치다가 왔는데 말이지.”
“…….”
스쿨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놀리는 걸 멈추고 살그머니 떨어지면서 미소를 짓는 여신.
“뭐, 좋아. 놀리는 건 여기까지만 하고. 조금 전에 발할라로 떠난 도전자가 SSS등급의 성교 능력자라는 소식을 들었어. 그러니까 그 도전자에 대한 정보를 나한테 넘겨줘야 되겠어.”
“아무리 프레이야님이라도 그런 요구는…….”
스쿨드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프레이야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변해버리면서 그녀의 심령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후후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스쿨드를 마치 먹잇감을 사로잡은 뱀처럼 노려보던 여신은 이내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면서 기억들을 조사해나가기 시작했다.
[경고! 경고! 허가받지 않은 침입을 감지했습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푸른 갑주로 무장한 천사들이 프레이야를 향해서 달려들어 온다.
“오딘의 가호인가?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한테는 이 정도 수준의 위협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중얼거린 여신은 목걸이를 떼어 마치 차크람처럼 손에 쥐면서 가볍게 흔들었다.
짤랑-!
브리싱가멘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동심원이 천사들에게 닿기가 무섭게, 그녀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검은 먼지로 변하면서 흩어져버렸다.
“SSS등급이라, SSS등급. 찾았다!”
마치 도서관을 열람하는 사람처럼 스쿨드의 기억을 튕기던 여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을 튕기자, 제압이 풀린 그녀가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콜록거렸다.
오딘의 가호를 파괴당한 그녀의 내부는 망신창이가 되어버렸다.
“헉, 헉.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신 겁니까!?”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돼. 이번 사건으로 나를 처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프레이야의 뻔뻔한 태도에 스쿨드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차마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녀가 아무리 오딘의 비호를 받는 발키리라고 해도, 여신처럼 오딘의 아랫도리를 잡고 흔들어대는 권력을 쥘 수는 없었으니까.
‘그 색골 영감탱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후의 선택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프레이야.
“이럴 수가! SSS등급이 성교가 아니라 다른 시험을 보다니. 그런 능력을 포기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는 원칙대로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을 했어요.”
여신의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은 그녀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신들도 부러워하는 능력이라고? 아무리 정숙한 여인이라도 일단 덮쳐버리면 발정난 암퇘지처럼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능력이란 말이야. 그 대상이 설령 스쿨드나 나라고 해도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왜 모르겠어요?’
비록 한 순간이지만 신후가 그 무시무시한 능력을 자신에게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낀 그녀다.
“그런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지금까지 상대해 본 여자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말이 돼?”
‘그거야 프레이야님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의 일이고요!’
스쿨드는 그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면서 속으로 외쳤다.
아스가르드의 모든 남자들과 관계를 가졌다고 전해지는 프레이야는, 성적인 자유를 무한하게 누리는 난교와 자유연애의 화신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 여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후의 선택은 그야말로 온 세상의 최고의 보물을 쓰레기통으로 처박아버리는 천인공노할 일.
만약에 여신이 그가 발할라로 떠나기 전에 마주쳤다면, 고리타분한 발키리들의 규칙은 전부 무시해버리고 자신의 사도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배가 떠나버렸다고 해서 포기할 성격도 아니었지만.
“역시 안 되겠어. 이런 능력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 건 아스가르드의 역사가 허락한다고 해도 사랑의 여신인 프레이야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 아이에게 은총을 내리고 직접 계약을 맺을 거야.”
“하, 하지만 그건 발할라가 완성된 이후로는 오딘께서…….”
“금지한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신들이 무조건 발할라의 규칙에 복종할거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야! 물론 오딘이 신들의 왕이라는 건 인정하고, 내 계약이 발할라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건 인정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예전의 방식으로 간섭하는 건 문제도 아니니까!”
예전의 방식이라는 말에서 라그나로크의 악몽이 떠오른 스쿨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 같아서는 말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도 사실.
“알겠어요. 프레이야님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다면 말릴 수는 없겠죠. 그러면 저는 이만…….”
“어디 가?”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그녀가 여신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왜 그러세요?”
“누군가는 발할라에 들어가서 이 내용을 전달해줘야 할 거 아니야.”
“그건 프레이야님의 사도들을 시키면 되는 일 아니에요!”
“내 사도들은 바빠서 안 돼. 요즘은 부쩍 밤이 외로워서 걔들이 놀아줘야 한단 말이야. 대신에 한가해 보이는 스쿨드나, 스쿨드나, 스쿨드 같은 발키리가 가줬으면 좋겠어.”
“결국은 저보고 가라는 소리잖아요!! 그리고 저도 죽은 영혼들을 발할라로 보내야 해서 바쁘거든요?”
스쿨드는 그렇게 저항하면서 이 때만 해도 여신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대신에 휴가 처리해 줄게.”
“휴가면 쉬어야죠.”
“발할라에서 쉬어.”
“아무리 여신님이라도 제가 쉬는 날에도 무슨 일을 할지 결정해 버리는 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요?”
“맞아. 너무한 일이지. 그래서 나는 스쿨드가 자발적으로 해줄 거라고 믿어.”
순간적으로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녀였지만, 이내 여신이 허공으로 띄어 올리는 영상을 보고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 색골 영감탱이가……프레이야와 얼마나 해댔으면 이런 혜택을 퍼주는 거야?!]
그 속에서는 오딘을 욕하는 스쿨드의 속마음이 여과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딘의 가호를 해제하니까 어머나 맙소사, 세상에! 이런 소리들이 줄줄이 흘러나오더라고! 이거는 발키리들의 충성심에 대해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내용이 아닐까?”
“하, 할게요. 아니, 하게 해주세요.”
결국 스쿨드는 여신의 예언대로 무릎을 꿇으면서 자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오딘에게 쓸데없는 보고를 나불거리는 일은 막을 수가 있겠지.’
프레이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여신은 단순하게 SSS급 성교 능력자의 정체를 자신만의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에 저지른 일이었지만, 여신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은 있었다.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서 아스가르드의 역사를 뒤흔들어버리는 터무니없는 대사건의 발단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