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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무림 색마전설의 시작!>
무림인과 요괴 그리고 선인들이 공존하는 세계.
난주 풍운객잔의 점소이 아소는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드는 혈기왕성한 나이에 돌림병에 걸려서 동정인 채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아소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천하제일의 미녀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것.
당신은 생명의 등불이 꺼진 아소의 몸으로 빙의해서 소년이 이루지 못한 수많은 꿈들을 달성해 나가야만 한다.
그 자세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옥황상제의 딸 경천공주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2.정순공주와 결혼해서 황실의 부마가 된다.
3.마교의 소교주 혈귀수라를 임신시킨다.
4.정파의 10대 미녀들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5.사파의 10대 마녀들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6.천하 32절이라고 불리는 기녀들을 섭렵한다.
7.64천녀들과 운우지정을 나눈다.
8.요선 108나찰들을 조교해서 사랑의 노예로 만든다.
9.위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천명의 미녀들과 온갖 방법으로 사랑을 나눈다. 단, 쌍둥이는 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10.카마수트라. 모든 밤을 다스리는 사랑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모든 체위와 테크닉을 마스터한다.
이 임무에 도전하면 프레이야가 당신에게 은총을 내릴 겁니다.
이 업적들을 달성하면 프레이야가 기뻐하실 겁니다.
임무를 달성하기 전에 도전자나 목표가 사망, 또는 성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도전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
내용을 보고 신들이 임무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스쿨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발할라라는 건 인간이 죽으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이 대신해서 이루어주는 것이다.
이 사실만 보면 굉장히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지만 막상 그 터무니없는 내용을 확인하고 나자,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뭐 이렇게 변태 같은 애새끼가 다 있지.’
처음에는 훈훈하게 시작하는 것 같았는데 다 읽어보니까 이건 뭐 세상에 둘도 없는 난봉꾼이다. 아니, 난봉꾼 수준이 아니라 제목처럼 색마다. 색마.
나 또한 에로한 망상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짐승이라고 자부했는데, 아소의 비범한 망상을 보고 나니까 급격하게 자신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녀석은 분명히 망상만으로 휴지통을 임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종류의 천재라든지…….
“혹시 이 소년도 발할라에 도전하는 겁니까?”
“아니요. 발할라에서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육체를 버리고 환생을 선택한 사람을 선정해요.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신에게 자신의 육체나 인생을 되찾고 싶다는 소원을 빌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선정하죠.”
“그렇군요.”
하기야 그런 모순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면, 발할라라는 의식 자체가 성립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부분은 그렇게 넘어간다고 해도 말이지…….’
“발할라가 원래 이렇게 어려운 의식입니까?”
“소, 솔직히 저도 이렇게 막나가는 소원은 처음으로 보는 거라서 잘 모르겠어요.”
소원의 내용을 떠올렸는지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스쿨드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성교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뱉어내지 못하는 순진한 그녀로서는, 사춘기 소년의 과대망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 모양.
아닌 게 아니라 이 시험의 난이도는 미쳤다.
‘세상에 적당히라는 게 있지! 아무리 SSS급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
삼천궁녀를 거느렸다는 의자왕도 이런 변태 짓을 벌이지는 못할 거다. 물론, 숫자만 보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여자들이 전부 자신의 측실일 경우에나 가능한 소리고, 아소의 입장은 정 반대.
[제가 풍운객잔의 점소이 아소인데 따님을 주세요. 옥황상제님! 아 물론, 저랑 해야만 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셔야 되지만요.]
내가 옥황상제라면 이 미친놈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다.
‘미국의 daddy들이 왜 엽총을 기본 옵션으로 들고 다니는지 모르는 꼬맹이인가…….’
아무래도 시대의 배경이 배경이니 만큼, 대중 매체들에게 교육을 받지 못한 아소가 널 찾아낼 거야, 그리고 죽여 버리겠어, 행운을 빌어! 라고 말하는 아버님들의 유서 깊은 딸 사랑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내 계산으로는 이런 터무니없는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연을 얻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초고수가 되어서 절대 권력을 차지한 다음에, 수많은 여자들에게 수청을 들라고 외치는 변사또로 빙의해서 수많은 춘향전들을 양산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몽룡이 나타나거나 춘향이가 수청을 거절하고 자결해버리면 게임 오버.
어떻게 진행해도 배드엔딩으로 이어지는 가시밭길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거나 숟가락을 장비하고 마왕을 쓰러트리라는 최악의 퀘스트가 나오는 게임을 클리어 하는 게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들렸다.
‘안 돼. 이 소원은 못 들어줘!’
“성교가 아니라 게임의 시험 내용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에요.”
나는 [게임]으로 손을 가져다가 댔다.
<유라디스 은하의 정복자!>
6개의 세력들이 난립하는 별의 바다.
가온 공화국 방위군의 부사관으로 임관한 20살의 청년 류안 제르너는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을 받고 뇌사상태에 빠져버렸다.
그가 군인으로서 품은 꿈은 유라디스 은하를 최초로 통일하는 유일무이한 지배자가 되어 영생을 누리고 싶다는 것.
당신은 류안의 몸으로 빙의해서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나가야만 한다.
자세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5대 세력을 정복한다.
2.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3.헨드릭 황제의 유산을 전부 손에 넣는다.
4.아프시오시스 성계를 정복해서 올드 데우스를 굴복시킨다.
5.전 인류 통합 황제로 등극한다.
6.인류에게 알려져 있는 모든 성계를 정복한다.
7.워프시온의 유적들을 모두 탐사하고 워프존의 비밀을 해명한다.
8.자신의 위업을 칭송하는 랜드마크를 최소 10개 이상 건축한다.
9.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자신의 무덤을 건축한다.
10.불로불사의 능력을 손에 넣는다.
이 임무에 도전하면 오딘이 당신에게 은총을 내릴 겁니다.
이 업적들을 달성하면 오딘이 기뻐하실 겁니다.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사망하면 도전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OTL의 자세로 엎드리면서 절규했다.
“인간은 전부 쓰레기야!!!”
한 놈은 발정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변태 새끼고, 한 놈은 우주의 진시황이 되고 싶어서 환장하는 미친놈이다. 적어도 공화국의 군인으로 임관했다는 놈이 공화국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이런 황당무계한 꿈을 꾸고 있으니 희대의 또라이거나 사이코패스인 게 틀림없다.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절규하는 내 모습이 처량했는지 스쿨드가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해 줬다.
“……힘내요. 화이팅!”
“…….”
주먹을 작게 불끈 쥐면서 응원해주는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말없이 노려보자 양심이 찔리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해버리는 그녀.
“솔직히 저도 이렇게까지 황당하고 어려운 소원들은 처음으로 봤어요. 하지만 이미 결정되어버린 소원을 바꿀 수는 없어서…….”
“다른 사람의 소원으로 바꾸는 건 안 됩니까? 아니면 하다 못해서 다른 능력으로…….”
“정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냥 포기하고 환생하셔도 되요.”
안 된다는 소리다.
“합니다. 도전!”
나는 한다. 발할라를!
난이도가 어렵다고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할 작정이라면 처음부터 받아들이려는 결심을 하지도 않았다. 비록, 두 가지 발할라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절망스럽게 어렵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직접 부딪치지도 않고 포기해버리기에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살아온 성미에 도저히 맞지 않는다.
할 수만 있으면 게임의 체험판처럼 두 가지의 인생을 모두 체험해보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오는 스쿨드를 보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을 읽어주니까 이런 건 또 편리하군.’
잡생각을 마친 나는 두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게임에 도전하겠습니다.”
“정말인가요?”
그 결정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스쿨드가 놀란 토끼눈을 뜨면서 물었다.
“발할라에서는 고유능력이 제일 중요해 보이니까요.”
성교를 포기하고 게임을 선택한 건 단순한 이유다.
RPG에서 전설의 무기와 그것보다는 실력이 모자라지만 역시 뛰어난 장인이 만든 서로 다른 무기가 있다고 치자.
능력만 보면 전자가 훨씬 더 뛰어나겠지만, 아무리 무기가 훌륭해도 쓰는 사람의 직업이 다르다면 제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마치 마법사가 전사의 장비를 들고 설치는 꼴이라고 할까?
반면에 성능은 떨어진다고 해도 그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120%는 불가능해도 100%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진가를 모르고 살아온 성교 능력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내가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게임 능력을 강화시켜서 사용해 나가는 게 이 험난한 발할라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한테 새로운 절망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참고로 게임 능력을 선택하면 다른 능력은 사라져요.”
“!!!!!!!!!!!!!!!!!!!!!!!!!!!!!!!”
그 소리 없는 절규에 대답을 이어나가는 그녀.
“고자는 안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이런 순간에 도대체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자손의 번영이 달린 일인데 쓸데없는 일이라니 그 무슨 황망한 말씀입니까!!”
“……읏. 죄,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패드립(?)을 시전 했다가 내 상소에 주눅 들어서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그녀.
심호흡을 하면서 한참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나는 사정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몇 번이나 부여잡으면서 겨우 결정을 내렸다.
‘사기를 써낸 사마천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인가…….’
“그래도 저는 게임을 선택하겠습니다.”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게 병신 같지만 멋있는 선택이기는 하네요.”
“이것은 눈물이 아니라 제 속의 사나이가 흘리는 마음의 땀입니다.”
“진짜 깬다…….”
스쿨드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남자들이라면 반드시 이 고통을 이해해 줄 것이다. 미안하다. 전 세계의 남자들이여. 잘 있어라. 무림의 이름 모를 수많은 미녀들이여.
“네, 어떤 심정이신지는 충분히 잘 알겠고요. 이제 됐으니까 신후님을 발할라로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나를 향해서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휘이이잉-.
사방에서 몰려드는 새하얀 빛의 무리들이 나를 감싸 나간다. 그러면서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정신이 점점 더 몽롱해지더니 주변의 풍광들도 점점 사라져 나간다.
그러는 도중에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그녀의 음성.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발할라에 관한 이야기는 관계자 이외에는 발설하면 안 돼요.]
‘발설하면 어떻게 됩니까?’
전송의 영향인지 목이 메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가는가 싶었지만 내 생각을 읽었는지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무시무시한 패널티를 받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궁금해도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기를 기원할게요.]
그 말을 듣는 것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사라져 버렸다.
‘판도라의 상자라니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열고 싶어지잖아! 아니, 그것보다는 이거 결국에는 열려버리는 거 아니야? 젠장!!’
안 그래도 어려운 발할라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어주는 성대한 스포일러를 들어버린 나는 그녀를 원망하면서 발할라의 무대로 전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