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화 (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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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살아있을 때 나는 프로게이머였다.

부모님이 내 재능을 발견한 건 기억하기도 어려운 어린 시절의 일.

게임이라면 삼시세끼를 먹는 것보다 좋아하고 누구에게도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7살 때부터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유소년 대회를 참가해 실력을 쌓았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10대의 후반에는 전성기가 찾아왔고, 때마침 그 시기에 유행하던 로드스타라는 게임으로 올마이티라는 별명을 손에 넣으면서 국제적인 스타 프로게이머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글로리 로드.

수많은 시상식대에 올랐고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기록들을 경신하면서 올마이티라는 이름을 가장 높은 자리로 새겨 넣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거둔 게임이었던 만큼 수많은 라이벌들이 나타나서 내 앞을 가로막았지만 내 적수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활약하면 활약을 해줄수록 승리의 영광도 더 찬란하게 빛났기 때문에, 그 거침없는 행진에 열광하는 팬들의 숫자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면서, 어지간한 연예인들보다 더 유명해졌을 정도다.

덕분에 청소년들이 뽑은 올해의 우상으로 선정된 적도 있다.

결승전이라도 치루게 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내 별명을 새긴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로드스타에서 사용하는 내 전략과 전술을 분석한 책이 출판되었다. 드라마, 예능,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갖 이벤트에서 섭외요청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각종 행사에 참가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 또한 존재하는 법.

평생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거라며 자신하던 나에게도 그 법칙은 피해가지 않았다. 제일 먼저 이상을 보인 건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던 손가락.

20대 중반이 되자 내 생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오던 손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은 뼈를 깎는 연습과 기량으로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지만,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리면서 내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며 일취월장하는 후배들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본좌의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종국에는 내가 소속하고 있던 프로팀에서 전력 외 판정을 받으며 씁쓸하게 은퇴.

하지만 유명해지면 무슨 짓을 저질러도 박수를 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은퇴한 다음에도 방송국과 게임 관련 업체들이 계속해서 러브콜을 보내며 다양한 일거리들을 제안해 왔다.

잠시 동안은 그 흐름에 몸을 맡겨서 삐에로처럼 다양한 예능활동에 몸을 던질 수 있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글로리로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갈망으로 나는 남은 인생을 프로게이머로서 살고 프로게이머로서 죽기로 결심을 했다.

그 때부터 나는 로드스타라는 장르에서 벗어나 수많은 게임들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출연 제의를 전부 거절해버렸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배가 불렀다느니 초심을 잃었다느니 하면서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부모님은 예전과 다름없는 지원을 해줬지만, 아무리 프로게이머가 직업이라고 해도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연구를 하는 건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잠시 동안은 연습 과정을 개인방송으로 중계하면서 수입을 올리기도 했지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때마다 계속해서 온갖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면서 게임을 하느라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개인방송을 그만둔 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연습 과정과,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글로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렇게 복기를 하는 방식으로 글 쓰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온 게임의 배경과 정보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다.

룰북이나 설정집, 공략본, 제작과정에 관련한 프로그램 기술과 디자인, 유통 과정부터 시작해서 제작과 판매, 마케팅, 심지어는 찬조 출연을 한 스텝들의 사생활까지. 말 그대로 게임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온갖 전문가들과 그들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면서 게임이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자체를 공부하게 되었다.

덕분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내용도 점점 탄탄해지면서 극찬을 받은 몇몇 리뷰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해외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자 단순하게 손의 빠르기보다는, 그 게임의 이해도와 함께 전략과 전술적인 판단능력을 더 중요하게 요구하는 게임대회에서 선전하게 되면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는 로드스타만큼은 아니어도 이름이 제법 알려진 유명한 게임대회들도 있어서, 게임 장르보다는 내 일거수일투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매스컴들이 올마이티의 부활이라고 선전하면서 해체되었던 팬클럽이 다시 부활하는 기현상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팬들에게 들은 찬사 중에서도 가장 기뻤던 말은

[올마이티보다 게임을 잘하는 프로게이머가 존재할지는 몰라도 강신후보다 게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는 말이다.

나의 자랑, 나의 긍지, 나의 모든 것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게임 능력.

그랬는데…….

“성교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일 거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뇌리의 한편에서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떠오르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속삭여 왔다.

"자기야. 우리 하자!"

"아까 했는데 또 하자고?"

"좋으면서 뭘 그래?"

"좋기는 개뿔. 결국에는 내 몸이 목적인 거지! 이 짐승……."

남녀가 거사를 치르기 전에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문제는 이 장면에서 능글능글하게 제안을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세희라는 거다.

‘원래 여자들이 더 음란한 건가?’

평생을 그렇게 착각하면서 살았을 정도로 세희의 요구는 집요하고 끈적끈적했다. 물론, 나 또한 게임만큼이나 음란한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막상 거사를 치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만족하면서 쓰러져버리는 세희 때문에, 나는 거대한 장작에 성냥만 던져지고 간 사람처럼 혼자서 욕구를 처리해야만 했다.

그런 내 고민을 듣는 친구들은 부러운 놈이라면서 구박했고, 세희는 자신으로는 만족할 수 없냐며 바득바득 따졌다.

남들에게 경원시되는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정작 내 스스로는 자신이 지닌 위대한(?)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통탄할 만한 현실.

‘젠장, 설마 나한테 이런 능력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만약 이 사실을 생전에 깨달을 수 있었다면 로드스타를 은퇴하고 나서는 프로게이머로서가 아니라, 카사노바처럼 수많은 여인들과 즐거운 인생을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가 아프다.

동시에 세희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도 나보다는 그 능력에 매료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SSS라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신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능력이라고 하는데 평범한 수준은 아닐 터. 하지만 평생 동안에 사귀어 본 여자라고는 세희 밖에는 없으니 정보가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했다.

'비교대상이라도 있으면 한 번 시험해 보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심코 스쿨드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뒷걸음질을 친다.

"저, 저를 쳐다봐도 소용없으니까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지금이 바로 그 속담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소용없으니까요!!!"

역시 속담은 그냥 속담인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에로한 망상으로 대신하려고 했지만 격렬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그만두라는 제스처를 보내는 그녀.

발할라에 도전하기로 한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을의 입장이라서, 나는 생각의 자유를 포기하고 그 생각을 머릿속의 깊숙한 장소로 봉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스쿨드가 커다란 수정 구슬을 소환하면서 허공으로 두둥실 띄워 올린다.

“난이도가 조금 어려울지도 몰라요.”

‘어려우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내 능력을 떠올린 나는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게임과 성교로 떠나는 위대한 여정이라는데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신나고 재밌을 것 같다.

특히, 성교가.

덕분에 나는 그녀의 경고를 잊어버리고 온갖 므흣한 망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군침을 흘리고 말았다.

동시에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손.

‘혼자서 야한 생각을 하기만 해도 성희롱일까요? 사람의 자유의지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무시하고 봐주시는 게…….’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이러는 거 아니에요!”

타인의 생각을 읽는 것도 꼭 좋은 능력은 아닌 모양이다.

스쿨드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망상을 자꾸 억압하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그녀의 외견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신사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상상에 나오는 발키리들의 이미지대로 비정상적으로 아름답다. 생전에 방송에 출연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된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들의 실물과 비교해 봐도 손을 들어주게 될 정도로.

그 시절에도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들이라면 상당히 많이 만나봤지만, 그들 중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뽑아 비교해 봐도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건드리면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것 같은 푸른색의 머릿결이다. 아마도, 샴푸광고를 위해서 몇날며칠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CG효과를 첨가한다고 해도 그녀처럼 아름다운 머릿결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덕분에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만약에 그녀가 자신을 천사라고 주장하면서 전 재산을 바치라고 명령했어도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렇게 열심히 아부하셔봤자 나오는 건 없어요.”

“제 솔직한 마음일 뿐입니다.”

“그놈의 리비도인지 본능인지가 시종일관 제 가슴에 열광하고 있었다는 걸 모를 줄 알아요?”

‘들켰네.’

무참하게 거열형을 당하고 있는 신사복 앞단추의 인권을 무시하기에는 내 양심이…….그러니까 터무니없이 풍만한 볼륨 때문에 여러 가지 존재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는 소리다.

대표적으로 팬티라는 감옥 속에 갇혀서 프리덤 크라이를 외치고 있는 내 아들이라던가.

‘본능 너 이 솔직한 새끼…….’

[호감도가 50 하락했습니다.]

스쿨드의 시선이 싸늘해지면서 들릴 리가 없는 시스템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아무튼 농담 따먹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지금부터 발할라를 설명할 테니까 집중해주세요. 쓰레, 아니 신후님.”

“뭔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요?”

“기분 탓이겠죠. 신후, 아니 쓰레기님.”

“지금은 고치면 안 되는 게…….”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해버린 스쿨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발할라는 신과 인간의 계약을 중간에서 대신 맺어주는 대행 의식이에요. 그 계약을 통해서 신은 인간에게 은총을 주고 능력을 고유능력으로 강화시켜주죠. 대신에 인간은 신이 만족할만한 뛰어난 업적들을 달성해야만 해요.”

뛰어난 업적이라는 표현이 애매했다.

“구체적인 목표는 없는 겁니까?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신의 위대한 계획이라던가 하는 것 말입니다.”

“그 문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결정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 수정 구슬에 떠오르는 선택지로 한 번 손을 올려 보세요.”

[성교] [게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성교로 손을 가져다가 댔다.

기분 탓인지 스쿨드의 시선이 차가운 정도에서 쓰레기를 보는 수준으로 돌변한 것 같지만, 어차피 죽은 마당에 여기까지 와서 후회를 남기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은 역시 본능에 충실한 게 제일이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도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일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나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을지도 몰라, 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존재일지도 몰라.]

한 때는 그런 망상이 너무 심해서 심각한 중2병에 시달린 적도 있었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다양한 실패로 현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남자의 중2병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패기 넘치게 시도한 선택도 수정 구슬로 떠오르는 화면을 보고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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