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화 (프롤로그) (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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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더럽다.

어머니는 관에 매달려서 내 이름을 목 놓아 부르다가 실신해버리셨고, 아버지는 연신 줄담배를 피우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분이 그 모양이라서 남동생이 상주를 맡아서 장례식을 진행했는데, 항상 티격태격 싸우던 녀석이 언제 그렇게 어른스러워졌는지 대견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척하던 녀석이 혼자 화장실로 들어가서는 소리가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수도꼭지를 틀어놓고는“형 미안해, 형!”이라고 외치면서 눈물을 왈칵 터트리는 모습을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녀석을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건드릴 수가 없는 내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그런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여자 친구였던 세희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에라도 헤어질 것처럼 싸우던 사이라서 처음에는 그 말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지만,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로 병석에서 정신을 잃고 링거를 맞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어쩌다가 이런 짓을 저지른 거니. 세희야…….’

우리는 10년째 연애 중이다.

한 때는 내 전부를 바칠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만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설렘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떻게든 결혼이라도 했으면, 아이라도 낳았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서로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약혼조차 하지 못하고 미루다보니, 이제는 서로 얼굴만 봐도 피곤하고 헐뜯기에 바쁜 사이로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던 건, 서로가 함께 쌓아올린 추억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대신이라고 하는 표현도 구차했지만 세희에게 나보다 더 어울리는 남자가 생기면 쿨하게 보내주자고 생각했고, 마찬가지로 내게 다른 사람이 생겨도 미련 없이 놓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답 없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신비로운 여성이 나타나면서 눈앞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분이 어떠세요?”

“최악입니다.”

죽은 다음에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였지만 어째서인지 자연스럽게 대답이 나온다. 저승사자, 또는 천사로 짐작되는 여성의 앞이라서 그럴까.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기쁘지 않으신가요?”

“농담이시죠?”

그렇게 반문한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죽은 것도 서러운데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슬퍼해주는 건 고맙지만 반대 입장이라면 제가 저렇게 숭고해질 거라는 생각이 손톱만큼도 들지 않습니다. 이런 걸 지켜보느니 차라리 염라대왕님 앞으로 끌려가서 패륜아라는 욕을 먹는 게 좋았을 텐데…….혹시 이게 스쿠르지 영감님에게 하던 것처럼 저를 괴롭히려고 보여주시는 환상이라면 성공하셨습니다. 죄책감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를 찍어버리고 싶네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털어놓고 나니까 의외로 후련해진다.

“결국 저는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새끼였습니다. 심지어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제 생각으로만 머릿속이 가득한 속물이고요.”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애인마저도 은연중으로 무시하고 깔보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나야말로 가장 쓰레기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포자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후회하시는 건가요?”

“후회하면 어쩌겠습니까. 이미 죽어나빠진 마당에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되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속죄하는 심정으로 양 손을 내밀었다.

"저는 지옥에 떨어지겠죠?"

"아닌데요?"

"……."

마치 비극 속의 주인공처럼 있는 폼과 없는 폼을 다 잡으면서 떠들었는데 아니란다.

무안해진 나머지 슬그머니 손을 내리자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웃음을 터트리던 그녀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면서 마치 영국의 신사처럼 정중한 포즈로 인사를 해왔다.

“소개가 늦어서 죄송해요. 저는 위대하신 오딘을 섬기는 발키리들의 일인인 스쿨드라고 해요. 세부적인 사항을 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신후님을 발할라로 초대하기 위해서 찾아왔어요.”

“발할라?”

게임이나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라서 생소한 이름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세부적인 구성에 대해서 줄줄이 나열할 정도로 자세하게 아는 사항도 아니었지만, 분명히 어떤 게임의 설정집에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사들의 천국이라고 적힌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굳이 발할라만이 아니라 오딘이나, 발키리라고 하는 이름도 대중매체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이름이라서 생소하지는 않았다.

“세간에 알려져 있는 신화에 관한 이야기들은 우리를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아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발할라는 전사들의 천국이 아니라, 신들에게 인정을 받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위대한 여정이거든요.”

단순하게 이런저런 정보들을 떠올렸을 뿐인데 스쿨드가 대답을 했다.

“제 생각을 읽으신 겁니까?”

“이 정도로 놀라시면 안 되죠! 제가 마음만 먹으면 신후님의 생각은 물론이고 과거의 이런저런 부끄러운 기억을 훔쳐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라…….어머, 어머나?!!”

확실히, 경망스럽다고도 볼 수 가 있는 그녀의 태도는 세간에 알려진 발키리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기억을 봤는데 저러는 거지?’

과거에 저지른 창피한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그 순간에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흑역사 100선의 향연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창피해지고 말았다.

‘죽고 싶다…….’

이미 죽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런 내 생각도 읽었는지 스쿨드는 미안하다는 것처럼 멋쩍은 헛기침을 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크, 크흠!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이런저런 과거들을 살펴본 일에 대해서는 사과드릴게요. 어쨌든 다양하게 살펴본 결과, 신후님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특별하게 뛰어난 능력은 딱 2가지에요. 그 이외에 다른 능력으로 발할라에 도전할 자격을 채우신 분야도 있지만, 당사자의 가장 뛰어난 능력들로만 발할라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능력은 논외로 할게요.”

어쩐지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소리로 들려 살짝 억울해졌다.

"발할라에 도전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발할라에 성공하면 신께서 직접 신후님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실 거예요. 물론, 램프의 지니처럼 어떤 소원이라도 가능한 게 아니라 정도를 벗어나면 안 되죠.”

“정도를 벗어나는 게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영원히 살고 싶다고 빌거나 세계를 정복하고 싶다고 빌어도 이루어주는 겁니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알려드릴 수 없지만 그 정도의 바람이라면 쉽게 이루어줄 수 있다는 건 말씀드릴게요.”

‘신이 직접 들어주는 소원이라서 그런지 스케일 한 번 무시무시하군.’

그냥 한 번 농담 삼아서 던져 본 말이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해버리는 바람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이드라인이라는 표현을 상상력을 발휘해서 유추해 보자면 소원을 100만 가지 정도는 더 들어달라고 요구하거나, 자기 자신을 모든 신들의 위에 군림하는 신들의 왕으로 만들어서 전지전능한 능력을 달라는 등의 터무니없는 걸 요구하는 정도가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봤다.

그 짐작이 맞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스쿨드.

“만약에 도전을 포기하거나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환생으로 모든 능력과 기억들을 지우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면 되거든요. 양쪽 모두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영혼인 상태로 온 세상을 질릴 때까지 구경하면서 돌아다니셔도 상관없지만, 별로 권장해드리고 싶은 결정은 아니에요. 그쪽은 그쪽대로 만만한 세상이 아니거든요.”

만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말이 생각보다 훨씬 위협적으로 들리는 바람에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

굳이 스쿨드의 경고가 아니라도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불과 며칠 사이에 귀신이나 악령이라고 짐작되는 끔찍한 심령현상을 질리도록 경험한데다가, 그 상태로 돌아다니는 무력감이라는 녀석을 뼈저리게 체험한 다음이라서 유령으로 생활하는 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오죽했으면 이런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게 생전에 저지른 잘못의 대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그 선택지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발할라에 도전하거나 환생하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는 소리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존재를 전부 잊어버리고 어떤 존재로 태어날지도 모르는 환생을 선택하는 것 보다는, 발할라에 도전하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인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선택을 내리려고 하니까 망설여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함정이 존재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전할 가치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가지고 있는 걸 전부 잃어버려도 불만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결실을 지켜준다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덤으로 소원까지 이루어준다고 하는데 그 구체적이면서도 막대한 보상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그 소원을 능숙하게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가족들과 세희에게 느낀 미안한 마음을 보상하고도 막대한 잔돈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내린 나는 스쿨드를 향해서 호기롭게 외쳤다.

“좋습니다. 까짓것 발할라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니고 있다는 특출 나게 뛰어난 능력이라는 게 뭡니까?”

그녀는 내게 2가지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곧바로 떠오르는 게 있지만 다른 능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는 게 없다.

여러 가지 능력이 존재한다는 말은 듣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려 봐도 내가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딱 하나.

어쩌면 내 속에 내가 모르던 다른 능력이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데 스쿨드가 얼굴을 붉히면서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능력이라서 그러는 겁니까?”

“아니요. 그게, 이런 능력을 처음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혹시 엄청나게 위험한 능력입니까?”

“그게 위험하다면 위험한 능력이라고 할 수는 있는데…….”

대답을 꺼리는 그녀의 반응으로 온갖 기묘한 상상들이 나래를 펼치는 바람에, 오랜만에 잠들어있던 중2병이 깨어나려고 하고 있다.

‘설마 나한테 시공간의 연속성을 깨트리거나 우주의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굉장한 능력이 잠들어 있는 건…….’

“그런 건 절대로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서는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신사의 예의가 아닙니까!!”

“옷차림은 이래도 일단은 여자한테 신사라니요!”

양손을 허리에 올리면서 항의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귀여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한 번 항의를 했다.

“그래도 일단은 무슨 능력인지는 알려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후우……알겠어요. 확실히 제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건 사실이에요. 명색이 발할라의 안내인으로 있는 만큼, 저도 각오를 다지겠어요.”

‘각오까지 하면서 말해야 되는 능력인가?’

궁금증만 더 커져가는 가운데 가볍게 심호흡을 한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게임하고 ㅇㅇ에요.”

하지만 그마저도 뒤에 말하는 내용이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지, 직접 보면 알 거 아니에요!! 정말이지 남세스러워서 원…….”

그녀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내 정보가 들어가 있는 상태 창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내 신체에 대한 정보가 마치 게임처럼 수치로 표시되고 있는 푸른색의 스크린.

이름: 강신후

직업: 프리랜서.

나이: 34세

[상태 창]

체력: 50/50 마나: 10/10

근력: 12 민첩: 21 지력: 87 매력: 65

능력: 게임(SS), 성교(SSS)

기술: (공개 불가)

그 내용을 살펴본 결과 마침내 나는 스쿨드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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