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245화 (24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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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6: 근접 조우 (3)

Episode 56: 근접 조우 (3)

3월 12일, 오후 5시 59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국경 검문소.

등장 당시 유튜브 사상 최고 조회 수를 그야말로 단시간 내에 달성했던 동영상.

동영상 상단 오른쪽에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5시 59분에 시작하여 6시 07분에 끝나는, 길이 8분 14초의 동영상.

바로 지금, 동영상에 표시되어 있던 바로 그 시각에 사건이 현실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직 구원자가 도착하지 않아 등급도 유형도 모르는 차원문.

차원문 발생 시점에서 아직 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른 시점에 갑자기 차원문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

단 한 번 화염을 뿜어 십여 명의 경찰을 숯덩이로 만들었다.

“드래곤!”

“부··· 불을 뿜는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라!”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

드래곤이 아니라 드래곤의 유생, 즉 드레이크(drake)다.

청소년기를 거쳐 한 차례 탈태를 거치고 마법 에너지와 융화한 다음에야 드래곤이 될 수 있다.

인간보다도 정신이 미숙한, 잡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

불이나 냉기를 내뿜는 고급 몬스터일 뿐이지만, 처음 만나게 되면 공포에 질리기 충분했다.

나타나자마자 불을 뿜는 연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위용.

사상 최단 시간 인명 피해 발생의 기록까지, 갖출 것을 다 갖추고 등장한 샌디에이고 최초의 A 등급 던전이다.

드레이크의 선 키는 3미터에 가깝지만, 차원문의 높이는 5미터에 달한다.

차원문의 희뿌연 소용돌이에 가려진 레드 드레이크의 모습은, 멕시코 쪽에 선 사람들에게는 아직 불분명했다.

뭔가 파충류 느낌이긴 한데, 오크도 고블린도 아니다.

크기도 훨씬 크고, 무엇보다 입에서 화염을 내뿜는다.

도대체 뭘까. 궁금해하는 것도 정말 잠깐뿐이었다.

불덩이 한 개를 만들고 나서, 레드 드레이크는 고개를 돌려 멕시코 쪽에도 아가리를 벌렸다.

희뿌연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타난 파충류 괴수의 머리.

그 광경에 놀라 잠깐 사고가 경직된 멕시코 경찰들은 국경 건너편의 동종 직종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선 채로 타올랐다.

뒤에 서 있던 동료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흩어졌다.

“드··· 드래곤이다!”

“사··· 사람 살려!”

“기동타격대··· 아니, 군대에 연락해!”

“마··· 막아서라! 몬스터가 시내로 진입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경찰 간부조차도 도망가기에 바빴다.

미국 쪽 국경에 이어, 멕시코 쪽 국경에서도 경찰이 혼비백산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다.

멕시코 경찰은 기동타격대를 부르려고 했지만, 미국 쪽 국경에는 이미 그들이 와 있었다.

그러나, SWAT 팀 역시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드레이크는 불을 뿜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넘쳤다.

아주 잠깐 동안 머뭇거리며 공격과 도주 사이에서 선택지를 고민하던 SWAT 팀 멤버들.

탁탁거리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 가는 경찰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은 잠에서 깨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서 있던 기자들과 방송국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벌어지는 불 쇼를 구경하는 대신, 냉정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했던 몇 명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섞여, 자동차 문을 여는 자동차 열쇠의 삑삑거리는 소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려 왔다.

나오자마자 국경 양쪽에서 막대한 킬 수를 기록한 레드 드레이크는 의기양양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구를 정복하러 온 외계 침략자처럼, 드레이크는 처음 보는 지구 풍경을 마치 음미라도 하듯 천천히 바라보았다.

뱀의 혀와 같이 끝이 둘로 갈라진 붉은 혓바닥이 드레이크의 아가리에서 나와 낼름거렸다.

그 모습만으로도, 지구인들은 외계에서 온 손님의 악의를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움직이는 물체가 더 많아서 그런지, 드레이크는 날개를 펄럭이며 미국 쪽으로 움직였다.

미국 땅을 밟은 드레이크는 가시가 박힌 날개를 휘둘러 방해되는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비롯한 방송 집기, 자동차, 바리케이드···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난 드레이크는 날개와 발과 꼬리를 휘둘러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부쉈다.

커다란 화면에 뉴스를 틀어 놓은 방송국 차량이 드레이크의 눈에 띄었다.

날개를 한번 푸드덕거려 길게 점프한 드레이크는 단박에 대형 스크린 앞에 착지했다.

그리고 거대한 화면 앞에 선 채로 벌벌 떠는 사람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카메라를 집어 던지지 못하고 뒤쳐지던 카메라맨이었다.

바로 눈 앞에 거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를 향해 드레이크의 붉은 화염이 덤벼들었다.

“으아아아!”

전신이 불에 타는 상상을 하며,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은 카메라맨.

위기의 순간이라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것인가?

화염의 혓바닥이 당도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불타는 고통도 뜨거운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맨은 눈을 떴다.

투명한 방패에 막히기라도 한 듯, 드레이크의 화염이 그의 바로 앞에서 하늘을 향해 꺾여 있었다.

“뭐··· 뭐지?”

정신을 차린 그는 카메라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드레이크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의 가로등을 향해 달리는 그의 앞에 사람이 보였다.

비명이 난무하는 도로 한복판으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단호한 보폭으로 드레이크를 향해 그 사람은 다가갔다.

“쿠웨엑!”

드레이크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화염의 끝자락이 방향을 완전히 꺾어 나오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자신의 화염에 입을 그을린 드레이크는 꽥 소리를 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여 바닥에서 3미터 정도의 높이로 날아올랐다.

*****

‘누군가 촬영하고 있을까? 하긴, 무슨 상관이야.’

이준기는 드레이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텔레키네시스의 채널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드레이크의 퍼덕이던 날개가 뭔가에 잡히기라도 한 듯 공중에서 경직되었다.

고통스러운 괴성과 함께 드레이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햐아아!”

3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으나, 드레이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어섰다.

다리에서 머리까지 높이가 그 정도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키 높이 정도에서 떨어진 것인데, 튼튼한 몬스터라서 그런지 다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화염 공격에 이어 날개바람 공격까지 실패한 드레이크.

파공음을 날리려고 입을 벌렸다.

그러나 반쯤 벌어졌던 입이 억지로 다물어졌다.

이제 정말 짜증이 난다는 듯, 드레이크는 괴성을 지르며 이준기를 향해 돌진해 왔다.

바닥을 울리며 달려오던 드레이크의 몸이 공중으로 떴다.

마치 뭉쳐진 실타래처럼 웅크려진 채, 드레이크는 옴짝달싹 못 하고 공중에 떴다.

그때, 바로 뒤의 차원문에서 두 번째 드레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피부에 푸른 빛의 오라를 띤 블루 드레이크.

나오자마자 이준기를 향해 ‘프로스트 브레스(frost breath)’를 내뿜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준기 대신 레드 드레이크를 직격했다.

공중에 떠 있던 레드 드레이크를, 이준기는 마치 볼링공처럼 블루 드레이크를 향해 던졌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괴수를 피해 블루 드레이크는 뒷걸음질 쳤다.

블루 드레이크가 내뱉은 냉기에, 레드 드레이크는 공중에서 눈덩이처럼 얼어붙었다.

혼비백산 흩어지며 도망간 경찰들이 버리고 간 무기들이 바닥에 잔뜩 널려 있었다.

이준기는 그중에서 톤파(tonfa)를 집어 들었다.

손잡이가 삐죽 나와 있어 잡기 편한 T자 모양의 경찰봉.

손잡이를 잡고 타격 부위를 팔에 나란히 붙여 사용하는 무기다.

‘이거, 미국 경찰이 쓰는 거니까 튼튼하겠지?’

이준기는 톤파를 오른손에 쥐고 엉겨 붙은 두 마리의 드레이크를 향해 돌격했다.

그 모습을 보고 블루 드레이크가 공격 자세를 취했다.

가시가 달린 날개를 휘둘렀으나, 이준기는 수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공중을 나아가며 피했다.

블루 드레이크의 날개 밑으로 몸을 숙여 피한 이준기.

그대로 레드 드레이크를 향해 오른팔의 톤파를 휘둘렀다.

콰직!

얼어붙은 레드 드레이크의 몸이 깨지면서 금이 갔다.

그리고 얼음 조각처럼 깨져 내리기 시작했다.

*****

“저··· 저럴 수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빈 브리검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처음 보는 몬스터가 차원문에서 나왔다.

입에서 불을 뿜는 괴수.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킬러포니아의 새로운 보스라는 동양인은 무기도 없이 몬스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치 장난감처럼 두 마리의 괴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러··· 러시아에는 저런 괴물이 있다는 거냐?”

검문소 근처 여기저기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공격대원들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갱과 갑자기 동맹을 맺는 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베라 로페즈.

팀원 네 명과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거··· 설마 텔레키네시스?”

팀원들 중 하나가 대꾸했다.

“유··· 율라가 말했던 것··· 믿지 않았는데 사실인가 봅니다.”

“무슨 얘기야? 율라가 무슨 말을 했어?”

“손대지 않고 총을 조종하고, 원거리에서 유니콘의 뿔을 부러뜨렸다고 했어요.”

“그래서··· 정말 저게 저 사람이 하는 기술이라는 거야?”

“베라 님도 말씀하셨잖습니까. 텔레키네시스 아니냐고.”

“미··· 믿을 수 없어···”

얼어붙었던 레드 드래곤은 이제 산산조각 깨진 얼음 조각 무더기가 되었다.

블루 드레이크는 근거리에 붙은 이준기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가시가 달린 날개,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채찍과 같은 모양의 꼬리로 드레이크는 다양하게 공격을 해왔다.

그러나 이준기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적의 공격을 회피하고 나면, 유려한 연속 동작으로 드레이크를 타격했다.

마치, 각본에 따라서 둘이 춤이라도 추는 것 같다.

무기는 오른팔에 붙인 톤파 하나뿐.

미처 현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경찰과 기자 몇 명이 이준기와 블루 드레이크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ABC의 기자, 조던 브라이트(Jordan Bright)도 그중 하나였다.

사상 최고의 조회 수를 기록하게 되는 ‘조슈아 대 드레이크’의 싸움 동영상을 찍은 바로 그 사람.

이번에는 ‘이준기 대 드레이크’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또다시 드레이크의 꼬리가 허공을 갈랐다.

이준기는 회피 동작에 이어 반 바퀴 스핀을 돌아 오른팔의 톤파로 드레이크의 몸통을 타격했다.

“꿰에엑!”

갑자기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는 블루 드레이크.

산탄총에라도 맞은 듯, 오른쪽 어깻죽지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반쯤 잘린 날개가 어깻죽지에 매달린 채 덜렁거렸다.

‘저건!’

방사형으로 파괴된 상처의 모양을 보고 이준기는 즉각 알아차렸다.

‘반물질장(anti-matter field).’

그의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는 조슈아 테일러라고 합니다.”

*****

이준기는 재빨리 뒤로 돌았다.

조슈아 테일러는 이미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마치 경찰봉을 펴는 것처럼, 조슈아는 오른손에 쥔 물건을 바닥을 향해 흔들었다.

촤라락!

‘아시라나르의 사복검.’

아직도 꿈에서 보고는 하는 그 무기가 이준기의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지. 여긴 차원문 바깥이다.’

사복검의 모양을 흉내 낸 것이 틀림없지만, 그건 그저 접히는 스타일의 레플리카 검이었다.

도약해서 공중에 뜬 조슈아는 블루 드레이크를 향해 장난감 사복검을 휘둘렀다.

“꿰엑!”

날조차 서지 않은 장난감 같은 막대기가, 블루 드레이크의 왼쪽 날개를 베어냈다.

날개가 떨어진 드레이크는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 하시는 겁니까!”

조슈아의 목소리가 다시 이준기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조건반사와도 같이, 이준기는 반사적으로 블루 드레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날개가 잘린 곳을 톤파로 직격하자, 피가 뿜어져 나왔다.

“꽤애액!”

드레이크는 그렇게 단말마를 내지르고 쓰러져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쓰러진 드레이크를 사이에 두고 조슈아와 이준기는 서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섰다.

이준기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조슈아 테일러.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수천, 수만 번 이 순간을 머릿속에서 돌려보았다.

레드 드레이크를 향해 뛰어나갈 때부터, 바로 이 순간을 예상했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조슈아를 향해, 이준기는 이를 악물고 소리 질렀다.

“조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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