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243화 (24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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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6: 근접 조우 (1)

Episode 56: 근접 조우 (1)

101의 조직력이라면, 영역 내의 차원문 발생은 사건 1시간 내에 모두 파악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원문 발생을 파악하자마자 달려오지는 않겠지.

차원문이 발생하기 전에 도착한다면 더 좋겠지만, 조금 늦게 도착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국경 차원문’은 여러 가지로 유명한 차원문이다.

미국 땅이라고도, 멕시코 땅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절묘한 위치에 나타나서 관할권 문제를 야기했다.

차원문 포위를 두고 양국 경찰이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 차원문을 유명하게 만든 최대 요인은 또다시 조슈아 테일러다.

A 등급 던전을 단신으로 봉쇄한 것이다.

헬렌 카자크와 조슈아 테일러 팬들 사이에서 벌어지던 최강 구원자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진입 당시 51레벨, 봉쇄 직후 52레벨.

소요 시간 47시간.

질질 끌던 미국 내전의 시곗바늘이 갑자기 빨라졌다.

바로 며칠 전에 내전 개입을 공식으로 밝힌 조슈아 테일러.

알고 있던 것보다 더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동부 연합은 패닉에 빠졌다.

‘오늘, 그것이 재현되겠지.’

사상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한 차원문 앞에서의 전투 영상.

붉은 일몰을 배경으로, 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화려한 움직임을 뽐내는 조슈아 테일러.

몇 달 뒤, 그 자신의 다른 동영상에 의해서 겨우 기록이 깨지는, 바로 그 동영상.

그러니까, 2020년 5월 ‘샌프란시스코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두 달 동안 최다 조회 수 기록을 보유하게 되는 영상이다.

엘파소에서 일행은 잠을 청했다.

밤새 도로를 달려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도착하고 싶은 마음의 이준기였지만, 전투를 위한 컨디션 유지가 필요하다.

일찍 자고 아침 이른 시각에 출발한다면, 적절한 시점에 현장에 도착할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에 마빈 브리검이 물었다.

“스즈키 선생,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네. 차원문 때문입니다.”

“차원문?”

“샌디에이고 근방의 차원문은 생기는 대로 족족 101 길드에서 없애버리고 있죠. 세계적으로 봐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차원문이 봉쇄되는 지역은 흔치 않습니다.”

“맞아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소. 조슈아 테일러의 애향심이라고···”

“차원문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브리검 회장도 아시겠지만, 차원문 발생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 유동인구설이 대세죠. 차원문 발생 간격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설에 따르면, 차원문 발생 간격은 공식으로 결정되는데, 가장 비중이 크게 작용하는 변수가 바로 근방에 얼마나 많은 차원문이 열려 있는가 하는 겁니다.”

되는대로 지어내는 것인데도,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하는 거짓말은 양심의 가책도 더 적고,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진행하는 논리 체크도 더 허술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100% 거짓말도 아니다.

차원문에 대한 논문은 넘치게 나와 있고, 차원문 발생 위치에 관한 가설 중에서 유동인구설이 대세인 것도 사실이니까.

“아아··· 스즈키 선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군요. 논문을 다 찾아 읽다니.”

“열심히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101 녀석들의 나와바리에는 차원문이 별로 없으니까··· 차원문이 더 빨리 생성된다는 얘기요?”

“그렇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샌디에이고 근방 100마일 내에서 차원문이 사라진 지 벌써 2주일이 넘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논문에 의하면, 이게 한계입니다. 특정 지역에 차원문이 없는 상태로 2주일이 지날 확률은 3%가 채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오늘내일 중에 샌디에이고에 차원문이 발생하겠군?”

“그렇습니다. 101 길드의 영역은 캘리포니아를 넘어 네바다, 아리조나, 오레곤에 걸쳐 있으니 대단히 광활합니다만, 샌디에이고 근방은 거의 조슈아 테일러의 개인 관할이나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차원문 진입 직전에 기습한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산타마리아 멤버들에게는 익숙한 작전이죠.”

*****

3월 12일 아침 6시 30분.

새로운 시대의 특권 계층인 구원자들이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길에 나서는 스케줄에 대한 불평은 들리지 않았다.

산타마리아 멤버들은 숨어 지내는 생활, 자다가 갑자기 깨서 숙소를 옮기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당연했다.

킬러포니아 쪽도 마찬가지. 범죄조직에서 상명하복은 기본이니까.

마빈 브리검과 베라 로페즈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밟으면 오후 5시쯤 도착하겠군.”

“10시간 걸리는 것으로 계산하시는 거라면, 시차 때문에 오후 4시가 되겠죠. 하지만 차가 여러 대라서, 마음껏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 시차가 있었지. 아무튼 일찍 도착할수록 더 좋다고 하니까.”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요, 길마님?”

“베라 당신도 어제 스즈키 선생의 설명을 들었잖아. 지금 당장 차원문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라고 했지. 게다가 차원문이 발생하면 101 놈들은 곧바로 달려들 테니까, 늦게 가면 모처럼 잡은 기회가 날아가는 거지.”

“알겠습니다. 운전자들에게 말해두겠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장시간 운전에 나서야 하는 추이 이아고닉은 출발 전에도 바빴다.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부하들에게 전달할 사항은 출발 전에 모두 전달하려고 했다.

“산타마리아 쪽은 이미 팀이 정해져 있다. 오랫동안 함께 활동한 팀들이라서 팀워크가 훌륭하지. 애석하게도 우린 그런 상황이 아니지만, 보스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알겠나?”

추이의 말대로, 산타마리아는 벌써 몇 달째 게릴라 활동 중이다.

텍사스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같은 길드원끼리 팀을 이루어 활동해 왔기 때문에 팀워크가 좋은 편이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테러 활동에 주력해 왔기 때문에 구원자 상대로는 고전할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손발이 맞는다는 것은 크나큰 장점이다.

반면 킬러포니아는 활동 지역도, 하던 일도 저마다 다르다.

동부 연합 지원차 미국에 나가 있던 멤버도 있고, 멕시코에 남아 있던 멤버도 있다.

미국에 출장 나와 있던 멤버들이라고 해서 활동 지역이나 활동 내용이 비슷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보스가 보는 앞에서 산타마리아에 뒤떨어지는 활약을 보일까, 추이는 걱정했다.

“보스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보스를 따라가면, 우리는 멕시코 최강을 넘어 세계 최강의 길드도 될 수 있다! 열심히 하자!”

*****

중국 정부군은 현지 시각 3월 11일 오전 3시에 저항군 완전 소탕을 선언했다.

중국 내전이 끝난 것이다.

이로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3대 내전 중 둘, 즉 우크라이나와 중국의 내전이 종식되었다.

3월 11일 오전 5시, 중국은 부탄을 침공했다.

새벽 5시에, 그것도 내전 종식 선언 겨우 두 시간 만에 전개된 군사 작전.

누구라도 미리 계획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인구 75만 명, 군인 8천 명에 불과한 부탄은 중국군의 진입을 막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부탄의 맹방이었으며, 부탄의 제공권을 대신해서 행사하는 인도군도 이 작전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아침 8시, 그러니까 침공 개시 3시간 만에 부탄은 중국에 합병되었다.

부탄 유일의 구원자, 노르부 왕모(Norbu Wangmo)가 기자회견 자리에 나섰다.

“2020년 3월 11일. 이날은 부탄 민중이 왕축 일가의 폭정에서 해방된 날이며, 부탄이 실질적 민주화에 성공한 날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노르부 왕모는 인도 길드, ‘가루다(Garuda)’ 소속으로 활동 중이었으므로, 중국과의 합병을 환영하는 이 발언은 사람들을 크게 혼란시켰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노르부 왕모가 중국에 포섭된 스파이가 아니냐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이 그의 귀에도 들어갔는지, 노르부 왕모는 중국과의 합병을 축하하는 기자회견을 한 지 6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기자회견을 했다.

“저는 민주주의자입니다. 왕축 일가의 가증스러운 폭정을 더 견딜 수 없었을 뿐입니다. 인도에서 길드 활동을 한 것은, 부탄에 생긴 차원문 봉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뿐입니다. 저 혼자 차원문을 닫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인도는 중국의 부탄 병합을 즉각 항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부탄 국내 여론은 인도 편이 아니었다.

중국은 합병 즉시 부탄을 자치구로 선언하고 군사, 외교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부탄 자치정부에 위임한다고 밝혔다.

왕정에 반대해온 여당, 부탄통일당(Druk Nyamrup Tshogpa; DNT)이 이에 대해 환영 의사를 표명하자, 국민 여론은 급격하게 돌아섰다.

여론의 급변에는 구원자 노르부 왕모의 역할이 컸다.

부탄 유일의 구원자이자 인도 길드 ‘가루다’에서도 손꼽히는 스트라이커로 활동해온 젊은 미남, 노르부 왕모.

국왕의 인기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지 오래다.

정치적 발언은 단 한 차례도 입에 담지 않았던 그가 갑자기 민주주의를 지지하자, 국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왕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오후의 기자회견과 동시에 노르부 왕모는 여당 부탄통일당 입당 원서를 냈다.

부탄통일당의 바뀌기 전 이름은 사회민주당.

좀 더 대중적인 어필을 위해 당명을 바꾸었지만, 정강은 바뀌지 않았다.

노르부 왕모의 입당을 시작으로, 국민들은 너도나도 부탄통일당에 입당 원서를 냈다.

누가 시작했는지, 이날 저녁 수도 팀푸(Timphu) 시내에서는 민주화 지지 집회가 열렸다.

민주화 지지라고는 하지만, 구호는 왕정 비판 일색이었다.

“허울 좋은 입헌군주제를 내세워 국민을 핍박해온 국왕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

“국왕의 부정부패에 대해 즉각 검찰 조사를 개시하라!”

“절대왕정으로의 복귀를 획책하는 야당 총수를 당장 구속하라!”

거기에서 끝났다면, 부탄 사태는 조용히 세계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집회에는 더 과격한 구호가 나타났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과격함은 가중되었다.

문제는 그 과격한 구호의 대상이 인도였다는 것이다.

“인도 정부는 그간의 내정간섭에 대해 사과와 피해 보상을 하라!”

“인도 정부는 비호 중인 민족반역자, 평화번영당 당수를 당장 부탄에 송환하라!”

“인도 공군은 그간 부탄 상공 비행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세계 대전의 한 축, 인도-중국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준기가 기억하는 역사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

현지 시간으로는 3월 11일이지만, 캘리포니아 시간으로는 3월 10일에 일어났던 또 하나의 사건, ‘플로리다 프로젝트’.

밤사이 벌어진 총격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수백 명의 시신.

그 대부분이 구원자라는 사실은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보다 십여 시간 전에 벌어진 중국 정부군의 선전 공격.

그곳에서도 수많은 구원자들이 죽었겠지만, 중국 정부의 정보 통제로 인해 그 실상은 알 수 없다.

양측 도합 40여 명의 구원자와 90여 명의 일반인이 죽었다고 중국 정부가 발표했지만,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그 두 배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것이 중론.

하지만, 중국 정부 발표의 두 배로 추산해도 구원자 사망 수는 9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전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부 전선 소속 구원자 200명 이상, 그리고 침략자 150명 이상이 사망했다.

실종자가 많아 정확한 통계는 끝까지 확보되지 않았다.

차원문 안에서 사망한 경우, 목격자가 없다면 영원히 실종 상태다.

게다가 이후의 세계사는 통계 수정 따위에 시간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튼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건은 승기를 굳혀가던 서부 전선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계속해서 내전을 질질 끄는 것에 대해 반대 여론이 드높게 일어났다.

다소의 부수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동부 연합 잔당을 샅샅이 찾아내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서부 전선 소속 구원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준기가 기억하는 역사와 지금 현재 진행 중인 역사의 가장 큰 차이는 조슈아 테일러의 참전 여부다.

원래의 역사에서 조슈아 테일러는 떠밀린 듯이 동부 연합 잔당 소탕에 나서, 엄청난 킬 수와 함께 쾌속 레벨업을 달성한다.

그런데 지금의 조슈아 테일러는 아직도 밖에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조슈아 테일러는 뉴스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서 카메라 앞에 선 101 길드의 수장, 키건 하워즈는 짧게 대답했다.

“101 길드는 서부 전선을 지지합니다. 다만, 전투 참가는 길드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101 길드의 민주적 운영 방식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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